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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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스타앨범
고대원 편 - 바른 템포의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쾌활한 사나이
고대원 편
바른 템포의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쾌활한 사나이
1971.09.26 방송
‘추억의 스타 앨범’은 출생·데뷔에서부터 근황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 그 가수의 일생을 추억의 노래와 함께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 이제는 영원히 가버린 세월. 청춘의 화려한 낭만과 감성이 번져있는 그리운 노래. 세월은 흘러 갔지만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고대원 편 입니다.
세월은 흘러 강물처럼 돌아오지 않아도 숨소리 번져있는 거리의 추억속에는 그리운 노래가 있고 그리운 노래 속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어 세월의 피안에 서서 잊지 못하는 노래. 그 노래를 불러 주었던 가수 고대원. 고대원은 바른 템포의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쾌활한 사나이 이며 그 정다운 노랫소리가 가수 남인수의 목소리와 흡사해서 제 2의 남인수라 불리우기도 했습니다. `사나이 우는 항구`, `추억의 부산 부두`, `판문점의 달밤`, `월남의 별` 등 정다운 노래를 불러 준 가수 고대원은 소년 시절에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의 고학생 이기도 했습니다. 밀리고 밀려가는 단장의 능선에선 포성이 먹고, 판문점에서 휴전이 성립된 후 어언 18년, 인기척 없는 고요속에서 귀뚜라미 소리만이 처량한 판문점의 언저리. 언젠간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의 대화가 이루어질 판문점은 지금 고요히 달빛만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판문점의 달밤` 쾌활한 성격과 정다운 목소리의 고대원이 불러 줍니다.

- 럭키 레코드에 신인가수 모집에 응모 당선해서 숙원이 든 레코드 취입을 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습을 하다가 6·25 때문에 그만 기회를 놓쳐 버리기도 했던 불운의 사나이 고대원은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쓰라린 고생을 하면서도 먼 훗날을 위해 노력하는 의지의 사나이 이기도 했습니다. 짓밟혀도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가수 고대원은 그러나 그가 부르는 노래는 정다웁고 부드러웠으며 때로는 사나이의 눈물에 애절한 낭만이 있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영원한 가요의 소제 일런지도 모르는 사나이의 눈물. 애절한 낭만은 산보다 바다에 있고 도시보다 항구에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는 항구가 많고, 그래서 청춘의 애절한 사연이 많고, 낭만적인 추억이 많은지도 모릅니다. 청춘의 애절한 사연이 번져있는 바다, 낭만적인 추억의 거리 항구.


- 창길이.

- 네.

- 뭐 좀 먹어야지.

- 생각 없어요.

- 곧 배가 떠날텐데.

- 그냥 가지요 뭐.

- 아휴 참. 혜옥이도 정말 무정도 하지. 창길이가 곧 떠나는 것을 알면서도 왜 안오지?

- 혹시 마음이 변한게 아닐까요?

- 설마 그럴리야 있어? 그토록 굳게 약속을 해놓고.

- 그래도 누가 압니까.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했으니까요.

- 아휴, 하지만 혜옥인 달라요.

- 아니에요. 틀림 없습니다. 혜옥인 틀림없이 마음이 변한 거에요. 한번 바다에 나가면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나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만 그만 마음이 변해버리고 만거에요.


- 낭만의 가수 고대원이 불러주는 `사나이 우는 항구`.

정답고 낭만적인 목소리로 `판문점 달밤` `사나이 우는 항구` 등을 불러 인기를 모았으며 `무너진 사랑탑`, `가거라 삼팔선` 같은 남인수의 노래를 불러 제2의 남인수라 불리우기도 했던 가수 고대원은 1930년 10월 28일 생으로 본명 역시 그대로 고대원,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이 그의 고향이며 사진관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5남매중 넷째로 태어 났습니다. 심상 보통학교에 다닐 때 부터 합창과 독창으로 성악에 유별난 소질을 보였던 고대원은 국민학교를 마친 뒤에 상경해서 영등포에 있는 남 공업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만 공부를 하는 고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경기 영직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만 공부를 했던 고대원은 그러면서도 틈틈히 음악 연구소에 다니며 성악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1949년 19살 때 영등포 영보 극장에서 주최한 콩쿨대회에 입선한 후 여러 차례 1등에 당선해 가수로 대뷔를 한 고대원은 그 무렵 얘길 다음과 같이 말해 줬습니다.


- 영등포에 있는 음악 연구소라고 있어요. 거기 들어가가지고 약 한 1년 됐나요? 배운지가. 그래가지고 영등포 영보 극장에서 콩쿨 대회가 있었어요. 그래 출전 했지요. 당선 하리라곤 생각지도 않고 참 기대외로 입상을 했습니다. 첫 번 제가 나간 콩쿨에서. 그 다음에는 계속 나가는대로 참 우승을 했어요. 그래서 뭐 콩쿨대회에서 그칠게 아니다. 좀 더 무대를 크게 갖자 해가지고 인제 처음 시험 본 것이 이제 서울 중앙 방송국이요. 거기 전속 가수에 응모해서 다행히 제가 합격이 됐었습니다. 한참 그 노래 좋아서 배우러 다닐 때는요. 그 알 기타를 그냥 들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그 부러웠구요 자랑스럽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그 참 우습지요. 그러나 그렇게 노래를 좋아했고 그것이 무슨 나의 인간의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 영등포에 있는 영보극장 콩쿨대회에서 입선을 한 후 이곳 저곳 콩쿨대회에 마치 단골처럼 쫓아 다니며 거듭 1등을 했던 고대원은 그 때 아직 정동에 있던 KBS 전속가수 2기생으로 이경희, 금사향 등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진주하자 레이션과 금과 째즈가 민주주의와 함께 밀려들어 거리에 범람하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째즈 레코드가 헐어 빠진 축음기 위에서 어설프게 돌고 있었던 그 무렵, KBS 전속 가수가 된 고대원은 건전한 우리 가요의 전통을 지키는데 이바지 하기도 했습니다. 가는 곳 마다 노래를 부를 때 마다 제2의 남인수라 불리웠던 고대원이 부르는 `무너진 사랑탑`.
1950년 거리에선 `베싸메무초`, `신라의 달밤`과 같은 현인의 노래가 한창 인기를 모았으며 김해송의 KPK 악극단, 손목인의 CMC 악극단, 조춘영 이재춘의 OMC 악극단 등 영어 약자로 표시하는 악극단이 판을 치던 그 무렵 전기가 없어 방송이 재구실을 못하는 KBS 전속 가수에 만족할 수 없었던 고대원은 그 해 4월에 럭키 레코드 전솔 가수가 됐습니다. 럭키 레코드에 전속 가수가 돼서 숙원이 든 레코드 취입을 하게 됐고 그래서 전오승 작곡의 `청개구리`를 열심히 연습하던 어느 날 새벽, 고대원이 `청개구리`를 취입할 예정이던 7월 1일 불과 며칠을 남겨두고 그만 원한의 6·25가 터졌습니다. 민족의 원한이기도 하지만 고대원에겐 더욱 저주스러웠던 6·25.


- 럭키 레코드라는 회사에 제가 바로 6·25전 아니 6·25 되던 해군요. 6·25 되던 4월 초하루에 전속가수로 응모 해서 합격이 돼가지고 전오승 씨 그 곡을 제가 받아 가지고 7월 초하루 취입할 예정이었었는데 6·25가 났어요. 그래서 그렇죠. 어린 마음으로요. 전쟁이 뭔지 잘 몰랐죠. 혹시 내일이면 끝날 것이다. 모레면 끝날 것이다. 이렇게 아마 기다리다가 결국은 7월 5일날 피난을 갔습니다만은 그게 가장 뼈에 사무치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당시.


- 레코드 취입도 못하고 전난에 쫓겨 충청남도 예산으로 피난을 간 고대원은 형용할 수 없는 기막힌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침략의 무리는 물러가고 수복이 되자 고대원은 영화배우 허장강의 알선으로 육군 군예대에 들어가서 황해, 백설희, 박노식, 독고성 등과 함께 전선을 누비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눈물의 국경` 낭만과 애조가 하모니를 이룬 고대원의 목소리 입니다.

- 럭키 레코드의 전속 가수 시절에 그 때 럭키 레코드의 문예부장이었던 유호에게 예명을 지어달랬더니 높고 크고 멋있는 고대원 이상 좋은 이름이 없다 해서 그냥 본 이름 그대로 가수가 된 고대원은 육군 군예대에서 7,8년 동안 가수로서의 관록과 수련을 쌓아 올렸습니다. 한편 서울 레코드에서 `판문점의 달밤` 라이온 레코드에서 `추억의 부산 부두` 등 여러 곡을 취입해서 거푸 히트를 날린 고대원은 한국 가요계의 중견 가수가 됐으며 한 때는 부산 방송국 전속 가수로 있기도 했습니다.
노래로 자라고 노래를 부르며 반 평생을 살아 온 고대원이 부르는 `가거라 삼팔선`.

- 오직 노래만을 아끼고 노래만을 사랑했던 고대원은 39살에야 결혼을 했으며 지금은 3살 짜리 공주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늙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지금은 영등포구 구로 1동 537에서 살고 있는 고대원은 요즘의 자기 생각을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 아무래도 이 무대나 방송 활동은 역시 부진 하지요. 왜냐면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또 좋은 무대나 방송은 지금 후진들 한테 좀 양보해야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 무교동 바닥에서 가끔 나이 많으신 손님들 모시고 같이 ...에서 노래 합니다. 소원은 역시 제가 노래 부르는 동안 탑싱어가 되는 것이 소원 이지만 그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가급적이면 노력해서 더이상 지금 정도에서 떨어지지 않는 뭐 그런 정도로 분발 하겠습니다.


- 때로는 불운 하기도 했고 어느 때는 모진 고생을 하기도 했던 고대원은 그러나 구겨진 순간들의 고통을 잃고 늘 쾌활 했으며 또 템포가 빠른 경쾨한 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했습니다.
경쾌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불러주는 고대원의 `월남의 별`.

- 육군 군예대로써 7,8년 동안 전후방을 누비며 장병 위문을 했으며 일본에 건너가 여러차례 교포들을 위해 위문 공연을 하기도 했던 고대원은 지금도 방송이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원숙하고 더욱 정다운 목소리로 다정한 노래를 불러 줄 것입니다.

- 흘러간 세월속에 묻혀 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고대원 편으로 출연에 이소연, 김규식 그리고 해설에 안종지 였습니다.

(입력일 : 200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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