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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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0시에 만난 사람
오화섭 (연대 영문학 교수) - 영문학을 택하게 된 계기
오화섭 (연대 영문학 교수)
영문학을 택하게 된 계기
1966.09.02 방송
(음악)

0시에 만난 사람.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무덥던 하루가 또 깊었습니다. 가는 계절은 보내야만 하는 것. 가려는 여름철을 애석게 여기는듯 풀 벌레 소리는 쓸쓸해지고 가을을 가까이 둔 밤 빛이 그리움으로 물들어갑니다. 오늘 밤부터는 연세대학교 영문학 교수 오화섭씨를 모시고 여러가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 안녕하십니까?

-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던 좀 전에 날씨와는 달리요, 밤이 되어도 날씨가 몹시 더워서 아주요, 이 여름을 원망할 정도로 더위가 심한데요. 선생님 더위 많이 타셨어요?

- 네.

- 올 여름에?

- 원래 보시다시피 좀 몸이 좀 뚱뚱해서요.

- 네.

- 아주 더위는 못 참습니다.

- 네.

- 요새는 뭐 여름이 뭐 거꾸로 돌아가는거 같군요.

- 그렇지요.

- 네.

- 이제 오늘부터 선생님을 모시고 앞으로 여러 회에 걸쳐 좋은 말씀 부탁드려야 되겠는데요.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네.

- 그 동안 방학을 쭉 보내시고요.

- 네.

- 이제 개학을 하셔서 학교에 강의 나가시겠지요?

- 네, 개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더워서요, 뭐 교실에 들어가긴 들어가지만 참 강의하기가 어렵군요.

- 네.

- 학생들도 고단해하고, 더워하고.

- 글쎄요, 방학 동안에는 무덥다가도 개학을 하면요, 서늘한 공기로 또 공부를 열심히 할수있는 날씨가 되면 좋겠는데요. 어떻게 개학을 하니까 더욱 더 더운거 같아요.

- 네, 그런데 아마 개학을 그 전에는 9월 들어서서 하지 않았어요?

- 네.

- 그런데 올해는 어떻게 된건지 9월 전에 개강을 해 놔서 너무 일찍 해서 아마 노여워서 더 더운줄 알았지요.

- 하하, 네, 선생님. 이번 방학 동안에 재미있으신 일 많으셨어요? 어떻게 보내셨어요? 방학을?

- 네, 사실 난 이 바다에는 늘 가고 싶었는데 늘 가지를 못하다가 이번에는 뭐 애들 등쌀에 그저 핑계가 좋았지만요.

- 네.

- 가족 데리고 가서는 저 부산에 갔다 왔습니다. 부산 옆에 수영 비행장이라고 있어요.

- 네.

- 수영 비행장에 그러니까 그게 동쪽, 동쪽이 될까요? 거기 조그마한 민락동이라는 어촌이 있더군요. 거기가서 방 하나를 빌려서 한 4, 5일 그저 물에 들어갔다가 왔습니다.

- 하하, 좋은 방학 보내셨군요?

- 네.

- 조용하겠군요? 그 곳은 별로 사람이 찾지 않아서요?

- 거기 네, 원래 해수욕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장소는 조용하더군요.

- 네.

- 그저 일부러 그 장소를 택해 갔어요, 애들 때문에.

- 네.

- 네.

- 선생님 수영 잘 하세요?

- 글쎄요, 뭐 보시다시피 이 몸으로 그래도 뭐 한 100m 는 갑니다. 하하하.

- 아, 잘하시는군요?

- 소위 개 헤엄으로 그렇게 가지요.

- 하하하, 네. 여름하면은 이 물과 뗄수없는 관련이 있구요, 서늘한 물가에서 대부분 보내고 싶어하는데. 이 바닷가에 낭만이라고 하면은 참 멋있겠지요? 이 저녁 무렵은 어땠어요?

- 으흠, 저녁에는 이제 고기잡이 나갔던 배들이 들어오고요, 또 그래서 아주 조용하고, 그러니까 어느 면에 있어서는 너무 조용하기 때문에 그저 파도치는 소리에 철석철석 들리고.

- 네.

- 그래서 뭐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더군요. 저녁 먹고 난 뒤에 해변가를 좀 거닐어 봤습니다.

- 네.

- 아주 좋더만요. 달도 좀 있으면 좋을텐데 적어도 성원했습니다만은. 여기저기 그 이제 뭐라고 그럴까요? 불이 반짝반짝 비치는데 그러면 대개 무슨 배에서 아마 비쳐진.

- 고기잡이 배이겠지요?

- 네, 고기잡이 배 인거 같더군요.

- 네. 그런데 그 어촌에 밤, 또 농촌에 밤들은 전기불이 없기 때문에 빨리 오는것 같이 느껴지지요?

- 네, 제가 간데는요, 아주 그 뭐 보잘것 없는 집들인데 초가집이 대부분이고 그런데 전기는 들어와 있더군요.

- 네.

- 거기 아마 그 부산시이니까요. 거기도. 거기도, 그런데 모기 때문에 견딜수가 없어요.

- 하하, 네.

- 네.

- 여름철에 모기 어디 가서나 극성때문에 야단들이지요.

- 네.

- 선생님은 뭐 청취자 여러분께서 소개에 말씀을 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고 계시겠는데요. 선생님이 영문학을 택하실 그 때 즈음에는 영문학 택하시는 분들이 참 많았어요?

- 그 때에.

- 그 학창시절이 되겠지요?

- 네. 벌써 참 오래 되었습니다만은 제가 스무살 때, 그러니까 졸업을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 일본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 네.

- 그 때에 뭐 그 때라고 특별히 영문학 하는 사람들이 사람이 많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나 저는 일본 사람들 압박도 너무 심하고 그러니깐은 자연히 뭐 외국문학을 하는 사람의 수가 많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 네.

- 네.

- 선생님 자신은 어떻게 해서 영문학을 택하시게 되셨어요?

- 그런데 그 사연이 아주 좀 뭐 복잡할거 까지는 없지만요.

- 네.

- 제가 중학교 다닐적에 저한테 그 굉장히 그 영향을 전해주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 네.

- 그 분이 저를 보고 불문학을 가라고 그러셨어요.

- 음.

- 그래서 사실은 제가 대학. 요새와서는 학제가 다르지요. 저는 와세다 대학을 나왔는데요. 거기 이제 고등학원이라고 있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그게 해방되기 이전에 고등학교라는게 있잖아요.

- 네.

- 그러니까 이게 대학급 부서가 되어서는 고등학원이라고 그랬는데 이제 거기에 갔습니다. 갔는데 자꾸 불문학에 들어가라고 하셔서 제가 선생님 말씀대로 듣고 사실은 불문과를 들어갔습니다. 처음에.

- 처음에는 요?

- 네.

- 제 성격을 어떻게 보셨는지 그저 넌 불문학이 맞을거 같다, 그래서 저는 어른들한테는 절대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서요.

- 하하, 네.

- 네, 그래서 불문과에 들어갔다가 그 다음 2학년때에 영문과로 전과했습니다.

- 네.

-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은 그대로 불문학을 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또 사실 그때 해방 전에야 불문과를 나와서 직장을 갖기가 어렵고요, 그런데다가 또 뭐라고 그럴까? 난 사실 장남입니다.

- 네.

- 장남인데 그 장남에 특권이라고나 할까? 참 논 팔고 밭 팔아서 공부를 했는데요. 그런거 저런거 생각해서 아마 그런 제가 결단을 내렸는지는 모르지만 하긴 영문과로 그 때 전과할 뻔했어요.

- 네.

- 외국문학하는거야 뭐 불문학이나 영문학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서 영문학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 네.

(음악)

- 선생님, 그러고 보니까 그 때 학제는요, 지금하고 다른거 같아요?

- 지금하고 많이 다릅니다.

- 네.

- 이제 그 때에는 중학교라고해서 이제 5년이지요, 5년이고 그 다음에 그 고등학교라고 하는 것이 3년있어요.

- 네.

- 그 다음에 이제 학부가 3년있고요, 그런데 그 사립대학에 경우에는 예과, 보통 예과라 그러지요?

- 네.

- 그 이제 예과가 2년짜리도 있고, 3년 짜리도 있고요. 그래서 그 소위 말하자면 고등학교 그 동안에 외국어를 많이 합니다.

- 네.

- 굉장히 많이 합니다. 외국말 내가 처음에 불문과 들어갔을 때에는요, 불란서 말이 일주일에 12시간 있었습니다.

- 허허, 굉장히 많군요?

- 영어가 5시간 있었구요.

- 네.

- 그러니까 외국어를 결국 17시간을. 일주일에.

- 하하, 네. 그러니까 고등학교때 불문과, 영문과 나뉘어져서 전공을 하게 되었고요?

- 그렇지요. 처음부터 그렇게 갈려 지지요. 네.

- 네,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때 불문과에서 영문과로 전과 하신 셈이지요?

- 그렇지요, 네.

- 네. 그런데 언제부터 그러면 영문학 전공하시는 동안에요. 이 희곡,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 처음에는 제가 뭐 고등학교 때에는 드라마에 그렇게 관심을 안 가졌었어요.

- 네.

- 이제 학부에 올라와서 학부에 올라와서 일본에 그 저 축지 소극장이라고 그 일본 신 그 운동회 말하자면 그 본거지라고 할까요?

- 네.

- 아주 연극을 굉장히 하는데가 있습니다. 거기에 이제 그 문과 학생들이 또 그런 축지 소극장에 가서 연극을 안 보면 또 안될만큼 그만한 위치에 있었지요, 거기가. 그 극장이.

- 네.

- 거기를 대개 구경도 가고, 또 이러다 그 보니까 자연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고요, 또 연극이 역시 좋다, 이렇게 느껴져요.

- 하하, 네. 그 때부터 그럼 관심을 갖게 되셨고.

- 네.

- 좋아지시게 되었군요?

- 네.

- 이제와서는 정말 연극과 선생님과는 뗄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요.

- 네, 이제는 뭐 뗄래야 참 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가르치는것도 그 쪽이고요. 이제는 뭐 죽는날까지 그 길로 외곬수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 하하, 네. 그런데 어 일본에 가서 대학을 들어갈때에요.

- 네.

- 여러 대학이 많았을텐데요.

- 네.

- 하필이면 왜 와세다 대학을 다니셨는지?

- 하하, 네.

- 이유가 있으실거 같기도 하고.

- 네, 이유가 있지요.

- 네.

- 이유가 있지요. 제가 중학교 5학년때 동경 유학을 좀 가겠다고 하니까 어떤 하숙에 같이있던 선배가 있어요. 그 선배가 그저 무슨 학교관계로 선배가 아니라, 나이가 그저 위가 되어서 그냥 선배인데요.

- 하하, 네.

- 그 양반도 저 동경 유학을 했다고 그러더만요. 그런데 와세대를 나온 분이 아니고, 다른 데를 나온분인데 자꾸 와세대를 가라고 그래요. 학교가 좋다고 그런데다가 일본에 그 스도우치소요 라고요, 아주 평내소요라고 우리말로는 학문 우리 식으로 읽으면 그렀습니다.

- 네.

- 그 분이 그 와세다학 고향에 계셨는데 그 분이 일본에 있어서 셰익스피어를 완전히 완역을 하고, 참 일본에다가 소개를 하고 참 아주 유일한 분입니다.

- 네.

- 지금이야 또 후계자들이 많지만요, 그래서 이제 그 분이 그 와세대학 영문과를 상당히 그 유명하게 만드시고. 또 그래서 뭐 그런관계 저런 관계해서 내가 와세대학에 가야되겠다, 뭐 그 학교는 아주 자유학원이라고 이제는 그러고요.

- 네.

- 또 학풍이 그렇고, 그래서 제가 거기를 택해서 갔지요.

- 네, 그러니깐은 주위 분들에 말씀에 따라서 택하시게 되었지만은, 막상 입학하셔서여. 실망은 안하셨어요?

- 음. 저는 참 그 학교를 들어가서 졸업할때까지 정말이지 만족스럽게 다녔습니다.

- 네.

- 네, 조금도 뭐 후회해 본일이 없고, 내가 바라던 학교에 들어왔다. 또 학교 분위기도 좋고요, 그래서 아주 지금도 제 아무리 외국학교 이지만 어쨌든, 제가 다니던 학교이니까요. 이해해줘야하고, 만족스럽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 네, 아마 지금도 그 즐거웠던 학창시절의 여러가지에 일이야 생각나실지 모르겠어요.

- 가끔 생각이 생각나요.

- 네, 그러니깐은 이 대학을 정할때에요, 지금도 입학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학을 택하는 문제, 또 그 과를 택하는 문제, 여러가지 신중히 생각을 하고, 주위 분들의 충고도 따르고 하는데, 선생님도 그 때 여러가지 의논을 드렸던가 보지요? 그러니까 주위에서들.

- 네, 그렇지요.

- 권하고요.

- 네, 사실 과를 택한다는게 사실 어렵기도 하고, 사실 그게 신중해야 하거든요.

- 네.

- 일단 뭐 택하고서 그 과를 졸업하고 나와서는 바꿀 수도 없고, 요새 학생들은 그저 덮어놓고 들어가기만 된다하는 그런 경향이 좀 없지않아 있는거 같은데요, 저희 때에는 그래도 자기가 이거 아니면 안된다하고 해서 자기가 생각한 나머지 그래도 결정을 해가지고 그리고 들어갔습니다. 다들.

- 네.

- 다들, 물론 저도 그랬고요, 네.

- 지금 너무나 입시 지옥이라는 말이 표현해주듯이요, 부담들을 너무 주기 때문에 더 쉬운 과, 우선 대학에 들어가보자고 하는 생각들도 생겨난거 같아요?

- 네, 역시 그 경쟁때문에 그렇지요. 네.

- 불행한 얘기인데요.

- 허허.

- 네, 불행한 얘기입니다. 사실.

(음악)

- 그러니까 오 선생님께서 와세다 대학을 졸업을 하시고 나서는 곧 교편을 잡으셨나요?

- 네, 그게 그때가 제가 졸업한게 1940년이거든요.

- 네.

- 40년에 졸업을 하고 1년 대학원에 또 남아있었습니다.

- 네.

- 남아있었는데 그런데 대학원 1년을 마친게 3월이 아니겠어요? 그 때에는 4월에 학년 초이거든요. 그런데 이 저 중동중학교있잖아요? 지금 수성동에요?

- 네네.

- 사실 제가 거기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교장 선생님이 나오라고 하고 우편을 보내셨어요. 빨리 나오라고.

- 네.

- 학교 그만두고 이제 그만했으면 됐으니 나와서 가르치라고.

- 하하, 네.

- 그래서 나왔어요. 나와서 이제 제 모교에서 거기서 3년동안을 이제 영어교원 노릇을 했지요.

- 네.

- 네.

- 모교에서 처음 교편생활을 시작하셨군요?

- 네. 그런데 그 재미있는 얘기는 중동을 가게 된 얘기가 재미있습니다. 사실 저는 농촌 출신이거든요.

- 네, 고향이 어디신데요?

- 경기도 입니다. 경기도 부천군이라는데인데요.

- 네.

- 지금은 인천시가 되었습니다만 거기서 이제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우리 담임이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아주 그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 분이 제주도분인데 전 그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 네.

- 그 분이 이제 시간 끝나면 무슨 암크롱통스 캐빈이니 뭐니 이런 얘기를 본 당신이 참 읽으시고, 또 슬픈 장면에 가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시고 말이지요.

- 아하.

- 네, 이렇게해서 우리 애들한테 꽤 그 영향을 많이 주셨어요. 그런데 내 부친이 지금 돌아가셨습니다만은 같은 해에 졸업 후에 일을 아마 의논하러 가셨던 모양이에요.

- 네.

- 그런데 저 뭐 저희야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 뻔하잖아요, 뭐 토지 저밀도야 대단하지 않고요.

- 네.

- 인천시내에 그 인천 상업학교가 있습니다. 자꾸 거기에 시험을 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그 애는 그런데 가면 안될거라고.

- 네.

- 그 애는 일반 중학교를 보내서 아마 혼합계통에 보내시는게 좋을겁니다. 그 선생님이 그러셨데요.

- 네.

- 그렇지만 작은 인천의 상업학교를 시험치라고 하셔서 인천 상업고등학교에 시험을 쳤지요. 쳤는데 아주 난 수학을 못하기로는 1등입니다.

- 하하, 네.

- 네. 수학이라면은 난 아주.

- 담 쌓으셨어요? 하하.

- 아주 담 쌓고, 하기도 싫고, 하기 싫은게 아니라 자연 못하는거지요. 아주 수학이라면 머리를 흔드는 소년인데요.

- 하하.

- 왜냐면 수학을 못하니까 들어갈수 있나요? 보기좋게 떨어졌지요. 떨어져서 그러니까 이거 다른 학교 서울도 다 끝나고요. 그래서 뒤늦게 이제 한군데 남아있었어요. 그게 바로 제가 졸업한 중동입니다.

- 네.

- 그래서 그 학교에 들어갔지요, 들어가서 그렇지만 학교에 일단 들어온 뒤에는 수학도 뒷자락에서 곧 잘 했습니다.

- 하하.

- 졸업할때부터 나빠졌지만요.

- 네.

- 그래서 제 모교가 되었고, 거기가서 3년 그저 영어교원 노릇을 하고, 그리고 나서 해방되지 않았습니까? 그 동안에 제가 한번 중국에 갔다온 일이 있어요.

- 네, 언제요? 와세다 대학 졸업하시고 나서 한국에?

- 여기 중학교에서 3년 교원노릇을 하다가요.

- 네.

- 해방 전이지요, 해방 직전에 중국에 좀 갔다가 뭐 거기에도 학교 계통으로 갔습니다. 갔다가 이제 해방된 다음해에 6월인가 나왔어요.

- 네.

- 그래가지고는 또 곧 9월 학기부터 고려대학에 이제 나가게 되었지요.

- 음, 네.

- 그 때에는 보성전문학교라고 했나요?

- 그 때에는 해방후이니까 고려대학이지요.

- 해방후에.

- 네.

- 거기 나가셨으니까요?

- 네.

- 네. 그러면은 강의실에서요, 영문학 강의를 하시는 것과 달리, 실제면에서는 언제부터 한국 연극계와 관계를 맺으셨는지요?

- 네, 그러니깐은 제가 그저 사변때 까지 고려대학에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횟수로보면은 1948년인가봅니다.

- 네.

- 1948년 10월인가? 그 때에 여인소극장이라는게 생겼어요.

- 네.

- 네, 아마 지금 분들은 잘 모르실지 모릅니다. 여인소극장이라는건 제 가족 얘기가 결국 안 나올수가 없는데요, 제 죽은 아내가 만든 단체입니다.

- 네.

- 네, 그 사람이 그 때 당시에 이화여대에 있었는데 자기 제자들 데리고 이제 연극을 교내에서 하다보니까, 이왕이면 사회로 진출해서 본격적으로 해보자.

- 네.

- 이래서 이제 소위 여인소극장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 흠.

- 그래서 이제 저는 거기서 주로 작품을 냈지요.

- 네.

- 네네.

- 번역을 많이 하셔서.

- 네.

- 좋은 연극을 하게끔 하셨군요?

- 거기 그러니까 거기 7회공연쯤 했는데요, 그리고 결국 없어졌는데 그 번역은 이제 제가 다 맡아서 했습니다.

- 네.

(음악)

- 선생님 여인소극장이라고 하니까 모든 멤버가요? 여인들로 구성되었다는 느낌이 우선 오는데요. 그러면 이 연기인들도 모두 여자분들이었나요?

- 그렇지요, 사실은 그게 부자연스러운건데요. 이제 그렇게 자기 제자들하고 같이 나오게 되었으니까 그 때에는 자연히 여자들만하니까요.

- 네.

- 그래서 아마 이름을 그렇게 붙이게 된건데, 1회공연 2회공연때까지는 남자역도 여자가 하고요.

- 네.

- 그런데 뭐 상당히 어색하지요, 그래서 이제 일반 사이에서도 비난이 많고요. 이왕 이런걸 할려면은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하느냐? 그래서, 3회공연때부터는 이제 남자도 들어오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본심이지요.

- 네.

- 선생님의 처음 작품이?

- 그때에는 전국 물론 번역입니다만은.

- 네.

- 독일사람 조 데르만이라고 있지요? 조 데르만이라고, 그 사람의 고향이라는 걸 했어요.

- 네.

- 그 다음에는 저 2회때에는 그 입순의 인형의 집이라고 있잖아요?

- 네네, 노라가.

- 네네.

- 뛰쳐 나오는.

- 네네.

- 거기까지 여자들만 했고, 3회공연은 미국의 그 릴리안 헤르만이라고 여류 극작가가 있습니다.

- 네.

- 그 사람이 쓴 그 라인강에 감시라는게 있어요.

- 네.

- 그거를 했고, 또 4회때에는 역시 미국 극작가껀데 운명의 세계라는 것도 했고, 또 5회때에도 뭐 깊은 불 이라고해서 그것도 미국사람꺼고요, 6회때에는 이제 중국사람꺼를 했습니다.

- 네.

- 그거는 뭐 내면의 껍질을 벗다 뭐 이렇게 해서 그 때 아마 번역을 김광조씨 아시지요?

- 네네, 김광조씨요?

- 네, 김광조씨가 번역을 해서 했고요, 7회공연때에는 셰익스피어를 했어요. 그래서 그 때에 그 오델로라고 제가 번역을 한걸로 오델로 공연한게 이제 그 단체에서는 마지막이었습니다.

- 네.

- 그 사변 남으로서 자연히 흩어지고 없어졌지요.

- 네, 그 여인소극장에서 첫 작품으로 고향을 상영할때 선생님의 처음 작품이 아니겠어요? 연극된 것이?

- 번역은 처음입니다.

- 네, 그 때에 마음이 어떠셨어요? 객석에 앉으셔서.

- 좌우간 그것이 비록 내 창작은 아니고 번역이라고 하지만 내가 번역한거니깐은 그 뭐 관심이야 이루 말할수 없지요.

- 네.

- 그리고 내 말이 거기 전부 나가는거니깐은 그 날 첫번 공연에서 보통 문장이 아니고 연극 대사이기 때문에 어색한 것도 많고요. 말로 이렇게 시켜보니까 아주 부자연스럽고 호흡이 잘 안맞고 말이지요.

- 네.

- 그런게 아주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 그러면 여인소극장을 하던 분, 아직 생존해 계시는 분들 많겠지요?

- 네, 그러니까 처음에 여자분들이셨는데 지금 뭐 다 가정을 가져서 가정생활을 하느라고 뭐 어디가 사는지 모르는 분들도 있고요.

- 네.

- 그중에 아주 주요한 멤버로 활약하던 분이 요새 그 파리에 갔다 오셔서 그 의상 디자이너 노릇도 하시고, 이명복씨요.

- 네네.

- 그 부군이 권호경씨 아닙니까? 화가.

- 미술대학? 네네.

- 그 분인데 그 분이 요새 또 다시 연극을 하시겠다고 해서 다시 시작했지요.

- 네.

- 네.

- 모두들 연극에 대한 열의는 오랜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으시는 모양이에요? 다시들 연극계에서 모두 의욕을 가지고 일하시는거 보니까요?

- 네, 연극에 한번 둔 사람은 못 잊어버리는거 같습니다.

- 네네.

- 감사합니다, 오늘 밤 얘기 고맙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음악)

연세대학교 영문학 교수 오화섭씨를 모시고 보내드린 0시에 만난 사람.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에 최춘자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입력일 : 200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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