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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추억의 스타앨범
나화랑 편 - ‘무너진 사랑탑’ ‘도라지 맘보’의 작곡가
나화랑 편
‘무너진 사랑탑’ ‘도라지 맘보’의 작곡가
1972.02.06 방송
‘추억의 스타 앨범’은 출생·데뷔에서부터 근황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 그 가수의 일생을 추억의 노래와 함께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 추억의 스타 앨범. 이제는 영원히 가버린 세월 청춘의 화려한 낭만과 감상이 번져있는 그리운 추억, 세월은 흘러갔지만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시절 그사람의 얘기를 돌이켜보는 추억의 스타앨범 오늘은 나화랑 편입니다.

-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을지라도 젊었던 시절의 낭만과 감상이 번져있는 정다운 노래. 아직도 추억속에 남아있는 수많은 노래를 만들어 주었던 작곡가 나화랑. 나화랑은 도미가 불렀던 `청포도 사랑`, 남일해가 불렀던 `찾아온 산장`, 남인수가 불렀던 `무너진 사랑탑`, 심연옥이 불렀던 `도라지 맘보`, 그 밖에 `삼각산 손님`, `함경도 사나이`, `울산 큰애기` 등 수많은 노래를 작곡한 작곡가일 뿐만아니라 한때는 노래를 불러서 10여곡을 취입하기도 했으며 바이올린에 남다른 솜씨를 가진 바이올린 주자이기도 합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멋잇는 사나이. 나화랑의 `무너진 사랑탑`을 남인수가 불러 줍니다.

♬ 무너진 사랑탑 - 남인수

- 작곡가 나화랑의 본 이름은 조광환 1923년생으로 경상북도 김천이 그의 고향입니다. 시인이요 작사가였던 고려성의 아우이기도한 나화랑은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켜는것이 취미였으며 장차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가 소원이었던 꿈많은 소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김천에서 보통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나화랑은 일본 도쿄로 건너가서 중앙음악학교에 입학 했으며 바이올린을 전공 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바이올린을 켜는 재주 못지않게 노래도 잘 불렀던 나화랑은 당시 태평레코드의 문예부장으로 있던 고려성과 전속 가수였던 백년설의 권유로 노래를 불러서 10여곡을 취입하기도 했으며 이어서 작곡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 나화랑의 나이 22살 아직도 소년과 같은 앳된 모습으로 작곡해낸 것이 `삼각산 손님`. 명국환이 불러줍니다.

♬ 삼각산 손님 - 명국환

-1942년 포리돌레코드에 전속 입사하자마자 첫 작품으로 히트를 날린 작곡가 나화랑은 화려하게 가요계에 데뷰를 했지만은 얼마후에 8·15 해방을 맞이하게 됐고, 해방 후에는 고향인 김천으로 돌아가서 3년동안 김천 여학교 음악교사로 있었습니다. 지금은 날씬한 승용차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서울 거리에 태고적 역마차가 추억처럼 방울을 달랑거리며 달리고 있었던 그 무렵 축음기가 코먹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마카오 신사들이 드나들고 있었으며 거리에서는 현인이 부르는 `신라의 달밤`,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이 신나게 유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노래를 좋아했던 나화랑도 다시 보따리를 싸들고 상경 서울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새노래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박재홍이 불러줬던 노래가 `재물포 아가씨`. 다시 상경한 나화랑의 히트곡 중의 하나 입니다.

♬ 재물포 아가씨 - 박재홍

- 박재홍이 불러줬던 재물포 아가씨가 나온지 얼마 후 6·25동난이 일어나자 나화랑은 즉시 육군 군예대로 종군 전후방 각 부대를 찾아 다니면서 위문활동을 했으며 9·28 수복 후에 다시 킹스타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문예부장겸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 했습니다. 초연히 가신 서울 거리에는 잿더미 만이 쌓였고 철의 삼각지대나 단장의 능선에서는 아직도 포성이 은은하던 시절, 거리에서는 신세영의 `전선야곡`, 금사향의 `님 계신 전선` 같은 노래가 유행을 하고, 진방남이 부른 `비내리는 삼랑진`, 한정무가 부른 `꿈에 본 내고향` 같은 노래가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피난민들의 가슴을 쥐어 짜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함경도 사나이` 라는 노래를 작곡해서 히트를 날린 작곡가 나화랑은 계속 걸작만을 발표 했으며 가수를 픽업 하는데도 솜씨가 있어서 `청포도 사랑`을 부른 도미, `행복의 일요일`, `서귀포 사랑`을 부른 송민도, `비내리는 부두`, `찾아온 산장`을 부른 남일해, `도라지 맘보`를 부른 심연옥, `워싱턴 블루스`와 `열아홉 순정`을 부른 이미자 등의 주가를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나화랑 작곡의 `찾아온 산장` 저음가수 남일해가 불러줍니다.

♬ 찾아온 산장 - 남일해

- `찾아온 산장`, `청포도 사랑`, `열아홉 순정` 같은 히트곡을 날려서 황금시대를 맞이했던 작곡가 나화랑은 이때 우리 민요중에서 `도라지 타령`을 골라 맘보 리듬으로 `도라지 맘보` 라는 것을 시도했으며 적중해서 인기가 상승하자 소속했던 킹스타레코드사가 하루아침에 국내제일의 회사로 비대해서 즐거운 비명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킹스타레코드에서 나온 나화랑은 라미라레코드 회사를 따로 차리고 남일해가 부른 `이정표`, 이미자가 부른 `님이라 부르리까`, 유성희가 부른 `사랑은 즐거운 스윙`, 김상희가 부른 `울산 큰애기` 같은 히트곡을 내놨습니다. 라미라레코드를 직영하면서 한편으로는 지구레코드의 전속 작곡가로 이미자가 부른 `정동 대감` 같은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던 나화랑은 후배양성을 하기 위해서 음악 학원을 개설하는가 하면은 방송윤리위원회 가요 심의위원, 연애협회 창작분과위원을 역임하는 등 노익장의 정력을 보여주었으며, 나이와 정력과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고 좌우하리 만큼 늙지 않는 사나이기도 합니다. 늙지않는 작곡가 나화랑의 `어쩌면 잊어질까` 그의 부인 유성희가 불러주는 새노래 입니다.

♬ 어쩌면 잊어질까 - 유성희

- 꿈 많은 소년 시절에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소원이었던 나화랑은 지금 자기가 가요계에 투신하게 된 것이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고 술회하기는 하면서도 양보다는 질적으로 향상된 작품을 구상하느라 골몰하고 있습니다.


- 제가 지금도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은 처음 초지를 관철하지 못하고 중간에 변절됐다하는 점에 있어서는 정말 뼈가 아플 정도로 참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또 입각해서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의 지배를 받았었고 또 기왕 대중가요에 몸을 담은 이상에는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작곡성을 영위해야 되겠었는데 그건 뭐 대중들이 더 알아주시지 제 자신이 자화자찬은 못하겠지만은 한때는 제가 대중가요에서 크게 활약 했다는 점도 자부도 할 수 있으며 또 대중도 인정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히 뭐 변절이라는 그 어구를 쓰기도 싫고 현재 이미지로 돌아선걸 갖다가 후회하지 않습니다.


- 요즘은 한국 가요 반세기 작가 동지회 간사로 있으면서 같은 연예인이었던 부인 유성희 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고 단란하게 살고 있습니다. 10여년 전 남인수의 마지막 히트곡이었던 `무너진 사랑탑`을 특이한 수법으로 작곡해서 화제를 모았던 작곡가 나화랑. 나화랑은 머지않아 또 한번 그의 못지않은 이색적인 작곡을 해서 가요 팬들에게 잊지못할 노래를 들려주게 될 것입니다.

- 이제는 영원히 가버린 세월, 청춘의 화려한 낭만과 감상이 번져있는 그리운 추억, 세월은 흘러 갔지만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시절 그사람의 얘기를 돌이켜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나호랑 편으로 지금까지 구성에 최호영, 아나운서 한승옥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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