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0시에 만난 사람
소설가 최정희 - 어렸을때 바다를 좋아해서…
소설가 최정희
어렸을때 바다를 좋아해서…
1966.09.16 방송
(음악)

- 0시에 만난 사람. 밤이 이제 제법 깊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정다운 대화를 나누어가면서 이제 감미로운 에너지를 곁들이겠습니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소설가 최정희 여사를 모셨습니다. 이렇게 바쁘신데 이렇게 나와주셨군요? 요즘 날씨가 서늘해지니까 뭐 꽃들 가꾸는 분들도 많겠고, 이사도 또 많이 가셨을텐데. 선생님 뭐 이사를 지난 봄에 하셨다고요?

- 네. 저 이때까지는 서교동에서 살다가 집을 한채 가지고 산다는 것도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더만요.

- 네.

- 나로서는.

- 네.

- 그래서 달았습니다.

- 네.

- 달고. 중동 아파트에 이사를 왔는데.

- 네.

- 뭐 흙이라고 한 줌 잠칙것을 가지고 있지 않죠.

- 네네.

- 참 편리합니다.

- 네.

- 식모 우선 저 그 골치덩어리 식모가 없이 집식구끼리 그저 살죠.

- 네.

- 하하.

- 그런데 아파트 생활이 어떻게 취향이 맞으시는지요?

- 맞고 안맞고 그저 편리하니까요.

- 네.

- 지금도 말씀 드렸지만은. 식모가 없이 집식구끼리 이제 사니까. 신경을 쓰지 않아서.

- 네.

- 참 편리해요.

- 네.

- 그리고 집을 가졌을 때는 한사람 식모 한 사람도 이렇게 참 부족하다. 둘이서도 참 괜찮았는데.

- 네.

- 둘다 없이 지금 한사람도 이제 부족하다 생각을 했는데. 아주 없어도 불편한 점이 없어요.

- 네네.

- 나갈 때는 이제 열쇠로 잠궈놓고 나가고 관리 사무소에 그 집키를 맡겨놓고.

- 네.

- 아주 먼저 오는 사람한테.

- 네.

- 주도록 하고 그러니까.

- 네.

- 참 편리해요.

- 아파트에 오시기 전에는 서교동에?

- 네, 서교동에.

- 네. 있었습니다.

- 어떻게 저 꽃 가꾸기 같은것도 좋아하시는지?

- 네, 서교동 집은 뜰이 한 백여평 되었거든요.

- 네.

- 그래서 무슨 이렇게 값이 나가는 꽃은 아니지만은 그래도 이제 그 마음에 드는 꽃들을 어루다도 심고, 또 문학 청년들이 막 소년 소녀들이 갖다주는.

- 네네.

- 그런 화초도 있고 해서 어지간히 거기 참 취미를 부치고 살았는데. 근데 그 땅이 뜰이 넓으니까, 큰 나무도 많이 심고 이제 이래야할텐데 그런걸 제 힘으로서는 잘 못하겠더군요.

- 네네.

- 네. 그러니까 이제 그저 이렇게 자잘부로 한 꽃을 심는 그 정도였으니까. 그 집을 팔 때에 이거 왜 나무가 이렇게 없냐고.

- 네.

- 그렇게 얘기를 하더군요.

- 네네, 이 저 꽃을 어루 만지고 화단을 가꾼다는게 아마 그 우리 생활에서 안정하고 또 통할수 있는 얘기 같게 되요?

- 네.

- 네, 아주 마음에 자세를 잡는다고 할까?

- 네.

- 뭐 이렇게 어린애 기르는만큼 재미가 있더고만요.

- 네.

- 힘이 들면서도 그만큼 어떤 무슨 즐거움을 갖고 이렇게 가꾸게 되더군요.

- 네.

- 그러고서는 음악을 또 한곡 들어보고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네.

(음악)

- 오늘은 어떻게 이사 얘기부터 시작을 해서 꽃 얘기까지 번져갔습니다만은. 가끔씩 어렸을때 생각도 나시겠지요?

- 네. 그 어릴때 생각이 많이 나는 때가 있어요.

- 네네.

- 계절이 이제 뭐 요새같은 때에 하게 되더고만요.

- 네네. 그 저 어렸을때에는 바다를 좋아하셨던 어느 글에서 읽은거 같아요?

- 네.

- 바다를 참 무척 좋아했는데. 그 제가 나기를 성진군 예덕면이라는 데에서 낳았거든요.

- 네.

- 그런데 그 곳이 이제 그 바다와 가깝고 농사짓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는데. 바다는 어떻게 좀 뱃사람들이 산다고 해서 그리로 잘 못가게하고.

- 네.

- 아무튼 그 쪽 사람들보다는 그 위쪽에 사람들이 글을 서당에도 많이 가고 이제 그랬어요.

- 네.

- 아마 그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그 뭐 글 같은거를 잘 안 읽고 이제 그러던거 같아요.

- 네.

- 그 쪽에 이제 내려가면 우리집에서 내려가면 거칠어서 못 쓴다고 이제 못가게해요.

- 네.

- 바다를 참 좋아하는데도.

- 네.

- 그런데 저는 그 바다가 참 무척 좋아서 내려다 산에 올라가면은 나무에 올라 앉아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이런 일이 있습니다.

- 네.

- 그래도 몰래 바다에 내려가고서는 그 게를 잡는다던가, 조개를 이제 줍는다던가. 이제 이런 어릴때였는데 가만히 있는 게. 그저 조개 보다는 게가 이렇게 막 물려고 달려드는데도 게를 잡는 일이 더 이렇게 참 요새 말하면은 스릴있다고 하면서 좋더고만요.

- 네. 그저 그 어린 시절에도 그저 무서운거를 극복하면서.

- 네.

- 살았었군요?

- 네.

- 게 잡는 일이 더 재미가 있더고만요.

- 네.

- 그래서 그런 뭐 조개라던지, 게 이런거를 아마 벗 삼아서 바다를 즐기게 되시는거같죠?

- 네, 아마 글쎄. 아무튼 그 때는 우리 바로 집 뒤에 산이 있었었는데. 지금은 산을 어지간히 좋아합니다.

- 네.

- 그런데 산은 좋다는 생각이 안들고 산에 올라가면 그저 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산으로 올라가 그런 정도였었어요.

- 네네. 이제 그 부모님들도 물론 바다가는거를 말리셨겠지만은.

- 네.

- 그 때 당시로 봐서는 그 부모님이 만류하시는 일을 억지로 할수 없는 시절 같았었는데요?

- 아무튼 뭐 이렇게 뭐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거는 들어야한다 뭐 그런 것이 있지요.

- 네.

- 그런데 그거를 자꾸 내가 지금 생각하면은. 들어야하겠다면서도 듣지 않는데. 또, 어떤 이제 게를 무서워하면서도 잡는거 같은. 들어야하겠다하면서도 또 듣지 않는데서 어떤 이제 그 쾌감을 느끼고 그랬어요.

- 네네.

- 네.

- 그래서 몰래 바다에 참 많이 갔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에 갈 때에 이제 그 혼자가는것도 좋았지만은요. 그 우리 동네에 이제 그러니까 그게 그저 한 여섯살, 일곱살 이정도일겁니다.

- 네.

- 여덟살인가? 이제 제가 거기를 이사를 했으니까요.

- 네.

- 옮겼으니까요, 다른 고장으로 갔어요.

- 네.

- 그러니깐 이제 그 이전일텐데 그러면서도 이제 그 계집애들하고 이렇게 가는거보다는 사내 아이. 네, 지금도 그 이름을 잊혀지지가 않는데.

- 허하하.

- 상택이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 그런데 그 중에서 이제 그 애가 얼굴도 하얗고, 그렇던거 같아요. 그 애가 그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모르지만, 어릴때 죽었다는 그 거기를 떠난뒤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애하고 늘 많이 갔어요.

- 네네.

- 가가지고는 바다는 이제 뭐 끝이 있느냐? 뭐 없느냐? 이런 얘기도 하고.

- 네.

- 지구가 둥글다더냐? 뭐 네모가 낫다더냐? 뭐 이런 얘기도 하고.

- 하하하.

- 그런 기억이 납니다.

- 네, 상당히 그 낭만적인데?

- 네네.

- 시 연상 되는데.

- 네.

- 바다를 이렇게 내다보면은 그저 그 참 안개가 자욱한 바다가 더 기억에 더 남습니다.

- 네.

- 그런데 저 지금 말씀을 듣고 보니까 유독 그 여자친구도 많은데 남자를 좋아했다는게 조금?

- 네

- 하하하.

- 이상해서요?

- 글쎄요. 이상하게 그 애가 참 요새 말로 한다면은 핸섬하다고 할까?

- 네, 하하하.

- 그래서 좋아했는지, 남자였기 때문에 이제 좋아할 때였는지.

- 네.

- 그건 모르겠습니다만은.

- 네.

- 하도 어렸을적이었으니까요?

- 네, 아무튼 좋아한것만은 틀림이 없고, 그 애가 그 때도 이제 제가 거기를 떠난뒤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은. 그때도 앓더고만요.

- 네.

- 그 앓아 아프기 때문에 이제 얼굴이 하얗는지는 그건 모르겠습니다만은.

- 네.

- 아무튼 그 아파서 지렁이를 이제 구워먹어요.

- 네.

- 지렁이를 구워 먹는데, 그 집에는 유난히도 식구가 많고. 식구가 많으면서도 이제 그 화목하고.

- 네.

- 뭐, 그랬던거 같아요. 그리고 그 울타리 그 때에는 밭에. 울타리를 밭에라고 하는데.

- 네.

- 수수괭이로 이제 그 그런 그 밭에 울타리에 박 꽃이 그냥 굉장히 많이 피어있고, 박이 아주 많이 주렁주렁 달려 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 네.

- 내 생각에 저 집은 식구가 많으니까 박이 많이 달려야하겠다. 막 그런 많이 달렸으면 하는. 제발 많이 좀 달려라 하는 그 기도같은 마음도 가지고 있었어요.

- 네, 예나 지금이나 뭐 같지만은 그 어린 아이들이 서로 즐기고 놀때 가정에서 그 아이하고는 접촉을 하지마라. 이런 제재도 있을거 같은데요?

- 네, 그런데 그런것은 없었어요.

- 네.

- 그런데 그 한번 그런 생각이 나요. 걔하고 이렇게 자주 놀게 되니깐은. 이제 그 이름도 잊혀지지 않는데, 종선이라고 하는 아이가 머리를 땋은 아이인데.

- 네.

- 걔가 이제 막 돌을 집어던지면서 그 뭐 이렇게 그 뭐라고 할까, 핍박을 하더고만요.

- 네네.

- 너 좋아한다고.

- 아, 네.

- 그런 일은.

- 일종의 질투?

- 글쎄, 그렇겠지요.

- 네네.

- 하하.

- 편을 짜가지고.

- 네네.

- 네, 이렇게 돌질 막 하고 그러던 생각이 납니다.

- 네, 시대가 변천되니까 지금은 잘 볼수 없는데 옛날에는 그 소꼽장난도 많이 하셨지요?

- 네, 소꼽장난을 참 많이 했어요.

- 네.

- 그 때 당시에도 뭐 역시 흙으로다가 밥을 짓고.

- 네, 그런것도 일풀을 이제 그거 범풀을 나오지 않읍니까?

- 네.

- 그러면은 김치 담근다, 뭐.

- 네.

- 나물을 무친다 그런 생각이 나요.

- 네, 그러니까 조금 아까 말씀하신 상택이라는 어린이가 아빠가 되고 그랬었나요?

- 뭐 그런 생각은 안나고 그 애하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나는데 바다에 가던 생각만 납니다.

- 네네.

- 네, 바다에 가가지고 걔가 대답을 잘 못하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제 굉장히 이제 뭐라고 할까? 심술굿게 막 욕을 하고 말이야. 그까지 껏 그거 넌 그런것도 모르느냐고 막 이렇게 뭐라고 하는거야? 뭐 저 그런가, 꾸짖는다고도 안하고 또 뭐라고 합니까?

- 글쎄요? 심술이라고 그럴까요?

- 네, 아무튼 이래 저 없이 만만히 보고 말이에요.

- 네.

- 막 이렇게 그거 해줬어요.

- 네.

- 네.

- 음악을 또 들어보겠습니다.

(음악)

- 그러니까 그 어렸을 때에는 한 고장에서 쭉 자라셨습니까? 아니면은?

- 그러니까 여덟살 이전까지는 그 낳은 제가 태어난 함경북도 성진군 예동이라는 데에서 여덟살까지는 자라고요.

- 네.

- 그 뒤에는 이제 함경남도, 함경남도 이제 당천군.

- 네.

- 이제 이사를 왔습니다.

- 네.

- 그런데 우리 아버지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데요.

- 네.

- 그래서 이제 외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함경북도 성진에는 외가가 있거든요.

- 네.

- 그 예동이라는데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이제 거기가서 사셨는데, 우리 아버지는 집에 늘 안계시더고만요.

- 네.

- 그 어머니하고 사이가 참 나빴던거 같아요.

- 네네.

- 네, 오시면은 어머니가 굉장히 이제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 네.

- 그렇더군요, 우리 아버지는 또 참 그 정의감이 참 세다고 할까? 굉장히 그저 남의 일을 가지고 잘 싸우시고.

- 네.

- 그러더만요.

- 네.

- 당천에 이사를 오면서 어떻게 그 저 예동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운지.

- 네.

- 줄곧 앓았어요. 줄곧 앓고, 바다도 당천에는 이렇게 우리 동네에서 바다도 안보이거든요.

- 네.

- 그러니까 못살거 같아요.

- 네.

- 그리고 그 참 외가에 이제 거기있는 오라버니라던지,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그립고, 아마 그 어릴때는 그 참 상택이하고 좋아한다고 이렇게 돌질을 하고 이런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참 그립더고만요.

- 네네.

- 네. 그래, 그러는데 이제 제가 늘 캄캄한 이제 캄캄한 골방에 들어가서 이제 누워서 있었어요.

- 네.

- 그러니까 자연히 이제 병도 나고 학질, 말라리아 있지 않습니까?

- 그렇지요.

- 네, 그 열을 많이내고 앓고있는데 그 예동에서 이제 당천으로 이제 그 다니러 온 동네 사람.

- 네.

- 그 사람들 둘이 왔는데요, 얼마나 반가운지 그냥 학질이 그냥 뚝 떨어졌어요.

- 네네.

- 허허.

- 허허.

- 네, 그 전에도 봉숭아를 많이 드리고 그렇게 했지요?

- 네, 그럼요.

- 지금보다도?

- 오히려 지금보다는 더 그걸 많이 참 가지고 모두.

- 네.

- 네, 이웃에서 이렇게 얻어다서 심는다던가, 이렇게 씨를 뿌린다던가 해서 길러서는 이렇게 참 백반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 네네, 하얀거.

- 네, 하얀 그런거를 이제 그거를 나물 무치듯이 무쳐두었다가 이렇게 밤이면 드리던 그런 생각이

- 네.

- 듭니다.

- 네.

- 네, 저 그러니까 저 친구들하고 노시면서 혹시 싸운 기억같은거 없으세요?

- 그런데 글쎄. 싸웠다고 하면 그것이 그 당천에 있을때인데. 곁에 뒤에 바로 이렇게 울타리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 네.

- 새에만.

- 네.

- 울타리가 있어야 하는데 울타리가 없었거든요.

- 네네.

- 그랬는데 시골에서는 그 물을 길르지 않습니까?

- 네.

- 물을 길른다던가, 이런걸 할때에 그 집에서 저만하는게 처녀라는거 보다도 소녀이겠지요.

- 네.

-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물을 길를때에도 내기를 하고요, 뭐 이렇게 참 커다란 이제 독을 이제 누가 채우느냐 하는 내기도 하고, 또 감자를 베끼는데도 이제 내기를 했어요.

- 네.

- 그러다가는 이제 어떻게 네가 잘했느니, 내가 이겼느니 하고.

- 네, 헤헤.

- 싸우던 생각이 납니다만.

- 네.

- 그건 뭐 그 싸울 때뿐이지, 이내 말하고 보면은 뭐 큰 싸움은 아닌거 같아요.

- 네.

- 사내 아이들이 뭐 짖꿎은 짓을 많이 했겠지요?

- 네, 사내 아이들은 이제 그 뭐 심부름을 간다던가 하면은 이렇게 샛길을 가지고 이래 길을 막는다던가, 팔을 가지고 길을 막는다던가. 이런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 네, 그럴 때는 어떻게 모면하셨어요?

- 그냥 울고 돌아오지요, 뭐. 하하.

- 하하, 네. 부모님에게 그저 구원의 요청을?

- 그렇다는거 보다도 우리 어머니는 이제 늘 바빴어요 아버지가 안계시고.

- 네.

- 그래서 뭐 여러가지 참 사는 일이 바쁘니깐 뭐 그런 호소같은 거를 뭐 잘 들어주게 생기지도 않고. 그러니까 혼자 이제 격분했는데.

- 네. 이제 추석이 한 보름 남았지요?

- 네.

- 그런데 그 때에 그 추석에 지내던 생각도 좀 나실거 같아요?

- 네, 추석을 우리집에서는 그렇게 대단하게 차리지를 않았어요.

- 네.

- 차리게 된다면 이제 송편 뭐 이 정도로 이렇게하고 제사 지내러 가는데 우리는 아마 그 종손이 아니거든요.

- 네.

- 큰 댁이 있었어요.

- 네.

- 그래서 큰 댁하고 모두 같이 선영에 가서 산소에 가서 참 차례차례 이렇게 제사를 드리는데 굉장히 많더고만요.

- 네.

- 네, 집안이 꽤 많았는데요. 그 남자들은 어린애까지 다 이렇게 절을 시키고 그래도 계집애들은 뭐 참여하라는 말도 안하고. 이제 우리는 그저 참 그저 나중에 다 끝난다음에 제사 음식이나 얻어먹고, 이제 그러던 생각이 납니다.

- 어린 마음에 어떻게 반발같은 거 없으셨어요?

-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 네.

- 그런 반별은 없었습니다.

- 그냥 식이 그렇다 그러니까.

- 네.

- 네.

- 복종하셨겠고만요?

- 네, 남자들 그저 으례 그런거고.

- 네, 여자 아이들은 그저 거기 참여를 못하는가보다 하고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 네.

- 그 추석음식으로는 어떤거를 제일 좋아하셨어요?

- 추석에는 대개 그저 제사 음식으로써는 뭐 콩나물 국이라던가, 뭐 무 나물.

- 네.

- 이런것을 많이하고, 이제 거기는 부개가 많거든요.

- 네.

- 부개 무침, 부개로 또 계란 부침.

- 네.

- 전유어 비슷하게 이렇게 하고.

- 네.

- 전유어와 같은거 그저 두부굽고 대개 요리하고 별로 차이가 없는데, 거기서는 이제 약식같은 것을 그렇게 잘 안하던거 같아요.

- 네.

- 네.

- 네, 또 그렇게 하고.

- 네.

(음악)

- 이제 어린 얘기를 쭉 해왔는데 잊혀지지 않을 것도 있을거 같습니다.

- 네, 그런데 제가 아버지가 그렇게 집에 안계시고, 다른데에 가서 다른 여자하고 사셨거든요. 그래서 그 어머니가 많이 고생을 했어요.

- 네.

- 저도 이제 따라서 이제 물도 깃고, 방아도 찧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같이 학교에 못갔습니다.

- 네.

- 학교에 못가고, 그 여름방학이라던가, 겨울방학에 외지에 가서 공부 하고 온 유학생들 있지 않습니까?

- 네.

- 그러면 그 학생들이 와서 이제 야학을 합니다.

- 네.

- 야학을 하게 되면은 이제 거기에 가거든요.

- 네.

- 그런데 제가 어릴때에는 이제 좀 총기가 맑았던가 봐요.

- 네.

- 가면 공부 잘한다고, 이제 선생님들이 참 귀여워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재미있는지 몰라요. 선생님이 귀여워 하시지. 그러니까 재미가 있는데. 어머니가 이제 아버지가 외지에 나가서 다른 여자하고 그러니까 신경질이라고 할까.

- 네.

- 그런것은 전부 우리한테서 이제 쏟아놓거든요.

- 네.

- 그래서 예동에 있을 때에는 그러면서도 외가가 전부 다 예수를 믿으시고 그러니까 어머니도 참 독실하게 믿으시고 우리들이 병이 나도 약으로 고친다는 생각을 안하시고.

- 네.

- 전부 기도로써 이렇게 전부 하셨는데. 감춰 놓으셔서는 그걸 다 버리고서 성경책 뭐 이런거 그냥 전부다 뜯어서 이제 벽지를 바르고.

- 네.

- 제가 이제 글을 어디서 뭐했는가 하니 벽에 예배당에 다니던 기억이 나니까, 그 예배당에서 이제 성경 구절같은 걸 외우고는 했거든요.

- 네.

- 하나님하면은 하나님. 아 이게 하나님이구나.

- 헤헤.

- 이렇게 해서 언문이겠지요?

- 네.

- 국문을 깨쳤습니다.

- 네.

- 그 어릴때 기억이라는건 그 학교에 못가고.

- 네.

- 야학에 다니다가도 어머니가 못 다니게하고, 아마 책을 찢어버린다던가 뭐 이런.

- 네, 헤헤.

- 서러운 일들.

- 네.

- 기억이 납니다.

- 머리에 떠오르시는군요?

- 네.

- 오늘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 네.

- 내일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음악)

지금까지 소설가 최정희 여사를 마시고 대담에 원창호가 말씀드렸습니다. 0시에 만난 사람을 마칩니다.

(입력일 : 2009.06.24)
프로그램 리스트보기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