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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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유쾌한 응접실
외국인 - 미국사람 연탄 먹는 사람 많이 있습니까?
외국인
미국사람 연탄 먹는 사람 많이 있습니까?
1968.04.28 방송
국내 최고의 석학과 지성인들이 고정출연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던 ‘유쾌한 응접실’은 동아방송 개국 때부터 폐국 때까지 계속 방송된 ,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방송시작 때부터 10여 년 동안 청취랭킹 3위 이내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며, 교양적 요소와 계도적 기능을 화합시켜 오락프로그램의 품위에 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싱그러운 계절, 대학가에는 젊음이 약동 합니다. 259회를 맞는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 해태제과 제공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 유쾌한 응접실의 전영우 입니다.
오늘은 한국외국어대학 개교 14주년과 교내방송 개국 7주년에 부처서 이문동에 자리잡고 있는 외국어대학 캠퍼스를 찾았습니다. 얘깃거리는 `외국인`으로 정했습니다.
현미 씨의 노래를 듣습니다. `gone`

♬ gone - 현미

- 네. 현미 씨의 노래 재청 하겠습니다. `바람`을 부탁해 봅니다.

♬ 바람 - 현미

- 현미 씨의 `바람` 이었습니다. 다음은 외국어대학에서 만든 특별 프로그램을 잠시 듣겠습니다.

- 한국 외국어대학. 우리의 실력. 진리, 평화, 창조.

- 네. 이 자리에 나오실 손님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단골에 이서구 씨, 양주동 씨, 김두희 씨, 새 손님에 외국어대학 박희영 교수, 헤이만 교수, 그리고 영어과 4학년 김두용 군, 이 밖에 여러분의 노래 손님이 이 자리에 나오시겠습니다.
오늘 얘깃거리는 `외국인` 입니다. 근데 우린 이 자리에 외국인을 한 분 모셨지만은 헤이만 교수는 숫한 외국인을 아마 같이 자리 하고 있을것 같습니다. 헤이만 교수 께서요 우리나라 말 배우실 때 그 기억 하시기가 상당히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우리나라 말 좀 소개해 주시지요. 어떤 말이 제일 어려웠던지요.

- 예. 그 외국인 이 저 한국말 기억하는데 참 고생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저 경어법도 고생 많이 합니다.

- 네.

- 제가 몇 년 전에 작년에 이 말 했습니다. 몇 년 전에 약방 가서 은단 그 때 사고 싶습니다. 약방 가서 제가 그 약방 주인한테 이런 말 했습니다. 실례지만 여기 연탄 있습니까. 그 때 주인 여기 연탄 없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연탄 찾으십니까.

- 그 약방 주인이요.

- 예. 예. 제가 대답. 예. 연탄 잘 먹습니다. 그 때 주인 깜짝 놀랐습니다. 아, 정말 연탄 잡수... 네. 잘 먹습니다. 아니 저 미국사람 연탄 먹는 사람 많이 있습니까. 예. 많습니다. 그 그때 약방 주인 말씀이 미국사람 참 이상한 사람이다. 가서 연탄 집이 파는 집이 앞에 있습니다. 가서 많이 잡숴요.

- 네.

- 한국말 최근에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 네. 그 다음에는 인제 분명히 발음을 하셨겠군요. 그 말을요.

- 발음이요.

- 네. 은단이라는 말을 발음을 잘 하셨죠? 그 다음에는.

-예. 예. 지금 은단 발음 예.

- 양주동 박사 께서는 그 영어를 배우실 때 어려웠던 점은 없나요? 이제 헤이만 교수의 얘기에 비교 될만한.

- 그 그런 얘기는 없습니다만은 전 어려서 한문만 공부 하다가 영어 공부가 늦었어요. 지금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있습니다만은 그 영어공부가 늦었는데 `무선생 영어자통` 이라고 하는 선생 없이 영어를 자통 한다는 책 가지고 혼자 공부를 했어요. 발음도 말이 아니지요. 그런데 I go to school 에 school 난 ch는 `츠`로 발음 하는 줄 알았어요. 아이 고우 투 스촐 그랬죠. 스촐. 또 다우트 의심이란 자는 doubt 아니에요? 난 도부트. 아 엠어 베리 도부트. 또 그 3인칭이란 말을 몰라서 20리 걸은 얘긴 뭐 여러분도 아시죠? 3인칭이 뭐냐 말이죠. 동사 3인칭이 주어가 되면 동사에다 s자를 붙인다고 그랬는데 다른건 다 알겠는데 그 3인칭이란 말을 알 재주가 없어요. 세 사람이 뭘 그러냔 말이죠. 그래서 그거 한마디 알기 위해서 내가 그 때 눈길 20리를 40리를 걸어서 소학교의 교장을 찾아 갔습니다. 일본사람 인데. 선생님 3인칭이 뭡니까. 몰라요. 그 교장이 엉터리 교장 이거든요. 그래 교과서에 없습니다만 나오다가 어느 젊은 교관한테 물어봤습니다. 나카무라 라고 하던가? 그 친구한테 내가 물어봤죠. 선생님 3인칭이 뭡니까 하니까 그 친구가 말하기를 내가 1인칭 이요. 아 내가 1인칭. 아 이거봐라. 니가 2인칭 이다. 아 니가 2인칭. 나와 너의 인제 3인칭이라 그래요. 아 이 기가 막힌거 하나 배웠거든요. 그런데 내가 일대의 천재가 일본사람 한테 졌어요. 그래 약오르길래 그거 아니면 고등학교 면학에서 난 내 글에도 없으니까 전국의 고등학교 선생님을 위해서 내 한마디를 붙입니다. 그 3인칭 이라는 말을 몰라서 내가 큰 망신을 했어요. 약오르거든요. 나오다가 다시 들어 갔습니다. 나카무라 선생. 왜요. 말똥은 몇 인칭이요 말똥. 말똥이 몇 인칭이냐니까 그 친구가 인칭이라는건 사람인줄 알아요. 글쎄 말똥은 그 인칭이 아닌데. 여보오. 말똥도 3인칭이야. 돌아와서 그 아래 유명한 내 글이죠. 집에 돌아와서 내가 1인칭이요 니가 2인칭이요 나와 너의 말똥 쇠오줌이 다 3인칭이더라. 그 유명한 글 입니다. 그냥 애써 본거 였습니다.

- 김두용 군은 영어과에 다니는데요. 지금 현재 공부하는 일 이외에 학내 활동은 무슨 일을 하나요?

- 영자 신문을 맡아서 만들고 있어요.

- 영자 신문이요.

- 네.

- 근데 그런 일 하면은 원고를 갖다 자기가 직접 그 쓸 때도 있을거 아닙니까? 편집 하는 일 이외에두요.

- 네. 그 지금 저희들 학교에는 그 신문 체제가 학생들이 주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자 신문인 경우에 제가 사설을 쓰고 있고, 그 1면 기사를 각 기자들이 배당해서 취재 해가지고 쓰고 있습니다.

- 네. 그러니까 영자 신문에 그 논설 위원도 하시는 거군요.

- 그렇죠. 논설 위원, 주필 뭐 다 하고 있죠.

- 그럼 그 최근에 쓰신 논설은 어떤 논설 이었나요?

- 이번에 쓴 것은 외대 개교 기념일을 맞아서 전통 관계 얘길 썼죠.

- 네.

- 그 14년 쯤 됐으니까 이제는 전통이 있을 때도 됐다 하고 얘기를 했구요.

- 네.

- 전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교수는 학생들이 좀 새로운 각도에서 그 학교의 특징 이라던가 또는 학생들이 해야 할 의무 같은것을 분석해서 토론하는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보자고 이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 네. 그러니까 영어로 쓰신 거죠?

- 네. 물론 영어로 썼습니다.

- 노래 듣고 지나가겠습니다. 이찬 씨 에게 `time and the river` 라는 노래를 부탁 하겠습니다.

♬ time and the river - 이찬

- 미국의 여류 소설가 그 펄벅이 쓴 것 가운데 번역해서 `숨은 꽃` 이라는 소설을 읽어 보면은 서양 사람하고 동양 사람이 서로 그 마귀할멈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그 다릅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 눈알이 까맣고 머리가 까만 동양 사람을 마귀로 생각을 하고, 동양에서는 콧날이 오똑하고 눈이 움푹 패이고 눈알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그런것을 마귀할멈으로 생각한다. 그런걸 그 펄벅이 쓴 `숨은 꽃` 이라는 그 번역해서 그런걸 소설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근데 이찬 씨는 그 우리가 외국인 하면은 우선 눈에 띄는것이 살갗이 좀 다른걸로도 우선 할수도 있잖아요?

- 네.

-콧날이 오똑 하다거나. 그런 그 외국 사람을 구분하는 그 살갗 피부색 이런거에 대해서 좀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제가 외국 사람을 본건 제가 10살 땐데요.

- 네.

- 저는 저 어릴 때에는 전부 동양인 인줄 알았죠. 세계가.

- 그렇죠.

- 근데 10살 때 처음 보니까 코도 크고, 눈이 쑥 들어가고 말이죠.

- 네.

- 그 때 생각엔 처음엔 무서운 생각이 들었구요. 그 다음엔 외국 사람이라 그러면 대게 서양에 있는 사람을 대게 우리는 말 하잖아요. 서양에 있는 사람인데 대게 영국 사람, 블란서 사람 이런데 블란서 사람들을 대머리가 많이 까졌다 그러고 영국 사람들은 뭐 피부가 좀 빨갛다 그러고 또 뭐 스카트 사람들은 뭐 스카치 한잔 먹으면 얼굴이 새빨개 진다는 그런 소리도 듣고. 근데 또 하나는 그전에 제가 반도호텔에 스카이라운지에 있을 때 인데요. 어떤 사람인데 보니까 미국 사람 같진 않아요. 그래서 제가 있다가 어디 나라 사람이냐 그러니까 자기는 저 스웨덴에서 왔다고 그래요. 너희들의 조상은 누구냐 그러니까 우리 바이킹 그런단 말이죠. 그래서 아 그러냐고 말이지. 그래서 저보곤 너희 조상은 뭐냐 그래서 제가 있다가 저는 조상이 바로 징기스칸 이라고 그랬죠. 그러냐고.

- 박희영 선생께서. 오늘 외국인에 관한 얘기니까는 뭐 제한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외국인에 관한 박 선생님 말씀을 좀 듣고자 합니다.

- 네. 제가 맨 처음에 외국인을 대한것은 우리 고향에 조그만한 마을에 마을 보다도 학교가 있는곳에 중국인의 포목상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비단이 장사 왕서방 이지요. 그래서 우리 어릴 때 보니까 얼굴이고 뭐고 완전히 우리하고 같은데 말이 전혀 달라. 그래서 정말 신기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그 옆에 앉아서 두 중국 사람이 오랫동안 주고받고 하는 그 중국어를 30분 이상 한시간을 듣고 있어도 한 마디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과연 외국인이다. 중국은 외국인이다. 이렇게 된 것 입니다.

- 이번에 노래 손님 청해서 노래 듣겠습니다. 동방성애 양에게 `십자성 브루스` 를 다같이 부탁해 주시기 바랍니다.

♬ 십자성 브루스 - 동방성애

- 한곡 더 청합니다 `그대 떠나던 날` 다같이 뜻을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대 떠나던 날 - 동방성애

- 동방성애 양의 노래 `그대 떠나던 날` 이었습니다. 오늘은 외국어대학을 찾아서 `외국인` 이라는 얘깃거리로 유쾌한 응접실 공개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동아방송이 개국한지 만 5년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단골 손님으로 나오신 이서구 선생님께 동아방송 개국 5주년에 부치는 간단한 말씀을 좀 듣고자 합니다.

- 동아방송이 나올 때 쯤은 벌써 다른 방송이 먼저 나와 있어서 뒤를 따라오는 그 속도가 얼마나 되는가 해서 정말 기대를 걸고 봤습니다. 저는 방송국에 원고를 팔아먹는 장사치니깐요. 팔로가 느는건 좋으나 그게 잘 육성되어 커가는 것이 저한테는 더욱 유리하니까는 친척은 아니지만 난 뭐 여쭤보진 않았습니다만은 어떻게 그 신문사 사층에다 조곤조곤 가 보면 제일 규모도 아주 규모는 있지만은 스페이스가 좁아서 절절 매는데 그 되게 용해요. 그래 내 그 방송 될 줄 알았어요. 좁은 방에다요 남의 방송국 반도 안되는 방에다가 남이 쓰는 책상 3분의 1밖에 안되는 스페이스를 가지고 거기 쪼그려 앉아서 쓰는데 모든일이 거기서 다 순조롭게 되는걸 보고 이렇게 규모있게 하면 된다 그거는 동아일보의 전통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제가 기대를 걸었더니 제가 눈이 밝습니다. 잘 돼갑니다.

- 사실 이렇게 찬사를 해 주셨는데 실은 어떻게 보면 아전인수 하시는 뜻도 있습니다. 까닭은 동아일보 창간 당시에 기자로 활약하신 적이 있거든요. 누구한테 들은 얘깁니다만은 아실런지요. 그 무전여행으로 널리 알려진 분 가운데 김찬삼 씨라고 아실겁니다 아마. 이 분이 아프리카를 여행할 땐데 어느 그 달빛도 없는 저녁 이었답니다. 그 날은 유난히 바람기도 없어서 상당히 그 더운 날씨였는데 멀리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 동구밖이 보였던거 같습니다. 밤길을 가는데 저기서 그 비추는데 가만히 보니까는 하얀 그 빨래, 하얀 빨래가 그 빨랫줄에서 나부끼더랍니다. 이상하다 바람 한점 없는데 왠 그렇게 흰 빨래가 저렇게 빨랫줄에서 나부끼나 그러면서 그 동네 가까이 가봤답니다. 가까이 가 보니까 그게 빨래가 아니라 흑인들이 거기에 모여서 춤을 추는 그런 장면인데 모두 색깔이 검기 때문에 옷 빛깔만 보였답니다. 그게 전부 희게 보였단 얘기죠. 그 얘길 듣고 한 2분 후에 저도 웃었습니다. 저도 중학교 다닐 때 그 영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게 영 기억에서 사라지질 않는데 그 센프란시스코에 아마 중국인들이 많은것 같아요. 거기서 전차를 아마 처음 중국에서 센프란시스코에 이민 온 분이 전차를 탔는데 그 차장이 미국 분이죠. 미국 분이 어디가냐 그러니까는 대답을 할 리가 없죠. 이 양반이 영어를 잘 못하니까는. 그래 이 양반이 아마 중국말로 한 모양 입니다. 대충 너 어디가냐 그러는거 같아서 `나 아` 자 `아` `갈 왕` 자 `왕` 진화동, 나는 진화동을 간다 그런걸 아마 중국음으로 한 모양이에요. 그게 뭐라고 하는지요. `워 왕 진화동` 그러나요? 그런 식으로 했더니 그 차장이 잘 알고 아 그러냐고 알겠다고 그러면서 그 차이나 타운에서 내려 주더라는데 `워 왕 진화동` 하는게 마치 `아이엠 고잉 투 차이나타운` 하고 비슷하더랍니다 의미가. 그래서 그런거라고 그런 생각도 납니다. 양주동 박사께서.

- 네. 그 외국인의 특징은 대게 물론 세가진데요. 첫째는 피부하고 용모가 다르고, 둘째는 가장 중요한건 말 인데요. 셋째는 물론 풍속, 습관, 종교 그런건데 여러분들이 다 개인의 경험을 얘기 하니까 나도 개인의 경험을 몇마디 얘기 하겠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외국인을 대한것은 물론 어렸을적에 그 때 청나라 땐데요 중국 사람 입니다. 그 때 중국을 대국이라고 그래요. 사대주의로 대국이라고. 대국 사람 청나라 사람인데 그야말로 아까 어느 선생님이 말씀한데로 왕서방, 그 내 저에대한 외국사람 이었습니다. 근데 그이의 말은 내 한문 좋아하니까 `니 디 워지 치판라` `워디 부즈 다올라 통통 무등도` 그런 몇 마디 밖에 몰랐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는 일본 사람인데요. 그 때는 왜놈이라고 그랬죠. 새까만 의복을 입었어요. 그런데 야무지게 생겼더군요. 우리 한국 사람은 뒤꼭지가 넙적한데 나부터도 그런데 이 사람은 뒤꼭지가 톡 나왔어요. 그런데 아 요친구 그런데 말은 뭐 다른건 몰랐습니다. 히떼라 마떼라 동네까라 부산까라. 히떼라 마떼라 동네까라 부산까라에요. 까라란 말이 많더군요. 그래 히떼라 마떼라 동네까라 부산까라 밤낮 그랬죠. 근데 그 말이 저희 나라 말이면 다 이상하게 들린게요 여러분 외국어 대학생이니까 다 알죠. 영어의 바바리안. 그 야망이라는 말이 바르발 아니에요 바르발 바바리. 그 히랍 사람이 히랍 사람 자기 외국 사람보다 바르바르발바 히떼라 마떼라 동네까라 부산까라 바르바르 그래가지고 바바리안 이니까 그 이상할게 없고, 그 다음에 물론 서양 사람인데 그 땐 양고자라 그랬어. 양고자. 양고자 온다고. 서양 사람인데 홍모 털이 붉고, 눈이 파란데 나도 그때 그 저 눈깔이 하도 파랗길래 그 벤허 벤허 시험하기 위해서 막대기 가지고 가서 앞에가서 그 제법 보더군요. 그 다음에 넷째로 본 사람은 물론 뭐 그 흑인 입니다. 까만 사람인데. 그 분에 대해서는 내가 말 실수 할까봐 이하 생략 합니다 그만.

- 네. 네 헤이만 교수께서는 우리 한국말 처음 뜻을 모르고 들으셨을 때요 그 한국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떻게 들리셨습니까.

- 네. 그 저 아까 제가 뭡니까 한국말 기억 하는데 고생 많이 했는데 그 외국사람 혼자... 인제... 어 다른... 경어법으로 제가 좀 말씀 합니다. 한국 경어법 그 외국인 참 그것은 참 고생 많이 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우리집에 손님 왔습니다. 그 때 저녁식사 준비 했스빈다. 그때 저 손님 바른쪽으로 있었습니다. 그 왼쪽으로 우리집 개 있었습니다. 그때 저 식사 손님 그때 주었습니다. 그때 또 개 식사 주었습니다. 제가 그때 경어법 잘 못했습니다. 제가 개한테 이런 얘기 했습니다. 당신은 밥 많이 잡수세요. 그리고 손님한테 이런 말 했습니다. 너는 많이 먹어라.

- 그니까 그 반대로 경어를 쓰셨군요.

- 네.

- 존대 할 사람은 존댈 안하시고, 존대 안해도 될 그 짐승 한테는 존댈 하시고 그 유머 합니다.
네. 그 처음에 전 물어보기를 우리나라 말 소리가 어떻드냐 여쭤 봤더니 아마 이분은 미리 요다음에는 요런 얘기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가 사회보는 제가 묻는것을 우선 그런걸로 생각 하시고 더 재미있는 그런 얘길 해 주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헤이만 선생님.

- 아니, 천만에 말씀 입니다.

- 근데 헤이만 선생님 께서는 우리나라 말에 사투리도 좀 아시나요?

- 네. 사투리 조금 압니다.

- 네.

- 제가 뭡니까. 한국 고전 음악 무용 뭡니까 저 배우는 사람 입니다.

- 네.

- 그래서 제가 그 한국말 어디 어떤 연구소 안 배웠습니다. 그 저 우리 선생들 한테 배웠습니다. 국악 선생님 그분 고향이 저 남도 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남도 사투리 조금 합니다.

- 그럼 조금 소개해 주십시오.

- 그 제가 몇 년 전에 우리 가야금 선생님 처음 만나서 우리 가야금 선생님이 이런 말 하셨습니다. 제가 저 제가 왔당께로.

- 또요. 왔당께로 그래요.

- 네. 왔당께로.

- 네. 고 다음에는요. 또.

- 그 다음에 말 없는디.

- 그 다음에 또 있습니까?

- 그리고 저 제가 몇 년 전에 어디 경상남도 진주 한번 갔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요.

- 네.

- 남도 군요.

- 제가 그 때 어떻게 무슨 여관 있었습니다. 그 여관에 그 때 나갔습니다. 그 여관 주인이 말 했습니다. 가이십시데이.

- 아 잘 가십시오 그런걸 가입시데이 그래요.

- 그 제 생각 그 외국 말 입니다. 한국 말 아닙니다.

- 그니까 어떻게 헤이만 교수께서는 한국어에 남도 방언에 조예가 깊으십니다.
리나 박 양을 청합니다. `서산마루 지는 달`

♬ 서산마루 지는 달 - 리나 박

- 그 박희영 선생께서요. 오늘 우리가 외국인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아까는 처음에 그 중국 사람에 관한 얘기를 아까 해주셨는데 다음에는 좀 나라를 다른데로 좀 돌려서 얘길 좀 해주셨으면.

- 외국인이라고 하면은 우리가 아주 먼 아주 특수한 이런 존재로 보기가 쉬운데 우리가 실제로 내 자신이 외국에 가 있을 때에 늘 외국인 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은 우리가 전부 다 어디로 가면은 곧 그때 부터 외국인 입니다. 외국인이지 한국인이 아닙니다. 그 때 부터는. 그래서 그런 어색한 느낌을 우리가 느끼는데 내가 여기와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볼 때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 내가 외국의 거리를 헤맬 때 바로 내 모습이다. 이렇게 느끼고 모든것을 이해를 하고 양해를 하고 이렇게 할라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외국인이라고 하면은 제일 특징의 큰것이 말 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언어 입니다. 다른 종교나 혹은 풍습이나 이런것은 깊이 들어가기 전에는 모르는거고 우선 당장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언어가 제일 곤란인데 그래서 언어라는 것은 단순히 외국에 갔을 때 뿐만이 아니고 국내에 있어서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서 아까 사투리의 문제가 나왔습니다만 제 자신이 서울에 올라온 것도 7년 전 입니다. 7년 전에 그 때 올라오더라도 아직까지 제 자신이 그 때는 완전히 참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이와같이 완전한 서울말로... 그 당시에 제가 이런일이 있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늘 같이 나갈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하고 같이 시내에 나가면은 나갈라고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고 나가더라도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일체 말을 하지 마라. 아버지 말을 하지 말고 내가 대신 하겠다. 지금 현재 이 대학에 2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만은 큰 계집애 인데 이것이 절대 그 경상도 말을 못하게 하는 겁니다.

- 네.

- 지금은 그러나 그것도 다 그런 외국인 국내에 있어서의 외국인 시대는 지나가고 지금은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이와같이 완전한 표준어를 쓰고 있습니다.

- 네. 하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외국인만 그 외국인인줄 알았더니 국내 외국인도 있군요.

- 국내 외국인 얘기 제가 좀 해도 되겠습니까.

- 네.

- 그 국내 외국인 얘기가 나와서 생각이 나는데요.

- 네.

- 저녁으로 신문을 만들다 이렇게 무교동을 지나오다 보면 국내 외국인들 참말 많습니다. 나이 한 40~50 되신 분들 업계에 동부를 하고 말입니다. 술이 거나해서 전부 그 일본말을 하더군요. 술만 취하면 일본말로 이렇게 하시고 또 다른 그 주석에서도 전부 그 술 취한 사람들은 대게 영어나 일본어를 쓰는 사람을 제가 많이 봤는데 그 분들이 대게 아침이 되면은 직장에 출근해서 전부 자리를 비운다고 그래요. 왜그러느냐 그러니까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시면 어깨가 쑤셔서 일을 못하겠다. 이런 분들이 그 우리나라 외국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 네. 가만히 여러분 가운데 보니까는 일본어과 재학생만 박수를 안 치는것 같습니다. 김두희 교수께서 그 우리 일상 대화에 보면은 외국어를 많이 섞어 쓰는 경향도 없지 않은데 그런 경향을 좀.

- 김 군 인가요? 네. 김 군이 여러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뭐 일본어 뿐만이 아니고 각국어를 다 우리나라 사람은 외국어에 조예가 깊어서 대화하는거 보면 다 잘 섞지 않습니까?

- 네.

- 뭐 다방 해야 될거를 티룸에서, 약혼자 피앙새 하고, 뭐 다방 마담을 만나가지고서 저 코너에 조금 데리고 나가서 얘기를 하고 다시 들어갔더니 시보리를 가져 왔더라. 근데 마담하고 요 다음에 일요일날 놀러가자 그랬더니 들은 척도 안해서 쿠사리 한번 줬다. 뭐 이런 말인데 아까 이 헤이만 선생께서 외국 사람이 우리말 배우는데 기억에 몹시 곤란을 일으켰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아마 그 외국분들 그러실거에요. 이 국내에서 자기 나라에서 배워가지고 왔는데 와 보니까 지방 사투리가 있어서 그게 통하지 않더라 이런 경우에 아마 그런것이 많은가 봅니다. 해방 전 얘긴데요. 함경도에 이제 미국 사람이 선교사로 왔는데 말이죠. 그 대게 여러분 뭐 남자 여자 다 배워가지고 왔는데 자기가 유숙하고 있는 집 부인이 애를 욕하는데 보니까 사내 한텐 간나라고 욕을 하고 계집애 한테 간나새끼라 아 저 남자한텐 간나새끼라 하고 여자한텐 간나라고 뭐 이렇게 욕을 하니까 아 남자는 간나새끼 여자는 간난가 보다 그래서 그 이튿날 교회에 나가서 이쪽에 앉은 간나 새끼들 그리고 이쪽에 앉은 간나들 다 조용히 하십시다 그랬다고. 네. 얘기가 있는데요.

- 그와 비슷한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한국말을 배우는데 뭐 단어 외우기가 참 힘들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길가에 보니까 사람이 하나 죽어 자빠졌더래요. 옳다. 옳다. 한국 사람은 사람이 죽었단 말은 뭐라고 하나 좀 배워가지고 가야겠다. 실제로. 그래 누가 하나 슥 지나가다 보더니 `아 그 괴했군` 그러더래요. 괴했다는 말이 아 그 사람이 죽는걸 괴했다고 그러는구나. 근데 그 다음에는 `아 이거 밥 숟가락을 놨네` 이런단 말이야. 밥 숟가락을 놓는게 죽는거다. 근데 고 다음 사람도 `어 올라감사 했소` 또 이런단 말이야. 고 다음에 인제 `뒈졌다 이거 뒈졌어` `허 이거 뻗었네` 이런단 말이야. 그래서 이 사람이 질색을 하고 도망 갔데요. 우리나라말 얘기 어렵습니다. 정말.

- 국내 외국인이라면 뭐 그런 외국말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은 읽지 못하는 타임지 라던가 뉴스위크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도 국내 외국인에 속하겠죠. 그 집에 가서는 뜯어서 담배 말이 피우는데 넣고 댕기기만 하는거. 그것도 국내 외국인.

- 네. 사실은 이 자리에 박형준 씨가 사실은 얘기를 가장 많이 하고 싶었을 겁니다. 근데 저는 일부러 기회를 안 드렸습니다. 이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박형준 씨가 서반어 학과를 지망하시게 됐던건.

- 글쎄요.

- 입학 당시에 그 구술시험 그 당시로 돌아가서요.

- 그때 뭐 기억이 납니다만 시험을 볼 때 말이죠?

- 네.

- 뭐 우선 혀가 돌아가나 안 돌아가나 그거부터 보더군요.

- 어떻게.

- 아르르르르~ 뭐 해보라 그러고. 그게 안 되면 불합격이에요. 다행이도 저는 그게 아마 됐던 모양이죠? 지금 기억이 안 납니다만은.

- 그 우리 외국인 또는 외국에 관한 얘긴데요. 박형준 씨 생각 나는거 있으면 하나쯤 소개해 주시죠.

- 글쎄 뭐 우선 중국인 하고 일본인 얘기는 빼구요.

- 네.

- 제가 맨 처음에 외국인을 봤다면은 저 이 소련 사람들이에요. 이북에선 로스케라 그러죠. 그러니까 이제 해방 되구서 제가 한 3년 후에 월남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때 볼 때는 외국인들이 전부다 야만인인줄 알았어요. 왜그러냐면 이 저 소련 사람들 말이죠 보니까는 돼지를 날고기를 그대로 먹구요. 그건 또 괜찮은데 고등어도 날걸 먹더군요. 그래서 아 저렇게 생긴 사람들은 전부다 야만인이구나 했는데 여기와서 보니까 또 그렇지도 않아요. 그래 맨 처음에 외국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 네.

- 소련 사람은 그 사실인지는 몰라도 오징어 사다가 구두창 대달라 그랬다면서요?

- 박형준 씨의 노래를 듣습니다. `작은 새` 다같이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작은 새 - 박형준

- 다음은 `4월의 사랑` 을 다같이 부탁해 주시기 바랍니다.

♬ 4월의 사랑 - 박형준

- 네. `4월의 사랑` 졸업생의 노래, 재학생의 박수, 선후배 교환 순간 입니다. 상당히 그 흐뭇한 `4월의 사랑` 과 같은 분위기 입니다.
젊음이 약동하는 4월의 대학가 오늘은 한국 외국어대학 개교 14주년에 부처서 `외국인` 이란 얘깃거리로 즐겨 봤습니다.
구성 박재곤, 기술 이선주, 반주 노명숙 씨가 지휘하는 동아방송 전속 경음악단, 사회에 전영우 였습니다.
해태제과 제공 259회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을 마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입력일 : 200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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