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영원히 가버린 세월. 청춘의 화려한 낭만과 감성이 번져있는 그리운 노래. 세월은 흘러 갔지만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허민 편입니다. 그리운 님 손잡고 소슬한 바람부는 언덕 위에서 밤하늘의 별을 헤며 부르던 노래. 추억어린 거리에 정다운 노래를 안겨준 가수 허민. 가수 허민은 노래 뿐만아니라 작사에도 남다른 솜씨를 보여 주었던 국문과 출신 학사이기도 합니다. 밤이면 남포동 선술집에서 목 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신세타령을 했던 피난시절. 황금심의 `삼다도 소식`, 신 카나리아의 `승리부기`,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부산항을 휩쓸고 있을 때 혜성처럼 솟아 올랐던 허민의 `페르시아 왕자`.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시아 왕자 눈 감으면 찾아드는 검은 그림자 가슴에다 불을 놓고 새를 뿌리는 아라비아 공주는 꿈 속의 공주 오늘밤도 괴로운 밤 별빛이 흐른다. 한복남 작곡의 `페르시아 왕자`는 가수 허민이 데뷰하자 히트를 날린 대표곡이기도 합니다. 피난도시 부산항에서 쓰러져가는 판잣집 같던 도미도 레코드회사가 하루아침에 세월을 만나 즐거운 비명을 울렸던 `페르시아 왕자`. 그 `페르시아 왕자`를 불러준 허민은 경상남도 마산이 그의 고향 입니다. 과수원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난 허민은 낙천적이며 호인형의 사나이, 허민은 국민학교때부터 남다른 노래 솜씨를 발휘해서 마산방송국 합창대원으로 활약했으며 차츰 학과공부 보다는 음악에 매혹돼 부모님들을 걱정케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관이던 아버지가 한국사람을 너무 봐준다는 이유로 청진으로 좌천되자 그곳으로 따라가서 천마국민학교를 졸업한 얼마후에 해방을 맞이했고 다시 마산으로 돌아온 허민은 마산상고에 입학 했지만은 역시 공부보다는 음악에 열중하는 가수 지망생 이었습니다. 마산상고를 마치고 고려대학 국문과에 입학한 후에도 역시 시간만 있으면 노래 생각만을 했던 허민. `백마강`, `페르시아 왕자`에 이어서 히트했던 허민의 목소리 입니다. 고려대학 국문과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6·25 동난이 일어났고 대구로 피난온 학교를 따라서 대구까지 내려온 허민은 어느날 친구의 형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다가 도미도레코드의 한복남에게 픽업돼 `페르시아 왕자`를 불러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어수선한 피난도시 대구에는 오리엔탈, 유니온, 서라벌 등의 레코드회사가 있었고 부산에는 스타, 도미도 레코드 등이 있었으며 거리에는 이인권의 `미사의 노래`, 현인의 `인도의 향불`, 신세영의 `전선야곡` 등이 유행하고 있던 시절, 싸늘한 추억의 40계단이 가슴을 찌르던 부산항. 피난도시 부산항은 그당시 잊었던 님을 만나는것 보다는 오히려 그리운 님과 헤어지는 일이 더 많은 이별의 항구였습니다. 피난길에 정들었던 님이 천곰을 메고 전선으로 떠나버렸던 부산항.
- 상호 씨.
- 숙희.
- 상호 씨.
- 어. 와있었군.
- 네.
- 가족들 만났어?
- 아니에요 아직.
- 그럼 어떡하지?
- 그보다도 상호 씨는 어디로 가시는거죠?
- 글쎄. 어디로 가는건지 배를 타라는 명령이 내렸을 뿐이야.
- 그럼 이제 가면 다시는 못오시는거 아니에요?
- 아니야. 이기고 꼭 돌아올게. 내 염려는 말고 숙희나 잘있다가 꼭 만나달라고.
- 네. 꼭 언제까지든 상호 씨를 기다리고 있겠어요.
- 그럼 숙희, 잘있어.
- 상호 씨.
- 가는 님 뒷모습에 흐느껴 우는 `항구의 이별`, 애수어린 허민의 노랩니다. 당시의 도미도 레코드회사는 박재홍의 `물레방아 도는 내력` 이후 침체상태에 있었으며 한정우, 심현옥, 송민도, 금사향 등 쟁쟁한 가수들이 전속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여전히 부진해서 쓰러질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허민의 픽업으로 `페르시아 왕자`가 히트를 날리고 계속 `다방 아가씨`, `백마강`, `스페인의 장미`, `항구의 이별` 등 8곡을 취입해서 활기를 띄었으며, 허민은 또한 황해, 금사향, 이경희, 박옥조, 김백희, 이예성 등 기라성 같은 맴버들과 함께 희망가극단 무대에서 열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2년동안 집에는 돌아가지 못했고 학교는 학점미달로 두번이나 졸업이 보류돼 6년만에 겨우 대학을 졸업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국문과를 졸업하고 학사가 된 허민은 노래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부산항`이라는 노래를 작사해서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등대불 깜빡이는 부산항 파도 멀리 쌍고동 울어울어 헤어진 사람아 오륙도 넘어갈 때 내리는 궂은 비 아 떠나온 부산항구 마음의 부산항구. 한복남 작곡의 손인호가 부른 `마음의 부산항`, 가수 허민이 작사한 노래입니다. 레코드에서 울리는 목소리로 거리를 휩쓸고 화려한 무대에서 팬들을 매혹시키던 허민은 이윽고 완고한 부모들에게 붙들려 강제로 집에 끌려가게 됐으며, 3년 가까운 세월을 연금상태로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집념의 사나이 허민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집을 빠져나와 가끔 쇼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남인수의 태평양 가극단과 쌍벽을 이루고 때로는 경쟁 때로는 합동공연을 하기도 했던 김아랑의 호아선에 전속돼 장신의 저음가수 송달엽과 겨루기도 했었습니다. 노래를 부름으로써 자기 존재를 실감할 수 있었던 가수 허민은 그러나 지병이던 고혈압으로 부친이 사망하자 장남으로서 집안일을 이어야만 했고 그러다보니 하는수없이 노래의 세계와는 차츰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노래를 단념하지 못하고 노래부를 기회를 갈망하는 가수 허민. 대학 재학시절에 `페르시아 왕자`로 데뷰해서 `다방 아가씨`, `백마강`, `항구의 이별`, `스페인의 장미` 등 200여곡의 노래를 부르고 `마음의 부산항` 등 여러곡의 작사를 하기도 했던 허민은 그후 고혈압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후쿠오카에 사는 외삼촌의 주선으로 그곳에 건너가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는 계속 그곳에 머무르며 위문공연을 하기도 하고 교포신문에 한국의 연예계 기사를 연재 해서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재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있는 집에는 부인과 함께 남매가 단란하게 살고 있으며 언젠가는 또 한번 원숙해진 그의 다정한 목소리로 새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흘러간 세월속에 묻혀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허민 편으로 구성 최호영, 출연 연병훈, 고경선, 아나운서 우재근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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