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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 서강일이 오늘의 위치를 차지하기까지
스포츠
서강일이 오늘의 위치를 차지하기까지
1965.07.01 방송
1965년 7월 1일 방송된 DBS저널 스포츠에서는 10월 세계 선수권 도전을 앞둔 서강일 선수의 국내 챔피온이 되기 까지의 이야기를 지인들을 통해 들어본다.
DBS 저널 스포츠

(음악)

- 이 시간에는 세계 왕좌를 노리는 프로복서 서강일 군이 오늘의 지위를 차지하기 까지의

얘기를 엮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 저는 서강일 입니다. 오늘 동아방송을 통해서 이렇게 국민 여러분 앞에 인사드리게 된

영광을 무엇에 비길지 모르겠습니다.

- 너무나 고단했기에 오로지 편안하게 살자 해서 그의 이름을 대안도 사나이다. 이제는

강하게 이겨야만 했기에 투철이로 변했고, 투철한것 뿐만아니라 세계에서 제일 강해야

만 된다해서 마침내는 그의 이름을 강일이로 바꾼 사나이가 바로 서강일 입니다.

전쟁 고아에서 방랑아로 마침내는 김준호씨를 만났고, 오는 10월 초 세계 선수권에 도

전하게 된 세기의 복서 서강일. 다른 선수들과는 그의 과거가 너무나 달랐기에 오늘은

오늘의 그의 매니저 김준호씨를 만나게 된 동기와 나아가 국제 무대 진출하기 이전,

그러니까 국내 챔피온이 되기 까지의 그의 친근자들의 얘기로 알아보기로 한다.

(음악)

- 서 선수께는 말이죠. 맨 처음에 이 현 매니저이자 김 선생님의 형님을 만나게 됐을때는

어떤 계기로 해서 만나게 되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61년, 61년 2월 달에 제가 안양에서 싸움을 하다가 김준호씨, 저의 매니저

김준호씨 형님이 저 싸우는 걸 목격을 하셨습니다.

- 세기의 복서 서강일 군이 그의 매니저 김준호씨를 만나게 된 동기를 김준호씨를 이렇

게 얘기를 합니다.

- 서강일 선수를 만나게 된 것은 요. 저의 형님이 안양에 현재 살고 계십니다. 근데, 하

루는 들려서 안양에 좋은 선수를 하나 보러 양산시킬만한 사람을 구했는데, 제가 좀 잘

가르쳐서 좋은 선수를 만들 수 없느냐고 형님이 질문해 왔어요. 그래서 저는 그 선수를

보지도 못했고, 우리 형님께서 아주 그 서강일 이라는 아이가 아주 투지력이 강하고 자기

친구들과 싸움을 하는데 몇 번 봤는데, 밤 나고 이기더랍니다. 그런 점을 보고, 체중,

체격을 봐서 이 얘를 꼭 네가 과거 선수생활도 했으니까. 잘 지도 하면은 세계적 선수가

될 줄 믿는다는 것을 형님이 저한테 알려서 저와 서강일이와 대면을 하게 된 겁니다.

그 후로 서강일이를 저희 집으로 들어 안내해서 같이 동거를 해가며, 오늘 까지 쭉 코

치를 해 왔고, 매일가서 트레이닝도 했고요. 근데 이러한데 까지 이루어 오늘날 세계

선수권 챔피언 도전까지 도전하게 된거 같습니다.

- 저 그 때, 사모님께서 말이죠. 서강일 선수를 처음 봤을 때 선수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 모습이 뭐. 하하하. 좋은 얼굴이죠. 뭐. 제가 보기에는 이상하게 뵈더군요.

- 그렇죠. 권투선수의 아내니까 대충 이해를 하셨겠죠.

- 네. 이해는 했죠. 제가 그래서 앞으로 저의 집 양반이 권투를 하셨기 때문에요. 그 대

를 이어서 그 훌륭한 선수를 어떻게 만들어 볼까 하는 의욕도 있었습니다.

- 그 때, 그 시절에 서선수를 직접 보신 분이..누가 안계시던가요?

- 바로 그 저 현재 한국 권투 위원회에 아나운서 시합에 나오시는 아나운서 김시해 씨가

저희 집에 같이 있었습니다. 저 와는 막역한 친구사이여서 서강일 선수와 같이 한 방

에서 침식을 같이 한 분이 이 김시해씨 입니다.

- 네. 김 선생님 그 때 관계를 좀 말씀해 주시죠.

- 이 1961년도 4월 달로 기억됩니다. 제가 서 선수를 만난 건요.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얘기 했었는데, 앞으로 프로가 목표가 아니고, 당시에 우리가 일본 선수를 초청했거

든요. 김준호씨가 일본선수를 계약해가지고 오고 그래가지고 스케줄이 바빴습니다.

그래서 그 야마다 하고 가무라 두 선수를 초청해서 아시아 선수로 뛸 적에 첫 선을

볼 적에 앞서서 뛸 아주 다방에서 김준호씨를 만났어요. 나도 볼 적에 좀 거칠다. 이

렇게 봤고, 과연 얼만큼 권투를 하겠냐 하는 것도 생각해 봤어요. 당시에 김준

호씨하고 동거를 했어요. 내가 그 때 사정 얘기는 말씀 안드리겠어요. 김준호씨 신세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한 집에서 동거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다방에서 만나

가지고 첫 사대복싱 테스트를 누가 했냐하면 지금 일본에 건너가 있는 실제 김경호씨

가 형이 바쁘니깐 너 도장에 나가가지고 강일이를 사대복싱 테스트를 실시해 봐라. 체

력도 검사하고, 그래서 데리고 차 태워서 서울 도장에 나가가지고 사대복싱 테스트는

과히 나쁜 편도 아니고, 체격보니까 장래가 유망하다고 하니까 형님이 보신대로 입니

다하고 여기 와서 얘기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한일 시합하고 그 날로 옷이 남루하

다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지금에 비해서야 차이가 굉장히 지는거죠. 그래서 목욕도 같

이하고 옷도 자기가 일본 건너갈 적에 입었던 옷을 싹~ 갈아 입히고 하니까 사람이 겪

어보면 또 달라지지 않습니까? 미끈하게 변신을 했더군요. 그리고 연습을 시키니까 정

말 소질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터 한 달동안 트레이닝 시켜가지고 1차 시합을 대구에

서 가졌어요. 첫 시합이 개선이죠. 첫 시합부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 시종 서강일이를 오늘 이기까지 기른 것을 측면에서 본 사람으로서 기탄없이 말씀 드

리겠습니다. 우리 프로복싱이 지금은 좀 기도에 올라서 생활 할 수 있고, 화려한 생

활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어요. 세계 올림픽도 올라가고, 김진일 선수가 동양 선수

권도 올라갔기 때문에 우리 프로 선수들이 생활이 편안하지만, 지금부터 한 4~5년 전

이라고 하면 프로복싱계에 제가 말씀 안드려도 여러분이 잘 아실거에요. 또 김준호씨

는 권투밖에 모르기 때문에 비지니스, 또 사생활, 가정생활 영 제로 입니다. 나는 친

형제나 다름 없으니까 솔직히 내 말씀 드리는데, 우리가 같이 있어봤으니까 말이지만, 한

국의 경제 실정을 알고 계시겠지만 특히 우리 스포츠인이 제일 궁색하지 않아요? 이에

창피한 말 같지만 끼니를 못 거를때가 있단 말이에요. 자기 자제들도 5남매 있는데,

어떻게 수소문해서 얘들을 우동을 끓여서 밀가루 수제비를 끓여 먹이는 수가 있어도 서

강일이만은 쌀 한홉을 사가지고 냄비에다 이렇게 아주머니가 오글오글 끓여가지고 밥

을 먹인 이러한 실정이 한 두번이 아니에요. 그리고 선수로 운동시키려면 영양소도 급

영해줘야 하니까 서강일 선수가 보신탕을 좋아해요. 우스운 얘기겠지만 내장을 좋아

하잖아요? 이 보신탕을 좋아하는 것도 없는 호주머니를 털어가면서 서강일을 가끔가다

보신탕을 먹여 준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에요. 또 자기가 나와서 말을 못하는데, 집에

들어오면 아주머니하고 왜 강일이를 밥을 안해줬느냐고 싸우고 한 것도 한 두번이 아

닙니다. 이러한 그 노력이 오늘 날 까지 서강일이를 세계랭킹 2위라던가 세계적인 무

대에서 진출시켜가지고 이렇게 세계 선수권 시합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게 말하

자의 노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근데 그 집안에서의 생활이라고 할까요. 이 첫 시합의 승리를 하려면은 그 전에 많은

훈련이 필요 했겠는데, 그 연습사항, 집에서 주로 다녔겠죠?

- 집에서 다니죠.

- 어머니 보신 대로 좀 말씀 해주세요.

- 아침에 연습이라는 것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요. 운동하고 나서 한 숨 푹 자고 나

서, 식사하고 나서 한 숨 잔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오후에 연습하러 가죠. 연습

하러요. 도장. 갔다 와가지고 이제 저녁 식사하고 자는 게 걔네들 하루 일과 입니다.

- 저 서 선수께는 말이죠. 이 권투하고 과거에 불우한 생활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권투와 싸움하는 거와 이게 달리 느낀거 없으셨어요? 권투를 하면서..

- 싸움을 하면 저 어렸을 때 싸움을 좋아했습니다. 싸움을 하면 마음대로 잘 되는데, 권

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 어렸을 때 싸움할 때는 길을 걸어가다가도

저보다 큰 사람들. 체격 좋은 얘들 불러서 때리곤 했는데, 참 잘 넘어 갔어요. 들어

오는 걸 이용해서 때리면 참 잘 넘어갔는데, 그런데 권투는 힘이들어, 맘을 먹은대로 되

지 않습니다. 같이 이렇게 뛰고 하니까.

- 네. 처음 권투 선수로서의 훈련을 쌓을 때요. 가장 에로로 있었던 점은 어떤게 있었나요?

좀 불편한 점 없었어요?

- 저는 김준호씨 댁에 와가지고 불편한 건 없었습니다.

- 과거 생활에 비해서..

- 네. 참 행복했습니다.

- 특히 사모님의 내조도 특히 컸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모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 사모님은 제게 친 부모, 친 어머니와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못 할때는 꼭

사모님이 꼭 나물러 주시고 친자식은 때리지 못하는데, 말씀 이렇게 하실 때는 정말

화내실 때는 정말 맞고 싶어요. 저렇게 화나실 땐 친 자식같으면 때릴 텐데, 때리지 못

하고 화나실 땐 정말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 근데, 때릴 만한 일을 하신 모양인데, 어떤 일을 하셨나요?

- 하하하. 제가 좀 연습 마치곤 잘 돌아다닙니다. 밤에, 다방도 가고, 친구들이 많으니

까 선생님은 꼭 말리시죠.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또 사모님이 숨겨 주십니다. 하하.

- 저 그럴때는 김 선생님 뭐 다 아시겠죠. 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일화라도..

- 뭐 처음에는 우리 강일이가 1년동안이나 고분고분 연습을 하라는데로 아주 잘했습니다.

근데 결국은 1년이 넘고 선수권도 먹고, 이제 기성 선수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게 되니까

이제는 자기도 좀 어느정도 좀 사회에 얼굴도 알리고 이름도 알려지고 그러니까 친구가

자연히 많이 생겼죠. 친구가 좀 나가자고 그러면 저는 못나가게 하지만 친구가 나가자고

하니까 박절하게 거절할 수 없으니까 나가는 때가 있죠. 저 몰래. 그런 때가 몇 번 그런게

있었는데, 그 후에 우리집 사람이랑 싸운 예가 재밌는 얘기가 있습니다. 저는 제가 바빠서

나가서 모든 것을 우리집 사람한테 얘길 하고 나갑니다. 우리집 사람도 저와 처녀 총각때

부터 만날 때부터 권투 구경을 좋아 했습니다. 해방 되고 난 부터. 그러게 되니까 권투의

내막이라는 건 우리집 사람도 여자지만 잘 알죠. 강일이가 어디 나가지 못하게 하고 일찍

좀 들어와서 자는거와 이렇것을 감시를 잘 하라고 주의를 시켰죠. 내내 1년 동안은 잘 지켜

왔습니다. 강일이가 이렇게 나가니까 우리집 사람도 뭐 젊은 사람이 나가는 걸 어느정도

양해를 하는 거죠. 기회를 좀 주고, 기회를 줬습니다. 시간을 여유를 줬는데, 저는 그걸 절대

못하게 말렸죠. 강일이 오늘 몇시에 들어왔냐. 늦게 들어와도 일찍 들어왔다. 이런 거짓말을

저한테서 여러번 한 적이 있습니다. 집사람이. 그러면 그러다가 저한테 발각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이제 저는 운동에만 우리 서강일이를 세계 선수권을 먹이려고 처음부터

얘기 했던게 그거 였어요. 우리 둘이 강일이와 저와 같이 합류해서 나온 길이 그거 였는데,

그것을 이행하려고 하는 것을 우리집 사람이 그런 짓을 숨기니까 우리집 사람한테 화를

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혼 도 많이 내고 이상스런 분위기가 많이 있었죠. 또 한가지가

있는데요. 그것은 강일이가 역시 챔피온을 한국 챔피온을 먹고 나섭니다. 일본 원정 가기

전이죠. 해외 가기 전에, 역시 강일이가 이쁜 시합을 하고 좋은 성적을 올리니까 그 뭐 다

그럴수 있는 거죠. 젊은 사람들이 다 나이도 그 때 말하자면 열 아홉이고 그러니까 뭐 다

그런 일이 있지 않습니까? 참 이쁜 아가씨들이 우리 서강일 선수를 많이 따라다녔어요.

알면서도 제가 주의를 많이 시켰지요.

- 제일 먼저 시합에 가서 이제 이겼을 때, 그 땐, 김 선생님 상당히 기쁘셨겠습니다.

뭐 기쁘기야 이루 말할 수 없죠. 없고 우리 서강일이도 자기도 첫 처녀 시합에 나가서

이겼으니까 그 이상 기쁜게 자기도 없었을 겁니다. 그 때만해도 경험이 없으니까 상

대방을 딱 쳐서 다운이 됐어요. 다운이 됐는데 넘어 뜨려진 것을 또 강일이가 때린

적인 그런 예가 있는데 그런 일이 그 때만해도 첫 처녀 시합이니까 그러나 통쾌한 시합을

했습니다. 처녀 시합에 가서 아주 넉다운까지 시키고 완승으로 판정으로 이겼다는 건

저도 아주 뭐라고 말씀 드릴 수 없는 그런 기쁨을 느꼈습니다.

- 그 때 본인이신 서 선수께서는 어떤 감회셨는지. 처녀.. 첫 시합에서 이기신 다음에.

그 때 그 기분이 어땠나요?

- 제가 처음 시합이 아닙니까. 근데 그 선수가 대구에선 한 무척 센 선수입니다. 황용

수라고 웰터급 나갔습니다. 참 무섭게 왔어요. 처음에 볼 때엔 시합을 해 보니깐 뭐

선생님이 옆에서 코치를 해주시고 세컨도 봐주셨으니까 맘을 푹 놓고 시합을 했습니

다. 제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이길 줄은. 그 센 선수를 어떻게 이길까 생

각을 했는데, 다운도 시키고 선생님이 뒤에서 밀어주시고 정말 그 이기고서 제가 정

말 말할 수 없었어요. 기분이. 너무나 좋고, 그 몇 일간 좋았습니다.

- 한편, 서강일 선수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코리아 프로모션 대표 전호연 씨는 이렇게

얘기 합니다.

- 제가 이제 그 코리아 프로모션을 만든 동기가 서강일 선수에 대한 세계 진출. 그리고

세계 선수권 쟁탈전에 대한 우리나라 그 서강일이가 세계 진출할 수 있는 그런 모든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미력하나마 재력을 털어서라도 사비를 털어서라도 해볼려고 해

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끝으로, 세계 타이틀 매치를 앞둔 서강일 선수는 그의 각오를 이렇게 얘기 합니다.

- 제가 세계 2위까지 오른 것은 국민 여러분들이 염려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큰 보답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번 금년에 있는 세계 타이틀 매치에서 꼭 승리하여

한국의 남아다운 기쁨을 전 세계에 날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항상 누워 잘 때,

주님께 기도 드리고 잡니다. 이번 금년의 세계 타이틀 매치는 매치에서 꼭 승리해 달

라고 주님께 기도하고..

(음악)

- 이 시간에는 세계 왕좌를 노리는 프로복서 서강일 군의 얘기를 엮어 보내드렸습니다.

DBS 저널 스포츠를 마칩니다.

(입력일 : 200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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