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온 퍼레이드
(박수와 음악소리)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스크린에서 낯익은 스타들이 연기와 노래로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는 스타온 퍼레이드.
오늘도 연극영화계의 중진 한분과 두 분의 인기스타, 그리고 리듬 에이스 음악단을 마이크 앞에 모셨습니다.
과연 오늘은 어느분이 등장해서 어떤 프로그램이 펼쳐질 것인지, 여러분과 함께 기대하면서 사회를 맡아서 수고해 주실
시나리오 작가 유환철씨에게 진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
유환철입니다. 스타온 퍼레이드 벌써 19번째 시간이 됐습니다.
이시간에는 어느 모로는 이단적 존재랄까요. 혹은 이색적인 스타들을 모셔놓고 하나의 특색을 찾아보려고 생각합니다.
벌써 바람이 제법 아침 저녁 살결에 차가운 촉감을 주니까는 책상위에 놓아뒀던 책장이 소리없이 하나 둘 넘어가서 정녕
계절은 가을로 줄 달음을 치고 있습니다.
익어가는 가을 우리들은 무엇을 여기에서 거둬야 할련지. 오늘은 좀더 우리들이 당면한 문제를 가지고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해 가면서
이 시간을 보내보고자 합니다.
오늘 나와 주신 분은..
이해랑입니다.
(박수)
김석강입니다.
(박수)
김아미입니다.
(박수)
먼저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엄텀이씨가 지휘하는 리듬 에이스가 오 대니 보이.
지금 정녕 벌써 산 언저리에 가을이 다가 오는거 같습니다.
(음악)
(박수)
이해랑씨는 금년에 예술상까지 타셨고, 신협의 단장으로서, 또 ITI의 부위원장으로서..
관뒀죠.
하하하하..
그래요?
놀라운 정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일반 팬들이 알기로는 굉장히 늙으신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뭐 제 나이 밖에 안됐다고..
여러가지로 반갑습니다. 금년에는 신협의 재기 공연으로 특히 영화에만 전념하던 옛 동지들을 다시 분기 시켰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고,
연기면에서도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영화인들에게 좋은 하나의 수련이 되었다고 봐야겠어요.
외국에서는 연기자 출신의 연출자가 팔할이라고 제가 듣고 있는데요, 이런 점은 보다 직감적인 반응을 얻기위해서 꼭 필요한 것인데,
이것을 가장 솔선하신 이가 이해랑씨가 되겠고, 더구나 육체는 슬프다에서는 영화감독까지 하셨으니까 이제는 좀 더 양쪽방면에
활로가 넓어진 경향이 많습니다만, 연극영화 통틀어 놓고선 우리들이 한때 상승하던 관객 커브를 어쩐지 상실해 가서 서운한
감이 있는데요. 연극자체도 그렇고 영화자체도 그렇지 않을까요? 자미로움, 루벌 드라마라고 그런가요? 이러한 것이 필요할 때
근본방향이 우리들이 어떤 중추를 잃은거 같아요. 지나치게 너무 상아탑적인걸 찾다가 잃은게 아닌지 이해랑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점을..
결국 예술이라는 것을 그런 상아탑 같은 견지에서 호소하는 사람도 많죠, 그러나 연극이라는게 우선 발생론적으로 볼 적에
말하자면 관객에서 부터 시작됐거든요, 그런데 연극이 오늘날 관객을 잃었다는 것은 어디에 원인이 있느냐.
나는 여러군데 다 원인이 있겠지만, 주로 배우의 매력이 부족하지 않나..
그렇죠.
여지껏 말하자면은 진실한 청년 연극학도들의 의해서 연극이 근 10년간 유지돼왔거든요.
네.
그러니까 무르익은 노련한 연기자만이 가질수 있는 예술적인 매력을 가져가다 연극에서 한 번더 발휘해보자. 하는게..
앞으로 영화에 가서 스타가 된 분들도 다시 무대로 돌아와서 연극을 해서 또 쓰러져가는 연극세계를 좀 일으켜주고
그리고 연극에 대해서 또 다시 자기를 연마를 해가지고 그래서 또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하게 그렇게 서로 영화와 연기가
교류를 했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절대 필요해요.
그 것이 양쪽 다 영화에서도 착실한 연기를 할 수 있고, 또 연극세계를 다시 재건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영화에서는 주로 중후한 신사역으로 많이 나오셨는데, 지금 도저히 출연을 안하셔서...
글쎄. 저는 벌써 안한지 근 7~8년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맞지 않아요.
하하하..
그러니까 한 일도 그렇죠, 그리고 또 어떻게 두 가지 일을 할 수가 없고,
그렇죠. 지금 일도 단체관계라 던지 연출 하면 직접 출연이라던지 이런면에서 지금 대단히 분망하시는거 같지만 어떻든 그러나.
후배에게 좀 더 영화연기의 방향을 가르쳐 주면서 자주 나와주십시오.
극단 관계에 있어서 극협이 46년에 됐나요?
그러니까 횟수로 그게 해방 이듬해죠. 네네.
제가 1대 예술학부 나오시고 곧 오셔서는 극연에 관계하셨죠?
네. 극예술연구회에요.
그것이 언제.. 해방전까지 하셨었나요?
극연이라는 것은 극예술 연구회라는게 소위 소인극단입니다.
네.
그때, 해외문학파 김광섭씨, 어윤숙씨, 유치진씨, 서황섭씨도 문필위주로 하신 분들이 이제 여가로 사이드로 연극을 했었죠.
그러다가 그게 직업 극단이 된게, 아마 일제 말엽 극연이라고 해가지고선 직업극단의 면모를 띈거 같아요.
그때부터 창단했습니다. 직업극단.
사실이지 예술운동이라는게 직업화으로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게 아니겠어요? 비전이라고 하는 것이 직업화 하는 것으로
하나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것을 사람이 하나의 독립된 직업인으로서 부여하는 점에 있는데, 그리고 오늘날엔 그래도
직업극단으로서의 몇 개의 극단이 나와있고, 물론 아마추어 극단도 필요하겠지만 한때 그 영화란 예술에 대해서 이해랑씨는
색안시 한 경향이 있었는데, 쉽게 저희로서는 이게 영화예술의 하나...
그 얘기에 대해선 이 기회에 변명을 하게 됐군요. 영화를 내가 흠오 한것도 아니고, 사적으로 영화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나는 속으로 참 어떤 예술로도 영화를 좋아해요. 보기를 즐겨하고, 그리도 또 여가가 있으면 영화관으로 갑니다만,
얻는 것도 많고 그런데, 왜 그랬냐면. 하나의 저로서의 고집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모두들 연극하는 사람들이 영화로 흘러가니까. 이걸 누가 막을수 있겠느냐 해서 그 연극하는 사람의 한사람으로서
한번 고집을 부려 본거지 그것이 싫은. 정말 내 진심에서 영화를 흠오 한다던지 그것이 전파 됐다면은 안타깝습니다.
어떻습니까. 한국 연극의 발 길도 아직도 모색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 영화의 갈 길이라는게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갈지 갈피 잘 못 잡잖아요. 저희들이 지금.
그게. 저희 연극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게 우리가 좀 더 여러사람이 즐길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셰익스피어 하면은 그것은 대학교재로서만 가르칠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반 무식한 대중.
할머니, 할아버지도 셰익스피어를 보고 이해할수 있는 그런 셰익스피어라야 합니다.
뭐 영화도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영화 예술해서 아주 딱딱하게 나가는 분들도 많은데..
네네.
뭐 그런방향도 좋겠지만은 좀더 우리의 생활속에서 길을 찾아야..
자꾸 생활과 유리한 영화를 만들려고 해서 이런 문제가 크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게 또 해외평론가 일하는 사람들이 한국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역시 너희는 생활 속에서 찾지 왜 딴데서 찾고, 너무 서구적 모방으로 하느냐는 얘기가 심각한 얘기에요.
결실은 흉언이고요.
금년도 수상작품 밤으로 긴 여행에서 하나의 감격된 장면을 하나 해주시겠습니다.
(박수)
흠.. 또 그따위 소리. 도대체 넌 돈의 가치를 몰라. 네 조부는 내가 여섯살때, 할머니를 버리고
고향에 가서 죽는다고 애란으로 돌아가셨다. 그대로 고향에서 돌아가셨지.
너의 조모께서는 낯설은 땅에 어린 것들을 넷 두고 남게 되셨어. 나, 네 큰고모 한분. 작은고모 두분.
오두막집에서 두 번이나 내쫓겼다. 몇 가지 안되는 가구는 그 놈들이 길바닥으로 팽개쳤을땐, 할머니 하고
고모들이 다 우셨다. 나도 울었지. 그게 바로 내가 여섯살때 일이란 말이여.
학교도 그때까지 였다. 너의 할머니는 미국사람집에 가서 빨래와 소일을 하고 큰 고모는 삯바느질,
작은고모 둘이서 집안일을 맡아 봤지.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다.
크리스마스 날이었단다. 할머니가 소일을 해주시던 미국사람한테서 프리센트로 1달러를 받으셨다.
할머니께서는 돌아오시는 길에 그 돈으로 먹을 것을 다 사셨어.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시면서 우리들을 껴안고 키스를 하시면서 `고마운일이다. 이제야 식구가 배불리 먹을수가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수)
이해랑씨가 늘 마음의 노래로 간직하는 것은 옛날의 금잔디인데, 오늘 특히 정자양이 제자로서 여기 동아방송 성우로
나와있기 때문에 투 러브를 자기의 스승에게 드리는 노래로 부르겠답니다.
(박수)
(노래)
김아미씨, 첫 출연작품이 청춘비가에요?
네. 6년전에..
6년전에 그 연예전선, 애련의 꽃송이, 오형제, 구름은 흘러도 사랑이 무너뜨릴때, 언니는 좋겠네.
특등신부와 삼등신랑..60여 작품. 굉장한 작품인데요.
아직 실례말씀 같지만, 30대는 훨씬 못 됐죠?
하하..
지금까지 지금나간 작품이 60여개, 그래도 자기가 가장 자신있게 느끼는 작품이 뭐에요?
그런데, 제 자신 60여 작품을 출연해왔는데요. 한번도 만족하게 내가 그 역할을 잘 소화시켰다고
느낀 작품이..
겸허겠지요.
하하.
내가 알기까지는 흙에도 퍽 좋았어요. 흙도 좋고, 그 후에 최근 여의사로 나온 것이 언니는 좋겠네.
나중에 결국 사랑을 간직하는 얘긴데, 대구죠?
네.
도무지 사투리가 느껴지지 않아서. 서울로 온지 오래됐어요?
한 십년 됐어요.
네. 영화계라는 데가 대단히 그 부침이 심하고 변화가 많은 곳인데, 자기의 영화생활에서 즐거운 일이
많았겠죠. 그중에 한가지쯤 여기서 소개를 해주세요.
즐거운 일이라기 보다도 제가 제일 기뻤던 일.
네.
제가 처음 팬레터를 받았을 때, 그때의 기쁨은 지금도..
남자였나요? 여자였나요?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팬레터가 남자에요?
하하.. 남자, 여자요.
네. 하하 남자 여자요.
팬레터라는 것이 역시 팬이 쓰는 정성이라는게 대단한가 보더군요.
네.
저도 가끔 작가로서 받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어떻하면은 자기가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느냐 에 대해서
부탁이죠, 저와는 관련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팬에게서 올 수가 있어요.
저 새로운 취미랄까? 요새는 뭘하세요? 영화예정에는.
촬영이 없을때는요. 저 바둑있잖아요?
바둑?
네. 조금씩 친구들하고..
이거 호남철씨 제자가 되실려나 보군.
하하.
바둑이라는게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라서 가을에 저희 이번에 아마 동아일보에서 지금 보내죠?
일본서 전세계 고호. 라고 바둑대회라고.. 난 처음에 포스터를 보고서 교통신호인가 했는데,
세계적으로 이게 상당히 진전되어 있습니다.
여류기사가 되시겠다.
아닙니다. 아직까지 하하..
황혼가라고 제일 많이 애독하시는 김광균의 소월에게 부친 시를 한번 읽어주세요.
네.
영도다리
소월에게.
영도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서
오늘도 생각한다.
내 이곳에 왜 왔나.
부두엔 등불이 밝고
외국상선들 때 맞춰 꼬꼬등 울려도
손목 잡고 밤새일 하나도 친구도 없이.
아침이면 소요한 군중에 등을 밀리고
황혼이면 고단한 그림자 이끌고
이달이 지난지도 언 한해.
살기가 왜이리 고달프냐 하던 소월 만나려
주막집 등불 찾으면 적동색 어부들 낯선 사투리로 떠들어대고
내려다보니 태평리 나루터엔 바람소리뿐.
무명산 기슭엔 누가 사는지
나란히 조는 등불 정다웁지만
영도다리 난간 이슬에 젖도록
혼자서서 중얼거리니
먼 훗날 누가 날 이곳에서 만났다 할까.
(박수)
정말 우리들이 정다웁게 스타온 퍼레이드 시간을 나누면서 정녕 먼 훗날로 누가 날 이곳에서 만났다 할 그럴 시절이 오리라고 봅니다.
하하.
노래를 하나 불러주세요.
아이. 전 노래는 정말 못하는데.
아까 저 엄텀이씨 뭐드라? 울밑에선 봉선화요? 네네.
홍난파의 울 밑어선 봉선화.
(박수와 노래)
김석강씨.
네.
대게 전승의 가업이 의업이시고, 아버지께서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김아른 박사. 외과계의 아주 파다한
업적을 남기시고. 제 곁에는 스승이 나가는 분이고,또 현재 병원을 하시는 형님은 세브란스 내 후배인데.
네, 그렇다고...
어떻게 가업을 등지고서 이 방면에 이렇게 나오게 되서, 일종의 이단인데 이것도..
하하.
미국가서 미시간유니버시티에선 화공과를 했다고.
네. 화학으로 학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맨하탄 워크샵에서는 ..
연기수업을 했죠.
여기서는 화공과에서 연기수업으로 전향을 했군요.
아. 그게 아닙니다.
그럼.
제가 고등학교 있을 때도 연극을 좀 했어요. 그러니까 4년동안 화학을 한것이 이단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가.
맨하탄에선 다시 돌아온 거죠.
아하. 그렇군..하하
화학적 분신을 쌓아서 다시 나왔군.
여기 돌아와서는 유일목 감독의 김약국집 딸들이 첫 번 출연이죠.
네. 거기서 영화인 데뷔를 했습니다.
그 후 청색아파트 77번 미스리..
미스 김입니다.
아. 미스김.!
모란이 피기까지.
모란이 피기까지, 그러나 어쩐지 김석강씨가 주는 체취와는 조금 거리가 멀지 않나 하고, 내 개인의
소견입니다 만은 일상, 그 현대의 부조리나 이런 일종의 반항정신을 지닌 젊은 주인공 같은게 맞지 않나.
하고 난 생각하고 있어요.
어, 저도 그런데에선 조금 생각해 봤어요. 제가 나온 영화도 갔다가 가서 구경도 하고, 아직 조금 갭이 있는거 같아요.
그래서 그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아마 20세기적인 세계 어느나라에도 있는 젊은 세대의 동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스포일한 것같으면서도
그래,그래요.
생활원칙이 완전히 있는 생활태도가 아마 요새 젊은 이들의 생활인듯..
생활의 루벌인지.. 여기 마침 이해강씨도 나와계시지만, 우리들이 젊은 사람의 호소를 젊은 사람의 생활윤리라고
까지는 안하더라도 생활상은 그대로 포착해서 이것을 영화화 한다던지 무대위에서 극화한다는 것의 문제가
가장 소중한 문제가 아닐까.? 이것이 없이는 젊은 사람의 관객을 끌수가 없다고 보는데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도 연극을 몇 개 봤는데요, 젊은 관객이 공감을 갖는 그런 연극이 아마 지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배님이 여기 앉아계신데, 지금 후배로서 말씀 드리는 건데 제가 지금 귀국한지 9개월쯤 돼요.
그런데 세대교체, 세대교체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근데 그 말자체가 굉장히 막연하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 후배들은 선배님이 겪으신 모든 고난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서 선배님에게 존경을 합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오해를 하나 하시면 안될 점이 하나 있어요. 뭐냐하면,벌써 그 만큼 고난을 겪으셔서
오늘의 상태에 이르렀으니까 우리가 나오는 것은 이제 일단 길을 만들어 준 것을 가져다가 더 발전시키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때문에 선배님들이 맨먼저 시작하셨을때 고난이 50가량 겪었다고 해서
우리들도 50을 꼭 겪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50을 겪었으니까, 우리는 마지막 50을 채워드려야죠.
네. 알겠습니다. 좋은 제안입니다.
결국은 지금...
네, 이런것이 이제 무대각본 선택에도 있어야 할 것이고, 또 영화면에 있어서는 신인배우들한테 자꾸 이런원칙에서
기회가 가야 할 것이고, 모든 것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좋겠습니다.
상당히 이런문제가 닥터메케인하고 공개토론에서도 그런 문제가 나왔지만, 한국영화는 왜 울고 짜느냐.
난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떻든지 우리들이 울고나서 후련해 지는 기분, 이런것이 동양적인 하나의 생활관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아까도 이해랑씨가 그렇게 얘기 했지만, 우리가 자미롭다는 것은 슬프고 나서도 일종의 자미라고 볼수 있는
거에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가 덮어놓고 생활의 한 방향을 잃을정도로 무슨 아주 비참에 진다면
모르지만은 흐뭇한 눈물이라는 것은 우리 동양사람이 전반적으로 지닌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걸 꼭 서양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건 대단히 거리가 먼 얘기 같아요.
그래서 젊은 사람의 행동을 과감하게 그려내면서 이것이 어떻게 종래까지 영화하고 관객하고, 규합해 나가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문제가 됐어요.
네.
벅찬연기는 다음에 기대하기로 하고, 젊은 검사가 변호사인 자기의 사랑의 라이벌을 역시 죄인으로 잡아온데 대해서
느끼고, 나중에 그 사람을 석방하는 얘기를 하나 여기서 해보겠습니다.
이 선생님이 쓰신 장충단 살인사건에서 잠깐 읽겠습니다.
언제 보석했지?
난 낙향이지만 자네는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야?
나처럼 시골에?
흠흠..
지방으로 가는게 서운하냐고?
설마 그렇게 멀리 밀려갈 줄은 몰랐어.
헌데, 숙희씨는 누구 만났나?
그래?
지난달에 불란서 유학간다고?
한 2년 가있으면서 이별해진 추억들을 잊게되면 또 돌아올테지.
그때는 당신같은 상처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관학교생 같은 싱싱한 상대를 골라 행복을 갖고 살꺼야.
숙희씨는 비행기로 떠나면서 이 나라에 어리석은 사나이가 두사람 있다고 느꼈겠지.
그러는 어리석은 바보가 때로는 소중한거야.
어쩐지, 난 바보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아.
(박수)
짧막한 노래를 하나 불러주세요. 살랑살랑입니다.
(노래)
(박수)
그럼 여러분께 푸른 가을하늘 처럼 싱싱하고 맑은 행복이 깃들 것을 바라면서 여기서 실례하겠습니다.
(박수)
오늘의 출연 이해강, 김아미, 김석강 그리고 사회 유환철, 경음악과 반주에 엄텀이가 지휘한 리듬에이스 악단
이상 여러분이었습니다.
스크린에서 낯익은 스타들이 노래와 연기로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는 스타온 퍼레이드.
오늘은 여기서 여러분과 작별하겠습니다.
(입력일 : 2008.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