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과자의 상징 해태제과 제공 유쾌한 응접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전영호입니다. 이번주 화제는 이별로 정했습니다. 이자리에 나오실 분들을 소개해 드리면 단골 손님에 이서구씨 양제동씨 김두희씨 새손님에 작가 최인호씨 텔레비전 탈렌트 김자옥양 그리고 여러분의 노래손님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첫번째 노래손님 선우영아양을 맞이해서 ‘목동의 기타’를 다같이 부탁해 듣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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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영아양의 노래 목동의 기타였습니다. 이번주 화제는 이별입니다. 에 만나면은 반드시 헤어진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회자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김두희 교수님께서요 우리가 헤어지는 장소도 많을 것 같아요. -네 -정거장의 플랫폼도 헤어지는 장소겠구요. 여러군데가 있겠는데요. 김두희 교수님께서 -네 역시 그 이별이라면은 어느쪽인가 떠나가기 때문에 이별하는거닌깐 이 출발 장소가 이별하기에는 꼭 알맞는 장소고 또 제일 많이 행해지겠죠. 과거에는 정거장, 부두. 요새는 공항 비행기에서 이제 비행기를 타고서 떠나니깐 공항이 많은것 같습니다. 근데 일반적으로 저희가 옛날의 학생시대에는 일본에 이제 공부를 가는데 뭐 한 반년 길어야 짧으면 서너달 만에 다시 돌아오는데 그때는 저 이제 학생들 보내는 정거장에서 대게 그 보냅니다만은 보면은 그 부모들 특히 그 어머니들이 몹시 우는 부모들이 많았어요. 근데 요새 어쩌다가 이 공항에 가보면은 우는 사람이 적어요. 어머니가 그 미국을 보내면서도 아예 울지 않더군요. 딸이나 아들을 보내면서 근데 미국이라면은 가서 갔다와서 뭐 빨리온다해도 일년 이년내에는 대게 못오는걸로 알고있습니다. -네 -그래서 훨씬 길게 그 헤어지는데도 울지않는다 그걸 보면 요새 여자분들이 특히 그 이...뭐라고 할까 좀 냉정해졌다고 할까. 또는 이 강인해졌다고 할까. 이렇게도 말 할 수 있는것 같지만은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바쁘기때문에 울 수가 없다. 전 또 이렇게도 생각하고 싶어요. -네 -뭐 사친회에도 나가야하고 계도 해야하고 또 가다가는 ...도 더러하고 그러니깐 바뻐서 울지를 못하는것이 아닌가. 이런생각도 저는 가끔 해봅니다. -뭐 아무리 바빠도 울건 울고 웃을건 웃어야겄죠. 오늘 새손님으로 나온 김자옥양이요. 김자옥양은 요즘 KBS텔레비젼 일일연속극 세종대왕에 나오죠? -네 -그전에는 또 심청전에 심청이로 나왔었구요? -네 -근데 김자옥양은 전에 이제 국민학교 졸업헐때요. 졸업식때 그 노래가 뭐였었어요? -졸업식때 교가 불르고구 -교가 불르구요. -석별의 정이라는 노래... -그건 가사가 어떻게 나가나요? 처음에요. 그러니까 대략 뭐 아우들아 잘있거라 그런건가요? -그런거 비슷한거죠 뭐. -네 -그런거 비슷한거...네 -후훗 -그때 국민학교 졸업식때 장면하고 중학교 졸업식때 장면하고 어때요? 좀 차이가 았나요? -네 차이가 있는데 저는요? -네 -국민학교 졸업식때 인제 학생 대표로 해서 답사 이런거 있잖아요? -네 -그거를 읽었어요. -아 그러니깐 이제 5학년 아우가 이제 송사를 하니까는 -네 -이제 6학년을 대표해서 김자옥양이 답사. -네 답사를 읽었는데 어릴땐데두요. 그렇게 막 슬퍼요. 그래서 답사를 한 중간 쭉 읽다가 울어갖고 뒤에는 읽지도 못하고 그냥 나오고 그랬어요. -네 흐느끼다가 이제 졸업을 했군요. -네 중학교 졸업할때는 하나도 안울었어요. 그때는 -중학교때는요? -네 -그때도 이제 답사를 했나요? -안했어요. 그때는 -왜 그때도 좀 하지 그랬어요? -국민학교때는 이제 공부도 좀 하고 그러니까 시켰는데요, 중학교땐 공부 못했거든요. -네 중학교 들어가서 과외활동을 많이 했나요? -과외활동...많이 안했어요. 조금씩 했어요. -과외활동은 주로 뭘했나요? 연극반에 들어갔었나요 중학교때? -아니 이제 무용하구요 학교에서 -아 무용이요. -그러고 이제 라디오 어린이 드라마... -라디오 -이런거 가끔 했어요. -드라마도 가끔하구요? -네 -무용도 가끔하구요? -네 -또 그밖에 과외활동은 딴거 한거 없나요? 운동이요. -운동은 한거 없어요. -운동은 한게 없구요. -그러면 노래하고 앉아있는 선우영아양에게 마이크를 좀 돌릴까요? 선우영아양은 중학교때 과외활동은 뭐했어요? 운동은요? -운동이요? -네 -운동은 제가 중학교때는 안했어요. -중학교때는 안하고 고등학교때는요? -고등학교때는 못했죠. -네 중학교때는 안하고 고등학교때는 못하고...네 근데 그 졸업식 할때 그 국민학교 졸업식때 생각나겠어요. 지금이요? -근데요. 저는 애석하게도 국민학교 졸업을 못했어요. -네 -하하 왜그러냐면은요. -네 -제가 국민학교를 저 충청도에서 다녔거든요? -네 -다녔는데요. 중학교를 빨리 갈려구요. -네 월반을 했나요? -아니죠. 그러니까 6학년 올떰가서 2학기때에 제가 서울을 올라왔어요. -네 -그래가지고 바로 시험을 쳐서 그냥 들어가게 됐어요. 그래서 국민학교때는 졸업의 그 서글픔이라던지 그런거를 좀 학교와 이별하는 그런 감정을 못느꼈어요. 중학교때는 어땠나요? -중학교때는 이제 약간 울먹일라고 그랬죠. -네 울먹일라고 그랬군요. -그럼 시골에서 올라올때 기차타고 올라왔나요? 버스타고 올라왔나요? -그때만 해도 고속버스가 없었어요. -네 -그리고 제가 차 멀미를 하기때문에 버스는 또 못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기차로 신세를 좀 졌죠. -네 또 기차 신세를 좀 졌군요. 그 브렛또 하면서 친구들 뭐 잘가라 그런애들도 없었나요? -근데 역시 저 그냥 그것도 몰래 왔어요. -네 -그래서 졸업도 못하고 친구들의 그 환송도 못받... -전송도 못받고 -네 전송도 못받고 그렇다고 서울에서 환영도 못받고 그냥 이렇게... -그때 시골서 기차타고 올라올때 계절은 어느계절이였어요? -그때요? 음 가을이였어요. -가을이요? -늦은 가을이였어요. -네 -근데 시골에서는 별로 안추워서요 여름옷을 입고 왔는데 서울이 역시 더 추운것 같더군요. -네 -좀 떨었어요. -네 뭐 그렇기도 했겠지만 또 타향이기때문에 더 추웠었는지도 모르죠. -네 으스스했죠. -네 으스스한 가을이였었군요. -양제동 박사님께서 -이별이죠? -네 -아 이별이라 하면 물론 서른 안에...떨어지니 이별인데 그러면 문제는 종류는 이별의 종류가 대관하면은 크게 보면은 어떤것이냐 하면 첫째 누구와 이별하느냐 이자의 얘기는 그 학교의 그 졸업식에 이별의 설움. 가벼운 터치로부터 시작했는데 우선 애인과의 이별 정든님과의 이별 정말로 구곡간장(九曲肝腸) 이 다 녹죠. 그런 이별 생각이 나고 또 둘째는 육친간에 부자 형제 부부간의 이별 그 뼈가 녹습니다. 뼈가 녹는 이별이 육친간의 이별이예요. 셋째는 친지와 친우간에 친한 벗과의 이별. 그 뭐 다 동감이겠지만은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 인생의 고독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구서 머리를 벅벅 긁고 혼자 서고 있으면은 인생의 고독을 새삼 느끼는 그러한 이별도 있고 또 고향이별. 고향을 떠나고 떠나는 마음. 또 이것은 좀 옛날 얘기지만은 가령 고국을 위배하는거 그 일제시대 망국 후에 그런 이별이 많았죠?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무슨 그런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날 생각이 없지만은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그건 물론 병자호란때에 그 유명한 시중 산이라는...그런 이별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어요. 그런데 요컨덴 이별이라는건 그 후에 여러분들이 아무리 로맨틱하게 재미나게 엮어난다고 해도 아무래도 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 결론은 아 이별은 인간에게 참으로 없었으면 좋은데 ...시절 우선 결론을 먼저 시조 한 수를 읊으겠습니다. 길위에 두돌부처 벗고 굶고 마주서서 길위에 돌부처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자부처고 하나는 여자부처인데 길위에 두돌부처 벗고 굶고 마주서서 바람 비 눈서리를 맞도록 맞을망정 인간의 이별을 모르니 그를 부러워하노라. 내가 좋아합니다. 길위에 부처 두개가 돌부처가 있어요. 물론 바람도 맞고 비도 맞고 서리도 맞고 하지만은 인간의 이별을 모릅니다. 둘이 마주서서 멀끔히 바라보고 있어요. 내가 그 시를 평소에 애송하는 바입니다. -네 오늘 새손님으로 나오신 조선일보 그 연재 인기소설 별들의 고향의 작가 최인호씨에게 지금 이별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인호씨가 또 이별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글쎄요. 근데 그 사람이, 사람이 사는거에는 만나고 헤어지는것이 꼭 있는거 같애요. -네 -그런데 에 저는 그 중고등학교때도 사람하고 이별한다는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그래서 같이 지내다가 버스정류장에서 헤씨질라그러면은 한 정거장만 더가자. 그래서 한 정거장만 더 가자그래가지고 그 친구 집까지 청량리인데 신문로에서 청량리까지 한번 걸어본적 있어요. -네 -근데 그 지금도 그 사람하고 헤어지는 일 없이 아는 사람들끼리는 더러 헤어지는 일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제 제가 인생을 60으로 본다면 짧은 건지 모르지만은 에...제가 서른 문짝에 들어서는데요. 지금까지는 사람을 아는사람을 많이 만나는 시기에 있었구요. 앞으로는 자꾸만 사람을 헤어지는 그 시기에 온거 같애요. 그래서 말하자면 뭐 아까 말씀하신데로 그 아는 사람들과의 이별 혹은 무슨 가끔가다가 그 누가 돌아가셨다느니 누가 그 죽었다느니 그런 소식을 받을때마다 굉장히 그 아는 사람들은 서로 이별하지 말고 그리고 헤어지는 일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별...만난다는것은 굉장히 좋은 문제지만은 이별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그 미학으로 그걸 시킨다그래도 이별이라는거는 굉장히 나쁜 일인거 같애요. -네 이서구 선생님께서는 -이별하면 아마 춘향전의 이도령과 성춘향이가 오리정에서 작별하는 이별이라면 노래로 소설로 얘기로 아마 우리에게 많이 영향을 줄겁니다. 그 애인끼리 서로 못잊어 보고싶을 그런 정을 억누르고 작별하는 이별은 아마 오늘도 도처에 있을것이고 앞으로 우리 자손들도 그런 경우를 많이 겪을겁니다만은 이별이라는것은 다음 만날 기회를 내다보고 희망을 가지고 이별을 해야지 이게 마지막이다 하면은 그건 사람이 못견딥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체념하고 기다리는 것이 이별의... 달래는 그 요지라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이제 국가적으로 한 이별은 6.25적입니다. 6.25 당해가지고 제가 5남매를 거느리면서 다 아직 다 잘 길릅니다만은 제 아내하고 한강대교가 끄내기 전에 작별을 했어요. 그때 제가 서울시에 조그만 직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서울시에 직원으로서는 서울시장을 따라가야하는것이 제 도리입니다. 그래서 제 아내에게 나는 서울시가 수원으로 떠날테니 나는 갈테니 어린애 5남매를 맡아가지고 니가 좀 잘 봐다오. 그러구서 헤어져서 한강을 넘어갔어요. 넘어가서 한강서 얼마 안있고 그날 밤 되니까는 뻥 하고 한강철교가 끊어지지 않았어요. 그러고 나서 석달동안을 참 5남매하고 아내의 소식을 몰르고 남한...대구로 부산으로 떠돌아다니는데 그거 정말 못견디겠더만요. 뭐 그때 일 겪은분이 많이 계실테니까 아마 공감 하실거예요. -이번에는 김혜숙양을 맞이해서 ‘생각난다’ 박수로 청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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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다 김혜숙양이 노래했습니다. 그럼 저 이 탈렌트 김자옥양이요. 아까 새손님으로 나온 소설가 최인호씨 얘기가요. -네 -친한 친구하고 만나서 버스를 타고 가면요 -네 -헤어지기가 싫어서 한 정거장만 더가자 또 한 정거장만 더가자 그래서 신문로에서 청량리까지도 그냥 갔데요. -네 -그럼 몇 정거장이나 될까요? 청량리까지는요. 뭐 수 없겠죠. 한 일고 여덟정거장 됐겠죠? -네 넘을거 같애요. -네 김자옥양도 그런 비슷한 경험 있는지요? 친한 친구가 있어서요. -어 많이 비슷한건데요. -네 많이 비슷한건데요. -친구 집이 가까워요. 저희 집하고는 -네 -한 한 정거장 밖에 안되요. -김자옥양 집은 어느쪽...어느방면... -신촌이예요. -신촌방면이요 네. -근데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어요. 그러니까는 몇 년 됐죠. 중고등학교때 -중고등학교때 -학교 끝나고 게가 우리집에 와서 이제 같이 밥먹고 공부하고 이럴때에요. -네 -근데 공부 다하고 이제 집에 간데요. 데려다 달래요. -네 -가까운데도 데려다 달래요. -네 -그래서 이제 아이 그냥 가라고 그랬더니 아우 니네집에서 여태까지 니가 있자그래서 있었는데 좀 데려다 달라고 무슨애가 그러냐고 막... -데려다 주면 어떻겠냐고 -네 그래서 데려다 줬어요. -네 -데려다 줬는데 나 또 집에 혼자가기 싫어요. -네 -그래서 그럼 너도 데려다 달라고 -네 -그래가지고 또 게가 우리집에 또 온적이 있었어요. -네 -우리 이러다가 밤 12시까지 그렇겠다. 그냥 집에 있을께 너 그냥 혼자 가라. 그래가지고 겨우 달래가지고 친구가 간적이 있어요. -네 겨우 달랬군요. -네 -네 김두희 교수님께서는 그럴수가 있다고 자꾸만 얘기를 하시는데 그럴 수가 있나요? -여학생들이 그럴 수가 많은것 같애요. 애인들끼리 왔다 갔다 밤가는줄 모르고 그런 경우가 있는데, 남자 고등학생은 또 그렇지 않은가 봐요. 한 정거장 더가자. 최인호 선생식으로 근데 한 정거장 더가자 하나하나 가다가 집앞까지 왔는데 이왕이면 들어가서 저녁까지 먹고 가자. 이런식으로 이제 나가는 것이 남자 고등학생의 경우 같습니다. 아까 양박사께서 이 이별을 여러가지로 구별을 하셨는데요. 에 저는 이 또 이별을 이런식으로도 구별을 할 수 있는것 같아요. 하나는 그 자발적인 이별. 어느정도 이별을 하는 사람이 하고싶어서 하는 이별하고 하나는 그 본인으로써는 이별하고 싶지 않은데 에... 다른 힘에의해서 할 수 없이 하는 이별. 이 두가지가 있는데 처음에 이 자발적인 이별은 보다 나은 상태를 이제 앞으로 바라본다는데에서 구원이 있는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이 남이 다 외부의 힘에 의해서 할 수 없이 하는 이별은 에 보다 나은 상태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구원이 없는거 같애요. 예를 들면은 이제 그 유학을 나간다 그러면 그 가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다. 학업을 마친...수학을 한다는 자체가 좀 더 나은걸 바라보고서 떠나는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그건 뭐 어느정도 섭섭하지만은 참을수가 있는데 완전히 그렇지 않은거 나...그 죽음 같은거 죽고싶어서 죽는 사람 거의 없죠. 그럴때 이제 그 또 죽었다가 나중에 다시 좀 더 나아져가지구서 돌아오겠다. 이것도 있을 수 없는거니까 구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그 38선 때문에 이산가족. 이런것은 원해서 이뤄진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서 이 구원이 없는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가요. -그러면 이혼 같은거 어떻냐...그러면 이혼도 역시 전 구원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왜그러냐 하면 지금 당장 헤어지는데 섭섭...그런건 시원섭섭하다고 그러겠죠? 에 본래 싫은 사람끼리 헤어지는 거닌깐 에...이제 우선 이 마음에 맞지않는 사람하고 사는 고통을 오늘부터 버리고 내일부터 시원하게 좀 자유롭게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야말로 참 이별 중에는 가장 그 희망이 넘치는 이별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런데서 과거에는 이 결혼식만 있지 이혼식이 없었는데 요새는 이혼식 비슷하게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서 그 이혼 선언을 하는 기자회견을 한다던가 그런것도 가끔있는데 -네 -그것도 이 뜻이 있는것 같애요. 예 -네 뭐 어쩌다 한번 있었지 가끔 있었던건 아니지 않습니까? -네 -한번..네 그렇죠. -하하하하 그건 작가의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최인호씨의 얘기를 들어보죠. 이혼에 따른 네 -저 이혼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저는 이혼을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요. 에..그 신발 신발하고 똑같은거라고 생각해요. 신발을 어떡하다 사면은 그 자기한테는 딴 사람보기에는 멋있고 잘 어울릴것 같은데 웬만하면 신고댕기라고 그러겠지만은 사실은 그 신발 안맞을때의 고통은 겪어보지않은 사람은 모르지않겠습니까? -네 -그러니까 신발은 작은걸 신으면 물집이 생긴다거나 또 굉장히 그 벗겨지고 고통이죠. 걸어댕기는데. 그러니까 결혼생활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신발을 잘못산거하고 똑같은거니까요. -네 -에 신발을 갈아 신어야겠죠. -네 -갈아신는것이 아마 일종의 이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러니까 신발을 바꾸듯이 이혼을 한다. -네 -하하하 -이 최인호선생님 말씀...그러니까 맞지않는 신발이란 뜻입니다. 맞는 신발이야 뭐 끝까지 신어야죠. 네 -그러면은 맞는신발이라도 티눈이 생기면 어떡합니까? 나중에 -그거는 안맞는 신발이겠죠. 그 얼굴에 멍이 생기는거나 부부싸움에서 멍이 생기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네 근데 오늘 이혼에...저 이별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즐거운 화제가 자꾸만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얘기하나 할께요. -네 이서구선생님 -이별중에 ... 우리나라에서 이제 중국에 북경으로 사신을 보냅니다. 그 그때 무슨 배나 타고 가마나 탔지 말이나 탔지 별거 있어요? 그 머나먼 길을 가는데 처음에는 인천서 송도해수욕장가시면 거기 그 폭우가 하나있습니다. 어귀에. 거기서 배를 타고설랑은 황해를 건너갔데요. 그렇게 되면 서울서 떠나서 ..뒤로 돌아서 수리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설예산이라고 그러죠. 그 산을 넘어서 인천..를 지나서 송도로 나가는데 거기가면 송도 인천구읍에 설예산 그 기슭에 아주 아름답고 기름진 부락이 하나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옛날 군청자리도 있구요. 그런데 거기가면은 그 산이 쭉 둘러쌓여있는데 남쪽으로요. 근데 그 고개이름이 참 기가 막혀요. 이별고개가 있고 눈물고개가 있어요. 그게 뭔고하니 중국가는 사신이 인제 떠나가면은 그때는 배타고 황해건너다가 10명에 9명죽고 하나 살면 잘 살은겁니다. 그래도 가긴 가야해요. 나라에 사신이니까. 죽을 줄 알고 가는거예요. 그래 집안식구들은 나라왕의 왕령을 받아서 외국가는 영광을 지르지만은 죽음의 길이라는것 때문에 모두들 쫒아와서 작별을 하는데 바닷가까정은 못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수리산 산봉우리에서 이별하는데 거기 이별고개가 있고 눈물고개가있어요. 지금도 가서 그 고개를 보면요 그 구부러진 고개 꼭 이별하기 알맞고 아주 무대장치가 잘 된 연극같애요. 네 가서 보면 뭔가 뭉클합니다. 거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남편을 보내고 그 남편이 물에 빠져 죽은 뒤에 소복을 입고 또 거기와서 다시울었는걸 생각을 하면은 그 관창리에 가면은 이별고개 눈물고개는 정말 한번 흐뭇...흐뭇하면 안되죠. 뭉클하는데입니다. -네 -그럼 저 새손님 최인호씨가요 옛...뭐 이별의 어떤 타입은 없겠지만요 좀 비교적 옛스런 이별의 타입하고 좀 요새 요즘에와서 젊은이들의 그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이별의 타입 그런걸 좀 새로운 어떤 이별의 타입은 어떤건지 말예요. 그런걸 좀 얘기해 주실수 있을런지 -글쎄요. 그... -물론 이건 남녀관계입니다. -아 남녀관계요? -네 -남녀관계에 그 이별할때 한가지 그 재밌는걸 제가 생각한게 있어요. 뭐냐면 여자 남자나 이제 소위 사귀다가 헤어질때는 꼭 상대편에게 자기의 좋은점을 남겨주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는것 같아요. -네 -그래서 헤어지더라도 굉장히 자기인상을 굉장히 강하게 남겨주고 싶어하는 그러한 욕망이 있는거 같애요. 그래서 그런면에서 헤어진다는것이 일종의 그 말하자면 좀 추해지는 면도 있기도 하고 그런면이 있는데 요새는 굉장히 그 요새 사람들이 헤어질대에는 미련없이 빠이빠이하는 그런 풍습이 있는거 같애요. -네 -왜그런가 하면 가끔가다 그런말을 들어요. 뭐냐하면 사람이 만날때보다는 헤어질때 그 뒷모습이 참 이쁘다고 말이예요. 그래서 그 헤어지는 연습을 하고 살자고 말이예요. -네 -그런말을 가끔가다가 그 다방같은데 들어가면은 그 젊은 아가씨들 남녀들이 그런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우리 귀한부 연애를 하는데 헤어질때에는 미련없이 헤어지고 헤어지는 연습을 하고 삽시다. 그거 참 철학적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근데 저도 그걸 한번 노력을 해볼라그러는데 이게 쉬운것은 아니데요? -귀한부로 헤어지는 연습을 하면서 연애를 하자...네 -그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는거 보면 헤어지는 것이 쉽다 이런얘기가 되는데요. 그런데서 요새 젊은사람들 남녀는 쉽게 헤어지고 쉽게 만나는가봐요. 또 이 헤어질때도 절교. 절교한다. 뭐 이런말 이제 손쉽게 하는모양인데 언젠가 여기서 제가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만은 절교를 하면서 편지를 쓰잖아요? 에...이젠 당신하고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다시는 만나지 않겠습니다. 전화도 안걸겠습니다. 전화도 하지 마십쇼. 이유는 묻지마세요. 그 이유는 요다음에 만났을때 얘기하겠습니다. -하하하하하 -뭐 이런거 네 그 쉽게만나고 쉽게 헤어지는거 같애요. -네 -김준씨가 생각할땐 어때요? 그런거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근데 상대성 원리라고 생각하게 될지 모르겠지만요. -네 -이별이라는거는 또 만나는거를 약속한다는 얘기를 흔히 하잖아요? -네 -그 생각을 해서 제가 어렸을때 저는 아주 가슴아프고 쓰라린 이별을 한 번 해본적이 있습니다. -어렸을때요? -네 -그건 뭐 이성이 아니라 바로 저희 아버님하고 헤어졌었을때가 생각이 나는데요. -네 -제가 6.25때는 어디있었냐면 강원도 그 제일 처음에 넘어..그 평창이라는데서 한 5리 떨어진데에서 살았었어요. -네 -국민학교 4학년때 제가 6.25를 당했었는데 아버님이 이북에서 월남을 했기때문에 그놈들이 쳐들어와가지구서는 제일 먼저 이제 명부작성, 사형 명부작성을 한것이죠. 그 명부 속에 저희가 포함이 됐었었거든요. 그래서 마침 피난을 식구가 온 식구가 같이 가야 됐는데 그때 어머님이 아파가지구서 가질 못할 형편이고 그래서 저 혼자 어머니하고 같이 남아있고 아버지는 그냥 떠나야 될 그런 운명에 있었었나봐요. 지금 생각하니까 -네 -그게 바로 생이별이였었던거 같애요. -네 -언제 만나는지도 모르고 그냥 헤어져야만 되는거. 근데 그 정말 좀 심파조 같은 얘기지만 저희 살던 언저리에는 강물이 흘르고 있었어요. -네 -그 강물엔 또 외나무다리가 있었어요. 그 외나무다리 위를 아버지가 그 뭐라그럴까 그 등산할때 그 매고 가는거 -네 -그 배낭을 매고서 그냥 뒤도 못돌아보고 그냥 가시는데 그 뒷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굉장히 우시는데 거기에 비해서 저는 들 울었죠.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은 그 어머니 마음이 굉장히 아팠던거 같애요. -네 -그 얼마 후에 만나긴 만났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지만 -네 이게 해피앤드군요. -네 해피앤드죠. -난 상당히 침울하게만 얘길 듣고 있었는데 결국 해피앤드로 끝나서 -제가 헤어질때 꼭 만나... -네 아주 참 흥쾌합니다. 그럼 김준씨의 노래 `무지개 사랑`을 한번 요청해 듣기로 하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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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씨의 노래 무지개 사랑이였습니다. 양제동 박사님께서 -예 이별에 관한 얘기는 아무래도 저 옛날 제자가인과 또 속되게 말하면 그 기생들이 정든 남군을 이별하면서 지은 우리나라의 시조가운데 걸작은 대게 그겁니다. 내가 몇 수를 낭독하죠. 울면잡은 손에 떨치고 가지마소. 초원장진에 하루가 다 져버렸네. 초원이라는거는 멀고 멀다는 말입니다. 어 울며 잡은손에 떨치고 가지마소. 초원장지에 긴 뚝에 하루가 져버렸네. 쾌창에 장둥도둑을 안잡으면 알리라. 당신도 나를 무정하게 소매 떨치고 가지만은 가다가 여관에서 ..한 등불...고서 안잡으면은 당신도 아리라. 하는 그런 시조도 있구요. 또 하나는 내가 기억하는 거요. 그와 비슷한 시조 말은 가려고 울고 임은 잡고 아니놓네. 석양은 재를 넘고 갈 길은 천리로다. 저 임아 가는 나를 잡지 말고 지는 해를 잡아라. 그건 누구 무명시의 시조입니다. 또 저 두안기생 유명한 매창이라고 하던가요? 그 기생의 시조 평범하지만은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 아주 멋진 시조죠? 그러나 역시 이별에 관한 시조 가운데에 걸작은 천하의 명기 황진이에 간드러진 시조입니다. 다 여러분 기억하시죠? 어져 내일이여 그릴 줄을 몰르던가. 어져 하면 아 하는것과 마찬가지. 어져 내일이여 그리워 할줄을 몰랐던가 이시라 했더라면 가랴마는 제 쿠태여. 내가 있으라 여보 가지말고 있어요 하려면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쿠태여. 제가 쿠태여 가기야 가랴만은 보내고 그리운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요거 간드러지지 않습니까? 에 이별하기 싫어서 자기가 가지말라 그러면 지까짓 남군이 어찌가? 있으라고 하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그 뒤집음이 좋아요. 에 제 구태여 가야만 할것을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쿠태여. 내가 여기 있어요! 한다면 지까짓게 어디 가기야 하냐만은 가세요! 지까짓거 간다고 내가 못살까! 요래가지구서 보내놓고 연정을 나도 모르겠데요. 요거.....정말 -오늘 새손님으로 두 분 소설가 최인호씨 탈렌트 김자옥양 두 분이 나왔는데 공개방송 앞서서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에 우리는 김자옥양이 왔는지 안왔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다방이 넓어서. 근데 우리 일행중에서 제일 먼저 김자옥양을 본 분이 바로 작가 최인호씨입니다. 그 김자옥양은 처음 최인호씨 봤을때 직업이 뭔줄알았어요? 인상이요? -저는 여기 방송국에 계신분인줄 알았어요. -네 방송국에 프로듀서를 하는분인줄로요? -네 -네 -저 방송국 피디로 봐주셨다면 감사하는데요. -네 -혹시 저 뭐 볼펜 팔러 온 사람인줄 알았다면... -아니 그렇게 보지는 않았어요. -혹시 저 인단...인단 그 선전광고에 보면 인단 두알이 달려있지 않아요? -네 -그거 오해하실까봐 굉장히 걱정했는데 -최인호씨는 그 김자옥양을 어디서 봤길래 그렇게 금방 알아봤죠? 아까 -아 저 김자옥양을 저 테레비에서 봤어요. -네 -테레비에서 봤는데 심청이 할때 봤는데 -네 -굉장히 그 심청이 이미지하고 좋다고 어울린다고 해서 봤어요. -네 -그때 참 잘했던걸로 기억납니다. -네 연기가 좋았다구요. -최인호씨가 연출가라도 김자옥양을 썼겠군요? -하하 그렇죠. -네 -근데 그 연기가 좋았다는거는 그러니까는 그냥 김자옥양이 좋을 수도 있는 건가요? 어떻게 되는건가요? 연기가 좋다는 건가요? -저는 왜그런 생각을 하냐면요. -네 -저희 그 테레비나 영화를 보면서 느낀게 굉장히 여자들이 이쁘...울라그래도 굉장히 이쁘게 울라그래요. 그러고 -네 -무슨 추한장면 말하자면 그 주인공여자가 타락했을 장면에도 굉장히 그 이쁘게 하고 나와요. 그러니까 난 그 여자들이 여배우들이 말이예요. 좋은 장면에 그 자기를 전력투구 해가지고 진짜 울 장면은 얼굴이 좀 찌그러지고 말이예요. 좀 코가 벌름벌름데더라도 좀 정식데로 보여줬으면 좋겠는데요. -네 -어떤 그 우는데 패턴이 있는거 같애요. -네 -그래서 김자옥양을 맨처음에 봤을때 패턴을...패턴이 아니데요. -네 -패턴이 아니고 굉장히 원래 그 이쁘게 생긴 얼굴이시지만은 우는것도 굉장히 이쁘게 울고 그래서 제가 이게 참 좋게봤습니다. -그러면 저 이 코가 벌룩벌룩 했나요? -하하하 -네 -김자옥양 우는게 또 어떤지 알수가 있어야죠? 아직 노래 안했지만 영씨스터즈 두 아가씨요, 자기 이름좀 소개해주죠. 우리 유쾌한 응접실엔 처음 나오죠? 두 분 다요? 네 이름을 좀 소개해 주세요. 각자 -전영지예요. -또 한 분은요? -전영주요. -그럼 두 분이 어떤 사인가요? -네 친자매예요. -아 자매. -그러면 저 나이 차이는 어떻게 되나요? -네 연년생이예요. -연년생이세요? -네 네 그렇군요. 흐흐흐 -시간이 다 됐습니다만... -네 양제동 박사님께서 -...이별하기 전에 제가 마무리 좀 할게 있습니다. 아까 자꾸 시조를 외웠는데요. 내가 이별 시조가운데에 최고의 걸작을 이제 또 하나 낭송합니다. 유머러스하게. 그 저 사설시조인데요. 저 건너 거무 두툼한 바위 정대어 깨트려서 저 건너 남산에 거무두툼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정을 대어서...정을 땅...땅에서 저 건너 거무두툼한 바위에 정대어 깨 두드려 내어서 그래서 자 똑똑히 들어. 털도 붙히고 뿔을 박아.... 저 건너 거무두툼한 바위를 정당에 ...서 거기다 털을 붙히고 뿔을 붙혀가지고 껑충껑충 걸어가게 만들리라. 검은 암소. 그 안에 무슨 마을 나오겠습니까? 아는 사람있으면 천재다. 시라고 하는건 마지막 절에 있는거예요. 저 건너 거무두툼한 바위 정대어 깨내어서...그래서 털붙히고 뿔을 박아 ...걸어가게 만들리라 검은 암소...그래서 천리에 우리 임 이별 할적에 거꾸로 태워보내리라. -허허허 -천리에 우리님 이별 할적에 그 돌로 만들어논 암소를 거꾸로 태워보내겠데요. 돌로만든 암소니까 생전 걸을리가 있습니까? 설령 그것도 또 걸을까봐 겁이나서 거꾸로 태워보내겠데요. 가다가 도로 돌아오게요. 거 잘짓지 않았습니까? 내가 하도 멋져서 노래불렀노라 그만. -흐흐흐 노래 듣겠습니다. 영씨스터즈 두 아가씨가 나와서 `두마음` 을 불러주겠습니다. 박수로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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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씨스터즈의 노래 두마음이였습니다. 이별이란 화제로 진행한 535회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 프로듀서 안평선 기술 김영소 반주 노명석씨가 진행하는 동아방송 전속 경음악단 사회 전영호였습니다. 맛있는 과자의 상징 해태제과 제공 유쾌한 응접실을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입력일 :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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