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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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동아방송은 개국 1년이 채 안 돼 뉴스 횟수를 하루 17회로 늘렸다. 이는 MBC의 8회를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개국 1년 동안 나간 뉴스만도 모두 4000여 차례, 여기에 임시뉴스까지 포함하면 보도건수만도 3만7000건이 넘는다. 이는 줄잡아도 매일 8면을 내는 신문기사의 두 배가 넘는 양이다.

이 가운데 63년 10월 49명이 익사한 경기도 여주군 조포 나루터 나룻배 전복사건, 같은 해 11월 이득주 중령 일가 몰사사건과 범인 고재봉 체포, 64년 4월 전북 진안군 연창금광 낙반사고에서 보여준 기동력과 취재 능력은 동아방송의 저력 그 자체였다.특히 낙반사고로 8일간이나 굴속에 묻혀 있는 광부와 파이프를 통해 대화, 그 처절한 상황을 생생한 육성으로 전달한 것은 전파미디어의 특성이 돋보인 일대 개가였다.

동아방송의 뉴스는 다른 방송의 뉴스시간대까지 흔들어 놓았다. 동아방송이 개국한 지 11일 만에 MBC가 정시 뉴스를 시보전 뉴스로 바꾸었다. 동아방송보다 1년 늦게 개국한 RSB(TBC의 전신)는 처음부터 시보전 뉴스로 출발했다.

‘라디오 석간’ (74.9)
64년 2월20일의 개편으로 처음 등장한 ‘라디오 석간’은 오후 7시부터 15분 동안 방송하며 뉴스전달 패턴을 집중화·대형화하는 데 성공해 방송뉴스의 포맷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작품이다. ‘라디오 석간’은 주요 뉴스를 심층취재해 다각적인 시각으로 소화하면서 녹음구성과 음악을 곁들여 청취자들에게 다가갔다. 또 남녀 캐스터가 함께 등장해 신문이 따를 수 없는 방송뉴스 특유의 감칠맛을 선사했다. ‘라디오 석간’의 성공은 이 해 10월1일부터 같은 포맷의 아침 종합뉴스인 ‘라디오 조간’을 탄생시키고 동아방송은 ‘라디오 조간’ ‘정오 뉴스’ ‘라디오 석간’ 트리오를 앞세워 종합보도 체제를 다져나갔다.

개국 직후인 63년 7월 전국 청취자의 18.9%(공보부 조사)로 나타났던 동아방송의 청취율은 두 달 후인 9월 20%(연세대 조사)로 상승했고 64년 2월 공보부 조사에서는 33.5%로 뛰어 올랐다. 이는 KBS의 39.8%에는 뒤지지만 KBS가 전국 방송망을 갖고 있는 반면 동아방송의 가청지역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충남 일원과 충북 강원 일부였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특히 경인지역에서는 동아방송 청취율이 50%를 넘을 정도였다. 동아방송의 청취율은 64년 5월 RSB가 등장한 뒤에도 변함이 없어 이 해 9월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31.3%로 20.7%인 KBS를 크게 앞지르며 청취율 1위를 확고하게 지켰다.

2. 더 맑게, 더 멀리

개국 1년 만에 청취율과 공신력, 영향력에서 정상에 오른 동아방송은 65년부터 70년까지 6년 동안 초창기에 보이던 미숙성을 극복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한다.

‘더 맑게, 더 멀리’는 개국 이래의 소원이었다. 10㎾라는 낮은 출력에 지방국 설치마저 여 의치 않은 상황에 당장 가능한 것은 잘 들리는 방송의 실현이었고 출력을 증강해 멀리 들리 도록 하는 것이었다. 더 맑게 들리는 방송을 위해서는 주파수를 변경해야 했다. 동아방송의 1230㎑는 일본 나가사키 방송의 주파수와 똑같았다. 주파수가 같으면 소리가 뒤엉키기 마련 이다. 나가사키 방송이 혼신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출력을 증강하는 바람에 동아방송의 혼신 상태는 갈수록 심해졌다.

3년 가까이 청취자와 친숙해진 주파수를 버리고 새 주파수로 옮긴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모험이다. 그런데도 동아방송은 66년 3월16일 체신부에 주파수 변경을 출원해 이 해 12월4일부터 790㎑로 바꾸었다. 청취율 1위라는 자신감이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할 ‘도박’ 이었다. 주파수 변경으로 ‘맑은 방송’을 실현한 동아방송은 이어 ‘더 멀리’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동아방송은 개국 때부터 부산과 광주 지방국 설치를 출원했고 65년에는 FM 방송국, 67년에는 TV 방송국 설립허가원을 차례로 냈으나 당국은 그때마다 거부했다. 따라서 출력증강을 통해 가청권을 전국으로 늘리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었다.

개국 5주년 기념일인 68년 4월25일 새벽 5시 마침내 50㎾의 강력하고 선명한 전파가 전국을 향해 송출되었다. 종전 가청권을 훨씬 넘어 경북 안동 대구와 제주 등에서 수신 보고가 쇄도했다. 심지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수신클럽, 호주의 수신서클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처에서 ‘수신양호’ ‘프로그램 완전 청취’라는 보고서가 날아들었다. ‘맑은 방송, 멀리 들리는 방송’의 실현과 더불어 새 프로그램도 속속 등장했다. 1시간짜리 와이드물 종합생활정보 프로그램인 ‘동아 스코프’가 탄생했고 ‘동아 스코프’의 자매프 로그램인 ‘서울 패트롤’ ‘0시에 만난 사람’ 등도 잇따라 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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