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강대진 - 제1회 대남간첩 이야기
강대진
제1회 대남간첩 이야기
1972.04.10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음악)

이 사람에게 듣는다. 공산권 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강대진씨 얘길 들어봅니다.

대담에 이규영 아나운서 입니다.



- 강대진씨, 동아방송에 오래간만에 뵙게 되는 거 같습니다.

- 네. 안녕하십니까.

- 강대진씨 수기로는 뭐, 우리 동아일보 애독자라던지, 또 드라마화 해 가지고서 방송을

해서 너무나 잘 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 네.

- 요즘에 남북한 적십자사에서 대표들 회의들도 하고 있고요.

- 네.

- 또 서부독일에선 동부독일까지 찾아가고, 세계적으로도 변화가 많은 거 같습니다. 또

우리가 국내적으로 생각을 하면은 그 남북한 회담은 하고 있으면서도 대남 간첩들은 여전

히 준동하고 있고요.

- 네.

- 그러면서도 종전과는 좀 달라진 양상을 볼 수 있지 않느냐.

- 네.

- 여러가지 얘기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좋은 얘길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 네.

- 우선 대남간첩 얘기 부터 했으면 좋겠는데요.

- 네. 근데, 대남 간첩 활동은 북괴가 남한 적화통일에 일환으로 되고 있습니다.

- 네.

- 소위 남한 적화통일을 위해서 남한에서 많은 소위 북괴를 지지하는 지하당을 많이 조

직해야 된다. 이런 하나의 그 노선을 이미 채택했죠.

- 네.

- 그래가지고 많은 간첩을 남파시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근데, 그 간첩, 남파라던가

또는 그 선발 방법에 있어서도.

- 네.

- 또 임무 자체에서도 쭉 보면 많이 달라져 나왔어요. 제가 67년 7월달에 나왔습니다.

- 네.

- 그런데, 그 때만 하더라도 반야공작을 기본으로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날 밤으로

들어와서 그날 밤으로 자기 연고자를 어떻게 가까이 있는 연고자를 만나가지고 그걸 그

냥 데리고 북으로 들어가는.

- 네.

- 이런 소위 간첩 임무가 많았고.

- 네.

- 근데 67년 이후로 와서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가지고서 남한을 적화통일 하기 위해서

소위 파견하는데 있어서.

- 네.

- 어떻게 소극적으로 하는가. 말 그대로 인용하면은 적극적으로 진공적으로 해라. 이렇

게 얘기를 했어요.

- 그렇다면 적극적, 진공적이라 하면 풀어서.

- 네. 그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은 쉬지말고 꾸준히 계속 내보내란 이 말입니다.

- 네.

- 그래서 이 서해안에 있거나 휴전선 부근에 있는 사람들을 대동복귀하는 식으로만 하지

말고, 반야공작으로만 하지 말고 이걸 배합해라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까 내 오지에도 들

어가서 지하당을 조직하는 그런 활동을 용감하게 해야 되겠다.

- 네.

- 그런데 피를 흘리지 않고 어떻게 간첩공작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지시를 했어요.

그래서 대대적인 남한 출신들을 선발했습니다.

- 네.

- 근데, 남한 출신 선발에 있어서도 초기에는 인텔리 그러니까 좀 지식층. 또는 그 지식

층이라고 할 때에도 남한에 와도 연고자가 있는 자. 이걸 포섭해가지고서 그를 교육해서

남파시켜가지고 자기 연고자한테 침투해가지고서 소위 지하당을 조직할 수 있다. 이런 공

작 으로 주로 많이 내몰았습니다.

- 네.

- 그런데 지금 와서는 적지 않게, 물론 배합은 하겠지만 과거는 전혀 무시하고는 하지는

아니겠죠. 배합은 하겠지만은 소위 그래도 기본출신 중에서 선발해야 되겠다. 이렇게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 네.

- 그래서 과거에 6.25 동란시에 의용군으로 끌어갔거나, 또는 남로당 활동으로서 그 월북

한 사람들 중에서.

- 네.

- 남로당 활동하다 월북한 사람들 중에서 소위 토대가. 경제적 토대가 빈약했던 사람들.

이 사람들을 주로 이제 뽑아다가 아주 큰 정치적 감투, 다시 말해서 어떤 간부다. 하는

이런 임명을 해가지고서.

- 네.

- 그래가지고 그 사람의 아주 자부심을 가지게, 다시 말해서 간첩으로 남파되는 사람들이

나도 큰 간부다 하는 그런 우월감을 가지게끔해서 남파시키는 거 같습니다.

- 네.

- 그래서 제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69호라는 정치학교라고 하는 간첩훈련소에서 1년동안

소위 간첩훈련을 받고서 초대소로 옮겨서 대기시켰다가 적당한 시기에 남파시키고 이랬

어요.

- 네.

- 근데 지금은 그 69호 소위 간첩훈련소에서 1년이면 1년간을 훈련시킨 다음에도 전문적

인 훈련기간에서 또 이동시킵니다.

- 네.

- 940부대라고 하던가. 그렇게 돼있어요.

- 네.

- 거기로 이동시켜서 124부대 처럼 말입니다. 완전히 무장활동까지 할 수 있도록 훈련시

켜가지고서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네.

- 그래서 지금 71년도에 보면은 비교적 간첩수가 적게 들어왔어요.

- 네.

-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비해서, 지난 해에 비해서 그랬지 사실 71년도 많이 들어오지 않

았습니까?

- 그렇죠.

- 그러나 지난 해에 비해서는 좀 떨어졌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지금. 알고.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많은 간첩을 양성해 가지고 대기중에 있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네.

- 그래서 앞으로 많은 간첩들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 네.

- 그런데 이제 그들이 나오면은 과거에는 친지나 이런곳에 가서 활동을 하겠지만, 좀 최

근에 준비시키는 걸 보면은 대체로 남한에 와서 자유 노동을 한다던가. 이렇게 하면서 유

랑하면서 이렇게 활동할 수 있게끔. 이렇게 훈련을 주는 거 같습니다.

- 네.

- 그렇지만은 아시다시피 남한에서 지금 간첩들 활동이라는 것은 극히 할 수 없게끔 전체

국민들이 이제 각성돼 있지 않습니까?

- 네.

- 그래서 도저히 참 아무리 자기들이 아무리 훈련을 시키고 위장을 시키고 그 임무자체도

약간 변화시켜가지고 보낸다고 할지라도 남한에 와서 활동하기란 매우 힘들 줄로 알고 있

습니다.

- 네.

- 정말 저 나올 때만 해도 그렇게 무슨 크게 어렵지가 않았어요. 솔직히 말씀 드려서.

- 네.

-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특히 예비군 250만이 조직되지 않았습니까?

- 네.

- 이런 조건이라던가 뭐든 국민들이 전체로 간첩에 대한 상식. 이것을 너무도 많이 했기

때문에

- 네.

- 각성돼 있고, 특히 어떻습니까? 우리 진삼척 지구로 들어왔던 이기자군대가.

- 네.

- 너무 악랄한 잔인성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 네.

- 그래서 전체 국민들이 공산당에 대해서 특히 간첩들에 대해서 증오감을 샀고.

- 오히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거 같습니다.

- 네. 이래서 아무리 감언이설로 간첩들이 와서 남한에 와가지고서 포섭한다고 노력을 할

지라도.

- 네.

- 이제는 뭐 돈도 문제도 아니고,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

오는 즉시 체포되지 않으면은 또 자술자가 생길 것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네. 그러니까 말씀하신 대로 강대진씨가 나오실 무렵에는 67년도 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

진거 같다.

- 네.

- 그 얼마전에 전 국군으로 있다가 6.25당시에 포로가 되서.

- 예.

- 저쪽에서 괴뢰군에 편입시켰다가 제대한 사람을 이쪽으로 남파시켰던.

- 예.

- 과거에 국군의 경력을 가졌던, 이런 사람을 남파시키는. 뭐 이러한 방법을 쓰고도 있는

거 같습니다.

- 예. 그리고 또 납북어부들을.

- 네.

- 또 이용해가지고 그걸 남파시킨단 말입니다.

- 네.

- 또 다른 하나는. 어쨌든, 납치당했거나, 납북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원래 출신성분을 납

북에 봅니다.

- 네.

- 납북당한 사람들을 좋게 보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내에 두어봤댄들 남한이

발전 되었다는 선전밖에 안되거든요.

- 네.

- 결과적으로. 아무렇게도 사람이 이렇게 만나면은 남한 소식도 얘기할 수 있고, 북한소

식도 실질적으로 눈으로 보고 있지 않겠습니까.

- 네.

- 그러니까 남한의 자유스럽고 발전상에 대해서 북한 사람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그런 기

회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네.

- 이러니까 여기서 납북당한 사람들은 자유몸으로 내놓지 않고, 일정한 기간. 소위 교육

을 줘가면서 사상전환을 시킨다는 거죠.

- 네.

- 이렇게 해가지고 결과적으로 내 보내는 것은 간첩임무를 줘서 내보내고, 이렇게 지금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니까 얘기가 되겠습니다만은.

- 네.

- 강대진씨가 남파. 남파될 당시만 해도 사실 허술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 네.

- 세차례나 넘어 오셨다는 얘기죠.

- 네. 그렇습니다. 근데 제가 횟수는 많았어요.

- 네.

- 많았지만은 침투를 하지 못한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 네.

- 바닷까지만 왔고요. 그래서 저는 자수한 동기가.

- 네.

- 바로 남한의 모든 경제발전과 정치적 자유. 여기에도 물론 있겠지만은.

- 네.

- 중요하게는 내 북한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특히 간첩훈련을 받는 기간에 북괴 간부

들의 비인간성.

- 네.

- 여기에서 참 저는 그 환멸을 느꼈습니다. 인간인 만큼 사람을 인간으로 대해주지 않을

때.

- 네.

- 어딘가 모르게 반감이 오는 것 만은 사실이 아닙니까.

- 네.

- 근데 북괴 공산당. 다시 말해서 노동당이라는 건 참 얼핏보면 엄하고 사상성이 강할 것

같이 보이지만은 그 반면에 많은 척을 쌓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네.

- 왜 그런가 하면은 그 인간성 자체가 아주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어

요.

- 네.

- 이제 제가 하나 간단하게 실례만 들어도 말씀 올릴 수가 있는데, 인간성이라고 하면은

그 사람이 아픈점, 괴로운점, 무엇이라도 이런 것을 간부라고 하면 알아줘야 하는 거 아

니겠습니까?

- 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간첩으로 이렇게 포섭해가지고 선발해가지고 일정한 학교까지

가게 되면은 학교에다 갔다놓고 1년동안 소위 교육을 줍니다. 그럴 때 자기 가족하고는

완전히 격리시켜 버리지 않습니까.

- 네.

- 처자도 못 만나게 하고, 편지도 못하게 하고, 그러면 인간이 자기 처자를 안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교육받고 있는 기간에도 처자를 보고 싶

은 생각 뿐입니다. 다른거 하나도 없어요.

- 네.

- 또 다른 하나는 그 두 가지의 심리가 작용해요. 하나는 내가 소위 공산, 노동당 중앙

위원회 소환되었다. 과거엔 내가 감시받고 있던 사람인데, 그래도 당의 신임을 얻어가지고

내가 소환되었다. 하나의 소위 우쭐감이라고 할까. 영예감이라고 할까. 그 들이 말하는.

이런것이 하나 작용이 됩니다.

- 네.

- 왜그러냐 하면 너무 신임을. 감시를 많이 당했기 때문에.

- 네.

- 그래서 감시를 너무 당하면 자기가 생명이 없어진다는 것도 이제 당연한 사실이 아닙니

까. 정치적 생명이 떨어지죠.

- 네.

- 그러니까 그 생명을 피해서 그들한테 신임을 얻어서 중앙당에 소환되었다 하는 것 자체

만 하더라도 좀 기분이 좋습니다.

- 네.

- 다른 하나는 나는 이제 죽는다. 나가면 죽는다. 처자도 못 만난다. 이제 공포심, 두려

움. 이것이 또 작용하죠. 그래서 간첩으로 소환되면은 어쨌든 이랬든 저랬든. 고민속으

로 파고들어가는. 고민 뿐입니다. 다른 하나도 남을 수가 없어요.

- 네. 그러니까 강대진씨께서 이렇게 간첩동향. 과거와는 좀 파견하는 성분부터가 달라졌

고, 작년에는 수 적으로는 적었지만은 지금 대량으로 훈련중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가 대비해야 되겠다.

- 네.

- 이런 말씀이었고요.

- 네.

- 요즘에 차츰차츰 김일성 우상화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네.

- 내일은 그 얘기로 좀 더 넘어 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네.

(음악)

공산권 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강대진씨와의 얘길 이규영 아나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으셨

습니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내일 이시간에 계속 되겠습니다.

(입력일 : 2009.04.23)
프로그램 리스트보기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