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1. “여기는 동아방송입니다”

개국기념공연 (시민회관, 63.4.25)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동아방송입니다. 동아의 첫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1963년 4월25일 새벽 5시30분 동아방송(Dong-A Broadcasting System)의 첫 전파가 뉴스를 쏘아 올렸다. 이어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이 웅장하게 흐르면서 전영우 아나운서의 개국인 사가 새벽 공기를 뚫었다.

“오늘, 여명이 멀리 동터오는 지금 동아방송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의 전파가 여러분의 가정을 찾아 개국 첫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백성의 눈을 뜨게 하고 짓밟힌 조국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지금부터 43년 전에 창간된 신문의 동아는 이제 젊고, 티없는 지성이 자유와 권리의 수호를 위해서 독재에 항거해 깃발을 뒤흔든 그 4월의 푸른 계절을 기려 방송의 동아 DBS를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개국인사는 25분 동안 이어졌다. “동아방송은 첫째, 사회공기로서 자율성과 불편부당이라는 매스미디어 본연의 자세를 끝내 간직하고 민주언론의 자유를 확보할 것입니다. 둘째, 전파의 공공성에 입각해서 여론을 존중하고 공정과 언론표현의 자유를 확보하여 민족문화 형성에 공헌하겠습니다. 셋째, 광고 전파매체로 사명과 기능을 충분히 발휘해서 이 나라 산업경제 번영과 공공복지에 이바지할 것을 청취자 여러분 앞에서 스스로 다짐합니다.”

오전 7시5분에는 최두선 동아일보 사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함으로써 이 나라의 민주언론 창달에 힘쓸 것은 물론 전파가 국민의 것임을 명심하고 준수해서 동아일보의 형제매체로서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매진하겠다.”는 약속이 묵직한 음성으로 흘러 나왔다. 콜사인 HLKJ,주파수 1230㎑, 출력 10㎾의 동아방송은 이렇게 태어났다.

동아일보가 방송사업을 구상하고 결정한 것은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 당 정부가 들어선 제2공화국 때였다. 당시 전무 김상만의 회고.

“민주당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10월이었다. 편집국 문화부 쪽에서 방송국을 설립해야 한다는 건의가 올라왔다. 문화부 호현찬 기자가 방송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 등을 모으고 권오철 이동수씨 등 중간 간부층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회사 형편으로는 벅찬 일이었지만 나도 마음이 기울었다. 무엇보다도 방송의 속보성이 큰 매력이고 강점이었다. 당시 상황은 뉴스와 정보의 신속한 전달을 더욱 갈망하던 때였다.… 결국 우리는 방송의 기업성이나 채산성보다 그 필요성과 사명감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운집한 성우 지망생들 (63.3.9)
61년 1월 체신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고 이듬해 KBS TV 자문위원이던 최창봉과 한국전자공업회사 신광우 사장이 제작과 기술부문 실무를 맡으면서 준비작업은 착착 진행됐다. 광화문사옥에 방송국이 들어설 4, 5층을 증축했고 오류동 송신소가 완공되면서 이 해 12월14일 새벽 첫 시험전파를 발사했다.

45명을 뽑는 제1기 성우 견습생 모집에 무려 1825명이 응모했다. 또 8명을 뽑는 방송수습기자 선발에 420명, 8명을 뽑는 아나운서 선발에는 312명이 몰려들었다. 동아방송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이처럼 대단했다.

# 1년 만에 청취율 1위

개국 특집프로그램은 4일 동안 이어졌다. 민족의 애환이 서린 전통가락을 엄선한 ‘민요연곡’ , 문인들이연기자로 등장한 ‘문인극’, 동아일보 연륜 43년에 맞춰 구성한 ‘노래의 43년’, 봄의 서정을 새로운 연출감각으로 엮은 뮤지컬 ‘봄의 고향’, 남해에서 휴전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숨결을 현지녹음으로 취재한 ‘DBS리포트’ 등이 특히 청취자들의 격찬을 받았다.

동아방송은 놀랍게도 개국 1년 만에 선발주자들을 제치고 청취율 1위에 올랐다. 불리했던 당시 여건으로 볼 때 경이적인 일이었다. 30여 년의 역사와 함께 전국에 걸쳐 지방망을 갖고 있던 KBS, 종교특수방송으로 시작했으나 민간방송 역할을 보강하면서 주요도시에 지방국을 갖고 있던 CBS, 본격적인 상업방송으로 부산과 대구에 지방망을 갖춘 MBC가 할거하는 틈바구니에서 후발 주자인 동아방송은 출발부터 열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11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