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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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김운호 - 제3회 어진을 모시게 된 계기
김운호
제3회 어진을 모시게 된 계기
1971.09.01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음악)

- 의당선생께서 이제 예배당에 쭉 나가시면서 거기서 아시게 된 그 책방을 자주 놀러가셨습니다.

거기서 이제 중추원 창위에 계신 김효성씨라던지 여러분을 만나게 되서.

- 네.

- 그림 그리는.

- 네.

- 계기가 되었던거 같습니다만은 어제 얘기하다가 이제 시간관계로.

- 네.

- 끝났습니다.

- 그래서 그 김효성씨가 그린 부채를 보고 너머 찬사를 그리고요 여러분들이 좋아하더라구요.

비로서 이 그림이라는 것이 우리 집안에서 본래 가정을 듣던 얘기와는 다르구나 깨닫고 거기서

내가 그랬어요.

- 네.

- 이 그림을 공부를 하면 어떻게 공부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주환씨가 있다가 저 김효성씨

자네 신윤호씨하고 친하지 그렇지.

- 네.

- 그렇지. 이 사람아, 신윤호에 대한 소개좀 해줘.

- 네.

- 하, 그러지 내가 그러지 거기서 당장 듣고 명함이나 소개편지를 해줘요.

- 네.

- 백록달에 가면은 서화미술회가 있는데 지금 방학중이라 모든 자의 읍내에서 바둑이 놔두고 심

을 그고 놀기도 하지만 신윤호씨는 늘 앉아 그림을 그리네.

- 네.

- 그러면 자네 가서 들고 내가 써준 걸 갖다가 드리면은 아마 자네를 잘 맞이할테니 가보라고.

- 네.

- 그래서 그걸 가지고 그 이튿날 거기를 갔어요.

- 네.

- 가니까 그게 8월 초하루날이라.

- 네.

- 하루.

- 네.

- 그 신윤호 댁에 마루에 앉아서 그리는데 하얗게 수염을 기르고 이것이 얼굴이 깨끗하게 생긴

양반이야, 심정같아요.

- 심정이라면은 안중식?

- 네, 그렇습니다.

- 네, 그 당시에.

- 네네.

- 아주 당대에 명 화가.

- 네 , 그 두분이지요 소월 이충석씨하고 안 그저 참 두분이 참 적어도 이조 말엽에 제일 화제이

신 분이지요.

- 백록달이라면 지금 어디에?

- 백록달이라면은 지금 조선일보사 아.

- 뒷길로 들어가지고?

- 뒷길로 소월히 빠져 야시원으로 나가는 길있지요.

- 네.

- 거 중간쯤 됩니다.

- 거기 이제 서화?

- 네, 미술회.

- 미술회로군요.

- 네 , 거기서 인즉 이황직하고 총독부하고 합해서 만든거에요.

- 네, 서화 미술회가.

- 네.

- 그러면 거기가서 그 양반한테 드리고 인사를 한 즉은 그리고서는 화보 하나를 그렇게 내놓더니

저희 부분에 내놓고서는 그려보고 그래요.

- 네.

- 근데 지금 즉 생각한즉은 상해고군명인 화보라고 하는 책이에요.

- 네.

- 그 책인데 그 때에는 무슨 책인지 몰랐지요.

- 네.

- 그래서는 버드나무가 있는데 버드나무에 당 미인이 기대고 서있는거에요.

- 네.

- 이걸 하나 그려보고 그랬지요.

- 네.

- 하필 많이 그렸는데 자네 언제 그림을 많이 그렸나?

- 아, 뭐 장난으로 그저 어려서 뭐 장난으로 했지요. 아니 그리는거를 어디 보아한 일이 있습니

까? 뭐,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 아, 그런데 어떻게 그림을 잘 그려?

- 네.

- 그림해도 되겠는데 그랬어요.

- 네.

- 그리고 이제 그만하고 난 이리 왔지요.

- 네.

- 왔는데 이게 먹는거거든 입는게 더 어려워요 그 때에.

- 네.

- 오뉴월 복 중에 그 옷이 어려운 사람이 그 때에는 모시 그럴때에는 다 빨아 입고 대려입을 때

아닙니까?

- 네.

- 요새 옷 같으면 편하지요 또. 조선에서 그걸 깨끗히 입고 다니는데 그 귀족에 다 입었던 전부

부자의 자손들이 잘 입고다니던데. 그 수수하게 눈을 감고 다니고하는데 그 틈에도 우릴 놀릴수

도 없고.

- 네.

- 그래가지고는 가도 억지로 억지로 며칠에 한번씩 가야지 자주 갈 수가 없어요.

- 네.

- 그래야 그거에 몇 일 못가는동안에 김효성씨가 거기를 갔다는 말씀이야.

- 네.

- 가서, 심정 안중식 선생님을 뵙고. 여보게, 저번때 내가 청년하나 소개해서 보낸일이 있지?

- 네.

- 아, 그래 그 사람 어떻든가?

- 그 사람 재주가 대단해. 그림 배우면 되겠던데?

- 네.

- 허허, 그거 섭섭한데. 왜? 오히려 재주 있다는 말이 더 섭섭해. 너 왜그러냐? 그러니까. 너무

적분하대, 말 들으니깐은.

- 네, 가난하니까 말이지요?

- 그 사람 공부 못해, 못하겄어.

- 네네.

- 허허, 그럼 안되겠는데, 그럼 안돼 그 사람한테 공부를 시켜야지 그 사람놓쳐서는 안돼.

- 네.

- 이래가지고 심전이 거기는 그럭저럭 들어가기를 초하루날 들어갔는데, 그저 얘기가 좀 바뀌었

습니다만은.

- 네.

- 그래가지고는 먼저 그 거기에 소림선생이 다음에 그릴 때 무릎을 꿇고 앉으셔서 어디 나 하나

그려보게 하는데 요새는 목탄으로 그리지만, 그때에는 육탄으로 그립니다. 육탄이라는것은 버드

나무로 만드는거고.

- 네.

- 목탄이라는것은 사쿠라나무로 만드는게 목탄이고.

- 네.

- 목탄이 나무하는 사람이 요새 다 스케치를 하고 뎃생할 때 쓰는 거고.

- 네.

- 육탄은 동양화 하는 사람이 쓰는거에요.

- 네.

- 육탄밖에 없을때에요 그때에.

- 네.

- 육탄가지고 저희들에게 하나 그려보라고 그랬지요 그 때에.

- 네.

- 뭐 소림선생이 여기에 왔지요.

- 하하하 네.

- 아, 그래가지고는 저보다 온갖 자랑이에요.

- 네.

- 아, 이거이 인천서 처음으로 가져온건데 아 이것좀 보라고.

- 네.

- 그래 자랑을 말이에요. 김용진씨라고. 예인.

- 네.

- 돌아가신 양반, 그 양반이 근래에 얘기를 해요. 내 그때에 소림이 이걸 보라고 자랑을 하는데

그 때 그게 의당 그림이야.

- 네.

- 그렇게 얘기가 커지지요.

- 네.

- 그러는 즉 저 그렇게 되어가지고는 있는데 마치 송병준이 화상을 그리러 왔어요. 거기

- 송병준은 그 당시에 귀족이죠.

- 그 때에 귀족인데, 백작인데 이 정동 시청앞에 있었습니다. 지금 예배당이 되었더군요 요새.

- 네.

- 거기에 집이 있잖아요.

- 네.

- 거기에 시청 교회도 있고, 또한 시청각도 저 김면묵인가 하는 시청교가 있고.

- 네.

- 그 다음에 송병준의 화상을 책에다가 첫머리를 이렇게 묶는데 전사지라고 저 이 인쇄소에서

반들반들한 미용지같은 종이가 있는데.

- 네.

- 그 먹은 기름같은 먹이에요.

- 네.

- 새까맣건데 거걸로 다가 붓으로다가 찍어서 요 그림을 그대로 인쇄가 된답니다 그대로 앉어.

- 네.

- 그걸 은근히 그 때에 해보지도 않은게 되니까 안되요 심정이.

- 네.

- 그때 슬슬히 돈 쥐고서는 이것좀 해오게 하면서 소령이 전동 지금 보성학교에 있는데.

- 네.

- 그 자리에서 사셨거든. 그려 방학동안이니까 이따금 며칠에 한번씩 오시는데 거길 가서 그걸

그려가지고 오셨는데. 여보 이거 나도 아는데 하고 내놓는데 참 안되었어요.

- 네.

- 그 나는 그 보니까 그릴만 하다는 말이에요.

- 하하 네.

- 그러고 내 이따가 선생님 제가 한번 그려볼까요? 하니까 날 한참 쳐다보더니 웃으며 그럼 한번

그려보라고 아주 책상을 내주세요.

- 네.

- 그걸 그렸지요. 대번 했지요. 아이고 만자가 시원하다 바둑두던 사람이 심정 소령이 둘이 못

하는데 저 청년은 한다고.

- 네.

- 이렇게 소문이 난다는 말이야.

- 네.

- 그것이 원인이 되어가지고 시작이 대궐에까지 이름을 들어가게되는 원인이에요. 시작은.

- 네.

- 그래가지고는 그 심정이 즉 주를 하기를 그럭저럭 보름이 되었어 거기들어간지가.

- 네.

- 그러니 보름날 월급을 타요. 다른데는 월급을 스물하루날 그때 주는데 이황직 월급은 보름날

주거든.

- 네.

- 그러는 월급을 타는날 심정이 주문하기를 말하기를 이 사람을 놓쳐서는 안되겠으니 우리가 여

섯 선생이 한달에 2원씩만 여기서 걷어서 12원씩만 이자를 만들어주자.

- 네.

- 그래가지고는 갈취해가지고 이리 놓치면 안된다 그래놓고 12원을 걷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도

중에 파우더 이황직 주위를 지나가니까, 정대규 선생님이 그리스도 선생님인데.

- 네.

- 하고 지나가니까 날 만났어요. 여보게 자네가 손해를 보지 않나? 어찌 어제 못 봤습니다. 낼

꼭 오게 자네 때문에 우리 의논한게 있어.

- 네.

- 그리 오라고 해, 그게 무슨일인가 하고 그저 윤복이 남자들 집에 가둬놓고 와서 우리 어머님께

그 얘기를 전하니까. 그 헌 옷을 어떻게 빨아서 이튿날 입게 해줘서 그 이튿날 가니까. 돈 12원

을 거둬놓고 기다리는 중이란 말이야.

- 네.

- 이거 자네 가지고 공부 하라고. 그러니 돈 12원을 주니 감개무량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리고

가지고 어머니께선 슬퍼하세요.

- 네.

- 네가 남한테 이런걸 받게 되었구나.

- 네.

- 언짢아 하세요.

- 그러나 그걸 가지고 지필묵 살 수 있습니까? 무슨 전답 찾고 다른거 해야죠. 그래가지고 있는

동안에 내가 그린 것을 송병준의 그림을 심정 낙관을 해가지고 보냈다 그말 입니다.

- 네.

- 그런 뒤에 거기서 폐백 30원이 왔어요.

- 네. 폐백이라면 이제 사례금이죠?

- 돈. 사례금이죠.

- 네.

- 30원이 왔는데, 30원을 날 주세요.

- 네.

- 아유, 천만에. 자네가 그린 걸 내가 미안시럽지. 내 도장 찍었으니까. 갔다 쓰라고.

- 네.

- 돈 30원을 가지고 그 때 가져 오니까. 시원해요.

- 그렇겠습니다.

- 사글세를 3년동안에 스물 두번인가? 세번을 옮겨 다녔어요.

- 이사를.

-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쫒겨 나죠. 방 값을 못 내니까.

- 네.

- 이렇게 다녔는데, 집도 좋고, 30원을 가지고 가서 방을 하나. 남고, 그래가지고는 그 때 소문

이 나기를 그 때 김창희라고 하는 이가 대궐 전이이란 말이야.

- 네.

- 별 보러 다니는 전이이에요.

- 네.

- 거기 가서 놀다가 나는 놀던 사람인데, 내가 하는 일을 자초지종을 분명히 들었거든.

- 네.

- 들어서 대학원에 들어가서 김창희 고모 김상문에게 말을 했거든.

- 네.

- 일본 사람이 역모이라고는 화가를 불러다가 국품 상태라기가 돈을 벌어먹게 해준다고 태황제

어진을 모시게 하는 중인데.

- 네.

- 태황제께선 나와 보시지를 앉는 다고 해. 배의 존치 하시는데, 그까짓 내 그림 그리거나 말거

나 거들떠도 볼 것도 아니라고 하고 나와 보시지를 않는데, 저 그리고 있다고 그러더래. 김창희

고모가.

- 네.

- 그 김상문인데, 그 김상문도 김창희가 말씀 드리기를 태황제께 말씀 드려서 김운호라고 우방문

에 처음 나왔다고 재주가 있는데,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 네.

- 그리고 이 사람한테 어진을 모시라고 여쭈라고 했단 말이에요.

- 네.

- 그러니까 김상문이 태황제께 그렇게 말씀을 여쭈니까, 그러면 내 사진 하나 갔다 줘서 이걸 반

정도만 우선 그려줘봐라. 그저 걸렸습니다.

- 네.

- 그래서 내가 그렸어요. 김창희가 홍포에 쌓은 것을 가지고 미술원으로 가지고 왔어요.

- 네.

- 와서 자네 이 그림 하나 그리면 수 맞는 날이야. 한번 그려보라고.

- 네.

- 그런데 그 때는 전이가 뭐 할 줄 몰라요. 소질에 대해 뭘 아나요? 몰라서 돈이 없어 좋습니다.

- 네.

- 접는거, 이왕에 하게 되었으니까 반들반들하게 되면 괜찮아요.

- 네.

- 거기다가 그대로 그렸지요. 한지며 문장이며 좀 복잡하지 않습니까.

- 네.

- 그거 그대로 그렸어요. 그려서 그 양반한테 드리니까 아주 도로 사진이로구만. 아니올시다

안중식씨가 이 거 그린거랍니다.

- 네.

- 그래서 확대경 가지고 오너라. 그래. 갔다 보시더니 아유. 도저히 모르겠구나.

- 그만큼 정밀한거죠. 사진하고 혼동할 정도면.

- 사진하고 똑같죠. 다시 바꿔도 모르죠.

- 네.

- 얘가 화보를 그린 것을 되면 저 일본 사람들 해 받는다.

- 네.

-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 나를 그리게 하고.

- 네.

- 윤덕영이를 불러라. 윤덕영이를 불러서 창덕궁에 폐하어진을 얘를 보고 먼저 모시게 해라.

- 네.

- 그렇게 순서가 되서 창덕궁에 그 아래 닿는데 윤덕영이가 날 기다리라고 그래요.

- 네. 윤덕영이라면.

- 윤덕영은 해평시 소임.

- 네.

- 윤비의 백부.

- 네네.

- 그러니 거길 갔죠. 이정호씨라는 이가 화교 예배당 장로인데, 책장사 다니는 모양이에요.

- 네.

- 그가 와서 윤덕영씨가 벽수거든 현호가, 저 벽수대감이 자넬 좀 만나자고 하니 가세. 그래요.

아, 벽수가 누굽니까? 아, 부원군 형님 말씀이야.

- 네.

- 아, 그러니 저는 어떻합니까. 아 그 사람이 자네 가면 인정이 떨어지는 거야. 뭐라고 떨어지지

않겠나?

- 하하하. 네.

- 같이 가세.

- 네.

- 그러니까 같이 갔죠. 가니까, 그 윤덕영씨가 아침 나절에 갔는데 금방 일어나서 소세하고 앉아

있더군요. 내가 또 들어가서 절을하고 나니까 아, 묘한 소년이더구먼.

- 윤대감은 그 때 어떤 옷을 입고 있었습니까?

- 조선 옷 입고 있더군요.

- 한복.

- 네.

- 네.

- 대궐에 들어갈 때는 양복 하고 들어가고.

- 네.

- 그렇게 해야 하니까. 일본인한테.

- 네.

- 집에선 평복하고 있어요.

- 네.

- 그래서 거기 들어가서 그런데 태황제께서 자네를 데리고 가지고 미행을 해가지고 순종황제의

그 때는 순종황제라고 안하고 신황제라고 그러죠.

- 네.

- 새황제 어진을 모시라는 분부가 있어서 불렀는데, 나는 파주 삼척의 사진이 있고, 내 아우인

부원군 대감이 지금 나한테 올꺼야.

- 네.

- 부원군한테 내가 위촉을 할테니 대궐에 들어가 그리도록 하라고, 어진을 모시라고 그래요. 조

금 있다가 부원군인 윤택영씨가 와요.

- 네.

- 아침엔 꼭 형님한테 문안을 옵디다.

- 네.

- 오니까 내가 윤씨가 저게 부원군대감 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절을 했죠. 절하니까 윤택영

씨가 자네 후드코드 입나? 그래. 내가 조선 두루마기 하나 없는 사람이 후드코드가 어딨냐고.

- 그 옛날 결혼식 때 입던 모닝코드 같은 정복 말이죠?

- 아뇨. 그거 말고 순전히 후드코드.

- 네.

- 서양사람들이 입는 예복.

- 네.

- 다갑 복이라고 하죠? 일본 말로.

- 네.

- 높은 모자에 그런 게 있는데, 그게 있냐고 어전에 들어가는데, 그 후드코드 예복을 입어야 들

어갈텐데 있느냐고 그래요.

- 네.

- 근데 그게 있을리가 있나요? 그거 없습니다 하니까. 아무개 옷 좀 내오라고 입혀봐요.

- 네.

- 대충 맞죠. 이걸 가지고 가서 그때는 이 따블유 칼라라고 그래서 갓이 좀 번들번들 하고 뭐 그

런겁니다. 와이셔츠가.

- 네.

- 거기 있는 건.

- 네.

- 그걸 줘요. 그걸 집으로 가지고 가야 소용도 없고, 그 옷을 들고 그 때 그 양반이 그래요. 오

늘 들어가지 말고 내일 모레 들어 가세요.

- 네.

- 모레가 목요일 날. 귀족 만찬회야.

- 네.

- 인정전에서 그러면 귀족 전체에게 자넬 들어가서 소개할테야.

- 네.

- 허니, 모레 들어가세. 그래 모레 이 옷을 입고 오게. 그래가지고 집에가선 소용없으니 신윤호

네 집으로 갔죠.

- 네.

- 자, 이걸 가지고 입고 오라는데 속옷이 어딨습니까? 그러니 신윤호가 좋아서 저 사람 부르더니

잡화상에 가서 내의 있으면 가 사주라고

- 네.

- 그래서 사주긴 했어. 근데 그걸 갔다 뒀다 목요일날 가서 옷을 입고 윤택영씨한테 갔죠.

- 네네.

- 가서 그 양반하고 대궐에 들어가게 됐어요. 들어가서.

- 네. 들어가실 때 기분이 아마 그랬겠습니다.

- 그 때는 좋은지 어떤지 어리둥절 했죠.

- 네. 그 때가 스물 한 살.?

- 스물 한 살 때이지요.

- 네.

- 내 스물 한 살 먹은 해 8월 스물 하룻날.

- 네.

- 8월 초하루날 입학 해가지고.

- 네.

- 8월 말쯤에.

- 네. 20일 만에 어진을 모시게 되겠군요.

- 네. 20일 만에.

- 그러면 일반 청취자들이 참고가 되도록 말이죠. 그 당시 화폐... 그 당시에 폐백으로 30원을

받으셨다고 그러고요. 선생님들이 어려우니까 2원씩 모아서 12원을 주셨다고 그러는데, 그 당시

에 12원이면 어느정도의 돈이 되겠습니까?

- 그 때 쌀 한가마니에 2원 할때니까, 쳐 보세요.

- 네.

- 상당하지요.

- 네. 여섯가마니.

- 그러면 12원이면 우리 생활이 얼추 되지요.

- 네.

- 저, 나무 석동거리 한 가마니에 오십전 하고요.

- 네.

- 뭐 그정도 가지면 식량하고도 여유가 있게 살 수가 있죠.

- 어전에 찾아가는 얘길 내일 이시간에 계속하기로 하겠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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