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서울 약품 제공 후라이 보이 코너.
(음악)
-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뭐 제가 설명을 안드려도 잘 아시는 뜻깊은 광복절 인데요.
에, 광복절. 특히 이 날이면 영화계에서 해방과 더불어 생각나는 연예인이 한 분 계십니다.
에, 해방과 더불어 우리가 감격적으로 본 영화가 하나 있는데, 자유만세. 네. 그 때 각본과
주연을 하셨는데, 거기 나오신 전창근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나와
주셔서.
- 감사합니다.
- 네. 특히 전 선생님을 오늘 모신것은 요. 이 8.15 그 무렵에 우리가 아주 조금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자유만세란 영화를 보고서, 제가 굉장히 감격을 했어요. 저 그때 나이로서는 아
주 굉장히 어렸는데, 열 아홉. 열 아홉 때인가요? 제가 봤습니다. 그 영화를.
- 네네.
- 네. 그런데 8.15 그 무렵에 우리 영화계에는 어땠어요?
- 그러니깐 그 8.15 이전에는 일제시대 아니겠어요?
- 그렇죠. 네.
- 그 때 영화라곤 그 옛날엔 다 통제를 받았어요.
- 아하.
- 그래가지고 자기네의 전쟁 수행하는데, 선전이 될수 있는 이런 내용의 영화만 제작을 했거
든요?
- 그러니까 일제시대인데, 어용 영화만.
- 네. 그렇게 됐습니다.
- 네.
- 그러다가 해방이 딱 되고 나니깐. 우리도 한국 사람이라.
- 네.
- 기쁜 건 말할 거 없고.
- 네. 그러시겠죠.
- 더구나 영화하는 사람이니까 먼저 생각이 드는 것이요.
- 네.
- 해방되면 우리나라에서도 큰 재벌이라고 할까. 또 그렇지 않으면 국립으로라도 큰 촬영소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 네.
- 안하고. 또 한가지는 이제는 일제시대 하지 못하던 내용의 영화를 이제는 하게 되는 구나
하는 그런 기쁨이 있고.
- 네네. 제일 먼저 해방되고 나온 영화가 제가 기억나기론 똘똘이 모험이던가요?
- 네. 그렇습니다.
- 그것도. 전 아직도 기억이 새롭습니다.
- 네네.
- 그 다음에 자유만세죠?
- 네. 그렇게 됐습니다.
- 근데 이 자유만세는 저 전 선생님이 각본을 쓰셨다 말씀입니다.
- 네네.
- 근데 그 물론 자기 자신의 일도 많이 껴서 쓰셨겠죠?
- 별로 제 자신이 모델이 된 것은 아니겠습니다만은 약간의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 네.
- 네.
- 그 때, 저 영화인으로서는 지금 생존해 계신 분들이 누구누구 계신가요?
- 지금 그 자유만세 우리가 제작할 때에 있던 분 가운데, 감독을 맡아 보던 최인규씨.
- 네.
- 불행하게도 6.25때, 납북 되었습니다.
- 아. 납치되었고.
- 그리고 윤봉주씨가 있습니다.
- 네네.
- 그리고 또 한가지 섭섭하다고 할까요? 불행하다고 할까요. 거기에 출연했던 몇 사람이 또
이북으로 간 사람이 있고.
- 네.
- 여기 현재 현존하고 있던 사람들은 별 몇 사람 안됩니다.
- 현재요.
- 네네.
- 저 그 때 본 영화중에서 말이죠.
- 네.
- 자유만세 때 그 때, 이 전 선생님, 이렇게 말씀 드리면 섭섭할지 모르겠습니다만.
- 예예.
- 그 땐 아주 미남자였었고,
- 예예. 그러지 마세요.
- 하하하하하.
- 코하나에 뭐 붙여도 튀기가 되나요?
- 하하하. 아니 그 땐, 잠깐 제가 보기에도 남성다운 데가 있었고요. 물론 지금도 그러하신
점이 많습니다만은.
- 네.
- 아주 저 박수갈채를 아주 많이 보냈습니다.
- 그랬어요?
- 근데 어떻게 지금은 제가 또 역시 영화일을 하게 되고.
- 네네.
- 또 전 선생님 곁에서 방송도 하게 된 것을 이상한 감정으로서 지금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만은
- 네.
- 저 뭔가요. 그 때 영화계의 도오랑이라고 할까요. 그 때는 그런게 없었다는데, 지금은 아
주 화장들을 단단하게 하죠? 요즘에는 요.
- 그 때도 도오랑은 있었습니다.
- 있었어요.
- 일본에서 온 게 도오랑이라는게 있었는데, 지금같이 그렇게 매끄럽고 부드러운 도오랑은
아니었어요.
- 아.
- 네네.
- 그럼 굉장히 화장에 시간을 소비를 많이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 네네.
- 필름 관계는 어떻게 됐었어요.
- 그 때 필름은 우리 자유만세만 할 때에도 일곱가지의 필름을 쓴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아이고,
- 필름이 없었습니다.
- 그럼 촬영기사가 혼났겠군요.
- 그러니깐 화면의 톤이나 잡히지 않거든요?
- 네.
- 그 때 한영목이 촬영을 했는데요.
- 네.
- 굉장히 찡찡 댔어요.
- 네.
- 아무리 그래도 현실적인 조건이 그렇다.
- 네.
- 할수 있느냐? 만든 것만 수거 해서 그냥 일곱가지 필름을 썼습니다.
- 좌우간 우리 손으로 처음 만든 것이죠?
- 네. 그럼 물론 입니다.
- 똘똘이의 모험 다음에 우리 손으로 마음대로.
- 네네.
- 네. 그럼 저 레코드 하나 골라 봤는데요.
- 네네.
- 역시 저 해방된 기쁨과 더불어 그 때 한참 유행했던 고잔의 그 장세전씨가 부르던.
- 아, 네네.
- 울어. 그 해방됐을 때,
- 그런거.
- 네네.
- 기억납니다.
- 기억 나시죠? 한번 들어보시죠.
(음악)
- 저 이 노래 들으니까 저 생각나는 것이요.
- 네.
- 그 때 해방되고서 오래 왜 역마차가 있었죠. 정말. 서울에.
- 네.
- 서울에.
- 택시 대신에.
- 네. 그 때 돈으로 안되었는데, 기억이 잘 안납니다. 그 때 한 번 타는데에. 십원인지 원체
기억이 안나는데요, 그 때 교통기관이 나빠서 그랬나요? 어떻게.
- 물론 그렇죠.
- 좋지 않았었죠.
- 네네.
- 택시라는게 일본 사람들이 남기고 간 탁또상.
- 네네.
- 조그만것.
- 네. 그런거 몇 대 있고요.
- 사람이 걸어가는 것만도 못한 정도로의 속력이더군요.
- 네네.
- 휘발유가 모자라서 왜 전 선생님도 생각나실거에요. 저 목탄..
- 네. 소위 목탄 차라고 그랬죠.
- 고개 올라갈 때면 밀고.
- 네. 그럼요 그럼요. 하하하.
- 네. 밀고 올라가고 그때 촬영하실 때도 혹시 그런 고생은 안하셨는지.
- 그런 고생 했습니다.
- 하셨죠.
- 네.
- 특히 지방 같은데 로케이션 가시면.
- 그럼요. 그럼요. 네네.
- 지금 같으면은 가솔린이 흔하니까 영화사에도 자동차도 많고 그랬습니다만은 그 때는 역시
영화사에 차라는게 없었겠죠?
- 없었습니다.
- 네네.
- 남의 차 얘기. 나무에 찐다리가 붙었다고 하하하.
- 곁다리 붙었다고. 하하하.
- 목탄 차 그 외에는 없었죠?
- 네. 그렇죠. 해방되고 나서는.
- 아까도 최인규 감독 얘기가 나왔습니다만은
- 네.
- 같이 출연하신 작품중에서 자유만세. 좀 팥이라는 게 기억에 남는데,
- 팥이라는 것은 저 흑산도에 가서 찍은 건데.
- 네.
- 그 때 제가 각본을 쓰고.
- 네.
- 최 군이 감독을 했습니다.
- 네네.
- 그 때 16mm 인데요.
- 아. 16mm 입니까?
- 16mm 입니다.
- 그리고 제가 또 생각이 나는게 죄없는 죄인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요.
- 네네.
- 죄 없는 죄인.
- 저 황재경 목사님.
- 네네. 그렇죠.
- 출연하셔서 말씀이 많았죠.
- 네네.
- 전 선생님은.
- 저하고는 관계가 없었고.
- 그럼 연출 하셨나요?
- 아니요. 전혀 관계 없습니다.
- 네.
- 네. 그 때 제 기억이 납니다.
- 네.
- 네. 또 독립전야.
- 네. 독립전야도 저하곤 관계는 없었는데요.
- 네.
- 그 독립전야 갔다가 최 군이 일주일 동안에 찍었습니다.
- 네?
- 일주일 동안에.
- 아니, 일주일 동안에 영화를 찍어요?
- 발성 영화는 분명히 발성 영화인데요.
- 네.
- 일주일에 찍었습니다. 그건.
- 허허.
- 우선 찍어놓고요.
- 네.
- 지금 변사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 네네네.
- 그 연기자 자신에 대사를 자기가 다이렉트로 하는게 아니라.
- 네.
- 변사가 쭈욱 해버렸어요.
- 아하. 그래서 동시녹음이 됐군요.
- 하하하. 그런 식으로.
- 하하. 그러니까 이제. 연기자는 그냥 움직이고요.
- 그럼.
- 옆에서.
- 묘사해야지요.
- 때는 바야흐로.
- 옆에서 변사가 다 해줍니다.
- 네네.
- 변사가 스테이지를 하지 않고, 필름 속에서 그런 식으로 해서 일주일에 해 놨습니다.
- 일주일에. 뭐 테레비 영화 식이군요. 일주일.
- 네.
- 일본서도 테레비 영화 찍는데, 일주일에 찍는다고.
- 그렇습니까?
- 네.
- 그렇지 않으면 이어 나갈 수가 없대요. 프로그램을.
- 아하. 네네.
- 그게 생각이 나는 군요.
- 네. 그럼 저 전 선생님이 각본도 쓰시고, 이 감독도 많이 하시는데, 대개 지금까지 감독하
신 작품중에선 뭐 어떤 영화가 있던가요? 제가 알긴 의사 안중근.
- 그런 것도 있습니다.
- 그런 것도. 하하. 그런데 전창근 선생 이러면은 안중근 선생하고 이렇게 머리에 같이 떠오
르는데, 저희들은. 대개 독립투사의 얘기, 그리고 또 항일 투쟁한 작품이 많아요. 3.1운동
도 전 선생님 작품이죠?
- 네. 그렇습니다.
- 네네.
- 그래서 전 선생님이 그 옛날 8.15 전 부터도 은은히 항일투쟁을 많이 하신걸로 전 알고 있는
데요.
- 아니요. 항일 투쟁을 많이 했다는 것을 외람되고 송구스런 말씀이고요.
- 네.
- 상해 있을 때. 독립운동들 하신 선배 선생들이 여러가지 투쟁방식 또 그들의 기개, 그들의
의지 같은 걸 그저 배웠을 뿐입니다.
- 네.
- 별로 제가 무슨 외람스럽게 굉장한 항일 투쟁을 했다.
- 하하.
- 송구스럽습니다.
- 아니, 잠깐 화면에 나타나고요. 저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데, 전 선생님의 그 지나가신 여
러가지 일에 대해서
- 예예.
- 제가 느낄 수 있어요. 저 뭡니까. 중국에 상해에 계셨다던데. 하아. 실례했습니다. 상해
에는 언제적에 계셨어요?
- 그러니까 음.. 제가 열 아홉살 때 상해 갔거든요?
- 아. 여기서요?
- 네. 열 아홉살에 갔다, 서른 두살에 왔으니까
- 아유.
- 에, 소년기와 청년기를 아주.
- 거기서.
- 중국에서 보냈단 결론이 나옵니다.
- 네. 그래서 저 전 선생님 작품 속에는 배경이 중국이 많이 나오는데요.
- 네. 그런게 더러 나옵니다.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어서 죄송합니다.
- 하하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 그럼 말이죠.
- 네.
- 그럼 해방. 여기서 맞이 하셨겠군요.
- 물론 입니다.
- 서울에서.
- 네네.
- 그 당시는 역시 영화계에 종사하셨나요?
- 그 때는 일제시대 영화란 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만은 통제가 됐거든요.
- 네네.
- 그 리스트에 제 이름이 빠졌어요.
- 아하.
- 그래서 영화를 해선 밥을 먹을 길이 없으니까 연극단을 조직 해가지고 다녔습니다.
- 네.
- 네.
- 그 때 연극단 명칭은 뭐라고.
- 그 때, 태양. 극단 태양이라고.
- 태양이요?
- 네네.
- 지금 생존하신 분들의 그 배우되신 분들도 계실텐데,
- 황남 군도 그 때 있었고요.
- 아, 저 점심. 그 전에 신문에 계신.
- 네네. 전무로 있던 황남군.
- 네. 여기 계신 분이 황남 씨죠.
- 네.
- 극단 태양.
- 네.
- 하하. 알겠습니다.
- 하하.
- 그럼 한 곡 더 들어보겠는데.
- 네.
- 이번엔 광복절과는 관계는 없습니다만은 좌우간 쇠사슬에서 탈출하는 유형의 영광의 탈출
이라는 곡 한번 들어보십시오.
- 네.
(음악)
- 저 전 선생님.
- 네.
- 전 선생님 저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요.
- 네네.
- 가정에는 저 사모님을 비롯해서 그 따님보다. 다 영화인 가족이 됐는데요.
- 예.
- 저, 지금 사모님 되시는 유계선 여사는 언제 만나셨어요? 어디서.
- 아, 네. 그건 제가 상해에서 돌아와서요.
- 네.
- 복지 말리라는 영화를 찍게 됐어요.
- 네네네.
- 근데, 거기 여배우를 하나 물색해야 되겠는데.
- 네. 하하.
- 연극하는 극장이란 극장은 죄다 돌아다녀봤습니다.
- 아하.
- 네. 그 때는 순순히 그런 여배우를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서 다닌 겁니다.
- 네. 알았습니다. 말씀 계속 하십시오.
- 네네.
- 하하하.
- 하하하하. 별 재미 없는데.
- 말씀 계속 하세요.
- 동양극장에서 그 집사람이 출연하는 것을 봤어요.
- 네.
- 그러니까, 한 눈에 반했다가 아니라 바로 저런 타입에 여배우를
- 스타일에.
- 여배우다.
- 여배우를 원하셨군요. 각본에 나온.
- 네. 바로 교섭을 했습니다.
- 네.
- 출연을 좀 해 줍시사 하고.
- 네.
- 그 땐 그랬습니다. 사실.
- 네. 또 젊으셨고요.
- 네.
- 하하하.
- 여쭤서 영화라는 것은 첫번인 모양이에요.
- 네.
- 그래서 대개 32초 만에 승낙을 받았습니다.
- 하하하하하. 30초. 2초가 또 뭡니까? 그것도.
- 그렇게 분명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
- 크아. 네.
- 과거.
- 네. 고개가 수그러 집니다.
- 네.
- 영화에 출연하셔서.
- 네네.
- 그 때.
- 그 때 출연을 하면서, 감독을 하면서 보니까 조금 괴상한 말씀 같습니다만은.
- 네.
- 생각이.
- 네. 알았습니다. 하하하.
- 그 이상 말씀 못하겠습니다.
- 알았습니다.
- 네네.
- 그러니까 벌써 처음에는 한 연기자로서 스카우트 하셨다가, 이 연기 생활을 해 나가시면서
소위 이제 인간성을 서로 알게 되가지고.
- 예예.
- 그게 결혼 까지 골인하게 되시고요.
- 네네. 지금 자식까지도 낳고요.
- 네.
- 그 자식이 이젠 출가하기까지 됐고요.
- 네. 아직 학생 아닙니까?
- 예? 학생도 있고, 또는 졸업한 얘도 있어요.
- 네.
- 큰 딸은 졸업 했으니까요.
- 네.
- 또 보내야 할텐데.
- 하하하.
- 전 어떤 고개가 점점 가까워 지고 있어요. 슬픈 얘기죠?
- 아니요. 슬픈 얘기가 아니고, 저 말이죠. 선생님.
- 네.
- 요즘에도 영화에 출연을 하시는데요.
- 네.
- 또 감독도 하시고.
- 네.
- 저, 만약에 전 선생님 다시 이제.
- 네.
- 저 말하자면 독립운동 영화 이외에 말이죠.
- 네.
- 3.1 운동에 주연을 하셨습니다만은 그 외에 내가 이런 영화에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어떻
게 못하게 되는게 아닌가. 이런 섭섭하시게 생각하시는 그런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역할
이 있잖아요?
- 네네.
- 대개 어떤걸..
- 난 이런 성격을 하고 싶어요.
- 어떤거요.
- 악의 극출을 하는거.
- 악의?
- 최악의 극출을 하는 성격이요.
- 네.
- 사람마다 저 놈을 죽였으면 좋겠다 하는 정도보다도 더 악한.
- 네.
- 이런 성격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하아. 프랑켄 슈타인. 하하하.
- 하하하하하.
- 하아. 근데 역시 사람이라는 것이 이상해요.
- 네네.
- 저 본성과는 정반대의 것을 하고 싶어 하더군요. 모두다.
- 대개 그런 사람이 더러 있더군요.
- 전 선생님같이 온순하신 분은.
- 온순치는 못해요. 사실은. 하하하하.
- 한번도 그런 영화를 못해보셨으니깐 아유, 저런걸 꼭 하고 싶은데.
- 사실 하고 싶어요.
- 네네.
- 네. 그러세요. 그런데 전 선생님은 우리가 저 일생 항상 대할 때 말이죠.
- 네.
- 이 조크라던가 위트, 유머가 아주 풍부히 넘쳐 흐르는데 말이죠.
- 네네.
- 근데 영화에서는 온전히 아주 심각한 것들만 많이 하시는데.
- 네.
- 전 또 그래요. 이 평소에는 극장이나 방송이나, 이런데 나와서는 잘 떠들고 그럽니다만은
집에 가서는 또 아주 아무 말도 못하는 성격인데요.
- 아. 댁에 돌아가시면은 요?
- 네.
- 하하하.
- 성격상으로도 그렇고, 역할에 따라서도 인간과 정 반비례로 나가는 모양이에요.
- 그렇죠. 아까 말씀하신 것과 같이.
- 네네.
- 전 선생님이 아마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것도 아마 일리가 있을 거 같습니다.
- 네. 될수 있으면 우리 후라이 보이 선생께서 감독이 되셔서 제..
- 하하하하하.
- 각본을 뽑아주시면.
- 하하하.
- 하하하. 네 알았습니다. 이번엔 경쾌한 하나 음악을 골라봤어요.
- 네네.
- 저 젊은 층에서도 좋아하고,
- 네.
- 또 전 선생님도 아마 상해 계셨을 때, 이 음악과 더불어 아마 무용.. 아. 무용이란다.
- 하하하.
- 춤도 많이 추셨을 거에요.
- 네.
- in the mood 한번 들어보십시오.
- 네.
(음악)
(입력일 : 200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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