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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환 편 - ‘방랑시인 김삿갓’의 애수어린 목소리
명국환 편
‘방랑시인 김삿갓’의 애수어린 목소리
1971.10.24 방송
‘추억의 스타 앨범’은 출생·데뷔에서부터 근황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 그 가수의 일생을 추억의 노래와 함께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 추억의 스타 앨범. 이제는 영원히 가버린 세월. 청춘의 화려한 낭만과 감상이 번져있는 그리운 노래. 세월은 흘러 갔지만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명국환 편 입니다.

- 세월은 흘러 산천이 변하고 헤어져버린 임 만날 길은 없어도 회상의 길목에 피어있던 추억의 꽃송이 처럼 정다운 노래. 해 저문 거리를 정처없이 헤매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줬던 애수어린 목소리로 그리운 노래를 불러줬던 가수 명국환. 명국환은 `방랑시인 김삿갓`, `백마야 우지마라`, `항구의 불사조`, `금주의 비련`, `구원의 정화` 등 많은 히트곡을 낸 중견가수이며 왕년에는 해병특공대로서 여러차례 적진돌파에 수를 세운 용사이기도 합니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거칠은 타관길의 주막은 멀다. 옥수수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또다시 고향 생각 엉키는 구나.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1955년 전오승, 명국환의 콤비가 내놓은 오아시스레코드의 히트곡 `백마야 우지마라`

낯설은 타향 해 저문 거리를 정처없이 헤매고 싶도록 페이소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가요 팬들을 감상에 젖게 했던 가수 명국환은 1933년 1월 10일생 황해도 연복군 연안읍이 그의 고향입니다. 연복군청에 근무하는 아버지의 5남매중 넷째로 태어난 명국환은 본명도 역시 명국환. 명국환은 연백 국민학교를 거쳐 연안 중학교에 진학 했으며, 연안중학 2학년 때에 연안극장 콩쿨대회에서 남인수의 `남아일생`을 불러 3등에 입선 장차 가수가 될 소질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해인 중학3학년 때 6·25가 일어나고 명국환은 강화도로 피난해서 해병특공대에 입대 최전방에서 싸우는 용사가 됐습니다. 2년동안 언제나 선두에 서서 적진돌파의 수운을 세웠던 명국환은 얼마 후 서울에 있는 미극동 사령부 위문공작대로 자리를 옮기고 휴전이 이뤄질때까지 타고난 천성대로 노래를 부르며 위문공연을 계속 했습니다.
감성적인 사춘기를 군대에서 보낸 명국환이 부르는 `항구의 불사조`

휴전이 이뤄지자 군대를 떠난 명국환은 박경원, 원방현, 권혜경 등과 함께 KBS 전속 1기가 돼 명실이 상부한 중견가수로 혹은 마이크 앞에 혹은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 했습니다. 명국환이 가장 보람있는 생활을 하며 가수로서의 긍지를 느끼기도 했던 KBS 전속시절은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아직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어수선하던 시절, 민간 항공이라던가 고속버스란 아직 그림의 떡이던 그 시절의 교통수단은 오직 기차 뿐이었고 그나마 아직은 증기기관차가 끌고다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사람으로 들끓고 붐비는 서울역은 또한 수많은 비극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 정선이 미안해.

- 괜찮아요, 세한 씨. 염려 마세요.

- 고향에 돌아가면 부모님들이 놀라시겠지.

- 미리 편지를 했으니까 이해해 주실거에요.

- 하지만 정말 면목이 없는걸.

- 그대신 세한 씨.

- 응.

- 꼭 한번 와주시는거죠?

- 물론 일이 잘되기만 하면 이번엔 우리 아주 결혼을 해서 잘 살아 보자고.

- 네. 꼭 그렇게 되도록 간절히 빌겠어요.

- 그럼, 몸 조심해요.

- 제 염려 마시고 세한 씨 정말 객지에서 몸 조심 하세요. 네?

- 응. 염려 말아요.

- 세한 씨.

- 정선이 잘 가요.


- 명국환이 부르는 `이별의 서울역`.
KBS 전속에서 오아시스레코드로 옮겨 `백마야 우지마라`, `구원의 정화`, `금주의 비련` 등 많은 히트곡을 낸 명국환은 다시 신세기레코드로 전속을 옮겨 `방랑시인 김삿갓`을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너머 가는 저기 누구냐 열두더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그야말로 신세기레코드의 회사 기반을 반석위에 올려놓을 만큼 공전의 히트를 날렸던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디스크가 나오자마자 매진돼 레코드 상으로 하여금 즐거운 비명을 울리게 했습니다.


- 그때 신세기레코드에서 해서 인제 처음 창선이 됐어요. 오아시스레코드에 있을땐데. 그래서 전오승 선생님 신세기레코드에서 인제 전속 작곡가로 계약을 하시면서 저하고 콤비니까 같이 가셔서 첫 취입 한것이 `김삿갓`이 히트가 됐어요. 그래서 그걸 했다가 그것때문에 아주 그냥 확 올라 갔지요. 그래서 그때부터 조그만 히트곡 나오고 `금주의 비련` 이라든가 뭐 `구원의 정화` 뭐 이런것이 나오기 시작 했어요. 나오는것 마다 그땐 히트가 되고 그저 순조로웠어요. 그러다가 인제 회사에서 제가 뉴스타인가 그리 옮겨갔어요. 옮겨갔는데 거기서 나오랑 선생님이 전속으로 계셨고 작곡 그때 처음에 ...아니 저 뭡니까 `청춘의 삼색깃발` 뭐 `승동비곡`이니 뭐 `비나리는 여수항` 뭐 이런것을 등등 취입했습니다만 제... 생각 합니다. 지금껏 생각해두요. 그때는요 그 팬이라는게 방송출연 예전에 그렇게 뭐 자주 방송 테오가 있다던가 그런건 없었어요. 그리고 요전처럼 리퀘스트 라든가 이런 프로가 그때는 없었구요. 그래서 팬들이 편지를 보낼래야 소위 잡지 이런걸 보구서 주소를 보구서 그때 팬들이 좀 팬레터를 보내고 그랬었죠.


-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가요계의 중화가 된 명국환은 26살 때 중매로 결혼을 하고 계속 무대에 출연해 눈부신 활동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명국환이 28살 때 어느날 사소한 착오로 무대 출연의 약속을 어기고 그것이 말썽이 돼 무대예술원에서 출연정지 1년이란 징계처분을 받고 말았습니다.
출연정지 1년으로 활동을 못하게 됐던 명국환이 부르는 `청춘의 삼색깃발`.
한창 정상을 향하여 발돋움 하려는 명국환에게 출연정지 1년이란 징계처분이 내리자 심적 타격은 말할 수가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미팔군..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별로 재미를 볼 수 없었습니다.
4·19 후에는 일반 무대에도 서기도 했으나 별로 신통한 진전이 없었고 오아시스에 전속 됐지만은 히트곡도 별로 없어서 한때 실의에 빠직기도 했던 명국환은 그후 용산에 명국환 가요학원을 만들어 후배양성과 함께 작사, 작곡을 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노모님을 모시고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무대에 서기 시작해서 300여곡의 노래를 부른 가수 명국환. `백마야 우지마라`, `방랑시인 김삿갓` 등 잊지못할 히트곡을 남긴 가수 명국환. 아직도 부를 수 있는데 까지는 계속 노래를 부르겠다는 가수 명국환은 앞으로 언젠가는 또다시 가요팬의 심금을 울려주는 노래를 불러줄 것입니다.

- 흘러간 세월속에 묻혀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명국환 편으로 구성 최호영, 출연 김세한, 오정선, 아나운서 우재근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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