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스타 앨범. 이제는 영원히 가버린 세월. 청춘의 화려한 낭만과 감상이 번져있는 그리운 노래. 세월은 흘러 갔지만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김 씨스터즈 편 입니다.
- 시냇물이 흘러 강물이 되듯이 세월이 흐르면은 추억이 쌓이고, 추억이 쌓인 언덕에서 들려오는 아련한 노래 `찰리 브라운`, `김치 깍두기`를 불러줬던 김 씨스터즈. 숙자, 애자, 민자의 세자매 가수로 알려진 김 씨스터즈는 노래뿐만 아니라 트럼펫 트럼본 등 금관악기 일체와 목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 무려 28가지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연주자이자 춤추는 무희 이기도 합니다. `목포의 눈물`로 만인의 심금을 울려줬던 왕년의 인기가수 이난영이 자랑하는 자매가수인 김 씨스터즈는 한국에서보다는 오히려 미국과 유럽 등에서 더욱 널리 알려진 보컬팀으로 황금의 환락가인 미국의 라스베가스에서 인기를 독점하고 있으며 베니스, 마드리드, 뮌헨, 런던, 몬테카를로 등을 순회 하면서 아리랑을 불러 갈채를 받는 한국의 딸이기도 합니다.
- 고국에 계신 여러분들 안녕 하십니까. 숙자 입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여러분들의 기대가 어김 없도록 노력을 거듭하려고 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을 뵈올 날이 멀지 않은가 합니다. 여러분 저는 애자 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만나 뵈올 수 있다는 희망과 또 먹고싶은 김치 그리고 냉면 아이고 생각만 해도 침이 꿀꺽 삼켜 집니다. 그럼 만나 뵈올 때 까지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여러분 저는 민자예요.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저도 고국에 계신 여러분들이 보고싶고 구수한 김치찌개가 그리워서 못견디겠어요. 얼마 안있으면 고국에 나가서 여러분들도 뵙고 또 김치찌개도 먹고 그날만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 가는 곳 마다 열광적인 앵콜을 받는 `아리랑` 김 씨스터즈가 불러 줍니다.
♬
- 동양에서 온 마녀들이라고 불리우리만큼 경이적인 인기를 차지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아리랑`을 불러줬던 김 씨스터즈는 숙자, 애자, 민자의 세자매로 숙자와 애자는 이난영과 김해송 부부의 딸들이고 민자는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 씨의 딸 입니다. 숙자는 1939년생이고, 애자는 1940년생이며, 민자는 1941년생으로 한살 터울의 이 다정한 외종 세자매의 고향은 서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을 되새길만도 할만큼 지금은 소식이 없고 이승을 달리 했지만은 전형적인 음악인의 딸들로 태어난 김 씨스터즈는 모두 행복하고 화려하게 자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항의를 해 올 만큼 세자매는 어렸을때부터 만나기만 하면 노래를 불렀고 또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항상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야말로 청천의 병력같은 6·25를 만나기도 했으며 생활의 지주였던 아버지가 납북되버리자 꿈은 사라져버리고 한조각의 빵을 얻기위해 썰렁한 가설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유랑극단의 나그네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약 반세기 전에 어머니 이난영이 불러줬던 `목포의 눈물` 김 씨스터즈가 불러 줍니다.
♬
- 하루 아침에 유랑극단 나그네 신세가 된 김 씨스터즈는 얼마 후 미팔군 쇼에서 지아이들을 상대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가 1959년 1월 29일 동양쇼의 매니저였던 톰 볼스에게 픽업돼 18개월 계약으로 미국으로 가기고 했으며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문이 열리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스터즈가 처음 받은 주급은 500불, 적지않은 돈이긴 했지만은 옷을 해입고 악기를 구해야만 했으며 매니저의 수고료와 아파트의 임대료를 제하고 나면은 생활비가 모자랄 정도 였습니다. 화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따분하고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지루한 4년 반 동안에 이들 김 씨스터즈는 여러차례 고국에 돌아올 것을 원했으나 성공하고 돌아오지 않으면은 만나지 않겠다는 어머니 이난영의 충고를 물리치지 못하고 다시금 악전고투를 시작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그야말로 잠자는 시간과 밥먹는 시간 외에는 오직 연습만을 되풀이 했던 김 씨스터즈, 피눈물 나는 자매들의 노력에 행복의 여신도 감동을 했던지 1964년 이들은 선망의 대상인 에드설반쇼에 출연을 하게 됐고 드디어 폭발적인 갈채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김 씨스터즈가 불러주는 `찰리 브라운`
♬
- 스타 가수들 호텔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에드설반쇼와 인연을 맺고 에드설반쇼에서 20여회 공연을 하는 동안에 폭발적인 갈채를 받으므로써 동양에서 온 마녀들이라고 불리우기 시작한 김 씨스터즈는 주급 5백 달러가 하루아침에 주급 2만 달러로 솟아 올랐으며 세금만도 50만 달러를 내는 라스베가스 제5위의 고액 납세자가 됐습니다. 그러면 에드설반쇼의 공연실황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
- 김 씨스터즈는 프랭크슈나트라, 마릴린먼로, 빈 마틴 등에 이어서 `데저트인 호텔`에 출연을 했으며, 텔레비전 라디오는 물론 뉴욕의 월트어프, 워싱턴의 쇼햄, 시카고의 팔머 하우스, 달라스의 힐턴 등을 순회공연 했으며 다음 해에는 로마로부터 시작해서 파리, 베니스, 마드리드, 뮌헨, 런던, 몬테카를로 등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선풍적인 환영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지 언 14년, 납북된 아버지의 소식을 모르는채 어머니를 여의고 이제는 숙녀로 자라버린 김 씨스터즈. 남자는 멀리하고 오직 노래만을 부르자던 그들이었지만은 세월이 흐르고 성숙해지면은 마음도 변해 외삼촌의 딸이었던 민자가 먼저 연애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항상 고국을 그리며 외로움을 달래던 김 씨스터즈가 불러주는 `김치 깍두기` 입니다.
♬
- `김치 깍두리`를 부르며 망향의 외로움을 달래던 김 씨스터즈는 애자, 민자, 숙자의 순으로 결혼을 하기는 했으나 이들은 아직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국제결혼 했기 때문에 미국에 귀하할 것을 조명 받기도 했지만은 끝내 한국의 딸로서 활약 하기로 결심을 하고 있다는 김 씨스터즈. 적당한 시기를 봐서 은퇴를 하고 은퇴를 한 후에는 아기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가정의 주부 되기가 소원이기도 하다는 이들 자매가수의 현주소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메더크리스트가 3789번지. 김 씨스터즈가 부르는 `데니보이`
♬
- 작곡가 김해송과 가수 이난영 사이에 태어난 숙자, 애자와 그들의 외삼촌 이봉룡 씨의 딸인 민자와 함께 `봄맞이`, `아리랑`, `김치 깍두기`, `찰리 브라운`, `닐리리야` 등을 불러 동양에서 온 마녀들이라고까지 경이적인 호평을 받았던 김 씨스터즈는 앞으로도 더욱 많은 활약이 기대되고 있으며 요즘노래 보다는 옛날노래가 더욱 좋다는 이들은 머지않아 그들의 어머니가 불러줬던 `목포의 눈물` 이상의 노래를 불러 가요 팬들의 심금을 울려주게 될 것입니다.
- 흘러간 세월속에 묻혀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들의 얘기를 돌이켜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김 씨스터즈 편으로 구성 최호영, 아나운서 우재근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