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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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0시에 만난 사람
주요한 - 어린시절 이야기
주요한
어린시절 이야기
1966.09.30 방송
(음악)

0시에 만난 사람. 밤이 깊었습니다. 여러분을 사색과 낭만에 세계로 안내하는 이시간 0시에 만난 사람.

오늘부터는 경제 과학심의위원회 의원 주요한씨를 모시고 여러가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주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네.

-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가장 바쁜 중에 한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주 몹시 바쁘신 생활을 하고 계신거 같아요?

- 네. 무사분주이지요.

- 유사분주시겠지요?

- 매일 강의를 한다해서 시간이 많이 허비하지만 돈은 안 생기는 거에요.

- 하하.

-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 요새는 지금 경제 과학 심의회에 매일 나가고요, 그 다음에는 대한일보사 약간 관계가 있습니다.

- 네.

- 그런 정도입니다.

- 네. 전에 제가 주선생님 말씀 듣기에는요, 우리 한국에서 금화기가 가장 많이 나왔다. 그 만큼 바쁘신 분이다고 표현이 되었다고요? 그런 말들이 있는데요?

- 하하하. 그 지금 얘기하는거로는 회의하는게 많아서 이리저리 많이 불려 다니는데 금화기가 나오는데도 있고 안 나오는데도 있지요.

- 네.

- 하하하.

- 그런데 오늘 선생님 이렇게 모시고요.

- 네.

- 앞으로 여러 회에 걸쳐서 또 많은 말씀 들어야되겠는데요. 이번에는 이렇게했으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 네.

- 선생님이 태어나셔서요.

- 네.

- 10대, 20대, 30대 이렇게 쭉 얘기가 나눠지면은요.

- 네.

- 좀 더 알찬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떠시겠십니까?

- 뭐 그렇게 하십시다.

- 네.

- 그러면 좋겠지요.

- 그러면 문단 얘기도 나올 수가 있겠고요.

- 네.

- 선생님 상해시절 얘기.

- 네.

- 언론계에 계셨을 때에 얘기.

- 네.

- 뭐 여러가지가 나올거 같습니다. 그러면 우선 그 선생님께서 태어나신 고향 얘기가 궁금한데요.

- 네.

- 선생님의 고향은?

- 고향은 뭐 평양이 고향인데요, 그러니까 대동강 을 생각을 하고 하지만은, 사실 평양 그 서문밖이라고 하는데. 서쪽에서 낳았어요.

- 네.

- 평양은 동쪽에 있거든요? 서쪽에 보통가라고 하는 조그마한 대동지류가 있는데, 거기서 늘 물장난하고 이런것을 하고 자라났지요. 그리고 내가 평양서 낳아서 학교를 소학교만 평양서 다녔어요. 아주, 국민학교만 말이지요.

- 네.

- 그리고는 일본에 가서 중학교를 다니었는데. 그 당시에 우리 아버지는 그 때에 기독교 예술대학 다니셨거든요.

- 음.

- 그러니까 그 당시에 아직도 머리를 사내가 머리를 땋아내는 사내도 있고, 물론 상투를 툰 사람도 있지만은 나는 머리를 땋아보지도 못하고, 상투를 틀어보지도 못했지요.

- 네.

- 언제나 머리를 깎고서 자라났다고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한개의 새로운 제네레이션이라고 볼 수가 있지요.

- 네, 그렇군요.

- 그런데 이제 내가 1900년생이거든요, 그러니까 10살때 한일합방이 되었단 말이에요.

- 네.

- 그러니까 그 전으로 해가지고 보건소도 생기고 합방해가지고 할때 우리는 어릴때 뭘 모르지만은. 그 어떤 정치적인 물결이라던지 말이에요. 그 외국사람한테 침략을 당하던 반발심이나 이런거를 자연히 알게 되가지고 그것이 이제 일생을 지배를 한게 철학이 되었단 셈이지요. 민족주의다.

- 네.

- 일본을 반대해야된다, 우리가 독립을 도로 살려야되겠다. 그래서 나중에 이제 무슨 문학을 한다던지, 뭘 한다던지 할때에 언제나 그것이 거기에 모든 생각이 지킴으로 하는 그런 해인데. 가령 예를 들어 말하면은, 그 소학교에 다니는데 10살 미만이지요?

- 네.

- 우리가 총을 메고 병식교련을 했어요.

- 아.

- 뭔가하니 하여간에 이렇게 해가지고 나중에 일본사람들하고 싸워야된다는거에요.

- 그 총이 정말 총입니다.

- 하하.

- 어떻게 무거운지 말이에요. 열살도 못 넘겼는데 어른들이 메는 총을 메니 무거울거 아니에요?

- 그렇지요.

- 그래서 어깨가 아프고, 그러면서도 이 놈을 악을 쓰고서 메고 다니고 말이에요.

- 그 총을 어떻게 구입하셨어요?

- 학교에서.

- 나눠준?

- 학교에 본래 그런게 있으니까.

- 네.

- 그 당시에 이제 그 교련형 총이라는게 물론 그 때에 현재로 신식총은 아니고 이제 일본 군대가 쓰다가 남은 총들이지요. 그 이제 그 당시에 학부에서 그런걸 나눠주고 그랬었는데. 그런데 이제 언젠가 아주 겨울 추운날 눈이 잔뜩 왔는데 그 놈을 메고 야외훈련을 나간다고 그랬는데.

- 네.

- 쭉 갔다가 운동장에다 세워놨더니, 선생님이 가만히 보더니 우리 클래스에 있는 애들을 가만히 보니. 하도 너무 어리고 말이에요, 불쌍했던 모양이에요. 너들은 그만 두고 도로 들어가라고 그러거든.

- 아.

- 선생님 명령으로 할수없이 들어갔지요 방에. 들어가서는 다 붙들고 울었단 말이에요. 왜 우리는 나이가 어리다고 안보내주니 말이야, 하하하. 분하다, 정말로 그런 분위기 이지요.

(음악)

- 그 때에 이제 지금 저 순종황제가 즉위를 해가지고.

- 네.

- 일본서 왔던 그 위도라는 통관이 순종황제하고 같이 서순을 한다. 서쪽 관서쪽으로 순행을 하신다 그래가지고 그 때에 기차가 있었으니까. 역에까지 학생들을 다 나오너라. 이런 명령이 내렸지요. 그런데 나오는데 기를 일본기하고 우리 태극기하고 두가지를 갖고 나오너라. 그 때에는 합방이 안되었을때이니까.

- 네.

- 대한제국에 있었거든. 그런데 애들이 기를 둘씩 나눠줬는데 일본기는 다 찢어내고 말았단 말이에요.

-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

- 네.

- 태극기만 가지고 나갔거든요. 그 때에 문제가 되어가지고서는 그 당시에도. 일본 사람이 평안남도 도청에 일본 사람이 부장관으로 있을때 말이에요. 교장이 불려갔지. 너 왜 일본기하고 태극기하고 둘다 갖고 나오라고 그랬는데 일본기는 안갖고 나왔냐? 그 교장이 뭐라고 대답을 했냐면은 그 명답입니다. 순종황제는 한 나라의 황제이고 말이지요.

- 네.

- 위도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권세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신하가 아니란 말이냐.

- 네.

- 신화하고 황제하고 오는데 황제의 그 나라의 기를 받아야지. 신화의 기를 같이 어떻게 받고 나갈수 있느냐?

- 네.

- 만일 일본 황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평양역에 내릴려면 우리는 물론 일본기를 들고 나온다. 할말이 없거든요, 하하하.

- 네.

- 기분이 그런데서 민족주의 이런것이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서. 일평생 이제 말하자면 한개의 인생철학이 거기서 꽉 생겼지요.

- 네.

- 그래가지고 고민이라는게 없다는 말이에요.

- 네.

- 요새는 여러가지로 그 사상문제 뭐 이런걸로 학생들이 동요를 하고 그러지만은. 그 당시에는 이제 우리가 커서 20대, 30대까지 되더라도, 뭐 무슨일 하면은 그저 민족주의라고 하면은 한대로 뭉쳤지. 다른 분열일으킬만한 요소가 없었지요.

- 네. 그 때에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그 어린 가슴에도 민족주의의 싹이 트고요.

- 네.

- 주요한 선생님이 주가 되어서 그런 사상이 움트기 시작했던거 같아요.

- 그렇지요, 그래서 이제 합병한 다음해에 소위 게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 사상론이 생겨가지고.

- 네.

- 그 쪽에 있는 교회 지도자니 학교 선생님들을 쭉 잡아갔는데 우리 반 선생님 둘이 붙들려 갔거든요.

- 네.

- 김동원씨하고, 윤원상씨하고 두분이.

- 수갑에 채우셨군요?

- 두 분이 수갑을 채우고 가는거 보고. 그런게 전부다 어린 생각에 충격을 받았을거 아니에요?

- 그렇지요.

- 그래서 그리고 한가지는 그건 일종의 사상이랄까? 정치면이고. 그 다음에 이 저 문화가 이렇게 들어오는데 그 때 기억나는게 하나는 비행기입니다.

- 네.

- 처음으로 우리가 그 5학년때인가 비행기를 봤거든요. 그 때에 뭐 스미스인가 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공중에서 이렇게 한바퀴 도는 비행을 했어요.

- 네.

- 그거를 내가 쳐다보고 한쪽에 외국 사람들 여기 공중에 날아 다니고 그러는데 우리는 이래서 되겠냐?

- 하하.

- 우리도 날아다녀야겠다 이런 생각이 있고.

- 네.

- 그리고 지금 기억 나는거는 그때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하니 이태리사람 마르코니라고 하는 사람이. 무선 전신을 발견을 했어요 처음으로.

- 네.

- 그래 그거를 이제 책을 보고서 선생님하고 의논해서 학교 학예회때 말이지요. 그거를 우리가 실험으로 데모 스플래칭을 했어요. 한편쪽에 그 버튼을 넣고 저 쪽에다가 벨을 넣고. 가운데 줄이 아무것도 없이 이 쪽에서 이제 누를거 같으면은.

- 버튼 누르면?

- 저 쪽에서 전기가 통한단 말이에요.

- 네.

- 이럴때 줄 없이 줄 없이 말을 통할수가 있게 되었다 하는거를. 이제 학위회때 나가서 하던거를 내가 나가서 했단 말이에요, 하하하. 그래서 기억이 있거든요.

- 네, 선생님 일상 성격은 어떠셨어요? 어렸을 때에?

- 우리야 뭐 말하자면 뭐랄까 신경질이지요. 약간 말하자면 머리가 예민하다면 예민하고.

- 센스가 있으시고?

- 네, 그 대신에 이제 성미가 고약하지요.

- 네.

- 하하하.

- 무슨 말씀인지, 그런데 선생님의 가정은 그러니까 기독교 가정이셨어요?

- 네, 기독교이지요.

(음악)

- 그래서 이제 합병된것이 1910년 내가 만 10세 때이고요.

- 네.

- 만 12세에 내가 동경으로 갔거든요. 우리 아버님이 지금 기독교 목사이니까 동경에 일본 동경에 있는 우리 한국 유학생들을 위해서 교회를 세웠단 말이에요. 각 교파가 연합해서 교회를 세웠는데 거기에 목사로 소위 파송을 받았다. 가게 되니깐은 내가 동경을 가게 되니깐은 같이 가겠냐? 그 때에 어린 마음에도 한번 외국을 가본다.

- 네.

- 네, 그래서 가겠습니다. 그래서 따라가게 되었거든요. 일본서 그 일본에 동경에 있는 명치학원이라고 하는게 기독교가 세운 학교입니다. 거기를 들어가서 중학교를 일본에서 졸업을 했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하고 비기면 좀 일찍 너무 일찍이 외국말을 배웠다 이렇게 볼수가 있는데.

- 네, 그렇지요.

- 그 중학교에 있으면서 무엇에 이제 접촉을 하게됐는가하는 소위 문학이라고 하는걸 접촉을 하게 되었는데.

- 네.

- 서양 문학을 일본 말로 번역한거를 보기 시작을 해서.

- 네.

- 그때 만해도 근시안이 되었습니다. 하도 그 저 문학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말이에요.

- 밤 새워서?

- 밤 새워서 읽고 뭐 전집이라고 하는걸 사다가 그냥 다른거마냥 그거만 읽었단 말이에요. 그 때에 이제 김도연이 학교에 같이 있었지요.

- 네.

- 김도연이하고 둘이서 읽어가지고 나중에 이제 중학교 5학년이 되어가지고서. 자 이게 서양에는 이런 문학이라는게 있는데 말이지, 우리나라에는 이게 없지 않느냐? 뭐 한문으로 만든것 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무슨 춘향전이니 뭐 심청전이니 하는 이런게 있는데. 서양문학과 같은거를 우리말로 이걸 만들수가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나서 시작한것이 소위 창조라고 하는 순 문예잡지.

- 네.

- 그거를 시작을 했지요. 그게 오늘날 와서는 이제 한국신문에 운동회 뭐라하는가 하면은 분수령으로 인정을 지금 받게 되었는데.

- 네.

- 그 때에도 이제 생각이 무언가하니 이런것도 우리가 해야 독립을 할수가 있다 이런 생각이란 말이에요.

- 네.

- 이제 그래가지고 그거를 편집을 할 때에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말이에요. 일체 우리 한문을 쓰지 말자 했거든. 시를 쓰던지, 소설을 쓰던지 뭘 쓰던지 한문을 쓰지는 말자 그래가지고 한문 안썼습니다.

- 네.

- 그런데 요새와서는 소설은 대게 아직도 아마 한문들을 안 쓰지요. 요새 시 쓰는 사람들 뭐 어려운 한문 글자들 많이 쓰고 그러더만요.

- 네, 하하.

- 그거를 발간을 했는데 그 때에 이제 내가 편집인이고, 돈은 김도연군이 댔지요.

- 네.

- 1호를 떡 내 놓았는데 이제 동경 경시청에서 호출 출장이 왔어요. 편집인 한테로. 그래가지고 뭔가하고 갔더니. 발매금지라 그런단 말이에요. 왜 그러냐고 하니? 풍속교란이라고. 뭐 풍속교란이냐고? 김도연이 쓴 그 소설이 그게 무슨 제목이 뭐인가? 약한자의 마음이라고 그러나? 무슨 그런 제목 소설인데 거기에 그게 아마 뭐 톨스토이 소설같은거를 보고 말하자면 그 어떻게 그 남여가 무슨 성행위를 한 그런거를 쓴 모양이란 말이에요.

- 네, 하하.

- 난 기억도 못 하는데.

- 네.

- 이런거를 썼으니 발매금지라고 그래서 그거를 또 이 책이 몇 권 팔리겠다고 해서 발매금지라 하느냐? 또 이거 문학상으로 예술적으로는 다 있는거 아니냐? 외국에 다 있는거 아니냐? 한참 싸워가지고 그거를 모면하고, 헤헤.

- 괜찮았군요?

- 네, 괜찮았지요, 뭐 그런 기억들도 지금 생각이 나요.

- 네.

(음악)

- 그런데 이건 우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그 고향에서 보통학교 시절에요.

- 음.

- 그렇게 민족주의에 싹이 트고 어린 가슴에도 그 일본에 대한 그 적계심들을 가지고 있다가. 일본에도 열두살에 공부하러 떠나신 다음에는 어린 시절이니까 동화가 쉽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요.

- 음.

- 어떻게 해서 그렇게 줄기차게 그 문화운동? 문학.

- 그거는요.

- 네.

- 그거는 경험상으로도 그렇지만 대체로 약소국가 사람이 그 좀 강한 나라에 유학을 가면요. 대개 다 그 나라 배척하게 되는게 그 일종의 특징입니다.

- 네.

- 그러니까 나중에 삼일운동을 일으켰다 하는 경우에도 전부 일본 유학생들이 그러는 줄 알았어요.

- 네 그렇지요.

- 가령 아프리카 사람이 미국에 가 공부한다고 그러면은 말이에요. 대체로 미국을 배척하는 대미주의자는 그 미국 가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러거든.

- 음.

- 그러니까 그거는 학문자체를 배우는것이지. 그것때문에 그 사람한테 동화가 되거나 이거는 안되는거란 말이에요. 또, 뭐 우리가 학교에 있을때 한국 학생이 그 명치학원에 한 7,8명 있고 그랬는데. 평상시에는 별로 이 무슨 민족적은 경우는 별로 없었지요. 대개 옷도 뭐 학생복도 입고.

- 네.

- 얼굴도 비슷하니까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런데 이제 일년에 한 서너처례는 그 이제 민족적인 어떤 반감이 나는 일이 있지요. 가령, 천냥절이다 그러면은 일본천황의 생일이거든요.

- 네.

- 그 날 축하식을 올리고, 일본국가를 불러야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슬그머니 아침에 빠져서 달아나고 말이지요. 그러면 이제 그 다음날엔 의래 치졸교사가 불러다가 말이에요. 너 어제 왜 안 나왔냐, 이러는거란 말이에요.

- 네.

- 그러는데에서 마찰이 생긴난다는 얘기고. 또 이제 일본애들하고 이렇게 평상시에는 뭐 잘 지낼수도 있지만은. 어쩌다가 무슨 싸움이나서 좀 심하게 되면 말이에요 이 놈 뭐 조센징이 뭐 놓고세니 하는 얘기가 나오지요. 조선놈들이 뭘 그러냐 이런 얘기가 나오고.

- 네.

- 2차대전이 나가지고서 일본이 연합군에 가담을 해서 산둥반도 상륙작전을 해가지고. 천도라고 하는 그 독일에 요새가 있지 않았어요? 그게 함락이 되었거든요. 저녁때 호외가 돌아다녔어요. 저녁먹고 나와서 이렇게 뭐 공을 가지고 장난들을 하고 있는데. 그 호외가 돌아났다고 그러니깐은 일본애들이 만세를 부른단 말이에요.

- 음.

- 그런데 우리는 만세를 못 부르지요. 그 뭐 차마 손이 안 올라가 못 부르는데 속으로 충격을 많이 가고 그래요. 저 놈들은 전쟁하는데서 이겼다고 만세를 부르는데 우리는 만세도 못 부르는 신세다.

- 으흠.

- 요런데에서 이제 극히 적은 경우에 일이지만은. 그 민족적인 여러가지 그 자극을 주게 되지요.

- 그렇지요.

- 네.

- 미묘한 마음 움직임이겠지요?

- 그렇지요.

- 네, 그런데 일본서 공부하실때 고생스러운 점은 없었어요?

- 뭐 고생스럽다고 하는건 별로 지금 생각날 일 만큼은 없고요. 그런데 한국 학생들이 명치학원에서는 도리어 날렸지요.

- 네.

- 뭐 거기 무슨 연설대회도 나가고, 뭐 교내 잡지에도 나가서 편집들도 하고. 또 운동 뭐 축구니 정구니 야구니 무슨 선수들로 있고. 평상시에는 우리 한국 학생이 늘 일본학생들보다도 리더쉽을 가지고 나갔지요.

- 하하, 네.

- 그러다가 싸움이 나면 좋지 않지만은 그래서 나도 지금 뭐 아마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정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 네.

- 선수노릇까지 했습니다.

- 그러셨어요?

- 하하, 스포츠맨이지요, 하하.

- 각 방면에서 많은 운동도 하시고.

- 네, 그러다가 그러니까 내가 졸업을 하고 소위 제일고등학교라고 하는곳에 들어간 곳이 1918년이지요.

- 네네. 그러면 선생님, 그 얘기는 내일 계속해서 들려주시겠습니까?

- 네, 그러지요.

- 감사합니다.

- 네.

- 오늘밤 얘기.

(음악)

0시에 만난 사람. 오늘은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주요한씨를 모시고 보내드렸습니다. 아나운서 최춘자였습니다. 여러분 내일 이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입력일 : 200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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