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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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스타온 퍼레이드
전창근·한형모·복혜숙 - 영화 자유만세의 주역들
전창근·한형모·복혜숙
영화 자유만세의 주역들
1963.07.31 방송
스타 온 퍼레이드는 스크린의 스타들을 초빙해 현장에서 노래와 연기를 보고 들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광복절 제 18주년 기념 특집 스타 온 퍼레이드.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스크린에서 낯익은 스타들이 노래와 연기로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는 스타 온 퍼레이드. 오늘은 8.15 개방 열 여덟 돌 맞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8.15개방 전후해서 영화계 개척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인기스타와 감독 네분 그리고 리듬에이스 악단을 마이크 앞에 모셨습니다. 과연 어느 분이 등장해서 그동안에 영화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아울러 어떤 프로그램이 펼쳐질 것인지 여러분과 함께 기대하면서 사회를 맡아 수고해 주실 라디오 작가 유한철씨에게 진행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유한철입니다. DBS 동아방송국이 중파 1230키로사에클로 보내드리는 스타 온 퍼레이드. 18번째 시간은 마침 8.15광복 18번째 돌을 맞이하여 18년 전 해방당시에 영화인들이 겪은 기쁨과 마련한 ..들이 오늘 어떠한 방향으로 어떠한 업적으로 이루어졌나 하는것을 엮어보고 싶습니다. 더구나 오늘 나와주신 네분 중 세분 스타는 그날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계신 네버스타 말하자면 영원한 스타라고 할까요? 여기에 해방직후에 첫번 출산된 한국영화의 거의 태반의 작품에 촬영기술이나 담당하시는 분이 또 한분이 나와있어 더욱 의의가 깊다고 보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신 분은

-전창근입니다.

-한용호입니다.

-김진재입니다.

-복혜숙입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만나뵙게 되니까는 해방직후 종로에 자리 잡았던 고려영화 주식회사에 모인것 같습니다.

-네

-지금 서라벌 다방에와 제작본사하고 오늘날 ..면서 분주히 여러분이 일하시던 생각이 나면서

-아 그땐 뭐 전창근 선생님 주연으로 제일 첫번 자유만세 영화 만들었죠. 한용호 선생 촬영하시고 지금 제일 ..사람이 최인규 감독의 ..빼고 지금 이 자리에 없는게 대단히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죠.

-그대신 김진예 씨가 나오셨으니까

-네 그런데 더욱 뵌뜻이 있고 김진예 씨는 또 여전히 지금 은막에서 활동하고 계시고 그때와의 역에 이때와 비교하면은 영화 기술 면이라던지 작품에 아주 방향이 대단히 진전됐습니다만은

-그래도

-좋은 작품을 많이 이뤘습니다.

-네

-좋은 일도 있었지만 그대신 또 많이 발전은 됐는데 재주있는 분이 그렇게 많은것 같진 않아요. 그때 생각하면은. 그땐 해방전에도 동시녹음을 했는데요, 최인규씨는

-그랬죠.

-네

-그리고 이 자유만세도 동시녹음 아니에요?

-자유만세..

-처음엔...동시녹음이 됐나요?

-예 ...동시녹음입니다.

-제가 이제 저 한영모 감독도 같이 일을 했었고

-네

-또 선생님도 그렇지만은 그분은 뭐 편집 촬영 일정 전부를 자기가

-그러믄요, 그 얘기 뭐 좀 기계가 헌 기계가 자꾸 쓰니까 기계가 이상하면 우린 점심먹다 점심시간에 점심 안잡숩고 그거 뜯어고쳐가지고 자 됐다 하자. ㅇ렇게...

-하하하

-최근 그 한국에서도 군사 영화가 여러가지 방향으로 상당히 발전했다고 볼수있는데 마지막 내가 최감독을 뵙기는 지금의 국립극장 2층에서요, 하이튼 저 연주 발표회날..마침 그 해군 관계의 큰 작품을 하나 기획하시고

-네

-계시다가 이루지 못하고 결국 6.25를 당하시고

-네

-참 나쁘게 돼셨는데 어떻든 저희들이 이렇게 영화를 하면서 최인규씨가 남긴 그 영화정신이랄까요,

-네

-이런 면에서 저희들이 지금 그 계승을 과연 잘 하고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는...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초창기에는 나운규씨를 손꼽았고 이자 8.15해방 전후로 해서는 최인규씨 독무대였었죠.

-전창근 선생님 저 함북 회령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영화계 진출이라는것이 아주 숙명적으로 지역적으로 돼있죠. 거기가.

-글쎄...

-회령이 제일 많아요.

-네

-에 중국 무창대학 거치셔가지고 독립운동엔 총본사이신 상해에서 영화활동을 하시다가 해방 첫 전에 돌아오셔가지고 그 후에는 자유만세, 단종회사, 고종황제와 의사안중근, 3.1운동, 백범 김구선생 이렇게 보면은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전부가 전선생님은 독립사로 꾸며져 있는데 작품이...

-대단히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하하하하

-아니, 그걸 잘 아시니까 독립사를 잘 아시니까 또 그러고 또 거기에 유의 하셨으니까 아마도 그런 작품만 손대시게 돼는거 같애요.

-오늘도 부인 유기선씨께서는 지금 강원도에 이렇게 가 계시구요.

-네

-저 이화대학에 지금 전향이

-네

-큰따님도 지금 아마 어머님을 따라 가 계신 모양인데 이렇게 쓸쓸하게 8.15를 맞으시려니 이렇게 됐는데


-원체 8.15적에 쓸쓸했죠.

-하하하

-자유만세란 작품이 그 해방후에 그 35미리의 흑백작품으로는 아마 시초죠, 그것이? 최근에

-네

-아직도 저희들이 본 감명이 새롭습니다만은 결국 이 애국자라는 문제가요, 수퍼맨인데 일반적으로 그 큰일을 하는 분들은 항상 고독하다고 느끼는것이 하나의 방향이 아닐까요?

-아까 내가 하던거 하곤 전혀 다르죠, 본질적으로

-하하하하

-그 각본도 전선생님이 쓰셨죠?

-네

-에 지금 생각할때 영화에서 무슨 멜로드라마니 리얼리즘이니 뭐 하는데 그때 어쨌는지 지금 구태여 그런 규격을 짓지 않더래도 실감이 있고 진박감이 있는 그런 작품의 영향에 대해서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리얼이 아닐까요, 지금?

-그 자기네들이 다 경험한 ...실감나게 돼죠.

-한감독하고 어저께도 그런얘기를 했습니다만 그 당시에 저는 이 일을 24시간 가까운 일을 하고도 조금도 피로를 안느꼈단 얘기를 하는데...

-24시간 정도가 아니죠, 자유만세 제가...

-그 하루가 24시간인데 더 하면 어떻게 돼는 가요?

-하하하

-촬영할때 그 기억이 나는데 20일을 계속해서 밤을 샌 기억이 나는데

-네

-근데 한 제일 급한게 이틀에서 사흘넘어가는게 제일 급하더군요.

-난 저.. 죄없는 죄인 촬영할적에 말이죠, 근데 최인규 감독 어떻게 일을 부지런하게 하는데 밤을 새고 다 했는데 밤씬이 나이트씬이 안됐거든요?

-네

-그러니깐두루 지금 해가 이렇게 떠올르니깐두루 문에다가 돗자리를 갖다 치고 그걸 아주 끝내자 그럽디다.

-하하하

-그렇게 열심히 해요, 아주.

-독립전야는 그 며칠에 끝냈던가요? 그게?

-일주일이라 그랬는데...

-일주일? 네. 전선생님은 그 지금 향희양이 영화계에 지금 진출을 해서 또 학교 졸업할때까진 아마 여러가지 학교당국의 사정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해방전후라는 그 연보적인 ..을 가시고 또 부모와 자녀간에 일에 걸친 그 세대나 가계적인 그 계승을 가졌다고 볼수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오늘의 그 세대스타라는것이 받아들이는 감수성이나 행동력과요, 그 당시 저희들이 해방후에 바라보던 그 거점이 어디가 달를까요?

-근데 그건 나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좀. 옛날에 한영모씨 ..복선생님이 ..때도 그랬지만 일제시대 우리가 영화 했을때는 어떤 의무감을 가졌어요?

-그렇죠.

-네 어떤 의무감을 가졌어요. 그래서 만드는 스태프나 또 캐스터...이 서로 만나두었던 목적을 이루는데 그렇게 이해관계라던지 감정의 알..라던지 이런게 없었어요. 네? 근데 요새 이건 완전히 상품이다. 네? 네? 그래서 그건..나도 하고 있는 도중이기 때문인데 그런데

-하하

-여러가지 좋지않은 얘기는 안하겠습니다만은 그때하고 그런 본질적인 정신적인 자세가 좀 다르다. 난 이 말씀 하고 싶습니다.

-역시 그런점이 지금 제일 모자라는데 한감독...

-지금 저도 뭐 ..선생님 말씀과 마찬가진데...

-네

-결국은 감수성은 그때보단 지금 현재 영화인들이 좀 예민하다고 느끼는데요.

-네

-그 반면 이제 그 일에 대한 책임감

-네

-그것이 좀 박약해 졌어요.

-그래야 결국은 지금 젊은세대의 특징이나 분야가

-책임감은 박약하고 욕심은 많아지고 하하하

-우리들이 뭐 지금 자기네들 얘기할적에는 물론 전세대적인 보수성이긴해도 저희들이 ...적인 규합, 정신적인 집중력이라는건 어느정도 우리가 자부를 하고 있는데 이런걸 저희들이 정말 오늘의 해방 열 여덟돌을 맞이하면서 젊은이에게 주고싶은 금언이라고 봐도 뭐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에..전선생님.

-예

-그때의 감격을 한번 새롭게 해서 3.1운동 당시에 손병희 선생님의 역을 한번 해주세요.

-(짝짝짝)

-아, 늦어서 미안하오. ..좀 오래간만이구료. 간만에도 언제 ....소. 오호라 주동자의 전보를 가지고 왔다고? 자, 다들 앉읍시다. 이로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것 같은데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섭리에 너무나 감사할뿐이요. 에 그러나 귀족대표를 쫒다가 실패한 남강의 노력도 결코 잊어서는 안됄 것이요. 서로 교리는 비록 다르지만 이 운동에 있어서 결국 목표는 하나인줄 우선 세계만방에 우리민족의 독립선언을 선포해야될것이요. 독립선언이라면 왜놈들의 법률에는 내란표가 되어 극..을...할것이니. 그러나 이제 남은 길은 하나뿐. 우리는 너희들의 지배를 거부한다는 뼈저린 통보. 그리고 반드시 이것을 우리는 수행해야 될것이요. 동지 여러분, 우리들의 마음과 몸은 교리위에 피흘린 넋이 되야될것이요.

-(짝짝짝)

-여기에서 어 오늘 반주를 해주실 엄토미씨와 그가 지휘하는 리듬에이스가 지금 제일 저희 귀에 아직도 새로운 옛 그 저..곡조를 지닌 애국가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네

-♬

-저 김진재씨 저 해방전에는 수선화, 수업료, 집없는 천사들 일련의 작품에 전부 출연을 하셨고 해방직후에는 지금 최인규 감독 아래에서 정말 매료자로서 혹은 사업에 역시 가장 측근자로써 또 이 출연면에 있어서는 제일 이해깊으신 연기자로써 상당히 일을 많이 해주시는데 한 25년 되시죠?

-네 한 이십..칠,팔년...

-27,8년...네 김진예씨 평북연변이신가요?

-의주죠.

-의주신가요? 네 네 에 처음 그 배울때나 지금 배울때나 소위 그 영원한 스타라는말이 가장 김진재씨에게....

-.....

-은막의 영원한 애인이라고

-...적 모습이 아주 그대로 있는데요?

-아까도 조금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납북된 최감독은 여러가지 그 재능파지만

-네

-대단한 또 신경질이였죠.

-네

-그걸 제일 또 이해해주시고

-오늘 현모양처 거시기를 구별하고 있는거

-그 당시에 그 세트는 어디에서 주로했나요?

-저 남대문...

-지금 시장...창고 네네

-거기서 하고 남대문에서 촬영도 하나 했었어요.

-근데 지금 그정도의 작품이 지금 나오기도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감명깊었는데 그 외에도 자유만세도 중국에도 수출이 됐는데요, 이 이러한 그 우리들이 작품을 생각할땍에요, 그 당시에는 어떻든 그런 슬로건을 세우지 않아도 자연히 작품 경향이 그런 경향으로 흘러서요, 근데 지금 마침 어제는 강화도에 로케가신걸 제가 연락을해 오늘아침에 ..식으로 모셔왔는데 이번에 나가고 계신 작품이 샤네탄의 구름달이란 작품입니다.

-네

-오히려 지금 역사의 순환기에 있어서 일본의 사람을 동정하는 그런얘기입니다. 어떻게 생각하기로는...

-아니, 일본사람이 한국사람에게 대한...

-아닙니다. 에..3.8선에서 말입니다. 그 어린애를 잊어버리고 간 일본 부부가 그 아이를 키운 한국 부부.

-음...

-나중에 기른 양부모가 와서 그 아이를 달라고 키워진 정과 여러가지 정을 못잊어서 그대로 돌아간다는 그런 얘깁니다. 거기는 저 일본 그 교수의 부인으로 나오시죠?

-네 네

-여러가지 그 감명이 깊습니다. 직후에 하시던 자유만세와 오늘날의 ...와 거리가 있으면서도 저희들이 ...생각해보면 같은 얘기라고도 볼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그 최자부인의 얘기죠?

-네

-한번 가장 감격된 대목을 들려주세요.

-그애 마저 우리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죄를 잊지못하고 부질없이 한국인에 불손한 감정을 은연중에 길러간다면 그것은 진정 무서운 화근이 될것입니다. 그야말로 양지 못본 젊은이의 비극이 아니겠어요? 과거의 한국에 젊은이야 말로 양지못보고 자란 희생자들일 것입니다. 인제야 우리 젊은이들의 노력과 한때의 ..를 실천으로 옮길 때 입니다. 우리들이 만주와 북에서 헐벗은 몸으로 섞여 한국의 마을에서 종가로 오는 물을 받아마셔 생기가 돌았을때 마을사람들이 부르던 아리랑 노래를 기억하시죠? 누가 이 슬픈 노래를 자나깨나 울며 부르게 해주죠? 바로 우리들일 것입니다. 인제 슬픔을 잊고 새로 세워진 나라를 더욱 풍물과 사람들 마음씨가 아름다워져 가고 있을거에요.

-여기 마침 저 동아방송국 성우 여러분들이 와계신데, 선배의 노래를 듣기보담도 자기네가 정말 해방 18주년입니다만은 만나서 자기의 기쁨을 대변하겠다그래서 김훈미양이 어톤립스를 부르겠다고 합니다.

-♬

-역시 세대가 달라졌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하

-한영보 감독은 자유만세때 촬영장을 담당해주셨고 그 후에도 아마 그 다음에...

-죄없는 죄인

-네 메가폰을 직접 또 들고 하신 성벽...

-성벽을 뚫고가 처음이신거에요?

-그렇죠?

-예 그것이..

-그것이 첫번 작품이신데..

-첫번 작품인데 저..그건 상품작입니다.

-네 네

-참 상품작이란다, 상받은 수상작입니다.

-수상작이죠, 네. 그때 그 저 문교부 제작..네가지 작품중에서 한감독이 연출하고 촬영까지 했던가요?

-네 네

-제 작품이 해당 됐었으니깐요. 한감독이 그동안 3.8선에 성벽을 뚫고라는 민족의 ..은 18년이 지난 오늘날도 또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아마 자칫하다간 민족의 영원한 비원이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만 역시 평북의주시죠?

-네 그렇습니다.

-성벽을 뚫고를 그 만드시던 때에 여러가지 그 얘기가 많습니다만 저희들이 그 시각적으로 볼때도 소위 웨스트나이즈한 그러한 색채를 ..해가지고 어떤 그 한국영화보다 한번 이채롭다는 거를 보여줬는데요. 에..어득이 한감독..처음에 그거를 작품선택을 어떻게 ..을 잡으셨어요? 성벽을 뚫고를?

-그 작품 선택에서는 그건 제가 선택한게 아니고

-네

-제가 그때 마침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어요.

-네

-그럴때에 그 지금 장면에 죽었지만 말이죠, 김보철이...

-아

-그애가 그 여수 순천살라는 그 거기에서 소재를 얻어가지고

-그렇군요.

-에..그건 가져왔어요. 그거에서 저는 그 김보철을 통해서 그 작품스토리를 약간 읽어봤는데요?

-네

-대단히 그 작품내용에 있어서 박력있고

-네

-또 우리의 그런 이제 그 영화를 개혁하는것이 그때 느낌으로서 이색적이고 그래서 그걸 채택했는데요.

-네

-그래서 그 김영수씨한테 각색을 부탁해가지고

-네 네

-그래가지고 한겁니다.

-이집길이가 처음에...

-네 그때는 저 주연은 남자주연은 이집길이가 했고...

-그 사람도 세상을 떠났죠?

-그랬죠.

-네

-그 여자는 이경서라고 그 신인.

-네 네

-두분이 다 이제 신인이였는데요.

-사실 저 이시간이 오늘 스타 온 퍼레이드 시간입니다만은 한감독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스타를 찾아내는데는 아주 베테랑이라고 하시는데 김의향 이대역 이빈화 이수련 서애자... 거의 다 이 한감독이 발굴해낸 감독인데 아까도 조금 말씀을 여쭤봤습니다만은 해방후에 그 스타라는 그 국한된 세계하고 오늘날의 다양한 ..는 상당히 차질이 있는데요? 제가 정신적인 면을 얘기했는데 앞으로 저희들이 지금 대체해야될 스타의 길이 어떻게 돼야겠어요? 지금 스타 이름...하면 많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없고

-사실은 많은거 같지만 사실은 없는거죠.

-네

-부족한거죠.

-네 네

-그러니까 앞으로도 역시 계속해서 신인을 많이 발굴해야된다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렇죠.

-그런 신인 발굴하는 감독이 특별히 있더군요?

-네 네 한감독은 아주 거기에는 명수라고 돼있는데 이번에도 아마 지금 개봉이 기대됩니다만 천국과 지옥에도 박은희씨를 지금 키워가셨는데요, 그 당시의 성벽을 뚫고 때와 지금 천국과 지옥을 다루시는 그 작품의 경향이랄까요? 그것은 결국 제작자 여부도 있겠고 관객들의 일종의 반응도 있겠는데 어떻습니까, 그 해방 직후하고 지금은?

-네 그때..그때는 우리가 영화 제작 그 행동에 있어서 시간적인 그 구애를 받지 않았어요.

-네

-그래서 신인을 가령 한두번 해봐서 안될때는 가령 하루죙일 들여가지고 하루종일을 그런 의욕을 가진거 같습니다.

-네

-그것도 시간이 허락했고

-네

-근데 지금은 역시 그런 시간적인 그 제한이 있기때문에 신인이 나오드래도 그 오랫동안 테스트를 시키지 못하는데 그 대단히 거기에 이제 그 우리 그런 결함이 있어요.

-사실은 뭐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영화인이 소위 예술의 대우를 받고요, 또 일반의 사회인식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에로가 많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저희들도 어느 사회적인 일종의 지위에 대한 자부를 느끼게 돼있는데요, 그 일종의 이해죠.

-근데 그때와 지금의 영화를 동경하는 그 말하자면 그 차이를 얘기하자면요?

-네

-그때에 내가 연기자가 되고싶다,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하는 사람은 그건 진실한 자기 소질이 있어서

-음흠

-영화를 하고 싶어서 나온 사람들이에요.

-네

-그런데 지금 영화를 연기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은

-음

-그런 사람도 없지않아 있지만 태반이 허용해서 일시적인 그 자기 흥분감에서

-네

-거기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기때문에 그건 벌써 한번만 테스트 시켜보면 거기서 나갑니다.

-역시 상당한 차질..마음의 자세 역시 선생님 말씀대로 이제 제일 필요한 문제에요. 지금 스타의 발굴도 그렇고 앞으로 한국의 영화가 지금 다 그리 일..으로 그렇게 생각을 해요. 새로운 스타가 나와야 됀다. 나온다는 그 거점이나 개념은 나오지 못한 결과나 마찬가지가 돼는거 같애요.

-네 스타가 나와야된다 새 사람이 나와야된다 자꾸 그래서 그런지 자존심이 강하고 그 호기심이라 그럴까,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많은거 같애요. 가만히 ..보면 나는 학교에서 연기를 하는데 이렇게 이렇게 해서 아주 칭찬을 받았다. 난 스타될 자격이 충분하다. 저 누구 말만 잘해주면 스타가 될텐데 좀 할머니가 얘기 좀 해주쇼. 이런 사람들이 태반이거든요? 가만히 보면. 그러니까 자기 자존심이 강하다고 할수밖에 없죠?

-네

-젊은 사람들이 대담하기도 하고 자기는 소질이 있데요.

-하하하하

-그러면 여기에서 다시 밴드플레이 하나 들어가겠습니다. 스윙인셰퍼 양치기 노래. 우리는 ..양치기...

-♬

-....복선생님 그 아까 자유만세 때요.

-네

-지금 아주 톱스타가 된 김승호가 적은 단역을 맡고 나왔단 얘기라던지 방승...조차 이상만씨가 출연했단 얘기 들으면

-네 근데 그 단역이 아니겠지만도 그래도 그때도 톱스타가 되서 그런지 요새 하여간 도망가버리고 없어서

-하하하하

-.....얘긴 ...가서 못했죠. 그라고 또 지금 연주를 남산.....조금 나왔어요.

-네

-그런데 아주 불록하게 그 루트에 연락하는거 하는데 그 나오는데 참 잘했어요, 그러니까 아마 첫번이고 마지막이겠죠. 영화에 출연한건. 하하 지금 연출가가 돼서 뭐 .....

-상당한 변천이 있으셨군요?

-네 연출을 굉장히 잘해요, 지금.

-..또 한군데서 저해하는거 같은데 하루속히 저희 한국영화가 하나의 그 정신적인 그 뒷받침을 다시한번 되찭으면서 저희들의 나갈길을 찾아야 되리라고 돌아보고 있습니다.

-발전했다 그러는데 좋지 못한 면으로만 발전해 나간거 같애요. 좀더 진실한 면에 정말 영화를 위해서 향상이 되고 발전이 돼야되겠어요.

-그러나 보다 나은 명일의 한국영화를 위해서

-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나와주신분 전창근 한형모 복혜숙 김진재 그리고 사회에 유한철 경음악반주에 엄토미와 리듬에이스 악단 이상 여러분이였습니다.

-스크린에서 낯익은 스타들이 노래와 연기로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는 스타 온 퍼레이드 오늘은 광복절 열 여덟돌을 맡이해서 인기스타와 감독 네분을 모신가운데 노래와 함께 우리나라 영화계 옛모습과 환타지를 나누어봤습니다. 그러면은 오늘은 여기서 여러분과 작별을 하겠습니다.

(입력일 : 200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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