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손님 - 주태익, 홍승면, 김흥, 전혜린
새손님 - 복혜숙
노래손님 - 나애심, 김용만, 박재란, 박경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유쾌한 응접실의 전영우입니다.
저희 동아방송에서는 개국을 한지 얼마 안됐습니다만, 개국하면서 새로이 `유쾌한 응접실`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였습니다. 새로 마련한 유쾌한 응접실은 가정적인 오락프로라고나 할까요 단골손님, 새손님, 노래손님 이런 여러 손님들을 이 응접실에 모시고서 노래를 하면서 또는 노래를 들으면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화제를 서로 말하고 퀴즈를 풀면서 청취자 여러분이나 또는 방청객 여려분과 함께 가정적인 분위기로 젖어들어가는 이 시간 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자리에 단골손님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제 옆에 앉아 계신 분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방송 극작가이신 주태익씨, 그리고 다음에 앉아 계신 분이 본사 논설위원이신 홍승면씨, 다음에 앉아 계신 분이 농장을 경영하고 계신 김흥 선생님, 그리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전혜린 선생님 이상 네분의 단골손님을 소개해드립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방송국에 들어오셔서 언제든지 기준이 어린이가 되겠습니다만, 방송 아가씨로 시작해서 방송 아주머니를 거쳐서 지금은 방송 할머니의 애칭을 어린이에게서 부터 받고 있는 복혜숙 여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복혜숙 여사가 저희 오늘 유쾌한 응접실의 새손님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밤의 화제 거리는 저희들 방송 시작한지도 얼마 안됐습니다만, 요즘 라디오 TV를 통해서 방송이 상당히 화제 초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화제는 방송으로 정했습니다.
그럼 첫번째 노래 손님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애심입니다.
네, 나애심씨가 불려 드릴 노래는 `셰인` 입니다.
♪ 영화 `셰인`의 주제가 - 나애심 ♪
애수와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은은한 노래 나애심씨의 영화 `셰인`의 주제가 `셰인`이라는 노래를 여러분이 들으셨습니다. 나애심씨 지금 노래를 해주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노래를 하기 전에 상당히 긴장을 하신것 같습니다. 한 알기로는 십 이삼년 전에 저희들 귀에 노래를 들려주시기 시작하신 걸로 기억을 하는데 그떄부터 노래를 하기 시작하셨으면 여러 청중앞에 서시는 것이 그다지 뭐 어렵게 또는 떨리게 생각은 안 드시겠는데 오늘은 상당히 동요하는 것같습니다. 언제 방송엔 처음에 데뷰하셨나요?
- 그러니까 1.4 수복 당시 그때부터 중앙방송국에..
처음으로요? 처음에 노래하신 노래는 뭐였던가요?
- 맨 첨에는 `정든 화랑님` 이라고 하구요, 히트 된 거로서 알려져 있는건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그 다음에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든가 `애수의 바이올린` `미사의 종` 여러가지 있죠? 헤아릴 수 없는... 디스크로 음판에 취입하신 것은 얼마나 됩니까?
- 한 200여곡
200여곡요. 그렇게 될 겁니다.
- 그래도 취입은 한 200여곡 했어도 레코드판 가지고 있는 건 불과 20곡도 안돼요.
네. 오늘 노래손님으로 나애심씨가 처음에 나오셨는데 저희들 화제에 참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노래 못지 않게 방청객 여러분이나 청취자 여러분도 마찬가지 시겠습니다만, 노래와 경음악 시간하고 연속 방송극 시간 이 시간이면 여러분이 많이 기다려 지시는것 같은데, 이 자리에 마침 또 주태익씨께서 단골손님으로 나오시고, 또 주태익씨의 `솔뫼마을의 미륵`이라는 방송극이라던가 `당산방죽에 물이 넘친다` `이것이 인생이다` 여러가지 방송극들을 많이 써 주셨는데, 방송극을 중심으로 좀 말씀을 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방송극 얘기를 갑자기 하라면 막연합니다. 사실 방송을 쓰긴 쓰지만 서도 방송극에 대해서 별로 그 한 8년 됐는가요.. 8년 전에는 제가 방송을 들어본거 같지도 않고 남 하는거 보지도 못했고 제가 써 갔구서 가서 몇차례 내는데 스튜디오 구경을 못했어요. 그래 한번은 조남석씨가 그 때 연출계장으로 계셨는데 조남석씨 더러 "스튜디오 구경이나 한 번 하자"고 "아 여보시요, 방송을 몇달씩 쓰면서 아직 스튜디오 구경도 못했냐고" 그래 한참을 웃은적이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방송극에 대해서 혹시 여기 우리 같이 오신 손님들이라든가 또 혹은 누가 묻는다면 몰라도 퍼뜩 재밌는 생각이 안나는 구만요. 어떻게 저 복혜숙선생께서는 저 보다 훨 방송극에 있어서는 아주 오랜 선배시니까 재밌는 말씀 좀...
근데 보기에는 오히려 주선생님 머리가 희끗 희끗하신것 같은데. 나이는 더 주선생님이 더 드신것 같습니다만...
- 아네요. 제가 나이는 먹었지만 전 여자이니 만큼 뭐라고 그럴까요 허연 머리 가지고 다니는 것이 싫어서 염색해서 그래요. 근데 그건 딴 얘기구요. 방송극 얘기를 하시니까 주선생님이 절 지명을 하시듯이 하시니까 제가 얘기를 해야 겠어요. 지금 뭐 연속극이요 단막극이요 여러가지로 발전이 되서 그런지 많았는데요. 일정때지만 벌써 근 40년 됐겠습니다. 젤 처음으로 방송극 한 얘기를 한번 해야되겠어요.
- 그때는 원근에 거리감이라던지 이펙트 뮤직이니 이런 무슨 효과 도구도 없고 그런거 생각지도 않고 그저 방송극을 한 번 시험으로 해보자 하는 얘기를 해서 그때 `극우회`라고 연극단이 있었어요. `조선극우회`라고 하는요. 그때 처음으로 방송하는데 아저씨로 하고 제가 12살 먹은 소년 역을 했는데요. 그 선생님이 지금 한 분 꼭 살아계신데 `극우회`에 참여 했던 분이 한 분 살아계시는데 변규정선생님이십니다. `조선극우회`에서 처음으로 제 손을 붙들고 연극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시기도 한데, 방송극에서도 젤 첫 번 지도를 해주신 선생님이세요. 무대에서 하는것과 똑같이 하는데 효과는 내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는데 제가 어떡하다 거리감을 내게 됐는가 하는 걸 지금 말씀드리... 그 때는 통 강습이니 이런 게 없기 때문에 강습선생들에게 가끔 얘기를 합니다만, 제 체험과 경험으로서 거리감을 내게 되었고, 효과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 그 때는 할머니가 뭐라고 그러는고니 지금 연극하러 다니는 것도 원통해 죽겠는데 이게 또 방송을 한다니까. 그 때는 방송 마이크가 이렇게 간단하게 되질 않고 주먹만 한게 팔모로 진게 가운데 있고 거미줄 처럼 이렇게 달리고 이만하게 된 게 가운데 있는데 꼭 거기다 대고 이렇게 해야 나오더구만요.. 집에 가 재미있게 얘기할려고 그 얘기를 했어요. 요만한게 꼭 거미줄처럼 됐는데 거미가 요렇~게 붙은것 처럼 됐더라고. "거기다가 대고 얘기를 하면 혼을 뺏겨서 니가 넋이 달아난다. 도무지 거기 똑바로 서서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해요. "아이~ 할머니 괜히 그런다"고 그러긴 했는데. 자꾸 방송실에 들어가니까 지금처럼 방송실을 만들어 논 것도 아니고 저~ 체신부 뒷 방에 방 하나를 빌려서 포장으로 모두 치고 했어요. 방음 장치라고는 포장친거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하는데 또 그걸 놓고 정말 이제 `슈팅`이라고 하니까 괜히 맘이 떨리고 그 앞에 가기가 싫더군요. 내가 옆에서 쓰레기 통에서 뭘 주으면서 그 때 지금은 없습니다만 그 땐 `모지`라는게 있었어요. 남창동하고 북창동에 가면 `모지요~ 모지요~`하고 밤 새벽녘에 외고 하는 그런게 있는데. 그런걸 먹는 아저씨들 하고 얘기하는 건데, 거리감은 통 누가 일러주지도 않고 연출자도 없었으니까 무대극처럼 그냥 하는데 내가 마이크가 꼭 바로 서기가 싫어서 옆에서 한거이 멀리서 대답하는 것같이 들리더라고.. 들은 분이 와서 "아니 어떻게 알아서 그렇게 거리감을 꼭 같이 잘내느냐고.." 칭찬을 한 번 들어봤어요. 일종의 미신으로 해서 거기 꼭 가면 혼을 뺏긴다는 할머니 말에 조금 비켜서서 했던게 거리감을 내게 됐습니다.
두번째 노래 손님이 나오셨습니다.
- 방청객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제가 김용만입니다.
김용만씨가 불려드릴 노래는 `황성옛터` 입니다.
♪ 황성옛터 - 김용만 ♪
그윽한 옛날을 더듬는 김용만씨의 노래 `황성옛터`를 우리가 들었습니다.
김용만씨도 방송하고 인연을 가진지 오래된 줄 아는데요. 방송하고 인연을 가지시면서 잊을수 없는 사실이 있을것 같습니다. 김용만씨의 그런 얘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 잊을 수 없다는 일은 뭐 제가 생각하기엔 딱 하나 있습니다. 그 하나 있는 게 제가 이발소를 한 번 갔습니다. 이발소에 가서 제가 젤 처음에 제가 처녀방송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마침 그 이튿날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하고 면도를 하는데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래 제가 깜짝 놀랬습니다. 제 목소리이니까요. 깜짝 놀래다 벌떡 일어나다가 그만 코를 조금 베었었습니다.
- 지금 그 상채기는 아직 안남아있죠?
- 근데 이게 별로... 뭐 그렇습니다.
- 아니 그런데 이거 새빨간 거짓말 아니에요?
- 거짓말 아닙니다.
- 아니 김용만씨는 혹시 봉이 김선달이 하고 어떻게 친천관계 안되세요?
-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제가 그래 코를 갖다가 밖에 나가면 띄었다가 도로 붙입니다.
다음에는 덴마크에 오래 계셨던 김흥 선생님에게 마이크를 좀 돌려 드리고 싶은데. 덴마크의 방송형편을 좀 간단희 저희들 함께 얘길 듣도록 해주십시요.
- 여러분이 다 아시다 싶히, 덴마크라고 하는 나라는 인구가 상당히 적은 나랍니다. 인구가 4백30만 가량 밖에 안되는 나라가 되서 방송국도 한국과 같이 많이 있지 않고 코펜하겐 이런데하고 오후스래는 두 곳에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방송은 상당히 보급되고 있구요. 방송국도 상당히 발달되고 있습니다.
거기도 연속방송극 같은게 많이 나가나요?
- 네, 연속방송극도 있고 특히 이 퀴즈가 상당히 유행되고 있습니다.
퀴즈프로그램이요? 대중가요는 어떻습니까?
- 대중가요는 뭐 이 저 미국의 재즈나 상당히 많이 하고 있구요..
덴마크에서도 주태익 선생님의 작품도 많이 나갑니까?
- 네, 중계방송으로 들은거 같습니다.
중계방송으로 들으셨습니까? 독일 방송 형편은 어떻습니다. 전혜린씨는 거기 한 번 갔다 오셨다고...
- 그러니까 독일에서는 여러분 생각할때 음악방송을 많이 할꺼라고 생각할텐데, 음악은 별로 안 해요. 특히 유행가는 특히 별로 안하고 유행가 방송은 몇번 들은 기억이 없어요. 그러고 방송극을 하는데 우리하고 달라서 15분짜리 연속 방송극 이런건 없고 전부 두시간이나 세시간 짜리 긴 방송극을 해요. 그 대신 한주일에 두 번 하는데 화요일에 이제 제가 가 있던게 뮌헨인데 거기서 뮌헨 방송국에서는 화요일에 현대방송극을 하고 두시간짜리 그리고 금요일엔 고전방송, 고전이라 하면 여기서 생각하는 그런 고전이 아니고 사극 같은 그런거 아니고 괴테나 쉴라 그런 작품 방송극을 세시간 짜리도 하고 두시간 반짜리 그렇게 하는 거 같았어요. 아마 좋은 독일어를 보급할려는 그런 목적으로 하는것..
홍승면 선생님은 주로 신문사에 많이 일을 하시기 때문에, 어떻습니까?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방송들으실 시간도 좀 처럼 어렵겠습니다만, 방송들으시면서 이것만은 잊을 수 없다 뭐 그런 얘기거리 없겠습니까?
-글쎄요. 역시 시간이 없어서 방송을 듣는 기회가 여간해 없습니다만, 방송 가운데 이것만은 잊을 수 없는 방송이다 이렇게 되면 역시 저의 경우는 1945년 8월 15일의 일본 천황의 방송 입니다. 그날이 참 그게 더운 날이었었는데요. 전 온돌방에 나가 자빠져 있으면서 방송을 들었습니다만. 잡음이 몹시 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심한 잡음 가운데서도 일본이 이제는 두손 들었구나 그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것을 알게 되니까 그 무더운 날이 갑자기 시원해지고 그저 한 아이스크림을 열개 한꺼번에 먹은 것 같은 기분들더군요.
아이스크림 좋아하시는 군요. 다음에 또 노래손님을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 팬 여러분, 참 오래간만에 뵙겠어요. 제가 박재란입니다.
박재란씨의 노래는 `얄라 셩`입니다.
♪ 얄라 셩 - 박재란 ♪
박재란씨의 노래 `얄라 셩`이 끝났습니다. 방청객 여러분 가운데 보면은 박재란씨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볼려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좀 더 노래소리를 가까이 들으실려고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뵙기에는 누구를 꼮 그 기다리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그런 표정같이 저희들은 느껴지고 있습니다. 박재란씨의 노래가 그렇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박재란씨의 노래는 팝퓰러 송도 잘 부르시고 민요같은 노래도 잘 불러 주시고 상당히 그 박재란씨의 노래가 저희들 귀에 익은데, 박재란씨가 방송국에서 방송에 좀 출연해 주십사 하고 출연청탁을 받은 것은 기억하신다면 대게 몇 건이나 되겠습니까?
- 네 몇 곡이요?
몇 건. 몇번이나 방송국에 한번 나와달라는 청탁을 받았는지..
- 그야 수없죠.
수없어요? 그러나 대게 줄여서 말씀하신다면요.
- 아이 글쎄요 갑자기...
그렇죠? 네 그렇다며는 뭐 좋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그 박재란씨도 나오시고 해서 저희들 노래손님도 상당히 식구가 불었습니다. 단골손님, 새손님 뭐 잠잠하신데 이번에 여러분에게 방청객 여러분께서도 참가하셔도 좋겠습니다만 우선 이 단골손님, 노래손님, 새손님에게 간단한 문제를 드리겠어요. 아까 김용만씨나, 나애심씨나 나오셨을 때는 이 문제를 드리질 않았는데 이번 차례는 어떻게 박재란씨 나오신 다음에 문제를 드리게 되겠습니다. 간단한 퀴즈문제를 드리 겠습니다. 첫번째 힌트를 들으시고 그 분이 누구신가를 하는 것을 맞춰주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힌트!
--------------------------------------------선생님의 고향은 역시 서울이신가요?
- 네, 그렇습니다. 서울에서 낳고 여태까지 서울에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가족은 몇분이나 있습니까?
- 가족이 일곱입니다.
선생님이 그 일을 하신 것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였습니까?
- 그것이 1932년에서 1947년까지 입니다.
그 일을 그만두시고 난 다음에 무슨일을 하셨습니까?
- 네, 그 일을 하고 난 다음에 곧 음악대학에 가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 음악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네, 이 분이신데요. 지금 현재 음악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고, 서울에서 나셔서 쭉 계시고, 이런 분이신데 단골손님이나, 또는 새손님, 노래손님 가운데서 이 분이 누구신지를 맞춰주시기 바랍니다.
- 이거 이름을 대야 됩니까?
그렇지요.
- 네.
- 그 일에 종사했다는 그 일이래면 방송사업입니까?
그렇습니다. 네, 그 일은 방송사업입니다.
- 방송도 특히 음악관계겠군요.
그렇죠. 음악관계죠.
- 그 분이 그러면 키가 큽니까? 작읍니까?
글쎄요, 그 선생님 키가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으신 것 같습니다.
- 아..
이러다 보니까. 이거 이거 스무고개 게임이 돼 가는것 같은데... 전에 있었던...
- 직접 노래를 불렀어요?
아마 이 분이 노래 부르신 건 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 그럼 작곡 하셨어요?
글쎄요.
- 그 분 성함이.
복선생님은 잘 아실 것 같은신데 어떻게...
- 잘 아니까 가만히 앉았어요.
- 아니 아시면 빨리 말씀을 하셔야지...
- 김씨입니까? 이씨입니까?
- 해방후에는 방송국장님도 하셨던 이해구 선생님 아니십니까?
네, 맞습니다. 지금 퀴즈 드렸던 문제 이해구 박사님이었습니다. 이제 주인 되시는 이해구 박사님이 나오겠습니다.
이리 나오시죠. 이박사께서는 부인과 함께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박사님께서 지금 퀴즈 하는걸 들으셨겠습니다.
- 무슨 얘기허느라고 못들었습니니다.
그러니까 누구하고 얘기하셨습니까?
- 그게 아마 명시해서는 안될 사람하고 얘기한거...
바로 옆에 앉아 계시는군요. 부인께서는 지금 이박사님 바로 옆에 앉아 계십니다. 방송 저희 처음에 경성방송국이었던 가요? JODK라고 청취자께서... 방송국이 개국해가지고 얼마 됐을때 이박사님께서는 방송국에 들어 가셨었었나요?
- 건망증이 심해서 자세히 모르겠는데...
복선생님은 아시겠죠?
- 이중방송이 되기 전에 아마 들어 간 것 같습니다. 그 때 윤병남씨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방송국에 그 때라면은 뭐 상당히 오래된 얘기겠는데요. 아까도 그렇지 않아도 복선생님이 뭐 거미줄 같은 걸 가지고 얘기를 한다 그러니까는 댁에서 어떤 분이 그래선 안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얘길하는데, 그 때에 거미줄 같은 마이크를 썼을 때 방송국 형편을 얘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 글쎄올씨다. 그 좀 지금과 예전과 좀 비교해서 얘기를...
그렇습니다. 말씀하기시 편하시게 해주십시요.
- 그 전에는 편리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뭔고 허니 지금같이 방송국이 여러군데가 생기지가 않고 또 광고방송도 없고 단일방송이기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대로 했습니다. 청취자에겐 좀 미안했겠죠. 그래 미국 사람이 와서 얘기하기를 뭐라 그런고니 가련 12시에 뉴스하고 12시 반에 음악하고 1시에 강연하고 그러고 4시까지는 다 쉬고 담배피고 놀고 그럽니다. 미국 사람이 와서 그렇게 쉬었다가 청취자를 잃어버리면 어떡하냐고. 그래 그게 무슨 소린지를 몰랐습니다. 그 사람은 24시간 동안 1분 1초도 방송이 나가야지만, 딴 방송국에 청취자를 뺏기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그래 그게 뭔지 몰랐는데 지금 알고 보니까 동아방송국에서 아마 그렇게 고생을 하실 것 같기 때문에 지금에 비하면 그 때가 편한 것 같구요. 또 반대로 그 전에 어려웠던 건 뭔고니... 아마 아까도 얘기 했을지 모르지만 그 때는 녹음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복혜숙 선생님 같은 분이 늦게 오시면 야단입니다. 방송국이 뒤집힙니다. 언제나 오실까. 창 문밖을 내다보면 손님이 오시는 건 아니지만서도 괜스리 창문밖으로 고개를 길게 내밀고 이제나 오실까 아닐까 하면 딴 방송국원은 벌써 레코드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체신국에 보고를 합니다. 그 때는 아주 뒤집힙니다.
처음에 방송국 들어가실 때는 거기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 그 때는 원체 채용될적에는 아나운서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말을 더듬는 데도 옛날에는 그런게 다 통했던 모양이죠.
대선배님을 모시고 말씀을 여쭈고 그러니까 상당히 당황하게 됩니다. 저도.
- 뭐 그럴 거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노래손님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라디오를 들으시는 청취자 여러분 저는 박경원입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바라겠습니다.
`바다비야의 여정` 입니다.
♪ 바다비야의 여정 - 박경원 ♪
박경원씨의 노래 `바다비야의 여정`이었습니다. 박경원씨는 지금 현재 가수협회 상임이사라는 총책을 맡고 계신 분이기도 합니다. 근데 늘 소주 한병 쯤은 언제 어디서고 괸찮다고 옆에 앉아 계신 김용만씨에게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박경원씨는 우리가 여러 가지 노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특히 `이별의 인천항구` 그런걸로 익히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박경원씨는 늘 인기가 꾸준히 지속되는 분이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희망 면담`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도 `유쾌한 응접실`의 아무아무게와 얘기를 좀 들려달라 이렇게 희망을 하시면 서슴치 마시고 그 내용을 적어서 저희 동아방송국 제작과 `유쾌한 응접실` 담당자 앞으로 서한을 띄어 주시기 바랍나다. `희망면담`에는 여러분의 청의 의해서 응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그럼 오늘은 중앙공보관장 이십니다만, 저희 아나운서의 역시 대선배가 되시는 윤길구 선생님이십니다. 여러분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에는 종사하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뒤에서 저희 녹음을 해주시는 기술관계 종사하시는 분, 또 방송극을 해주시는 탈랜트들. 작품을 써 주시는 분. 여러분이 계십니다. 저희 그 중에 한 사람이 아나운서인데요 마침 윤길구 선생님께서는 저희 선배님도 되시고 그래서 윤선생님이 지금 저 사람이 나한테 뭘 물어봐줄까 하고 절 훔쳐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8·15를 전후해서 그 전에부터 계셨으니까요 아나운서의 동태를 들려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나운서의 동태라고 할것 같으면 어떤 초첨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이름을 날린 아나운서로는 이재원씨, 민재호씨, 그 다음에 윤영로, 전익국, 평진호 이런 아나운서가 있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은 꼭 얘기를 해야 겠다 방청객 여러분이다 청취자 여러분에게요 그런 아나운서가 있으면 특히 좀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흘러간 목소리의 주인공 들이요.
마 항상 저희들 귀에 익어있는 것이 민재호씨인데요. 민재호씨 축구 중계는 걸작이었습니다. 라디오라는 것이 귀로 듣게 마련이여서 게임 실황을 모릅니다. 특히 운동장에 사람이 없을때는 차가지고 골이 됐단 말씀이죠 된 다음에는 이미 들어간건 확정적이니까 이제 연극을 하는 겁니다. 바로 문 골 앞에서 주고 받고 주고 받고 해서 `슛`하면 틀림없이 백발백중 들어 갈 수 있는 그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의 스포츠는 윤선생님께서는 어떤 스포츠를 중계방송 하셨습니까?
- 저는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자랑거리인 야구중계를 최초로 한 사람이올시다.
야구 중계방송이요. 근데 야구 중계방송을 여기 앉아 계신 분은 그럼 그 분의 육성으로 그 때하던 그것을 한번 들려주십사 이렇게 청하는 분이 더러 계실것 같습니다만..
- 대단히 죄송스러운 말입니다만, 저는 자처하기를 우리 같은 아나운서는 B.C에 속하는 아나운서다. 기원전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실활중계방송을 할 것 같으면 여러분이 잘 알아들으시지 못할 것 같아서 그만 두기로 하겠습니다. 용서하십시요.
- 아나운서님한테 제가 얘기를... 윤길구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게 됐어요. 왜 그런고 하니 내가 아가씨에서 부터 할머니가 됐는데 저 윤길구 선생이 첨 아나운서가 되서 방송국에 왔는데 보니까 사방마다 뾰족한 것을 쓰고 얼굴이 동그스름한 청념이 왔는데 참 귀엽게 생겼더군요. 아 그러더니 벌써 방송국장하고 그러더니 흰머리가 희끗 희끗하고 이제 공보관장이 돼서 난 맨만 꺼꾸로 부르죠 공보장관이라고 근데 지금 아나운서 흉내를 내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단골손님하고 노래손님들하고 또 지금 나오신 여러 선생님들하고 퀴즈 문제를 간단히 해보겠습니다. 다음에 들려오는 동요를 들으시고 가사에 유의하셔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밥상 위에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댓돌 위에 신발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짐수레의 바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학교길에 동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
지금 이제 여기 응접실에 앉아계신 여러 손님들께서 방청객 여러분 께서 도 청취자 여러분께서 다 들으셨겠습니다. 방청객 여러분은 특히 해답을 양편 포스터로 해서 붙여드렸으니까 대개 아시고 계실것 같습니다만.. 윤석중요 윤국영곡인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라는 곡을 들려드렸는데, 지금 이 노래는 나란히가 대관절 몇 번이나 들어갔겠습니까? 복선생님?
- 그럴줄 알았으면 시어볼껄.. 그게 퀴즈 문제로 나올줄 몰라서 못 시어 봤습니다.
다음에 전혜린씨?
- 한 열두번쯤 나오나요?
열 두번은 아니죠. 김흥씨?
- 열 번이 된것 같은데요..
열 번이상은 열 번 이상이죠.
- 열 번이요.
열 번은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 그럼 열 한번이라고.
열 한번은 아닙니다. 조선생님...
- 열 여섯번쯤 되는 것 같습니다.
가깝게 갑니다.박경원씨
- 열 다섯번.
열 다섯. 아닌데요. 나애심씨.
- 저도 그럴줄 알았으면 좀 헤 둘껄
김용만씨.
- 요거 요거.. 열 여덟 개
열 여덟. 그러면은 이번에는 나애심씨하고 특히 복혜숙 선생님을 위해서 가사를 한번 읽어 드리테니 좀 세어 보십시요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밥상 위에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댓돌 위에 신발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구루마의 바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학교길에 동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열 여덥번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다음에는 여기 모이신 방청객 여러분 그리고 라디오를 듣고 계신 청취자 여러분 이 자리에 모이신 새손님, 노래손님, 단골손님 또 두 분 선생님 그리고 다 함께 `송아지`라는 노래는 제창하면서 즐거운 `유쾌한 응접실`을 마칠까 합니다. 네 분이 먼저 선창해 주시기 바랍니다.
♪ 송아지 - 제창 ♪
네, 노래와 얘기와 그리고 퀴즈로 엮어진 `유쾌한 응접실` 지금 까지 나오신 분은 새손님에 복혜숙여사 그리고 단골손님에 주태익씨, 홍승면씨, 김흥씨, 전혜린씨 노래손님에 나애심씨, 박경원씨, 김용만씨, 박재란씨 반주에 DBS앙상블이었습니다.
이상으로 유쾌한 응접실을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입력일 : 2007.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