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회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 해태제과 제공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 네. 유쾌한 응접실에 전영우 입니다. 밝아온 새해 1970년을 맞으면서 특집 방송으로 꾸며보는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 오늘은 `설계`란 얘깃거리로 성균관대학교 교양학부 음악제에 부쳐서 흥겨운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이 자리에 나오실 분들을 소개해 드리면은 단골에 이서구 씨, 김두희 씨, 조경철 씨, 새 손님에 성균관대학교 체육과 주임교수 김상구 씨, 총 학생회장 김철영 군, 여학생 회장 유효순 양 그리고 국문과 1학년 최현 양, 이 밖에 여러분의 노래 손님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그럼 노래 손님 맞이 하겠습니다. 김상희 양을 맞이해서 그럼 이번에 `당신을 알고부터`.
♬ 당신을 알고부터 - 김상희
- 네. 1970년 새해를 맞아서 처음 보내드리는 유쾌한 응접실, 첫 번째 노래를 김상희 씨가 불러줬습니다. 김상희 씨는 해를 거듭 할수록 인기는 상승하고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 해 들어서서 김상희 씨에게 설계는 어떤지 잠깐 얘기를 들어 보기로 하죠.
- 솔직히 말씀 드려서 제가 제일 먼저 이 해에 첫 노래를 부르게 될런지는 정말 몰랐어요.
- 네. 정말 모르셨죠.
- 그래서 너무 영광스럽기 때문에 우선 감사를 드려야 될것 같습니다.
- 네. 감사 합니다. 그럼 솔직하게 말씀 드리지 않아서는 또 어떤가요. 솔직히 말해서.
- 솔직히 말씀 안 드려도 사실은 몰랐으니깐요.
- 네. 그러니까 둘 다 마찬가지군요. 솔직 하거나 솔직하지 않거나.
- 네. 아 금년에는 저딴에는 아주 굉장히 큰 포부를 가지고 있어요. 우선 여러분들에게 제 나름대로 제가 꾸며 본 리사이틀을 갖을 작정으로 있거든요.
- 리사이틀이요.
- 네. 초청해 주시겠지요.
- 물론이지요.
- 네.
- 여러분들 다 초청 하겠습니다.
- 네. 그러니까 김상희 씨의 금년 포부가 이룩 되도록 여러분 박수로 격려해 드리기.
- 감사 합니다.
- 우리가 오늘 설계에 관한 얘긴데 김두희 교수께서는 하루의 설계를 대게 언제 하시게 되나요? 하루의 설계.
- 네. 설계라면 글자 그대로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말 할수 있지 않겠어요?
- 네.
- 그런데 우리 사람의 그 활동 움직임이라면 반사적인 움직임을 빼 놓구서는 모두 이 계획이 있어가지구서 그 실천에 옮기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 그 계획이 무슨 이 그림으로 도표로 나타낸다던가 글자로 명문화 한다던가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은 간단한거는 일상생활의 설계는 그저 습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습관이요?
- 네. 관습에 의해서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또 오늘을 그저 그럭저럭 해나가면 사라지겠지 이런식으로 해서 일일이 그 설계를 세우지 않습니다. 아침에 깨서 세수하고, 버스 타고, 가서 내리고, 교문에 들어가고, 강의 하고, 질문 나오고 그러다가 안 나오면 결국 내 설계는 빗나가고 그러니까 그저 살아지고 저녁 때 저는 이 설계 보다도 이 회고를 해요. 오늘도 또 무사히 그런대로 죽지않고 살았구나.
- 네. 그럼 저 이 김두희 교수님께서 연세도 저거 하시니까는 그 회고록이 언제쯤 나오게 되겠습니까. 김두희 교수님 회고록이요.
- 회고록은 제3차 대전이 끝난 다음에 나올 예정 입니다.
- 네.
- 제가 이 아직 나이 많지 않다고 그러지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김상구 교수가 나오셨는데 이 김상구 교수는 제가 이 성균관대학에 처음에 왔을 때 아주 우수한 학생으로 있었습니다.
- 네. 이렇게 되면은 김두희 교수께서 정말 웨스턴 처칠 하고 네 뭐 그렇게 되는군요. 그럼 김상구 교수께서는 어떻게 사제 교환을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무슨 강의를 들으셨나요?
- 네. 이 저 시방 제가 여기 오기를 별안간 그냥 납치 당해서 오다시피 됐습니다. 와 보니 참 김 선생님이 여기 앉아 계신데 아까 말씀대로 솔직한 말씀 입니다. 우리가 왜정 말기에 공부를 하다가 다 못해서 다시 공부를 하러 왔을 때 김 선생님은 참 저희들을 가르쳐 주셨는데 6·25 사변이 난 수복 후로 서울대학으로 가셔서 그 당시에는 학생들 하고 선생님들 하고 비딱비딱 합니다. 학생이 오히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김두희 선생님 별명이 교실에 오면은 학생들이 아주머니 오신다.
- 네. 김상구 교수께서 재미난 변을 해주셨는데 그럼 지금은 아주머니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아주머니 김두희 교수께서 학점은 상당히 후했겠습니다.
- 에... 학점이 이 성균관대학은 해방 이후에 대학이 됐습니다만은 아마 학교로 질서가 잡힌것이 성균관대학이 자랑거리의 하나라고 저는 자부 합니다.
- 네.
- 왜그러냐면 한 학기에 단과대학 당시에 한 5,6백명 한 570명 이렇게 됐을 거에요. 그 당시에 한 학기에 약 한 180명이 시험을 볼 제 컨닝을 한다던가 할 제 모두 퇴학을 당하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두희 선생님이 시방 이 학교 신도옥 학장님도 인제 신도옥 선생님이죠. 신도옥 선생님, 서울대에 가신 한태현 선생, 김두희 선생 이 선생님들이 컨닝하는 학생 잡아내는 대장 입니다.
- 대장?
- 네. 그러니까 학점에 있어서는 하나 재미난 얘길 하죠. 학점에 있어선 굉장히 박했고 어떤 학생이 재미난 얘기로 아주 가르쳐 주신대로 다 썼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을 0점을 줬습니다. 근데 그 학생이 항의를 하니까 말씀이 내가 가르친거 한 자 안 틀리고 썼으니까 너는 컨닝했다 이랬습니다.
- 네. 그럼 김두희 교수께서는 아주머니라 그랬는데 근데 그런 분을 어떻게 아주머니라고 별호를 붙여 주셨는지 학생들이 당시에요.
- 네. 한 말씀 드리지요. 이렇게 가르치시고 뭐 하시는데는 참 아주 아주머니와 같게 얌전하게 이렇게 가르치시는데 그 원칙이 서서 말하자면 계획이 서서 이미 그게 발표가 돼서 천하에 대해 공포된 이후는 엄하게 다룬다. 이 두가지를 가지고 겸하고 계시죠. 그러니까 아주 엄한 분이죠.
- 네. 그러니까 문무를 겸전 하신게 아니라 적극성과 소극성을 겸비하고 계신 분이군요. 네. 알겠습니다. 이서구 선생님께서. 오늘 설계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대개 그 하루 계획이라던가 일년 계획이라던가 이런거는 연륜을 더해 가실수록 좀 더 많을 것 같기도 하구요 또 모르겠습니다.
- 대개 누구든지 뭐 그 날 설계는 아침에 일어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밤에 잘 적에 미리 하고 자고 저는 늘 밤에 잘 적에 미리 하고 잡니다. 저는 그 스케쥴도 펴 보고 그래서 옷은 뭘 입는다 어떻게 한다 해서 딱...
- 아니, 아니 이 선생님께서 무대에 나서시나요? 옷을 뭘 입는다를 또.
- 아닙니다. 오늘도 이거 넥타이 안 매고 온 것은 이런 자리니까 왔지만 또 넥타이를 맬 때도 있고, 또 옷도 몇 벌 안되지만요 이것도 제 삶이 설계된게 있어야 하지 안습니까?
- 네.
- 옷이 한 벌 밖에 없으면 할 수 없지만은 다행이 몇 벌 있으면 둘째 딸 더러 물어 보든지 셋째 딸 더러 물어 보든지 오늘 아버지가 어디 가시오? 어. 성균관대학에 간다. 그러면 거기 학생 멋쟁이들이니까 빨간 와이셔츠 입고 가시면 인기 있겠소. 이런 설계가 나온 겁니다. 근데 매년 정월 초하루날 저는 일기를 매년 씁니다. 잘 씁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해요. 정월 이내에 한 달 이내에 그만 종료 해버리고 그만 두지만 좋아하는 날은 꼭 씁니다. 또 왜그렇게 또 책을 많이 주는지 일기책을 여러권 얻어와요. 그러니 미안해서라도 한 줄은 써야 되겠다. 그래 쓴 걸 이제 쭉 연대별로 모아 둔 걸 보면은 해마다 썼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냥 희망에 차게 뻗어 올라가는 기운을 맘대로 세상을 저 혼자 쥐고 흔들것 같은 그런 희망을 썼다가 30고개 가다 보니까 쓱 좀 저 이 서리맞은 푸성고 마냥으로 푹 죽어가지고 야 인생은 괴롭다 왜이리 이 뭐 세상이 이렇게 부자연 하냐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느냐 나는 양심껏 했건만 왜이렇게 살기가 어려우냐 아내에게 미안하다. 뭐 이런거 혼자 쓰고.
- 네.
- 이게 요새 와서는 또 달라졌습니다. 나이가 이만큼 많아지니까는 요새는 좀 구질구질해 집니다. 그래서 눈물 자국이 뚝뚝 떨어지는 일기를 쓰는데, 아이고 이거 둘째 딸이 시집을 갈텐데 저걸 보내놓고 내가 어떻게 슬하가 허전해서 사나 무슨 손자가 무슨 유치원에 갈텐데 저걸 매일 누가 데리고 가나. 뭐 이런 소릴 해서 좀 구질구질 하지만은 사람은 그걸 세 번 겪는 겁니다. 요 다음에 내년 쯤 되면 내가 어떤 가령 어느 묘지가 제일 편안하고 또 무슨 아주 내 장래식 순서 또 부고 보내는 문안 이런것도 한글로 멋지게 써서 그래서 하나 잘 차려 놓은것이 이제 마지막 설계 입니다.
- 네. 아마 그것은 종착이 시발이기 때문에 그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노래 듣겠습니다. 이미숙 양을 맞이해서 `밤의 장미`를 다같이 제청 해주시기 바랍니다.
♬ 밤의 장미 - 이미숙
- `밤의 장미` 이미숙 양이 노래를 했습니다. 우리가 설계에 관한 얘긴데요. 학생회장인 김철영 군, 김철영 군은 일기를 쓰는지요?
- 저는 일기란걸 국민학교 6학년 때 쓰고 아직 써 본 적이 없습니다.
- 네.
- 왜냐면 대학교 생활에 들어 와서는 뭐 술 마시고 선거운동 하고 또 행사하고 이렇다고 해서 도저히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난 일기 대신에 항상 늦게 말입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내 3년 동안 나의 인생의 반려자를 어떻게 설계를 세워갖고 그 사람을 같이 정말 의미있는 어떤 창조를 할 수 있는가 그걸 한 번 생각해 봅니다.
- 네. 일생의 반려자를 자면서 생각... 네. 상당히 그 실질적이십니다. 그래서요. 대개 그 머리로 그리는 일생의 반려자는 어떤 타입 입니까.
- 제가 아까 사회자님 말씀 하시다시피 날카롭다 하셨는데 그건 칭찬의 말씀이고 저는 사실 야위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좀 뚱뚱해야만이 아마 그 제 2세가 나올 때 그래도 좀 날씬한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가지는 부모님들이 가지는 그 희생정신을 저는 충분히 십분 발휘할 예정 입니다.
- 네. 그니까 딴거 보다도 제일 급한게 개체 보존의 본능에 대해서 굉장히 그 신경을 쓰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럼 저 이 화순을 좀 돌려서 조경철 박사께서는 일기를 좀 써 보셨는지요?
- 아 저도 아까 저 이서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일년에 꼭 한 달이 아니고 저는 꼭 한 번 씁니다. 정월 초하루에 그저 한 번 쓰고 마는데 왜 그렇게 되냐 하면은 저도 아닌게 아니라 그 일년에 대한 설계라는 것을 웅장하게 말이죠 한 번 꿈이라도 꿔 보는 듯이 그려 놓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해에 그 정월 초하루의 일기를 꺼내 보니까 금년에는 돈 천만원을 벌 것 이렇게 써 놨는데 지금 보니까 부채가 몇 십만원 늘은 것 뿐 입니다.
- 정 반대로요?
- 네. 정 반대 더군요. 그래서 화가 나서 이번에는 토정비결을 봤습니다. 토정비결을 봤더니 금년에는 굉장한 그 흉괘가 나와 있더군요. 작년에는 뭐 대길 괘 인데도 몇 십만원 부채가 생겼는데 이번에는 아주 굉장한 흉괘 입니다. 어떻게 돼있느냐면은 너는 이번에는 놓쳐 버리는 괘다. 무엇을 놓쳐 버리느냐. 감투를 놓쳐 버리는 괘다. 왜냐. 머리통이 너무 커서 못 쓴다 이겁니다. 그러면 돈도 안된다 말이지. 돈은 왜 안되느냐. 버는것 보다도 쓰는것이 더 많으니 안된다. 그 다음에 물고기도 못 잡는다 이겁니다. 왜 물고기를 못 잡느냐. 네가 헤엄을 칠 줄 몰라서 못 잡고 그 다음에 그러면은 아름다운 여성은 어떠냐 그랬더니 아 여성은 그것도 안된다. 너 같은 얼굴을 갖고 무슨 아름다운 여성이냐. 그리고 택시도 안된답니다. 택시도. 왜냐. 택시 타게되면 택시 운전수 보고 택시 값 내라니 말이되냔 말이죠.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번에 아주 그 흉괘가 아주 굉장히 큰 모양인데 그래서 정월 초하루 일기를 그만 이번에는 안 쓰기로 했습니다.
- 내. 그러니까 금년에는 영호 작전으로 나가셔야 겠군요. 영호 작전.
- 이번에는 빚을 한 번 천만원을 꿔 보자. 이러한 그 식으로 한 번 해봐야 되겠습니다.
- 근데 여학생회장 하는 유효순 양이요. 유효순 양은 무슨 과에 다니나요?
- 심리학과에 다녀요.
- 심리학과요? 네. 상당히 어렵습니다. 질문 하기가. 이 쪽이 어려워 지는데요? 질문 하기가요. 심리학과 몇 학년 인가요?
- 3학년 인데요.
- 3학년이요?
- 근데 3학년 다닐 동안에 심리학 그 전공 과목 중에서 강의 들었잖아요? 인제요?
- 네.
- 그 중에서 아직까지도 그 머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 어떤 그 얘기 있잖아요. 강의 하실 때 선생님이요. 그걸 보충 설명 하시느라고 어떤 스토리도 좀 들려 주시고 그러잖아요?
- 네.
- 그런거 좀 하나 소개해 줬으면 합니다.
- 최근에 들은건데요.
- 최근에요. 네. 아주 그건 신빙성이 있겠습니다.
- 좀 아이러니컬한 그런 얘기겠지만은.
- 아이러니컬 해요? 네. 기대 하겠습니다.
- 네. 보통 저희가 사회악에 대해서 얘기 할 때 모두가 한 두 사람을 죽인다는건 굉장한 그 범죄로 치고 있어요. 그런데 다수를 죽인 전쟁의 경우에 있어서 다수를 죽인 사람은 어떤 영웅시 되고 있다는거. 그것이 그 굉장히 머릿속에 남았는데요. 또 이런 생각도 한 번 해봤어요. 그 범죄를 죄를 범해가지고 사형을 당하는 사람 그 사람은 사람을 죽여서 사형을 당하지만 그 사형수를 갖다가 죽이는 그 사람은 어째서 어떤 그 마음의 갈등도 안 느끼고 그럴 수 있을까 하는.
- 네. 그러니까는 여학생회장인 유효순 양은 심리학과에 다니는데 범죄 심리학을 전공 하시나요?
- 아니요. 범죄 심리학을 전공 하지는 않아요.
- 네. 그러면 이번에 저 이 국문과 1학년에 다니는 최현 양 좀 마이크를 받을까요? 최현 양은 국문과 1학년 이에요?
- 네.
- 네. 그러면 뭐 전공과목 아직 안 들어 갔겠네요.
- 네.
- 네. 그럼 오늘 우리가 화제 설계 인데요. 일기는 참 아름답고 곱게 쓰겠어요. 국문과니까.
- 네. 그럴거 같은데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 무슨 말인데요?
- 일기의 양이 많구요.
- 네.
- 일기를 많이 쓰는 사람 일수록 불행한 사람 이래요.
- 일기를 많이 쓸 수록 불행한 사람이다. 네.
- 네. 그러니까 이제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을 결국은 행복에 두고 있는거 아니에요? 결론이요.
- 그렇죠. 불행에 두고 사는 사람은 없겠지요. 네.
- 그러니까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인제 일기를 안 쓰기로 하겠어요.
- 네. 그럼 이제까지는 썼었던가요?
- 네.
- 이제까지는 썼었는데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안 쓰겠다.
- 네.
- 네. 그럼 우리가 설계에 관한 얘긴데 김두희 교수님께선 지금쯤 뭘 설계하고 계신지요. 얘깃거리를.
- 아니요. 지금 그 일기 얘기가 나왔는데요.
- 네.
- 일기는 대개 국민학교 때나 중학교 때는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꼭 쓰게 돼있습니다. 그 당시엔 이 과제장 숙제장 이라고 해서 꼭 일기란이 있어서 쓰게 돼있어요. 어 이제 날씨가 어떻고 그 다음에 뭘 하고 뭘 하고 뭘해 까지 쓰게 돼있는데 그 동생 형제가 있었는데 아우의 일기장을 봤더니 벌써 방학이 열 흘 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방학 끝 날 까지 일기를 다 써 놨더군요.
- 네.
- 그래서 저희 엄마보고 말했지요. 엄마 저 아무개는 일기 미리 다 썼어요. 그러니까 그 아우 하는 소리가 어때 일기 쓴 데로 그대로 하면 될 거 아니야. 그 일기가 아니고 설계지요.
- 네. 그니까 미리 써 놓고 실천만 해나가면 되는 거죠.
- 그렇지요. 9시 반에 어디 밥 먹었다 그러면은 9시 반 되기 기다렸다가 밥 먹는 거지요.
- 네.
- 그리고 아까 김철영 군 인가요?
- 네.
- 이 그 설계를 하는데 그 일생의 반려 될 사람을 설계한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 설계라는 것이요. 이루어지는 설계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는 설계도 있는데 이루어지지 않는 설계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까 바로 그 설계 입니다. 뚱뚱한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얼굴 예쁜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돈 많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설계 다 세워 놓지요. 하지만 그 사람이 다른데 가 버린단 말이에요.
- 네.
- 어떤 경우에는 자동차 사고가 난다. 거리를 지나다가. 근데 그게 자가용 차다. 마침 거기에 아름다운 여자가 타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날 입원 시켜주고 병문안을 온다. 알고 봤더니 회사 사장의 외 딸 이다. 아버지가 나이가 많은게 또 지금 입원해서 거의 죽어간다. 뭐 이런거 혼자서 다 설계하고 있지만 그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 네.
- 자동차에 치인다면 결국 택시에 치이고 택시 운전수 결국 내 빼고 뭐 이런것이 고작 이랍니다.
- 이번에 노래 듣겠습니다. 파니 시스터즈에게 `짬 좀 내줘요` 다같이 박수로.
♬ 짬 좀 내줘요- 파니 시스터즈
- 네. 짬 좀 내달라는 파니 시스터즈의 노래 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파니 시스터즈 노래를 했는데요. 웃겼다 하고 짬 좀 내줘요는 확실히 알겠어요.
- 고맙습니다.
- 근데 한 가지 궁금한거는 웃겼다 그러면서 뭘 어떻게 해서 웃겼다는 얘긴지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걸 한 번 그 누가 얘기...
- 설명을 해드리겠는데요.
- 네. 간단히.
- 인제 그 전에는 산에도 같이 가고 저랑 놀러도 많이 갔거든요?
- 네.
- 그런데 인제는 자기 엄마 말만 듣고요.
- 자기 엄마.
- 네. 고시 공부를 한다나요 공부만 한데요. 그러니까 요새는 웃겼다는 말이 굉장히 유행인데 아 언제부터 이렇게 엄마 말만 들었나 정말 웃겼는데 그런 그런 식 이지요 뭐.
- 네. 그니까 알겠어요 인제.
- 인제 아시겠어요?
- 네. 그 어머니 말을 듣지 왜그렇게 엄마 말만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네. 이서구 선생님께서요. 지금 저 이 파니 시스터즈 얼마나 그 애교있게 아주 그 노래를 잘 하는지요. 근데 가만히 의상을 보니까는 무대의상인 탓도 있겠지만요. 그 바지는 어떻게 판타롱 같은 바지 같고 위에는 그 월남 아가씨들이 입는 바지 같은데 아 저 저고리 같은데 그 뭐 틀릴 때도 있지요. 근데 인제 월남에서는 좀 더울 것 같고 한국에선 좀 추울 것 같은 그런 의상을 입고 나와서 노래 했는데 아주 귀엽군요 노래 하는게요.
- 아주 옷이 그 좋습니다.
- 네.
- 저 분들 노래 하는걸 제가 여러번 이렇게 봤는데 저는 ...교수를 6년 하는 동안에 무엇이 전문인고 하니요. 가수들의 뒷모양을 누구 보다도 잘 압니다. 밤낮 뒤에 앉아서 보기 때문에 6년 동안을 우리나라 유명한 가수의 뒷모양을 늘 지켜 보았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숙녀들에게는 실례일지 모르지만은 그 분들의 그 다리가 얼마나 직선이냐 또 그 직경이 어느정도 표준에 근사하냐 너무 표준에 떨어진다는건 아마 제가 누구 보다도 더 소상히 알 겁니다.
- 네. 그러니까 뭐 할아버지께서. 네. 알겠습니다.
- 그러니까 할아버지니까는 이렇게 말씀을 하죠.
- 네.
- 젊은 사람은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죠.
- 근데 사실은 이 자리에 그 성균관대학교 체육과 교수이신 김상구 선생님께서 파니 시스터즈 노래 하면서 그 율동 점수를 대개 얼마나 주실 수 있습니까.
- 에... 이 율동 점수를 먼저 채점 하는거 보다요.
- 네.
- 시방 요새 그 나는 좀 시방 한참 배우는 중에 있습니다.
- 네.
- 왜그러냐면 하도 발달이 돼서요 예전 같으면 그 율동이 참 고전 무용에 들어가면 참 그게 동물이 움직이는 것 같고 아주 멋있는데 요샌 너무 급급 해가지고 달나라 가는것 같아요.
- 네.
- 그냥 너무 빨라서 벌써 다 끝난것 같고 어떤거 어떤건지 잘 몰라서 그저 나는 시방 현대 그저 여러가지 많이 참작을 해서 현실을 참작해서 보면 그저 6점 쯤 줘야되지 않을까.
- 그러니까는 이제 김상구 교수께서 시방 그 말씀하신대로 그 평가를 6점을 하셨는데 그러니까 6점 만점에 6점 이겠지요? 6점 만점에 6점 인가요?
- 그렇습죠.
- 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네. 근데 이 자리에 아직 노래 순서는 안했지만은 위키 리 씨가 나와 있습니다. 위키 리 씨의 금년의 그 포부 계획 아마 설계라고 그러면 조금 거창 할 것 같고, 위키 리 씨에게 화순을 돌리고 싶습니다.
- 네. 우선 설계 말씀 드리기 전에 아까 일기를 좀 했는데요. 제가 국민학교 때 일기를 굉장히 열심히 썼어요.
- 네.
- 그러다가 일기를 그만두게 된 그런 그 참 침통한 그런 원인이 있었는데요.
- 네. 침통 하시기 까지 했군요.
- 네.
- 동정이 갑니다. 네.
- 네. 일기는 쓰긴 썼는데 하루는 저희 형님이 저 한테 상당히 그 엄한 형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근데 그 분이 그 대학교 다니던 시절인데 어떤 날 아침에 학교를 가는데 주머니 속에서 백원짜리가 약 한 3분의 2쯤 나와 있었어요.
- 네.
- 그래서 제가 그걸 판단 하기를 반 정도라면은 내가 얘기를 해줬겠는데 3분의 2가 나왔다면 이미 저거는 남의 거나 다름이 없다 저거는 먼저 발견한 자의 것이다.
- 네.
-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저것이 대문에 나가기 전에 떨어지면은 내 건데 대문 바깥에 나가서 떨어지면은 내게 아니다. 그러고 기다리던 중에 대문에서 약 한 50센치 전에서 떨어졌어요.
- 네.
- 그래서 제가 그걸 주워가지고 상당히 그 날 그 유용하게 썼습니다. 근데 그 날 저녁에 일기를 쓸라고 펜을 들고 보니까 양심에 가책이 됐어요.
- 네.
- 아이고 형님이 쓰실 돈을 내가 써서 참 안됐다. 형님이 얼마나 그 버스를 내릴 때 당했을까. 참 다음 부터는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거는 내가 욕심 내지 않으리라. 이렇게 일기를 썼거든요?
- 네.
- 그런데 어떻게 한 며칠 있다가 형님이 절 불러요. 그래 갔더니 냅다 갈기더군요. 그래서 한 서너 차례 맞았습니다.
- 네.
- 그래 이유를 물어 봤더니 일기를 읽어 보셨대요. 그래 임마 백원 주웠으면은 나한테 솔직히 얘기 하면은 내가 50원 정도는 줄 용의가 있었는데 그걸 임마 혼자 다 먹어 가지고 내가 버스 종점까지 가서 돈을 암만 봐도 없어서 내가 굉장히 당했다. 그래서 그 때 양심적으로 일기를 쓰는 것은 이런 피해를 입는구나. 그래서 일기를 그 때 부터 안 쓰고 그 다음 부터는 취미를 다른데로 돌렸습니다.
- 네.
- 일기 하고는 도저히 떨어져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다음 부터는 일기를 보는 취미로 돌렸습니다.
- 남의 일기를.
- 남의 일기를요.
- 네. 그러면 위키 리 씨의 포부가 잘 성수되기를 바랍니다. 위키 리 씨를 맞이해서 노래 듣겠습니다. `개살구`를 부탁 합니다.
♬ 개살고 - 위키 리
- 네. 위키 리 씨의 노래 `개살구` 였습니다. 347회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 오늘은 1970년 밝아오는 새해를 맞아서 `설계`라는 얘깃거리로 성균관대학교에서 공개방송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프로듀서 박재곤, 기술 길태성, 사회 전영우 였습니다. 해태제과 제공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을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 합니다.
(입력일 : 2007.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