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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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유쾌한 응접실
노트 - “노트 속 낙서로 지적수준 알 수 있어”
노트
“노트 속 낙서로 지적수준 알 수 있어”
1968.12.01 방송
국내 최고의 석학과 지성인들이 고정출연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던 ‘유쾌한 응접실’은 동아방송 개국 때부터 폐국 때까지 계속 방송된 ,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방송시작 때부터 10여 년 동안 청취랭킹 3위 이내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며, 교양적 요소와 계도적 기능을 화합시켜 오락프로그램의 품위에 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노래와 얘기를 나누면서 흥겨운 우리들의 시간을 갖는 290회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 해태제과 제공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 유쾌한 응접실의 전영우 입니다. 오늘은 학문의 전당 연세 대학교를 찾아서 연세 교육 방송국 개국 9주년을 기념하는 교내 행사에 부쳐서 공개방송을 갖게 됐습니다. 첫 번째 노래손님 최희준 씨 에게 `먼 후일` 을 다같이 부탁해 주시기 바랍니다.

♬ 먼 후일 - 최희준

- `먼 후일` 최희준 씨가 노래 했습니다. 둥글둥글한 몸짓이 참 어울렸습니다. 이 자리에 나오실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단골 손님에 극작가 이서구 씨, 문학 박사 양주동 씨, 서울 대학교 물리과 대학 교수 김두희 씨, 새 손님에 미스 아이 골드에 허은, 실버에 김정신, 브론즈에 김순자 그리고 연세 대학교 문과 대학 교수 이군철 씨, 총 학생 회장 최청평 군, 녹양 회장 이영신 양 이 밖에 여러 분의 노래 손님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얘깃 거리는 `노트` 입니다. 양주동 박사 께서.

- 그 저 말 풀이는 필요가 없을것 같고 그러나 또 시작 해 볼까요? 그 내가 영어 사전에 노트라는 글자가 가장 간단한 관사 지만은 아마 한 페이지 쯤 그 주석이 나갈 겁니다. 내가 일일이 주석 할 수가 없는데요. 한데 난 옛날 사람 이라서 그 현대 대학생들은 그 노트북을 많이 들고 다니는데 옛날에 그 노트북이 있었느냐 내가 그 얘기만 잠깐 해요. 밤낮 한문 얘깁니다. 공자의 제자가 삼천명이나 되는데 그들이 노트북을 들고 다녔냐 안 들고 다녔냐 그 왜 그랬냐는고 하니 현대 대학생들은 내가 보니까 노트만 몇 개 두어권 들고 왔다 갔다 해요. 한심하기로 짝이 없어요 도무지. 공부를 하는지 마는지. 그러면 공자의 제자 삼천명이 노트북을 들고 다녔냐 하면은 그 알쏭달쏭 합니다. 왜그러냐 하면 논어에 보면요. 또 한문 얘기니까 공자가 번번히 무슨 말을 하다가서는 멋진 애기라고서는 `소자야 지지하라 아이들아 기록해라` 그래서 노트북을 들고 다닌것 같은데 그러나 어떤 자문을 보니까 공자가 가장 중요한 말 중에 그 제자 자장 이라는 사람이 그 공자의 말씀을 어디에다 적어 두냐면 서신 이라구요 한문으로 저 어려운 문자 입니다. `쓸 서` 자에 신사 라고 하는 신 잔데 신이 썼단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공자가 중한 말 하니까 자장이가 제자 자장이라는 사람이 얼른 그걸 받아 쓰는데 어디에다 쓰냐면 자기 띠, 벨트 자기 띠 에다가 얼른 적었어요. 연필도 없는데 그 뭘로 적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걸 보니까 그 노트북을 안 들고 다닌거 같아요. 나도 어릴적에 노트북 안들고 다녔습니다. 그 요즘 학생들이 그저 공부는 하지 아니하고 노트나 몇 권 들고 들락날락 하는데 약간 한심 스러운 생각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이하 중단.

- 네. 양 박사 께서는 노트를 안 쓰셨다고 그랬는데 그러면 그 때 노트에 해당하는 걸 뭘로 쓰셨 습니까?

- 나 또 얘기 할까요?

- 네.

- 네. 근데 옛날에는 물론 중국서 대쪽인데 조그만 대쪽, 한 나라 때 유명한 그 정현 이라는 학자가 정전 시경에 중국 시경에 주석을 내지 않았습니까. 한데 조그만 쪽지에다 자꾸 그 기록해서 붙였어요. 그니까 옛날도 물론 대쪽으로 만들은 조그만 쪽지는 그야말로 노트죠. 뱀부 노트. 뱀부. 대로 만든 쪽지를 사용한 모양 입니다.

- 네. 그 지우개는 뭘 쓰셨습니까?

- 그 때 그 지우개 아 그 지우개 얘기라면 내가 그 서당에 다닐 적에는요. 노트북이 없구요. 분판 이라구요. 그 종이에다가 콩풀을 먹여 가지구서 기름을 먹였는데 그 썼다가 지우면 그만 이에요. 물만 발라 가지고 지우면 분판 이라구요 그걸 밤낮 들고 다녔습니다.

- 네. 최희준 씨는 지금까지 쓴 노트를 모았다고 하면은 얼마나 될까요? 분량이.

- 글쎄요. 국민학교 6년, 중 고등학교 6년, 대학교 남들은 4년에 다니는거 저는 5년에 다녔습니다. 17년 이죠?

- 17년 이요.

- 네. 17년간 쓴 노트를 전부 모으면 얼마나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에 하두 노트 하고만 씨름을 해서 이 다음에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면은 노트하고 아예 관계가 없는 그런 직업을 가지리라 이렇게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가수가 됐는데. 가수가 되면 노트하곤 아무 상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 이었어요. 아직도 오선이 그려져 있는 음악노트 하고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 네. 조영남 군은 요새도 노트 필기 열심히 잘 합니까? 조영남 군은 이렇게 외모로 봐선 노트 필기 전혀 안 할것 같아요.

- 낙서가 반 이상이 될거에요.

- 글쎄 그럴 것 같아서 아까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근데 낙서는 가을에 더 잘 하게 됩니까? 여름에 더 잘 하게 됩니까?

- 여름엔 잘 안되구요. 가을에가 한결 낫지요.

- 그니까는 낙서는 가을에 하고 여름에는 아마 우수에 잠기는 모양 이지요?

- 그런 편이에요.

- 네. 그 옆에 리타 김도 상당히 그 좋은 기분인거 같아요. 표정이 상당히 밝게 보이는 군요. 이쪽에서 봐선.

- 네. 조금전에 최희준 씨 말씀이나 옆에 있는 조영남 씨 말씀이나 들으니까 참 재밌군요. 그리고 저 최희준 씨 말씀이 뭐 학교 다닐 때 노트하고 너무 씨름을 해서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면은 노트하고 씨름 안하는 가수가 되겠다고 그러셨는데 역시 뭐 사람은 죽을 때 까지 노트 하고는 등한시 할 수 없지 않을까요?

- 노트 하고... 네. 확실히 그 의문형의 종지사로 던지시니까 이 쪽이 아연해 집니다. 근데 저 학생회장 하는 최청평 군이요. 최청평 군은 노트를 좀 소상히 하는 편인거 같아요.

- 고맙습니다. 소상힌 하는데요. 제 글씨가 원래 하도 잘 써서 어떤 교수님은 하도 그 강의를 빨리 하시다 보면요 다 쓰고 나면 글씨가 발가락 글씨로 돼있는게 많이 있습니다. 뭐 그것 빼 놓고는 하느라고 했는데요.

- 네. 그 뭐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속기 하느라고 하다 보니까는 속기로 된 거겠죠 뭐. 리타 김에게 노래를 부탁 합니다. `슬픔의 계절` 을 다같이 박수로 부탁해 주시기 바랍니다.

♬ 슬픔의 계절 - 리타 김

- 노래는 `슬픔의 계절` 이었지만은 그의 그 표정이나 몸짓은 대단히 흥겨운 것 이었습니다. 노트에 관한 얘깁니다. 김두희 교수님께서.

- 아까 이 양 박사께서 노트나 가지고 다니는 대학생이 많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거기에 관련해서 제가 한 번 봉변을 당한 일이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학생들이 조는것 같아서 재밌는 얘기를 하느라고 서울에 여자 대학생 중에는 노트 영시 감사회니 뭐 이런 식으로 사실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노트나 끼고 다니고 읽지도 못하는 셰익스피어 원서나 들고 다니는 사람이 간혹 있다. 이런 것이 무슨 대학생이냐. 이건 아버지의 돈만 축내는 사람이다. 이런 말을 했어요. 했더니 이것이 저희 학교 학생의 걸 프렌드로 돌아가 가지고 돌고 돌아서 그 쪽 학교로 가 버렸습니다. 그 얘기가. 하루는 학교에서 강의를 끝내고 나오는데 저를 면회하러 온 사람이 있다고 그래요. 가봤더니 그 학교 학생 20여명이 성군 작당을 해서 저를 맞이하고 있잖아요? 연구실로 들어 오라고 그랬죠. 아무튼 들어 오라고 했더니 대뜸 그 대표가 하는 소리가 "선생님은 저희들을 모욕 하실 작정 입니까?" "모욕 할 작정이다." 이제 그랬죠. 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읽지도 못 하는 원서를 가지고 다니고 알지도 못 하는 노트를 끼고 다닌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난 그런 사람도 있다고 그랬다. 아닌 사람은 그만이고, 그런 사람 있다고 그랬으니까 거기에 불평인 사람은 그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 이니까 난 그런 사람 학생 아니라고 그랬으니까 그 사람은 나오고 나머지는 다 가라 그랬어요. 그랬더니 하나도 없이 다 가 버리더구만요.

- 이군철 교수 께서는 그 학생들 답안지 채점 하시다가 그 이름은 모르더라두요 글씨만 보시며은 아 이건 여학생 글씨구나 이건 남학생 글씨구나 그런거 좀 분간이 되시나요?

- 네. 그건 분간이 됩니다. 원래 눈이 나빠서 다른건 잘 분간을 못 하는 데요. 눈 나쁜 것이 늘 한 이었었는데 오늘 미스 아이 특히 금상 탄 분 옆에 있어서 오늘 아주 영광스럽 습니다. 김 박사께서 노트나 들고 다니는 학생이다 그랬는데 이 노트나가 그 대단한 얘깁니다. 이 노트를 들었다는 것은 신분증 대용을 합니다. 요새는 모르겠습니다만 과거에 뭐 점심 이라도 먹고 돈이 모자라면 신분증 대신에 노트를 맡겨야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 대단히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이 노트가 또 이 그 뭐라할까 쓸 용도가 많습니다. 운동장에 가면은 방석 구실도 하구요. 또 여름에는 부채질도 하고, 보기싫은 사람 만나면 그 눈 가리고 하는 것도 좋구요. 또 뭐 연애 편지 초안도 쓸 수 있구요.

- 그니까 노트 가지고 연애 편지는 쓸 수 없고 초안 정도는 쓸 수 있다. 상대방 이성을 대단히 존중하는 그 마음씨를 우리가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군철 교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근데 이군철 교수 옆에 앉아있는 미스 아이요. 미스 아이는 무슨 메달을 탔나요?

- 금메달...

- 네. 그 우리나라 ...에선 금메달 못 타는데 미스 아이 콘테스트 라도 있어서 하여튼 금메달 리스트가 나왔으니 좋습니다. 그러면은 허은 양은 중학교 다닐 때요.

- 네.

- 중학교 다닐 때 노트 필기 같은거 남 빌려 남이 못 해서 노트 빌려 주기도 하고 또 빌려다가 노트 필기도 하고 그랬나요?

- 그랬어요.

- 그랬어요? 근데 그 한참 생각하고 얘기 하는거 봐선 굉장히 신중한 아가씨 인것 같습니다. 근데 노트 필기 하는데 그 제일 어려운게 뭐에요? 전에 중학교 다닐 때요.

- 인제 결석을 했을 때.

- 네?

- 결석을 했을 때 인제.

- 아 그 시간에 결석을 해서 남의 노트를 빌려다가 노트를 배낄 때.

- 그것도 인제 결석한 다음 날 금방 하면 좋은데요. 인제 시험 때 돼서야 이제 그 전날 막 배끼느라고 그런 적이 참 많아요.

- 네. 그러면 저 이 은메달 탄 김정신 양 이요. 김정신 양은 중학교 때 노트 필기 하고 대학 때 노트 필기 하고 어떻게 달라요?

- 아주 달라요.

- 근데 아마 저 미스 아이들은 말 보다는 눈의 표정으로 다 대답들을 하는것 같아요. 사실 사회가 곰처럼 미련해서 그 다 표정으로 얘기 대답들 잘 하는걸 자꾸만 짖궃게 물어 보니까는 결례가 되는것 같습니다. 이서구 선생님께서.

- 많이들 웃으셨으니까는 옛날 얘기 한 마디 하도록 하겠습니다. 노트 중에 제일 가치있고 훌륭한 노트를 가진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의 옛날 분들 입니다. 왜그러냐 하면은 노트는 종이를 우선 연상을 하고 아까 대로 만든 죽책도 말씀 하셨는데 그 후로 나온 것은 상아로 만든 노트를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상아 노트가 어디서 어떻게 쓰여졌느냐 그런 말이 나올텐데 우리나라의 옛날 어른들의 그 화상을 보면요 관대에 조복을 하고 정장을 한 분은 반드시 손에다가 큼직한 상아로 만든 호리 라는 것을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왠만한 노트 반 장 만한 널벅지가 안팎으로 있는데 그래서 호리라고 해요. 호리라는 것은 기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왕의 어전에 나갈 때는 그걸 반드시 들고 나가는데 그걸 왜 들고 나가냐면 왕이 무슨 명령을 내리면은 그걸 반드시 거기다 적어가지고 잊지 않고 나가 가지고 그대로 시행하기 위해서 그걸 들고 들어가고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서 필기 하는건 저는 못 봤습니다만은 그 의미가 그랬데요. 거기다 연결해서 보면은 옛나르이 말이 어른이 말씀 하시면은 반드시 적어서, 적어서 들고 나와서 시행을 하지 그냥 듣고만 나오는 법이 없다 이런 얘기 해서 거기하고 부합되는 얘깁니다. 그래서 아마 노트 치고는 우리나라 금관 조복에 신하가 들고 들어가는 상아 호리 아마 제일 고귀한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 됩니다.

- 네. 그니까 그게 인제 지금의 메모지 같은 구실을 했겠군요?

- 근데 그 적었단 말은 못 들었어요. 제도가 그런 모양 이에요.

- 김두희 교수께서.

- 학생의 노트 얘기를 했으니까 저 대학 교수의 노트 얘기를 제가 하나 하죠.

- 네.

- 아 이건 일본서 있었던 얘깁니다. 저희 학교 얘기가 아니고. 그 대학 교수가 이 학교에 들어 온 다음부터 그 노트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서 10년 동안을 그저 그대로 매년 강의를 그 노트를 한 자도 빠뜨리지 않구서 읽어 내려 간다는 거에요. 그래 작년에 노트 받아 쓴 사람하고 금년에 노트 받아 쓴 사람하고 비교해 보면 하나도 차이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 학생이 하루는 장난을 할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선생이 갑자기 그 강의 도중에 배가 아팠던지 잠깐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 동안에 그 선생 노트 한 장을 찢어 놨거든요. 찢어 버렸어요. 했더니 선생은 찢은지도 모르고 그 다음 계속해서 또 읽고 있더라 그러거든. 그러니까 학생이 "선생님 그건 작년 거하곤 좀 다릅니다." 그러니까 선생이 화를 내면서 하는 소리가 "그럼 노트야 매년 조금씩 달라지지 매년 같을 줄 알아?"

- 이번에 파니 시스터즈의 노래를 듣겠습니다. `언니, 시집 좀 가.` 다같이 박수로 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언니, 시집 좀 가 - 파니 시스터즈

- 파니 시스터즈의 노래 였습니다. 저 연세 대학교 녹양회 회장 이영신 양이요. 이영신 양은 우리가 지금까지 쭉 노트에 관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이 양이 또 생각하고 있는 노트에 관한 얘기를 좀 해줬으면 합니다.

- 제 경우는 뭐 딴 것은 변변치 않지만 뭐 노트 필기만은 변변해요. 어느 정도냐 하면 뭐 교수님의 강의 내용은 물론 이구요. 재채기 소리까지 받아 쓰는 지경이기 때문에 전 잘 모르지만 남들이 잘 돼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노트 없는 그니까 공자님의 제자 같은 학생들이 백과사전 역할을 하는 동시에요 또 저의 유일한 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시험 전 일주일 가량은 제가 설정 하기를 노트 필기 보호 강조 기간 이라고 설정해서 아주 꼭 보관 하는 형편에 있습니다.

- 근데 그 노트에 관한 얘기를 그렇게 간략하게 재미있게 유머러스 하게 얘기 하기도 사실 어려운 얘긴데 그래서 아마 녹양회 회장도 하는 모양이죠? 근데 도서관 학과에 남학생들도 많은가요?

- 네?

- 남학생.

- 남학생이 약 반반 이었는데 요새는 도쿄 학생들이 있어서.

- 반반이요?

- 반반이 좀 넘... 여학생이 좀 적습니다.

- 그러면은 저 이 야유회 같은데 나가더라도 상당히 좋겠어요. 다른 과 보다.

- 때로는 좋지만 안 좋기도 해요.

- 그러면 저 이 남학생들이 혹시 그 이 양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데 노트를 빌려 달라는걸로 자꾸만 좀 이렇게 의사 표시를 할려는 학생은 혹시 없던가요?

- 글쎄 그럴리가 있겠어요?

- 네. 이 양은 극구 부인 하지만은 우리가 이 양의 말하는 속도 라든가 이 양의 말하는 표정으로 봐서는 진심을 감추는 듯 합니다. 저 최청평 군 이요.

- 네.

- 최청평 군은 아까 그 노트를 하는데 글씨가 뭐 그렇게 썩 좋지는 않다고 겸손에서 얘기를 했지만 사실은 뭐 빠르게 불러 주시는 교수님들의 강의 같은 것은 속기 하는 식으로 해야 할 거에요. 그러다 보면은 자기도 자기가 쓴 글씨를 모를 때가 있나요?

- 네. 저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저의 경우요. 저희 한무영 박사님 시간 같은 경우는 하도 그 강의의 속도가 빨라서 말이죠 한참 쓰다 보면은 그게 도데체 내 글씬지 남의 글씬지 몰라 볼 정도로.

- 한참 쓰다 보면요.

- 네.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 네. 근데 저 이 최 군은 공식적인 석상에서 여자와 여자의 틈 사이에 앉아 본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까?

- 저 그렇지 않아도 제가 퍽 마음으로 기쁘게 생각을 했어요.

- 네.

- 그래 어떻게 이걸 표현 하나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근데 조금 아까 이군철 교수님 께서 바로 그 옆에 미스 골드가 있어서 퍽 기뻐 하신다고 그랬지만 사실은 아마 미스 골드는 이군철 박사 보다 절 좋아하실 겁니다.

- 이런 경우에는 마이크를 이 교수께 드릴 수가 없습니다. 김두희 교수께 드리겠습니다.

- 아니 이런 때는 이군철 교수께 마이크를 드려서 사실은 날 더 좋아 할거다 하는 그런 무슨 말씀 이라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그걸 안 듣구서 저한테 돌리는데요 다시 노트 얘기로 돌아 가지요. 아까 이군철 선생 께서는 노트가 여러모로 쓰인다 그랬고 또 아까 이영신 양은 또 노트가 무슨 도난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얘길 했는데 그 깔게 깔고 앉는 수가 많은데요. 그 중에 곤란한건 시험 때 펼친 채로 그 의자 밑에 깔고 앉는거 그리고서는 선생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무릎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재주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데 그거는 조금 곤란한거 같아요. 그건 정도가 아니고 사도 같습니다. 네.

- 노래 듣겠습니다. 김하정 양 에게 부탁을 해서 `야생마` 를 들어 보겠습니다.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 야생마 - 김하정

- 김하정 양의 노래 `야생마` 였습니다. 노트에 관한 얘긴데요. 조영남 군이요. 조영남 군은 그 반쯤은 노트에 그 낙서로 노트를 장식 하신다고 얘길 했는데.

- 네.

- 그 대개 낙서 하는거는 뭐 글자를 이렇게 좀 써 보는 건가요? 아니면 뭔가 그래도 사연을 좀 쓰다 말다 쓰다 말다 그런가요?

- 그게 대중이 없는데요.

- 네.

- 제가 가령 이제 쭉 어렸을 때 부터 쭉 노트에 보면 있는데요. 대개 인제 정확한 데이타를 낼 수 있는거는 국민학교 때는 뭐 별로 여자를 몰랐기 때문에 서부할극 같은 거를 그리구요. 그 다음에 중학교 올라 와서는 가끔 저는 남녀공학 다니는 학교 다녔거든요. 2학년 제 밑에 학년에서 제일 공부 잘 하고 얼굴도 괜찮게 생긴 여자애 이름, 참 좋아하는 걔도 약간 좋아 하긴 했어요 그 때. 근데 고등학교 올라 가면서 부터 이제 무슨 영 이면 영 뭐 이렇게요 짧게 탁 해가지고 계속 적어놓고 굵게도 썼다 크게도 썼다가 낙서. 조금 고학년 올라가면서 마릴린 몬로도 나오고 이랬는데 대학교 땐 이제 쭉 좋아하는 여자 이름 근데 너무 많은 것 같았어요. 여자이름 그 칼라가요.

- 네.

- 그래서 제가 아직 장가를 안 갔거든요? 그래서 이제 결산을 하는 날에는 그 노트를 쫙 꺼내 가지고 누가 제일 많이 올랐느냐 따져 가지고.

- 양주동 박사 께서.

- 내가 좀 계속 해보지요. 아까 현대 대학생들이 노트만 몇 권 들고 다니는것을 좀 경멸적으로 얘기 했는데 그 어째 그랬냐면 내 추억이 그래요. 과거에 내가 젊어서 일본 가서 대학에 다닐 적에 그 때는 무슨 저 프린트도 안하구요 교수가 순전히 노트만 시킵니다. 한데 그 내용이 시시껄렁 해요. 제 1장 무슨 교육의 개념 이러구서 부르는데 그 때는 받아 써야 뭐 시시한 내용 이에요. 까짓거 뭐 말 하나 마나 한데 그런 추억이 있어서 내가 노트를 경멸 합니다. 하지만은 현실적으로 내가 대학에서 오래 가르쳐 본 결과 그 학생들의 공부 한 태도를 보면은 그 노트북만 점검 하면 압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은 노트가 정연 하구요 잘 써있습니다. 특별히 여학생이 그렇구요. 그 시시한 학생들이 노트보면 이제 누가 말씀하신대로 그 보면은 여자아이 나체화나 무슨 배우의 그림이나 그려져 있구요 첫째는, 둘째는 받아 썼다 하더라도 좋게 말하면 글씨가 낙화유수 입니다. 낙화 떨어지는 꼴 흘러가는 물 같은 글씨를 썼고 나쁘게 말하면 개발세발 도저히 무슨 글잔지 알지 못하는 글자를 써 놓고 또 어떤 학생은 아주 백지예요. 들고만 다니는데 그 자네 이거 노튼가 백진가 하고 물으니까 공책 아닙니까 공책, 공책 이라고. 공책 아닙니까. 그 내가 그 공 자가 빈 공 잔가? 확실 한가? 그 난 공부하는 책이라고 공부 공 잔줄 알았지. 아 빈 공 자가 확실 합니다. 내가 말에 몰렸어요. 그런 학생도 있고 그런데 그런데 그 공책 이라는게요 사실 나도 사용을 합니다. 그러는고 하니 여러분 다 아시겠지요? 유명한 작가 18세기 인가요? 사무엘 버틀러는 위대한 소설가요 시인 이었지만 그 분 늘 노트북을 들고 다녔어요. 어드매 갈 적에 마다 무슨 감상이 있으면 거기다가 쓱 적거든요. 그래서 위대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종은 그보다 더 먼저는 물론 사무엘 버틀러 보다도 중국에 당나라 때 이하란 사람은 노트북이 아닙니다. 핸드백이에요 핸드백. 핸드백을 누가 제일 많이 들고 다닌지 압니까? 당나라 때 이하 입니다. 그 시인 인데요. 그 친구 어드매 소풍 나가면은 주머니 주머니를 목에다 걸고 다녀요. 그래서 무슨 감상이나 꽃을 보거나 무슨 구름을 보거나 무슨 감상이 있으면은 얼른 메모를 적어서 합니다. 그러면 저녁에 보면 가득 있어요. 그 주머니 가운데 그래서 시를 썼지요. 헌데 나도 그걸 모방 해가지고서 조그만 메모장을 들고 다녀 봤는데 그 어디가서 내가 술이 얼근해서 아주 무슨 당장 사상이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그 우주 자연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아름다운 여자의 그 육체를 볼 때 마다 무슨 위대한 사상이 떠올라요. 그래서 잔뜩 취해서 포도주 먹고 잔 뒤에 썼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술이 깨서 보니까 아주 개수작 이에요. 그래서 난 노트라는 걸 과히 믿지 않습니다. 큰 효과를 못 봤어요. 노트 북 보다도 노트 브레인 이죠. 머릿속에다 노트가 돼야지. 까짓거 뭐 책이라고 들고 다니는 친구는 뭐 안됩니다. 그만 합시다.

- 네. 그니까 노트북 보다는 노트 브레인을 얘기 해 주셨는데 이군철 교수께서.

- 아 지금 노트의 그 낙서 얘기가 화제니까 그 쪽으로 돈거 같은데 노트를 간혹 학생들이 잃어버린걸 보면 대개 노트에 낙서 돼있습니다. 옛날 학생 보다 요새 학생들이 그 보다 더 합리적이 돼서 그런지 모르지만 옛날엔 그 과목이 10개면은 노트도 10개, 이렇게 돼있던 것이 보통인데 대개 요새는 어떻게 하나에 다 전부다 적더만요 모든게 다. 소위 그 잡기장 이라고 하는데 거긴 으레히 낙서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대개 그 낙서 한 것을 보면은 그 학생이 그 지금 어느 정도의 지적 수준에 도달 했느냐 이걸 볼 수 있습니다.

- 네.

- 에... 아주 아 어 감탄사가 많은거 볼 것 같으면 아직도 고등학교 학생의 그 지적 수준을 면하지 못했겠구요. 또 보다 더 이 무슨 심각한 얘기가 있달 것 같으면 그 학생이 지금 고민하고 있구나 그 동안에 결석 한 이유도 알겠다 이걸 알 수 있구요. 그 다음에 아까 최 군이... 아 이건 뭐 미스 아이를 두고 지금 뭐 변호 할 얘기는 아니구요. 글씨를 못 쓴다 노트 글씨 보면 자기가 보기에도 대개 알아 보기가 힘들다 이렇게 말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공부 잘 하는 학생 일수록 이 글씨를 막 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빌려달랠 위험성이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 최 군을 내가 알기에 공부를 잘 합니다. 그래서 뭐 노트 필기를 잘 해 놓은 학생은 그 시험 때 자꾸 빌려달래서 무서워서 학교도 못 나오는 형편인데 아마 최 군도 그래서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부러 못 쓴 것이지 이 정말 못 쓴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 합니다. 이것은 나의 경험대로 말 한 겁니다.

- 네.

- 저 선생님, 이젠 미스 골드가 이군철 교수님을 좋아 하셔도 괜찮습니다.

- 김두희 교수께 화순을 돌립니다.

- 노트 라는건 역시 안 하는 것 보다 하는 것이 정리를 한다던가 기억했다 잊어 버리는 걸 방지 한다던가 그런것이 역시 그런 점에는 좋은것 같구요. 요새는 한 권만 가지고 다닌다 하는데 그것도 역시 일종의 합리정신의 전 표현 이라고 봅니다. 집에서 타오기는 열 권 값 다 타왔을 겁니다. 근데 아홉 권 값은 뭐 커피 값으로 나갔던지 대포 값으로 나갔던지 무엇에다 좀 더 유용하게 썼을거고, 노트야 뭐 한 권 으로도 넉넉 하면 여러 권 사서 여백을 남길 필요가 없으니까 경제적으로 썼다고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낙서 얘기가 나왔습니다만은 어느 그 대학 교수가 처음에 그 시골 고등학교를 나오고 이 일본에서 동경에 어느 일류 대학에 들어 갔더니 그 교수라는 분이 처음에 나와서 대뜸 영어로 강의를 시작 하더라는 거에요. 근데 자기는 하나도 못 알아 듣겠거든. 야 이거 큰일 날 학교 들어 왔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 하구서 옆에를 다 돌아 봤더니 다 그래도 열심히 쓰고 있더라는 거에요. 저 사람들은 다 받아 쓰는데 난 못 쓰니 이거 어떡하지. 이젠 틀림없이 낙제 했다. 그래서 옆에 사람 걸 가만히 봤더니 만화를 그리고 있더라는 거에요 만화. 낙서지요. 그래서 옆에 사람 보고 `여보오 이제 저 선생이 강의 하는걸 하나도 못 알아 듣겠는데 당신도 보니까 못 알아 듣는 모양인데 이제 어떡 하죠?` 그러니까 `상관 없어요. 선생도 모르는 걸 뭐 자기도 모를 거에요.`

- 노래 듣겠습니다. 조영남 군 에게 `맨 위드 아웃 러브`

♬ 맨 위드 아웃 러브 - 조영남

- `맨 위드 아웃 러브` 조영남 군이 노래 했습니다. 겨울빛에 완연 합니다. 12월 오늘은 연세 대학교를 찾아서 연세 교육 방송국 개국 9주년을 기념하는 교내 행사에 부처 290회 공개방송 `노트` 라는 얘깃거리로 진행을 했습니다. 프로듀서 박재곤, 기술 이선주, 반주 노명숙 씨가 지휘하는 동아방송 전속 경음악단, 사회에 전영우 였습니다.
해태제과 제공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을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 합니다.

(입력일 : 200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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