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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유쾌한 응접실
유쾌한 응접실 - 792회 특집
유쾌한 응접실
792회 특집
1979.03.11 방송
국내 최고의 석학과 지성인들이 고정출연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던 ‘유쾌한 응접실’은 동아방송 개국 때부터 폐국 때까지 계속 방송된 ,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방송시작 때부터 10여 년 동안 청취랭킹 3위 이내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며, 교양적 요소와 계도적 기능을 화합시켜 오락프로그램의 품위에 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집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

(박수)

(주제곡 - 노래는 노래는 무지개 처럼, 얘기는 얘기는 물보라 처럼. 웃으며 즐기는 유쾌한 응접실 유쾌한 응접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전영호 입니다.

해태제과 신신제약 생명보험 협회 공동 제공으로 보내드리는 792번째 유쾌한 응접실.

오늘은 마침 동아방송 주파수인 792khz와 같은 숫자인 792회를 맞아서 특집으로 마련했습니다.

1963년 동아방송 개국과 함께 현재까지 16년동안 792회를 거듭해온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은

한국방송 사상 주간 단위 프로그램으로는 최장수 프로그램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뜻깊은 792회를 맞아서 그동안 유쾌한 응접실에 얽힌 얘기를 나누는 특집 프로그램을 엮어

드리겠습니다.

오늘 단골손님에는 김창현 선생님, 한복남 박사님, 최도나 교수님 그리고 초대손님에는 그동안 유쾌한 응접실에

단골손님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 조풍연 선생님과 김두희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오늘 화제는 이 프로그램 이름 그대로 유쾌한 응접실로 정했습니다. 먼저 세 분 단골손님께서

이 유쾌한 응접실에 출연하시면서 있었던 소감을 말씀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김창현 선생님 께서..

지금 사회자 말씀대로 햇수로는 16년이 되고, 횟수로는 792회가 됩니다. 근데 여기 지금 초청손

님으로 조풍연 선생님과 김두희 교수님이 나오셨어요. 여기서 제가 느끼는 것은 물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고, 자고로 세상은 둥글둥글 돈다고 하는데, 나 역시 여기 초대손님으

로 나왔다가 어떻게 행랑이 대문 들어가서 말 위에 올라가는 격으로 단골손님이 됐습니다.

그런데 또 오늘 이런 기념 특집을 계기로 해서 과거에 단골손님이던 분이 지금 또 초청손님으로

오셨어요. 해서, 역시 세월이 오래가면 여러가지 변하는 것도 많고, 이렇게 자리가 자꾸 바뀌곤

해서 여러가지 감회가 깊습니다.

한복남 박사님께서 유쾌한 응접실 출연 소감이죠.

여러가지 방송 프로 포맷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제가 알기 까지는 이 유쾌한 응접실만큼 하기

힘든 포맷이 없어요. 왜냐하면 어떤 프로가 순전히 노래하는 프로라면 그대로 무대가 살아 나가

고, 그냥 토킹 프로라면 얘기만 해서 나가는 데, 이거는 얘기를 하다가 노래를 하는 통에 흥이

왕창 나는 수가 있고, 또 노랠 하다가 얘길 하니까 노래하는 무드가 왕창 깨지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게 대단히 듣는 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하시는 분들로선 여기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굉장히 힘든 프롭니다. 포맷으로선. 그런데, 그래서 첨에 나올땐 상당히 어려운걸

로 알았는데 벌써 16년간이나 이렇게 지속되고 이젠 완전한 기반이 잡혀서 있는 걸 볼때 방송

사상 새로운 시도고 새로운 성공이라고 봅니다. 아울러서 제가 여기 나온지 한 2년남짓 됩니다만

해도 처음엔 참 겁이 났어요. 어떤 쪽에다가 이걸 표준을 둬야 할지 몰라서 하다보니까 여러 선

배님들이랑 사회자들이랑 다해서 어른어른 걸음을 떼가는 거 같습니다. 하여간 제가 보기에는 제가 보고

하던 프로중에선 가장 힘든 포맷에 하나고 가장 성공한 프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최도나 박사님의 소감은 어떠신지요.

우리 몸속에는 이 심장이 있습니다. 이제 피가 돌다보면 피가 조금 더러워져가지고 이렇게 다시

순환해서 심장에서 여과가 되서 새 피가 되서 돕니다. 우리 살림살이도 쓰레기 통이 있고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살림살이 하다 보면 속상한 일이 많고, 사람마다 항상 명랑하면 유쾌한

응접실 존재가치가 없어요. 살다보면 아니꼽고 더러운 일 많고 말이여. 이러니까 우리가 그러한

속상할 때 유쾌한 응접실이 심장구실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노래 듣겠습니다. 장은숙 양을 맞이해서 `당신의 첫사랑` 박수로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 및 노래)

당신의 첫사랑. 장은숙 양이 노래했습니다.

유쾌한 응접실에 장은숙 양도 몇 차례 나온 걸로 아는데, 장은숙 양도 유쾌한 응접실에 여러차례 나왔었죠?

네. 이번에 두번째 쯤 되요.

네. 여러차례가 아니고 두번째 군요. 난 또 여러차례 나온 줄 알았는데, 장은숙 양이 전에 방송

에서 유쾌한 응접실을 들은 적이 있는지요. 전에 어려서요.

어. 벌써 16년의 세월이 된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한창 애청하고 있을 때는 국민학교 시절이었어요.

국민학교때.

헤헤.

그 때 단골손님으로는 누구들이 있었나요?

양주동 박사님이 제 머릿속에 항상 남는거 같아요. 그 분께서 나오셔서 항상 유머스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호기심을 많이 갖고..

호기심도 가지고 있었고요.

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그 얘깃거리가 무슨 얘긴지 이해는 안갔습니다만 좀 하여튼간에 재미 있었어요.

네.

그래서 한장 애청하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근데 제가 이자리에 나와서 초대손님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네. 그때 혹시 김두희 교수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지요? 유쾌한 응접실 때요.

기분 나쁘실지 몰라도 생각이 안나요.

네. 하하하하. 기분이 나쁘시겠어요. 흐흐흐흐.

김두희 교수님께서 오늘 모처럼 나오셨는데, 지금부터 한 3년 전까진 단골손님으로 나오시다가 오늘 첨으로

새손님으로 나오시고, 그 전에는 한 10년 가까이 단골로 나오셔서 저희를 도와주 셨는데, 지금 나오신 소회는

어떠신지요.

소회라기 보다. 제가 처음에 나온게 8회 때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500회가 좀 넘도록 제가 단골손님으로 있었으니까요. 한 9년? 한 9년가까이.

9년 가까이.. 네.

근데 옆에 앉아 있는 장은숙 양이 국민학교때 들었다던데 이왕이면..

아니, 별로 기억이 없었다고 그랬는데.. 하하.

이왕이면, 기억이 없더라도.

네.

있다고, 참 재밌었다고..

하하하.

그렇게 말해 줬으면 나 오늘 나온 기분이 괜찮았을텐데 기분 나쁠줄 안다고 그러면서..

하하하하.

기억에 없다고 그러니까..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아 그때는 양주동 박사님 성함이 상당히 특이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겁니다.

네.

뭐 핑계없는 무덤이 어디있습니까.

하하하하.

그건 그렇고요. 근데 저희가 유쾌한 응접실 할 때, 그 때에 바로 단골손님이 세 사람이 한꺼번에 갈렸죠. 그 때

양주동 박사, 이석우 선생, 그리고 저. 세 사람이 단골손님 됐습니다. 근데 두 분 대선배를 모시고서 제가 했는데,

어떨 땐 참 편하고 좋았고, 어떨 땐 좀 짜증이나고 그럴 일이 있어요. 아까 한 박사께서도 이 유쾌한 응접실이

대단히 힘든 프로다. 그랬는데, 저 역시 그렇게 느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꼈냐 하면 이 편할 때는 기억을

하시는 분은 하시겠습니다만 양박사는 말씀을 한 번 시작하면 그칠줄을 모릅니다.

하하.

네. 이하 생략하는 말씀을 나올 때까지 계속이 되니깐 어떤 경우엔 나와서 말할 재료가 없을 때 가 있어요.

`그럴 땐 참 야단났다.` 할 때, 양박사께 화순이 돌아가면 안심하고 앉아 있을 수 있죠. 시간이 한 반쯤 가버리니까.

`나 할시간 그만큼 준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또 말하고 싶은 얘기가 많이 있는데, 양박사가 그치지

않으면 이거 정말 짜증이 나요. 이럴때. 어떻게 끊게 하는 도리가 없나. 이 사회자 전 국장을 봐도 전 국장도

양박사의 말씀에 도취되서 재밌어가지고서 끊을 줄을 모르니깐 전 양쪽으로 짜증이 나는 그런 경험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 당시에는 이 프로를 만드는데 여러가지고 애쓴 분이 많이 계시죠. 지금 다 이 프로에 관계 안하시는 분도

있고, 이 프로듀서도 여러번 갈렸고, 근데 오직 단골손님도 갈렸고, 새손님도 갈렸고 했는데, 사회자 한 분만이

장기근속을 하고 계십니다. 학교 같은데 너무 오래 있으면 낙제생으로 좋지 않지만은 이 유쾌한 응접실엔 오래

계실 수록 관록이 있고, 아마 그런 점에서 우리가 뭐라고 할까요. 치하해 마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만은 다른 방송국에도 유쾌한 응접실과 비슷한 프로를 여러차례 만들어 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방송국의 사정인지 전속이 못 되고 중단이 됐는데,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습니다만 그 중에 한

큰 원인의 하나가 전 국장의 능력에 달려 있는게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 국장이 옆에

앉아 있다고 해서 아까 장양 처럼 옆에 있는 사람을 나쁘게 말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실로 제가

지금도 가끔 들을 때마다 `저 양반은 타고 날때부터 유쾌한 응접실에 무슨 사회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날 때부터 난

분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가끔 들어 갑니다.

그런 말씀을 들으니까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분수에 넘치는 그러한 칭찬의 말씀을 듣는 느낌입니다.

조풍연 선생님께서도 그 동안에 여러차례 출연을 하셨고, 또 단골손님으로도 나오셨었는데요. 지금 좀 유쾌한

응접실에 대한 소회일단을 좀 말씀해 주셨으면 ..

유쾌한 응접실은 유쾌한 점이 있고, 괴로운 점이 있어요. 나와보니까. 유쾌한 점은 여러선생님의 좋은 말씀 우리들이

평소에 그냥 귀로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딱딱 잡아서 얘길 하는데, 재치있고, 참 재밌게 말씀 하는 걸 듣고, 그

둘째로는 여기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겁니다. 특히 여성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다는 거 이거 좋은데, 이 가수들이

텔레비전이나 혹은 무대에 설 때에는 옷이 요란하죠. 요란한데 여기 나와서는 아주 수수하게, 평상복 자기의 취미에

맞는 옷을 입고 나와서 노래를 부르거든요. 그 또 하필이면 이게 원래 제 자리가 아니에요. 사회자 옆에가 제

자리인데..

하하.

거기 가면 꼭 가수의 엉덩이가 제 눈 앞에 뵈거든?

하하하.

근데 이렇게 보면은 차츰차츰 엉덩이를 접는 풍속이 점점 짙어 가더군요. 그거 보는거 대단히 좋은데요. 오늘

현미씨가 나왔는데, 아 대단히 유감인 점이 있어요. 현미씨는 우리 나라에서 다리 좋기로는 몇 분 안되는 여성

중에 한분이죠.

하하하.

왜 그러냐. 내가 다시 심사를 많이 해 본 사람이거든. 여자 미인 뽑는데, 다리를 제일 치중해서 보는데, 다리 좋은

여성이 몇 안되는데요. 굵지 않고, 꼿꼿하지 않고, 그리고 얼른 그러면 가서 다리만 좀 껴 안고 싶어지는 충동을

일으키는..

하하하.

그런 매력적인 다리를 가진 사람은 탤런트에 여운계씨 하고, 가수엔 현미씨 두분 밖에는 없습니다. 근데 오늘 바지를

입고 왔단 말이야. 사내 바지를..

하하하.

그런데 이게 유쾌한 거고요. 좀 괴로운 점이 있어요. 뭐냐하면 나이살이나 좀 먹었으니까 제일먼저 제목이 나오면

거기에 정의 내리기는 대게 제가 맡아서 합니다. 그런데 이 유쾌한 응접실은 좀 재치있게 역설적으로 얘기 해야

할 것을 이 고지곧데로 얘길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방청객.. 방청석을 보면은 웃음이 하나도 안나와요. 뻣뻣하게

정의를 내리니까. 그러니까 그게 괴롭고, 또 하나는 이 녹음이 있을 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건강한 몸으로

나와야 됩니다. 그건 뭐냐, 제가 거기서 빠지면 안되니까. 공익성을 띈 것이기 때문에 빠지면 안되니까 꼭 그 날

나와야 되요. 그래서 누구하고 약속을 하더라도 요 녹음하는 시간은 꼭 피해야 됩니다. 피해야 되고 그 전날 술을

좋아한다고 술을 많이 먹고 그 이튿날 머리가 무거워서 못 나온다.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니까 그 전날 부터 긴장해

가지고 꼭 나와야 된다는 거 이게 대단히 어려워요. 그래서 주욱 제가 단골손님으로 한 1년 반 됐는데요. 그 동안에

개근도 했습니다. 매회 후한 사례를 받았는데, 개근상이라는 건 없더군요.

네. 이용복씨 아직 노래 안했지만, 유쾌한 응접실에 여러차례 나와서 또 좋은 얘기도 들려주고 물론 노래도 해주고요.

그랬었는데, 유쾌한 응접실이란 프로그램에서 느끼고 있는 바를 좀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네. 누구든지 다 좋다고 하는 건 다 공통적인 얘기 겠고요. 제 나름대로 느끼고 있는 건 있어요. 사실 이자리에 와서

노래만 부르고 그냥 들어 갈수 없는 입장이고요. 또 사회자 선생님께서 말을 시키시면 말을 안할 수도 없는데, 말을

하자니 주위에 계신 분들이 뭐 연세로 봐서는 저희 할아버님이나 아버님 뻘 되시고, 또 학식으로 봐서야 하늘과 땅

차이신 분들이 앉아 계신데, 제가 여기서 뭐라고 또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일이고요. 그래서.. 그렇다고 얘기 안할수도

없고, 뭐 저 녀석 깜찍한 녀석이다 이런 얘길 듣더라도 그냥 속에 있는 말을 하고 나면은 얼굴이 빨개지고 나가서 닦고

하던 생각이 납니다. 헌데, 그리고 오늘 이렇게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서 축하를 드리고 싶고요. 조풍연 선생님께서

나오셨으니까 제가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는데..

네. 어떤게 생각납니까.

저 예전에 무슨 얘긴가요. 하는 도중에 한가지 까질러 다닌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까질러? 네.

네. 그 얘기가 뭐냐고 여쭤본 거 기억이 나는데, 그 얘기를 하시면서 깍두기 얘길 하신걸 기억해요.

깍두기? 서울 깍두기.

네. 우리가 까질러 다닌다는게 맹목적으로 다니는 걸 말하는 걸로 아마 그때 들었는데요.

네.

암튼, 아까 김두희 교수님께서 나오셔서 저는 기억이 납니다. 저는요. 하하하하.

아.

네.

하하하. 무슨 얘긴 인가 까지 제가 알고 있어요. 그 전에 도둑놈이 집안에 들어왔는데, 대문까지 들어오니까 현관만

들어와봐라. 주인이 있다가 도둑놈이 현관을 들어오니까 또 마루만 들어와봐라 거 마루 들어오니까 안방에만

들어와봐라. 안방에 들어오니깐 물건만 집어가 봐라. 거 물건 집어가지고 나가니까 안방만 나가봐라. 또 나가니까

마루만 나가봐라. 나가니깐 대문만 나가봐라. 대문 나가니까 다시 한번 또 와봐라.

하하하하.

그 얘기 까지 기억이 납니다. 하하

네. 나도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건데, 이용복씬 용케 기억하고 있군요.

우리가 이렇게 자축만 할게 아니라, 축하를 해야 할 분이 이자리에 나오셨는데, 연예협회 가수 분과 위원장에 중책을

띄게 된 오기택씨가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박수로 다같이 축하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가수 분과 위원장으로 오기택씨는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시게 되는지 그 얘기부터 먼저 꺼내주시죠.

네. 우선요. 그 얘기 먼저 제가 저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10년도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16년 792회

이프로를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방송제작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수분과 위원장이

됐습니다만 제가 몇 번 출마를 했었어요. 그래가지고 몇 번 떨어진 쓴 맛도 봤습니다만 막상 되고 보니까 무엇때문에

하려고 노력했던가 그런 허탈감과 후회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왕에 위원장이 됐으니까 제가 만장일치로 회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됐습니다.

아.

단일 후보로 되가지고요.

네.

앞으로..

하하하하.

앞으로 회원들 권익향상을 위해서요. 진심으로 제가 노력할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 노래 청해서 노래 듣겠습니다. 이용복씨를 맞이 해서 요즘 유행되고 있는 아들을 부탁

해 듣겠습니다. 박수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 및 노래)

이용복씨의 노래 아들이었습니다.

동아방송이 개국한 것이 1963년 4월 25일 입니다. 개국 하면서 첫 번째 일요일날. 방송 됐던 첫번째

유쾌한 응접실 테잎을 한 번 재방송해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방송 테잎 분량----

(음악)

여러분 감사합니다. 유쾌한 응접실에 전영호 입니다. 저희 동아방송에서는 개국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만은 개국하면서 새로이 이 유쾌한 응접실이란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이 새로 마련한 유쾌한 응접실은 가정적인 오락프로라고 할까요. 단골손님, 새손님, 노래손님

이런 여러 손님을 응접실에 모셔가지고서 노래를 하면서 또는 노래를 들으면서 얘기를 주거니 받

거니, 화제를 서로 말하고. 퀴즈를 풀면서 청취자 여러분이나 또는 방청객 여러분과 함께 가정적

인 분위기로 젖어들어가는 이 시간입니다. 그러면은 오늘 이자리에 단골소님을 여러분에게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 옆에 앉아 계신 분 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방송 극작가 이신 추택

익씨. 그리고 다음에 앉아 계신 분이 본사 논설위원이신 홍승면씨, 그리고 다음에 앉아 계신 분이

농장을 경영하고 계신 김훈 선생님, 그리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전혜림 선생님, 이상 네 분

의 단골손님을 모시고..

(박수)

그리고 오늘 밤에 화젯 거리는 저희들 방송 시작한지도 얼마 안됐습니다만은 요즘 라디오 티비를

통해서 이 방송이 화제에 초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화제는 방송으로 정했습니다.

(종소리)

그럼 첫번째 노래 손님을 여러분에게 소개 드리겠습니다.

(박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애심 입니다.

네. 나애심씨가 불러드릴 노래는 실연 입니다.

(박수 및 노래)

네. 지금 우리가 들어본 것이 첫 번째 유쾌한 응접실 실황이죠. 한복남 박사님께서 지금 들으시면

서 느끼신 면은 어떤게 있습니까?

네. 역시 시간적인 공간을 초월해서 들으니까 역시 그때도 전영호 선생 잘하셨네요. 지금 들어봐도.

흐흐흐흐.

그리고 지금이나 뭐 별로 저게 다른데, 역시 테잎이 조금 오래 됐으니까 조금 좀 스피드는 좀 달라

지지 않겠어요?

좀 그런 차이가 있죠.

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정도로 처음부터 아주 이거 좋았습니다.

김창현 선생님께서..

그 16년 전 전영호 국장 목소리를 들으니까 그 6~7년 전에 전영호 국장 목소리를 듣던 것이 생각이

나고요. 그렇다면 20여년 후인 오늘날도 또 전국장의 목소리를 들어서 세단계로 난 비교가 됩니다.

헌데, 아주 새로운 목소리도 들리는 군요. 요샌 이걸 일주일에 한 번씩 목소리를 들으니깐 귀에

익어서 별로 모르겠지만, 저의 10여년, 20년 전의 목소리를 생각할 때, 굉장히 젊어지는데 지금

그렇다고 해서 늙은 건 아니겠어요. 헌데 앞으로는 더 목소리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김두희 교수님께서 출연 하셨을 때가 80..80 몇 회 였던가요? 그 때가요.

글쎄요. 이게 횟수를 말하는 것이 200회 때부터로 시작 된알고 있습니다. 그 때는 횟수를 말하지

않아서 ..

네.

제가 기억을 못하겠고요. 82.3회 때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네. 유쾌한 응접실에 얽힌 좀 추억담을 들려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했습니다만은 그 당시에 제가 방송을 해보지도 못하고, 그래 듣기만 했었는데,

한번 방송국에서 교섭을 받았죠. 좀 나와 달라. 근데, 항상 남의 하는 것 듣고, 저거 한번 해봤

으면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그래 교섭을 받으니까 기뻤어요. 몹시. 그래서 대번에

승낙을 했죠. 승낙을 해 놓은 난다부터 걱정이 되더군요. 이걸 어떻게 나가서 하나. 그 때 그 첫

프로에 프로그램에 이 화제가 노이로제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아카데미 극장을 빌려

서 거기서 공개 방송을 했던 걸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요.

시사실에서 했죠.

네. 헌데, 그 때는 금요일 날 했어요. 했는데, 월요일 날이 되고 한 주일 전에 받았는데, 화요일

이 되고, 하루하루 가까워 갈 수록 기쁜 마음은 없어지고 자꾸 괴로운 마음만 생기더군요.

그런데 마지막 날 그러니까 목요일 날 되니까 이거 정말 내일 나가서 어떻게 하나. 이거 내 빼고

말까. 이런 생각도 해보고 그러나 내 뺄순 없고, 밤이 되고, 그래서 목요일 날 밤에 야단 났어요.

내일인데, 그래서 한 참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생각해 낸것이 뭐냐하면 에라 모르겠다 동아방송 오

늘 밤에 불이나 붙어라 이런 생각밖에..

하하하.

그런 생각을 한 것이 기억이 나는군요. 나가서 했고요. 아까 조풍연 선생 말씀도 현미씨의 다리만

봤다고 그러는데, 제 자리도 조풍연 선생보다 조금 먼저 그 자리였죠. 그래서 밤 낮 가수의 뒷모습

만 보기 때문에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죠. 그래서 어떤 경우에 거리에서 인사를 받아도 옆에 사람

보고 저게 누구지? 하면 아무개라 그래요. 아 그래? 돌아서서 갈 때보면 아. 확실히. 그 뒷모습이.

하하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역시 치과의사가 환자가 와서 인사할 땐 모르다가 입을 벌려야 아. 예전에

오셨던 분이로군요. 라고 하는 것이 납득이 가는데요. 그 때 뒷모습을 보는 얘기가 나왔습니다만은

남자가수들은 그다지 몸을 흔들지 않는데, 이 여자가수들은 몹시 흔드는 분도 있죠. 아까 장양도

좀 흔듭디다만은..

하하하하.

그런 걸 보면서 참 이런 것을 느낀 일이 있어요. 몹시 흔들때는 내가 불안해 지다가도 끝난 다음에

야. 사람이라는 건 왠만큼 흔들어선 넘어지지 않는구나...

하하하하.

그래, 그런걸 느껴 본적이 있습니다.

현미씨에게요. 전에 노래 손님들이 나오셔서

네.

그러니까는 몸의 율동이라고 할까요? 이게 다 개성이 있고, 특징이 있죠.

네.

그런 중에서도 보면은 이금희씨..

그렇지 않아도 우리 저 조풍연 선생님하고 그 얘기 하고 있던 중이에요.

네.

예전에 이금희 양이 나와서 노래할 때는 요. 무대가요. 이렇게 막 들썩들썩 했었어요.

네.

그래서 뒤에 앉아 있는 사람도 이금희 양이 얼마나 그 엉덩이가 이렇게 함지막하잖아요. 거 어떻게

흥이 나게 흔드는지. 우린 여자니까 그렇지만 남자분들은 정말 같이 동요가 되서 같이 흔들고 싶고

대단했죠. 흔드는 데는 누가 따라갈 사람 없었을 거에요.

현미씨의 동배 가수분들하고요. 요즘 새로 나오는 후배가수 들이요.

네.

그럼 노래하면서 몸.. 율동, 동작 하는게 차이가 좀 있죠?

근데 이게 세대에 따라서 춤이 바뀌니까.

네.

그 가수분들도 그 리듬을 타는 그 몸매가 바뀌니까. 그 때 당시에는 한참 락앤롤, 그 다음에 트위

스트, 그 다음에 고고, 거기서 이거.. 이거 뭡니까. 디스코까지 왔잖아요?

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디스코를 보면은 옛날에 락앤롤, 또 보사노바, 삼바. 그걸 전부 짬뽕을 해가

지고 그 춤이 제가 디스코로 보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춤. 새로운 춤이 그 옛날에 우리 한참 유

행했던 춤을 전부 합쳐가지고 이렇게 막 믹서를 시켜 놨어요.

네.

그러니까 유행이라는 게 자꾸 돌아오는 거 같아요. 춤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구두도 그렇고.

그러면은 현미씨가 보시기에 장은숙 양 동작이요. 몸 동작은 어때요?

음.. 내가 요새 방송 활동을 거의 안하니까요. 가끔 화면에서도 보고 오늘 보니까 그 장양이 굉

장히 얼굴도 귀엽고, 또 몸매가 굉장히 고운거 같아요.

네.

그리고 이제 가끔 보면은 옷 같은 것도 본인에게 어울리게 깜찍하게 입고, 오늘은 과히 흔들지

않는데요?

네.

하하하하.

오늘은 참 얌전하게 노래만 했고, 이 저기 텔레비를 보면은 굉장히 흔드는게 예쁘게 자기에게 맞게

무용을 해요.

네.

굉장히 예쁘게 봤어요. 제가. 근데 어떤 분들은 자기를 모르고 지나치게 흔들면은 조금 보는 사람이

조금 역겹죠.

네.

하하.

그러면은 한복남 박사님께서 현미씨 노래하면서 몸 움직이는 걸..

난 안 움직여요.

하하.

난 안 움직인다니까 뭐 안움직이는 거 같기만 해도 비교적 비 동요 가수입니다. 이금희씨를 동요

가수라고 한다면 비교적 비동요 가수에요. 근데, 꼭 있어요.

이 동요가 어린이가 부른게 아니라, 움직이는 동요.

네. 현미씨 있습니다. 있다 보세요. 이 양반 특징은 노래하고 딱 몇 박자 그을 때, 박자수가 맞는

데, 한 박자에 두번씩 쉬니까 깜박깜박깜박해요.

하하하.

거짓말 아니에요. 제가 알거에요. 네 박자 주욱 그을 땐 여덟번 깜박깜박깜박. 틀림없어요. 이따

보세요.

네. 다음에 최도나 교수님께서..

저기 그 요새 경고를 하데요. 어느 가수는 흔들지 말아라. 어느 가수는 뭘 하지 말아라. 근데, 지

나친건 우리도 보기에 너무 한건 한데, 이 노래 흥겨워서 흔드는 걸 너무 그러면 아예 쇼를 그만

두라고 그랴.

하하하.

아니, 흥이 나서 흔드는 걸 어떻게 해. 근데, 여러분들은 보실 기회가 드문데, 우리가 이 유쾌한

응접실에 와서 보는 국면은 꼭 뒤에서만 보거든. 이 뒤에서 흔드는 걸 보니까 여러분 거 모르실

껴, 제가 어릴 때는 이 화롯불에다가 오징어를 구워 먹어요. 오징어를 구워 먹어. 이 오징어 다리

를 불에다 올려 놓으면 막 이렇게 뒤 틀립니다. 거 제가 지금 가수 이름은 모릅니다. 그 분들으면

불쾌하실지 모르지만, 아이고, 이 팔다리가 이렇게 꼭 내 어릴 때 문어 구워 먹던...

하하하하하.

이하생략 이올시다.

이하생략은 양주동 박사꺼 인줄 알았는데, 최도나 교수님이 또 인계하셨나요? 그러면은 노래 듣겠

습니다. 오래간만에 현미씨를 청해서 모처럼 밤안개를 청해 듣기로 하겠습니다.

박수로 뜻을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 및 노래)

현미씨의 밤안개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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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유쾌한 응접실에 단골손님으로 출연하시다가 작고하신 분의 음성을 들어보기로 하겠

습니다. 1977년 2월 6일자 방송인 683회까지 방송을 하시고, 77년 2월 3일에 작고하신 양주동

박사님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테잎은 75년 10월 3일에 방송 된 612회인데, 당시 화제는

화해 였습니다. 잠시 들어보시겠습니다.



이쪽으로 돌리겠습니다. 양주동 박사님께서..

난 부부싸움의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은 요즘의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요? 그 말이 옳다고 생각

합니다. 내 아내가 여기 앉아 있습니다만은 내 아내는 평안도 출신이라 아주 곰 장대 받듯이 싸

움 시작하면 끝까지 가고 말이에요. 돌아서지도 않아요. 도무지.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는

몇 가지 미리 화해 계약을 체결해 뒀어요. 암만 열정이 나서 피차의 흥분이 되더라도 가다가 해

떠서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미리 약속을 해 뒀어요. 그 얘긴 좀 긴데요. 간단히 내가 추리죠.

첫째는 흙방! 그러면 내가 지고 맙니다. 무조건 항복하고 말아요. 흙방이란 것이 무슨 말인가

하니, 1924년에 처음으로 그녀와 결혼할 적에 가난해서 흙방에서 살았어요. 흙방에서, 그러니까

싸움이 날 적에 내 아내가 내가 무슨 흥분한 모습을 보면은 흙방! 그래요. 무조건 항복이죠.

흐흐흐.

그 땐 그 생각을 해서 그 때 고생하던 생각을 해라. 둘째는 천안. 그래도 안되면 내 아내가 천안

그럽니다. 천안이란게 뭔고 하니, 1.4후퇴때에 이 친구와 51년 인가요? 천안으로 피난을 갔어요.

헌데, 어떤 여관방에 들어갔는데, 여관방이 아니라 외양간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유력한 사람들은

다 여관방에서 자고, 내 아내하고 나하고, 내 아들하고 셋이는 외양간 옆방에서 잤습니다.

아 근데 내가 다른 사람들은 대구로 부산으로 목요열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난 내려갈 생각이 없

어요. 고민하고 있었어요. 얘길 줄입시다. 왜그러냐 하면 내가 가진 재산을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집에 귀한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월인속보 9권,10권, 매한당의 글씨, 이런걸 집에다 두고

왔어요. 어 근데 어떻게 해요. 도로 서울로 찾으러 내가 가잖이 계엄령이 내리고, 중공군이 왔다

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 까닥하다간 책 몇 권 가질러 가서 잡히면 큰일 아니에요? 그래서

고민하고 서울로 오자니 못오고, 가자니 그 문화재는 없어지고 말거 같고, 그래서 딱해요.

게 고민하고 있으니까 내 아내가 뭔지 알고서 무슨 고민이 있소? 아. 책을 몇 권 집에다 두고 왔

구만. 아. 당신 갔다 오구려. 아, 내가 갔다 올 수가 있나. 내 생명이 아까운데, 그런데 내 아내가

간다는 거에요. 그럼 내가 갔다 오겠소. 아니 대장부인 내가 못하는데, 어린 아내한테 시킬수가

있습니까? 나도 약간의 기사도가 있는 사람인데, 그러나 그 때보니까 사람의 마음이 방긋하더군요.

역시 내 생명 보다는 내 아내가 간다는 것은 좋아요. 그래서 그럼 그대의 충성이 아주 갸륵하니,

갔다 오시구려. 그래서 그 여자가 갔어요. 간단히 차를 내가 하나 교섭해 가지고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아 그 다음 날 올줄 알고, 안그래도 그 다음날 올줄 알았는데, 그 다음날 안오네요. 또 그 다음날도

안오네요. 야단 났더군요. 잘못 됐구나. 서울 갔다가 아내 생명을 잃었구나.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사흘째 되던 밤에 내가 고갤 푹 숙으리고 있으니까 아들 녀석이 아비는 나쁘다. 아비 질문

해요. 아버지 질문있소. 무슨 질문이냐? 어머니 어디갔소?

하하하.

내가 속일 수가 있나. 서울갔다. 서울 뭘 하러 갔소? 책 가질러 갔다. 책? 책이 뭐요? 책 때문에 자기가

갈테면 가던가 말지 왜 어머닐 보낸단 말이요? 비겁한. 비겁한 말까진 안했습니다.

하하하.

비겁한. 그리고 앉아 있는데, 그 때마침 외양간 문 바깥에서 쾅쾅 두들기면서 여보! 나왔다 말이야.

뛰어 나갔습니다. 내가 글로 쓴게 있는데요. 그 장면을 어떻게 썼는줄 압니까? 위로 동방예의지국

남편은 아무리 반가운 일이 있어도 자기 아내를 포옹하고 키스하는 법은 없다.

하하하.

그러나 그 때만 불가불하게 서양 풍속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렇게 쓴 일이 있습니다. 그래도 책을 보러 왔습니다. 그 까지 책은 뭐.. 어떻게 된고하니, 서울로

갔다가 한강에 건너가는 길이 끊어져서 인천으로 걸어가서 남양리로 해서 수백리를 걸었어요. 그 책

을 들고서, 그래서 천안을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찬양해서 싸움이나서 화가나도 내

아내가 천안! 하면은 내가 그만 무조건 화해 하고 맙니다.

(박수)


네. 작고하시기 전엔 한 1년 6개월 전인 75년 10월 3일 자로 방송된 612회 유쾌한 응접실. 화해를 놓

고 말씀하신 양주동 박사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다음에는 683회 유쾌한 응접실인데요. 기대라는 화제를 놓고 얘길 한 것인데 77년 2월 6일자 방송입니

다. 여기에 출연 하셨던 최병길 변호사님의 음성을 들어보시겠습니다.



기대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최병길 변호사님께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려면은 미리 난로를 마련해 놔야 한다. 하는 말이 생각이 나는데요.

기대가 이룰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한편 기대라는 것은 운명과도 같은 점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거 같아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나, 누구에 대한 기대나

그렇지만은 인생이 원래 짧은 것이고, 또 운명에는 한도가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다가 기대가

이루어 지지 않을 경우에 오는 낙망, 실망, 낙담, 비애 이런것이 클 걸로 압니다.

제가 주례를 간혹 서는데, 저는 주례를 3단계로 섭니다. 첫째 결혼식장에서는 임금 주자 주례, 피로연에

가가지고는 술 주자 주례, 피로연이 끝나면 달아날 주자 주례. 빨리 달아나 버린다 그 말이죠.

이 3단계가 꼭꼭 들어 맞아야. 그 날 멋진 주례를 섰다고 생각을 하는데, 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시행하기 전

얘기입니다. 아주 굉장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제 결혼식 주례를 해달라고 그래서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결혼식장에 나가서 여느때 주례보다도 더 아주 더 열심히 멋진 주례를 서고, 이제 부터 피로연이다 해서,

피로연 석상에 가면은 그야말로 좋은 술과 좋은 안주가 많이 나올 것이다 해가지고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떡

갔다 그말입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 격이죠. 갔더니, 술 한잔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물어봤더니, 그 집이 아주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분 댁이 되나서, 술은 한잔도 안쓴다는 겁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비짓떡이 얼마다 격으로 공연한 기대만 가지고 갔다가 술 주자 주례가 빠지니까.

곧 달아날 주자 주례로, 36계 달아나와 버렸어요. 뭐 이만한 얘기를 하면 여러분들이 박수를 쳐줄 줄 알고

기대를 했더니, 전혀 박수가 안나와서 한 번 더 기대에 어긋난 걸 속상하게 생각합니다.

(박수)

이 방송은 77년 2월 6일에 방송했던 683회때, 그 때 화제가 기대였습니다. 유머로 최병길 변호사님이 얘기를

끝내주시는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노래 듣겠습니다. 오기택씨를 맞이해서 고향무정을 다 같이 부탁해 듣고록 하겠습니다.

(박수 및 노래)

특집 공개방송으로 보내드린 783회 유쾌한 응접실. 오늘은 프로그램 명칭인 유쾌한 응접실이란 화제로 얘기

나누었습니다. 지금까지 노래반주에는 노명석씨가 지휘하는 동아방송 전속 음악단, 프로듀서 장영소, 기술

심재천, 전흥기, 사회 전영호 였습니다.

해태제과 신신제약 생명보험 협회 공동제공 특집 공개방송 792회 유쾌한 응접실을 여기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박수)

(노래는 노래는 무지개 처럼, 얘기는 얘기는 물보라 처럼, 웃으며 즐기는 유쾌한 응접실. 유쾌한 응접실.)

(입력일 : 200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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