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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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4. 눈물로 띄운 마지막 전파

전파를 빼앗겨 텅 빈 주조정실
송지헌(宋芝憲)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울음을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민족의 방송으로 자임한 지 17년 7개월.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국당하는 울분이 목소리에 가득했다.

“지금까지 여러분께서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방송해드린 DBS 동아방송을 들으셨습니다. 1963년 4월25일 새벽 5시 주파수 1230㎑ 출력 10㎾로 첫 전파를 발사한 이래 18년 동안 청 취자 여러분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저희 동아방송이 이제 고별의 장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동아방송을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 분 안녕히 계십시오. 여기는 동아방송입니다. HLKJ.”

1980년 11월30일 밤 12시. 동아방송의 마지막 멘트였다. 왜 방송을 중단해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달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야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아무것도 토해낼 수 없었다. 닷새 전 기독교방송의 고별뉴스에서 여자 아나운서가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잔뜩 긴장한 신군부가 ‘고별방송에 관한 지침’을 엄하게 통보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 전 해 12·12사태로 권력의 전면에 나선 이른바 ‘신군부’는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의 5공출범과 함께 언론장악의 마지막 수순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이후 모든 고별 멘트, 고별 프로의 대본 등은 미리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아야 했고 진행자와 출연자는 검열받은 원고나 대본 외의 다른 어떤 애드립(즉흥대사)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 통곡하는 것이 전부였다.

11월30일, 그 날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어진 DBS의 고별방송은 민주주의가 죽었음을 알리는 조종(弔鐘) 소리 같았다.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마지막 ‘뉴스 쇼’에서 진행자 최종철(崔鍾哲) 정경부장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동아방송 보도의 공과 과는 후세의 평가에 맡기려 합니다. 그러나 후세에 동아방송 기자들이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격동의 한 시대를 정의의 편에 서서 열심히, 성실하게 뛰었다고 말하려 합니다. 동아방송의 18년사는 분명히 한국언론사에 비록 짧지만 굵게 기록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이 순간 동아방송 기자들은, 손때 묻은 취재수첩을 여백을 남긴 채 일단 접으면서 애청자 여러분이 저희들에게 주신 격려와 성원 그리고 질책까지도 귀중한 보람으로 마음속 깊이 간직하려 합니다. ”

동아방송의 폐국은 이른바 ‘80년 언론 대학살’로 불리는 언론인 대량 해직과 언론기관 통폐합의 결과다. 개혁주도세력을 자처하는 신군부 새 집권층에 의해 자행된 언론인 해직은 그 해 7월부터 막이 올랐다. 검열거부와 제작거부에 앞장선 기자들을 비롯, 반체제 언론인들을 숙청한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문화방송 경향신문이 7월15일과 19일 97명을 해직하면서 소문이 마침내 사실로 드러났다. 이어 KBS가 8월 중순까지 140명을 해임했으며 동아일보사의 경우도 방송국 기자 7명을 포 함한 33명이 강제해직의 멍에를 써야 했다. 이 조치로 회사를 떠난 언론인은 서울 359명, 지 방 352명 등 모두 71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20명은 옥고까지 치른다. 언론인 해직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언론사상 최대의 충격으로 불리는 언론기관 통 폐합이 언론계를 강타했다. 언론인 집단 해직이 정권장악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면 언론기관 통폐합은 마침내 언론을 장악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갖추기 위한 수 순이었다.

# “어쩔 수 없소. 포기각서를 쓰지”

80년 11월12일 오후 5시20분경 보안사령관 노태우(盧泰愚)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안내요원을 따라 보안사령부에 도착한 김상만 회장과 이동욱 사장은 오후 6시5분 208호실에서 ‘이대령’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수사관과 마주앉았다. 그는 대뜸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각서’라는 제목을 단 종이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본인은 새 시대를 맞아 국가의 언론정책에 적극 호응하여 본인이 대표이사 회장 및 사장으로 되어 있는 주식회사 동아일보사 소속 동아방송을 다음과 같이 조치할 것을 다짐하여 서명하며 이 각서에 의한 조치에 대하여는 앞으로 민·형사소송 및 행정소송 등 여하한 방식에 의해서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동아방송을 포기하라는 것으로 이는 강제로 빼앗아 통폐합하겠다는 통고나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포기각서 서명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대령과 숨가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방송 공영화 방침이 정해졌습니다. 동아방송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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