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0시에 만난 사람. 밤이 깊었습니다. 여러분을 사색과 낭만에 세계로 안내하는 이시간 0시에 만난 사람.
오늘부터는 경제 과학심의위원회 의원 주요한씨를 모시고 여러가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주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네.
-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가장 바쁜 중에 한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주 몹시 바쁘신 생활을 하고 계신거 같아요?
- 네. 무사분주이지요.
- 유사분주시겠지요?
- 매일 강의를 한다해서 시간이 많이 허비하지만 돈은 안 생기는 거에요.
- 하하.
-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 요새는 지금 경제 과학 심의회에 매일 나가고요, 그 다음에는 대한일보사 약간 관계가 있습니다.
- 네.
- 그런 정도입니다.
- 네. 전에 제가 주선생님 말씀 듣기에는요, 우리 한국에서 금화기가 가장 많이 나왔다. 그 만큼 바쁘신 분이다고 표현이 되었다고요? 그런 말들이 있는데요?
- 하하하. 그 지금 얘기하는거로는 회의하는게 많아서 이리저리 많이 불려 다니는데 금화기가 나오는데도 있고 안 나오는데도 있지요. - 네.
- 하하하.
- 그런데 오늘 선생님 이렇게 모시고요.
- 네.
- 앞으로 여러 회에 걸쳐서 또 많은 말씀 들어야되겠는데요. 이번에는 이렇게했으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 네.
- 선생님이 태어나셔서요.
- 네.
- 10대, 20대, 30대 이렇게 쭉 얘기가 나눠지면은요.
- 네.
- 좀 더 알찬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떠시겠십니까?
- 뭐 그렇게 하십시다.
- 네.
- 그러면 좋겠지요.
- 그러면 문단 얘기도 나올 수가 있겠고요.
- 네.
- 선생님 상해시절 얘기.
- 네.
- 언론계에 계셨을 때에 얘기.
- 네.
- 뭐 여러가지가 나올거 같습니다. 그러면 우선 그 선생님께서 태어나신 고향 얘기가 궁금한데요.
- 네.
- 선생님의 고향은?
- 고향은 뭐 평양이 고향인데요, 그러니까 대동강 을 생각을 하고 하지만은, 사실 평양 그 서문밖이라고 하는데. 서쪽에서 낳았어요.
- 네.
- 평양은 동쪽에 있거든요? 서쪽에 보통가라고 하는 조그마한 대동지류가 있는데, 거기서 늘 물장난하고 이런것을 하고 자라났지요. 그리고 내가 평양서 낳아서 학교를 소학교만 평양서 다녔어요. 아주, 국민학교만 말이지요.
- 네.
- 그리고는 일본에 가서 중학교를 다니었는데. 그 당시에 우리 아버지는 그 때에 기독교 예술대학 다니셨거든요.
- 음.
- 그러니까 그 당시에 아직도 머리를 사내가 머리를 땋아내는 사내도 있고, 물론 상투를 툰 사람도 있지만은 나는 머리를 땋아보지도 못하고, 상투를 틀어보지도 못했지요.
- 네.
- 언제나 머리를 깎고서 자라났다고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한개의 새로운 제네레이션이라고 볼 수가 있지요.
- 네, 그렇군요.
- 그런데 이제 내가 1900년생이거든요, 그러니까 10살때 한일합방이 되었단 말이에요.
- 네.
- 그러니까 그 전으로 해가지고 보건소도 생기고 합방해가지고 할때 우리는 어릴때 뭘 모르지만은. 그 어떤 정치적인 물결이라던지 말이에요. 그 외국사람한테 침략을 당하던 반발심이나 이런거를 자연히 알게 되가지고 그것이 이제 일생을 지배를 한게 철학이 되었단 셈이지요. 민족주의다.
- 네.
- 일본을 반대해야된다, 우리가 독립을 도로 살려야되겠다. 그래서 나중에 이제 무슨 문학을 한다던지, 뭘 한다던지 할때에 언제나 그것이 거기에 모든 생각이 지킴으로 하는 그런 해인데. 가령 예를 들어 말하면은, 그 소학교에 다니는데 10살 미만이지요?
- 네.
- 우리가 총을 메고 병식교련을 했어요.
- 아.
- 뭔가하니 하여간에 이렇게 해가지고 나중에 일본사람들하고 싸워야된다는거에요.
- 그 총이 정말 총입니다.
- 하하.
- 어떻게 무거운지 말이에요. 열살도 못 넘겼는데 어른들이 메는 총을 메니 무거울거 아니에요?
- 그렇지요.
- 그래서 어깨가 아프고, 그러면서도 이 놈을 악을 쓰고서 메고 다니고 말이에요.
- 그 총을 어떻게 구입하셨어요?
- 학교에서.
- 나눠준?
- 학교에 본래 그런게 있으니까.
- 네.
- 그 당시에 이제 그 교련형 총이라는게 물론 그 때에 현재로 신식총은 아니고 이제 일본 군대가 쓰다가 남은 총들이지요. 그 이제 그 당시에 학부에서 그런걸 나눠주고 그랬었는데. 그런데 이제 언젠가 아주 겨울 추운날 눈이 잔뜩 왔는데 그 놈을 메고 야외훈련을 나간다고 그랬는데.
- 네.
- 쭉 갔다가 운동장에다 세워놨더니, 선생님이 가만히 보더니 우리 클래스에 있는 애들을 가만히 보니. 하도 너무 어리고 말이에요, 불쌍했던 모양이에요. 너들은 그만 두고 도로 들어가라고 그러거든.
- 아.
- 선생님 명령으로 할수없이 들어갔지요 방에. 들어가서는 다 붙들고 울었단 말이에요. 왜 우리는 나이가 어리다고 안보내주니 말이야, 하하하. 분하다, 정말로 그런 분위기 이지요.
(음악)
- 그 때에 이제 지금 저 순종황제가 즉위를 해가지고.
- 네.
- 일본서 왔던 그 위도라는 통관이 순종황제하고 같이 서순을 한다. 서쪽 관서쪽으로 순행을 하신다 그래가지고 그 때에 기차가 있었으니까. 역에까지 학생들을 다 나오너라. 이런 명령이 내렸지요. 그런데 나오는데 기를 일본기하고 우리 태극기하고 두가지를 갖고 나오너라. 그 때에는 합방이 안되었을때이니까.
- 네.
- 대한제국에 있었거든. 그런데 애들이 기를 둘씩 나눠줬는데 일본기는 다 찢어내고 말았단 말이에요.
-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
- 네.
- 태극기만 가지고 나갔거든요. 그 때에 문제가 되어가지고서는 그 당시에도. 일본 사람이 평안남도 도청에 일본 사람이 부장관으로 있을때 말이에요. 교장이 불려갔지. 너 왜 일본기하고 태극기하고 둘다 갖고 나오라고 그랬는데 일본기는 안갖고 나왔냐? 그 교장이 뭐라고 대답을 했냐면은 그 명답입니다. 순종황제는 한 나라의 황제이고 말이지요.
- 네.
- 위도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권세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신하가 아니란 말이냐.
- 네.
- 신화하고 황제하고 오는데 황제의 그 나라의 기를 받아야지. 신화의 기를 같이 어떻게 받고 나갈수 있느냐?
- 네.
- 만일 일본 황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평양역에 내릴려면 우리는 물론 일본기를 들고 나온다. 할말이 없거든요, 하하하.
- 네.
- 기분이 그런데서 민족주의 이런것이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서. 일평생 이제 말하자면 한개의 인생철학이 거기서 꽉 생겼지요.
- 네.
- 그래가지고 고민이라는게 없다는 말이에요.
- 네.
- 요새는 여러가지로 그 사상문제 뭐 이런걸로 학생들이 동요를 하고 그러지만은. 그 당시에는 이제 우리가 커서 20대, 30대까지 되더라도, 뭐 무슨일 하면은 그저 민족주의라고 하면은 한대로 뭉쳤지. 다른 분열일으킬만한 요소가 없었지요.
- 네. 그 때에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그 어린 가슴에도 민족주의의 싹이 트고요.
- 네.
- 주요한 선생님이 주가 되어서 그런 사상이 움트기 시작했던거 같아요.
- 그렇지요, 그래서 이제 합병한 다음해에 소위 게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 사상론이 생겨가지고.
- 네.
- 그 쪽에 있는 교회 지도자니 학교 선생님들을 쭉 잡아갔는데 우리 반 선생님 둘이 붙들려 갔거든요.
- 네.
- 김동원씨하고, 윤원상씨하고 두분이.
- 수갑에 채우셨군요?
- 두 분이 수갑을 채우고 가는거 보고. 그런게 전부다 어린 생각에 충격을 받았을거 아니에요?
- 그렇지요.
- 그래서 그리고 한가지는 그건 일종의 사상이랄까? 정치면이고. 그 다음에 이 저 문화가 이렇게 들어오는데 그 때 기억나는게 하나는 비행기입니다.
- 네.
- 처음으로 우리가 그 5학년때인가 비행기를 봤거든요. 그 때에 뭐 스미스인가 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공중에서 이렇게 한바퀴 도는 비행을 했어요.
- 네.
- 그거를 내가 쳐다보고 한쪽에 외국 사람들 여기 공중에 날아 다니고 그러는데 우리는 이래서 되겠냐?
- 하하.
- 우리도 날아다녀야겠다 이런 생각이 있고.
- 네.
- 그리고 지금 기억 나는거는 그때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하니 이태리사람 마르코니라고 하는 사람이. 무선 전신을 발견을 했어요 처음으로.
- 네.
- 그래 그거를 이제 책을 보고서 선생님하고 의논해서 학교 학예회때 말이지요. 그거를 우리가 실험으로 데모 스플래칭을 했어요. 한편쪽에 그 버튼을 넣고 저 쪽에다가 벨을 넣고. 가운데 줄이 아무것도 없이 이 쪽에서 이제 누를거 같으면은.
- 버튼 누르면?
- 저 쪽에서 전기가 통한단 말이에요.
- 네.
- 이럴때 줄 없이 줄 없이 말을 통할수가 있게 되었다 하는거를. 이제 학위회때 나가서 하던거를 내가 나가서 했단 말이에요, 하하하. 그래서 기억이 있거든요.
- 네, 선생님 일상 성격은 어떠셨어요? 어렸을 때에?
- 우리야 뭐 말하자면 뭐랄까 신경질이지요. 약간 말하자면 머리가 예민하다면 예민하고.
- 센스가 있으시고?
- 네, 그 대신에 이제 성미가 고약하지요.
- 네.
- 하하하.
- 무슨 말씀인지, 그런데 선생님의 가정은 그러니까 기독교 가정이셨어요?
- 네, 기독교이지요.
(음악)
- 그래서 이제 합병된것이 1910년 내가 만 10세 때이고요.
- 네.
- 만 12세에 내가 동경으로 갔거든요. 우리 아버님이 지금 기독교 목사이니까 동경에 일본 동경에 있는 우리 한국 유학생들을 위해서 교회를 세웠단 말이에요. 각 교파가 연합해서 교회를 세웠는데 거기에 목사로 소위 파송을 받았다. 가게 되니깐은 내가 동경을 가게 되니깐은 같이 가겠냐? 그 때에 어린 마음에도 한번 외국을 가본다.
- 네.
- 네, 그래서 가겠습니다. 그래서 따라가게 되었거든요. 일본서 그 일본에 동경에 있는 명치학원이라고 하는게 기독교가 세운 학교입니다. 거기를 들어가서 중학교를 일본에서 졸업을 했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하고 비기면 좀 일찍 너무 일찍이 외국말을 배웠다 이렇게 볼수가 있는데.
- 네, 그렇지요.
- 그 중학교에 있으면서 무엇에 이제 접촉을 하게됐는가하는 소위 문학이라고 하는걸 접촉을 하게 되었는데.
- 네.
- 서양 문학을 일본 말로 번역한거를 보기 시작을 해서.
- 네.
- 그때 만해도 근시안이 되었습니다. 하도 그 저 문학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말이에요.
- 밤 새워서?
- 밤 새워서 읽고 뭐 전집이라고 하는걸 사다가 그냥 다른거마냥 그거만 읽었단 말이에요. 그 때에 이제 김도연이 학교에 같이 있었지요.
- 네.
- 김도연이하고 둘이서 읽어가지고 나중에 이제 중학교 5학년이 되어가지고서. 자 이게 서양에는 이런 문학이라는게 있는데 말이지, 우리나라에는 이게 없지 않느냐? 뭐 한문으로 만든것 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무슨 춘향전이니 뭐 심청전이니 하는 이런게 있는데. 서양문학과 같은거를 우리말로 이걸 만들수가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나서 시작한것이 소위 창조라고 하는 순 문예잡지.
- 네.
- 그거를 시작을 했지요. 그게 오늘날 와서는 이제 한국신문에 운동회 뭐라하는가 하면은 분수령으로 인정을 지금 받게 되었는데.
- 네.
- 그 때에도 이제 생각이 무언가하니 이런것도 우리가 해야 독립을 할수가 있다 이런 생각이란 말이에요.
- 네.
- 이제 그래가지고 그거를 편집을 할 때에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말이에요. 일체 우리 한문을 쓰지 말자 했거든. 시를 쓰던지, 소설을 쓰던지 뭘 쓰던지 한문을 쓰지는 말자 그래가지고 한문 안썼습니다.
- 네.
- 그런데 요새와서는 소설은 대게 아직도 아마 한문들을 안 쓰지요. 요새 시 쓰는 사람들 뭐 어려운 한문 글자들 많이 쓰고 그러더만요.
- 네, 하하.
- 그거를 발간을 했는데 그 때에 이제 내가 편집인이고, 돈은 김도연군이 댔지요.
- 네.
- 1호를 떡 내 놓았는데 이제 동경 경시청에서 호출 출장이 왔어요. 편집인 한테로. 그래가지고 뭔가하고 갔더니. 발매금지라 그런단 말이에요. 왜 그러냐고 하니? 풍속교란이라고. 뭐 풍속교란이냐고? 김도연이 쓴 그 소설이 그게 무슨 제목이 뭐인가? 약한자의 마음이라고 그러나? 무슨 그런 제목 소설인데 거기에 그게 아마 뭐 톨스토이 소설같은거를 보고 말하자면 그 어떻게 그 남여가 무슨 성행위를 한 그런거를 쓴 모양이란 말이에요.
- 네, 하하.
- 난 기억도 못 하는데.
- 네.
- 이런거를 썼으니 발매금지라고 그래서 그거를 또 이 책이 몇 권 팔리겠다고 해서 발매금지라 하느냐? 또 이거 문학상으로 예술적으로는 다 있는거 아니냐? 외국에 다 있는거 아니냐? 한참 싸워가지고 그거를 모면하고, 헤헤.
- 괜찮았군요? - 네, 괜찮았지요, 뭐 그런 기억들도 지금 생각이 나요.
- 네.
(음악)
- 그런데 이건 우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그 고향에서 보통학교 시절에요.
- 음.
- 그렇게 민족주의에 싹이 트고 어린 가슴에도 그 일본에 대한 그 적계심들을 가지고 있다가. 일본에도 열두살에 공부하러 떠나신 다음에는 어린 시절이니까 동화가 쉽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요.
- 음.
- 어떻게 해서 그렇게 줄기차게 그 문화운동? 문학.
- 그거는요.
- 네.
- 그거는 경험상으로도 그렇지만 대체로 약소국가 사람이 그 좀 강한 나라에 유학을 가면요. 대개 다 그 나라 배척하게 되는게 그 일종의 특징입니다.
- 네.
- 그러니까 나중에 삼일운동을 일으켰다 하는 경우에도 전부 일본 유학생들이 그러는 줄 알았어요.
- 네 그렇지요.
- 가령 아프리카 사람이 미국에 가 공부한다고 그러면은 말이에요. 대체로 미국을 배척하는 대미주의자는 그 미국 가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러거든.
- 음.
- 그러니까 그거는 학문자체를 배우는것이지. 그것때문에 그 사람한테 동화가 되거나 이거는 안되는거란 말이에요. 또, 뭐 우리가 학교에 있을때 한국 학생이 그 명치학원에 한 7,8명 있고 그랬는데. 평상시에는 별로 이 무슨 민족적은 경우는 별로 없었지요. 대개 옷도 뭐 학생복도 입고.
- 네.
- 얼굴도 비슷하니까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런데 이제 일년에 한 서너처례는 그 이제 민족적인 어떤 반감이 나는 일이 있지요. 가령, 천냥절이다 그러면은 일본천황의 생일이거든요.
- 네.
- 그 날 축하식을 올리고, 일본국가를 불러야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슬그머니 아침에 빠져서 달아나고 말이지요. 그러면 이제 그 다음날엔 의래 치졸교사가 불러다가 말이에요. 너 어제 왜 안 나왔냐, 이러는거란 말이에요.
- 네.
- 그러는데에서 마찰이 생긴난다는 얘기고. 또 이제 일본애들하고 이렇게 평상시에는 뭐 잘 지낼수도 있지만은. 어쩌다가 무슨 싸움이나서 좀 심하게 되면 말이에요 이 놈 뭐 조센징이 뭐 놓고세니 하는 얘기가 나오지요. 조선놈들이 뭘 그러냐 이런 얘기가 나오고.
- 네.
- 2차대전이 나가지고서 일본이 연합군에 가담을 해서 산둥반도 상륙작전을 해가지고. 천도라고 하는 그 독일에 요새가 있지 않았어요? 그게 함락이 되었거든요. 저녁때 호외가 돌아다녔어요. 저녁먹고 나와서 이렇게 뭐 공을 가지고 장난들을 하고 있는데. 그 호외가 돌아났다고 그러니깐은 일본애들이 만세를 부른단 말이에요.
- 음.
- 그런데 우리는 만세를 못 부르지요. 그 뭐 차마 손이 안 올라가 못 부르는데 속으로 충격을 많이 가고 그래요. 저 놈들은 전쟁하는데서 이겼다고 만세를 부르는데 우리는 만세도 못 부르는 신세다.
- 으흠.
- 요런데에서 이제 극히 적은 경우에 일이지만은. 그 민족적인 여러가지 그 자극을 주게 되지요.
- 그렇지요.
- 네.
- 미묘한 마음 움직임이겠지요?
- 그렇지요.
- 네, 그런데 일본서 공부하실때 고생스러운 점은 없었어요?
- 뭐 고생스럽다고 하는건 별로 지금 생각날 일 만큼은 없고요. 그런데 한국 학생들이 명치학원에서는 도리어 날렸지요.
- 네.
- 뭐 거기 무슨 연설대회도 나가고, 뭐 교내 잡지에도 나가서 편집들도 하고. 또 운동 뭐 축구니 정구니 야구니 무슨 선수들로 있고. 평상시에는 우리 한국 학생이 늘 일본학생들보다도 리더쉽을 가지고 나갔지요.
- 하하, 네.
- 그러다가 싸움이 나면 좋지 않지만은 그래서 나도 지금 뭐 아마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정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 네.
- 선수노릇까지 했습니다.
- 그러셨어요?
- 하하, 스포츠맨이지요, 하하.
- 각 방면에서 많은 운동도 하시고.
- 네, 그러다가 그러니까 내가 졸업을 하고 소위 제일고등학교라고 하는곳에 들어간 곳이 1918년이지요.
- 네네. 그러면 선생님, 그 얘기는 내일 계속해서 들려주시겠습니까?
- 네, 그러지요.
- 감사합니다.
- 네.
- 오늘밤 얘기.
(음악)
0시에 만난 사람. 오늘은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주요한씨를 모시고 보내드렸습니다. 아나운서 최춘자였습니다. 여러분 내일 이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입력일 : 200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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