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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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김운호 - 제2회 구두장사 될 뻔
김운호
제2회 구두장사 될 뻔
1971.08.31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음악)

- 어제는 의당선생께서 인천에서 나셔서 어릴적에 자라시던 얘기를 해주셨습니다만 인천에서

자랄 때만 해도 한 60~70년 전이 되겠습니다만.

- 네.

- 그 당시의 인천은 지금 하고는 아마 상상 하기 어렵겠지요?

- 그러믄요. 판이하게 다릅니다.

- 네.

- 네. 지금하곤 비교가 안되죠. 인천 항구라고 하는 것도 지금 뭐 몇 호 되겠습니까?

- 네.

- 도로라던지, 다 도저히 초월이 부족하죠.

- 네.

-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르니깐 그 이상, 거기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고요. 항구 같은덴.

- 네.

- 서울은, 교통도 기차는 있으나 도로라는 것이 허무하죠.

- 네.

- 뭐 말 아니죠.

- 그 땐 자동차라고 해야, 뭐 일본..

- 자동차 없어요.

- 네.

- 서울엔 자동차 없고, 서울 와서 이제 내가 그림 그리게 되서 어른 모실 때, 비로소 자동차를

처음 타 봤는데.

- 네.

- 그 때 서울 자동차가 이당 한테 하고, 저 범군 유니티 친병.

- 네.

- 거기하곤 두 군데 밖에 없어요.

- 귀족들도 뭐 거의.

- 네 다 없어요 네, 인력거타고 다녔지요 전부.

- 네.

- 인력거.

- 인력거 아니면 그 뭐 마차로다가.

- 네네. 마차 손정의씨도 그때 마차 타고 다녔더군요 그 때에.

- 네, 그래서 가산을 처분하니까 70원 정도 되가지고 서울로 옮기시게 되었지요?

- 네. 그래서는 70원 가지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걸 썼다가는 조부께서는 영명하시니까.

- 네.

- 아닙니까 언제 하세할련지는 일 다음일 아닙니까? 앞으로. 그걸 썼다가는 그 큰일이거든요.

그래서 남문밖에 내 형님하고 잘 알던 분이 한 분있는데 오문식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거기

에다가 내 그 돈을 맡겼어요.

- 네.

- 이걸 내 가지고 있으면 다 싹 없어진다니까 이걸 어른께서 맡아 주셨다가 내 필요할때 이걸

갔다 쓰게 해주십시오. 하고 맡겼지요 그걸 절대 쓰지 않을리라고 했으나 할수 없어요. 15환을

벌어 갔다써서 돈이 줄었지요.

- 네.

- 그런데 9월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10월 스물 엿새날 하세를 하세요 조부께서.

- 네.

- 뭐 강골이지요 서울에 뭐 아는 사람이 하나있나. 그 뭐 추운 엄동설한에 여기에서는 석탄을

피고해서 어려운 사람이라도 그저 방을 따뜻하게 하는 세월이었지만 그 때에는 솔가지라는 나

무나 장작외에는 때는 것이 없는데요 연료라고요.

- 네.

- 솔가지같은거 한 단 그저 한 일꾼이 가지고 올거 같으면 밥 한그릇 만들 만한 정도이지 뭐 방

을 덥게 할 도리가 없지요. 뭐 냉방이지요.

- 셋방에 계셨습니까?

- 그 물론이지요, 셋방이지요.

- 네.

- 그날 그러고 있는데 일을 당하고 본즉 예넷 다섯살 먹은 내 귀공자로 자라났거든요.

- 네.

- 근데 4남매인데 에, 3녀 1남이란 말이에요.

- 네.

- 그래서 아직 귀공자로 자라나서 세상이 뭔지 모르고 있다가 그 일을 당하고 본즉 그 아주 앞

이 캄캄했지요.

- 네.

-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내가 요새 젊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은 뭐든 다른 업무든 전산 업무든

더 발달이 되고 진보되었지만, 뭐 가정사라던지 이런 일에 대해서 하는거 보면은 우리 시대보

다는 뒤떨어진거 같아요.

- 네.

- 그런일에 대해서 서울사람은요.

- 네.

- 그 때에도 조부를 내리 모시게 되었는데요. 여기서 다 증평으로 어디 모시라고 어떻게 저 어

린사람이 인천 80리나 되는데를 내가 모실수 있냐구 그래여 에이 내가 언제 신 밑에서 내 조부

를 선산으로 모실수 있느냐고 말이에요.

- 네.

- 하니까 업어서라도 우리 할아버지를 내가 선산으로 내가 모시겠다고, 그래가지고는 금돈 한냥

을 오문식이한테 맡긴 걸 찾아다가.

- 네.

- 묘를 만들고.

- 네.

- 그래가지고는 내 우리 어머니께서 하루 먼저 인천 내려가서 친척이라던지 아는사람한테 얘기

를 해가지고 산역 일을 하게 하시게 하고 있고.

- 네.

- 내가 인즉 그 여기 육방매라고 하는 상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요 살같이 달아나는거에요.

빨리 가요.

- 네.

- 거의 그저 내리 모시는데 거의 3일장을 모시지요. 여러날을 있을 수 있나요.

- 네.

- 여러날을 밤을 새고 고생을 하게 지내고 몸이 시달리고 피곤하고 보니까 산행길을 따라 바로

내려가는데에도 자꾸 졸음이 와요.

- 네

- 논두렁으로 내리 구르기도 하고 밭으로 내리 구르기도 하고 다리를 엉금엉금 기어올라가서는

또 뒤를 따라가고 한다는 말이에요. 이 무지막지한 상여꾼놈들은 이 불쌍한 상제더러 찬돈 달라

고 또 안갑니다, 들어누워서.

- 가다가 돈 잡고.

- 네. 그런거보면은 무지한 무지한 상여꾼이라는 말이에요.

- 네.

- 아 그러지 않아도 눈물이 나는데 그 당시에는 해는 져 갈 때고 내려가서 장사를 지낼 생각이

기가 막히지요. 그래서 울며빌며 해서 그저 어떻게 해서 참 지금으로 보면 여섯시나 다섯시가

되서 거길 도달했어요.

- 네.

- 도달하니까 우리 어머니께서 산행길을 내려오면서 별 말씀이 없으세요. 어린 자식이 저 혼자

불쌍하게 저렇게 산행길 내려오는것도 불쌍하고 그저 불쌍하고 모든일이 다 당신 마음에 기가

막히니까 우시기도 하고, 그래서 상여를 모시고 나니까 날씨는 한점없이 추워요.

- 네.

- 추운데 거기서 일하나 일한 사람들이 이제 산에서 산을 모셨으니 지금부터 서울 올라가느냔

말이에요.

- 네.

- 여기서 자고 가라고 그래요.

- 그러나, 날 상제라 하는것이 남의 집에 자는 것도 그저 송구스럽고.

- 네.

- 어렵고 하니까 그걸 그 때 올라올 때에는 오리만 걸어나오면은 주안역으로 차를 타고 오거나.

- 네.

- 오리 걸어서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지요. 올라와서 지내는 동안에 이런일이 있어요. 내가

그저 이발소에서 그저 그 하인같이 부리는 것이 괘씸해서 그 사람을 때려치고서 나온 뒤에.

- 네.

- 오고갈데 없어서 청년회관에 영어과 다니는 강화사람 이선재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단 말이지

요.

- 네.

- 알게 되가지고 이선재 지금 관운동 그 어디 하숙을 하는데 그 사람 밑에가서 숙식을 하고 있

었어요.

- 네.

- 이선재 뭐 그 때 당시에 숙식을 하고 있었지만은 낮에 그 때엔 호떡 하나에 1전2전할때입니다.

- 네.

- 그거 하나먹으면은 그 해 그날 잘 지내는 날이에요.

- 네.

- 호떡하나 얻어먹으면 내 그사람하고 잠을 같이 자고 그랬는데 내가 그랬어요. 인천항구에서

이성훈이라고 하는 사람이 수원사람인데 경제화라고 있었습니다.

- 네.

- 네. 못보셨을거에요.

- 네, 저는 못봤습니다.

- 네.

- 보셨으면 아셨을 텐데, 그걸 그 사람이 그걸 발명했는데 내가 열두서네살적에 그걸 그려줬어

요. 그 본을.

- 네.

- 그려준 일이 있는데 그 본을 보고는 만들어가지고는 그 경제화라고 해가지고는 많이해서는

잘 팔려요 그게.

- 그게 가죽으로 된건가요?

- 귀신같이 꼭 만들었어요

- 네.

- 바닥은 돼지가죽으로 바닥을 해서 깁니다. 잘 헤지지 않고.

- 네.

- 늘어났다 줄어들었다하긴해도 잘 안 헤져요.

- 네.

- 그래서 호신같이 만든건데 그래서 경제가 든다고 해서는 경제화가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선

재가 그랬어요 내가 그걸 내가 해주는이가 있으니 그걸 만들어팔거 같으면 잘 될거다.

- 네.

- 아니, 그걸 해 파는게 어떠냐 너 자본이 있는 사람이니 하니깐 강화가서 우리 형님하고 의논

해가지고 오겠다고 하더니 강화가더니 저희 형님하고 같이 올라왔어요.

- 네.

- 올라 와가지고 인천 항구에서 자립 활약하는 것을 강화에서는 왕래가 제휴가 왕래가 되거든.

- 네.

- 강화서 그걸 잘 아니까 와서 그걸 해 파는게 좋을거 같다고 그러면 그걸 어떻게 하느냐? 해서

지금 사동 지금 구청 바로 구청자리에요.

- 종로구청 자리에요?

- 네 종로, 구청자리 거기에에다 집을 얻어가지고 그걸 냈는데 골을 깎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골을.

- 네.

- 구두 골을 깎는 사람이 없어요.

- 네.

- 목수들이 대나무를 사가지고는 목숨같이 만들어 달래가지고 내가 전부 그 70개를 깎었어요.

- 네.

- 깎는데 손이 전부 핏빛이고 엉망이죠. 또 판을 유리를 깨뜨려서 긁구 만들어서 대중소로 만들

어서는 하는데 나는 이제 그 제봉틀을 해봤나요?

- 네.

- 제봉틀을 뜯어가지고 다시 맞추고 몇 번하니까 하겠어요.

- 네.

- 제봉틀에 앉아서 울다 한다거나 울 혹은 저 여기서 구두짓는 아이들을 불러다가 월급을 줄테

니 해라하니까 우와서 하게되어서 그 사람들 데려다가 적공 일을 시키고 그러는데, 여기서 이름

은 편집화라 하지 않습니다.

- 인천에서 경제화가라고 하는게?

- 천리화라, 천리화라라고 하는 노인들은 알아 노인들은 알아요 그 얘기하면은.

- 네.

- 천리화라라고 이름을 지어가지고는 시작하는데 사방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잘 팔려요.

- 네.

- 그러니까 한 날은 이선재하고 형제가 날 부르더니 의논을 할께 있다고 그래요?

- 네.

- 무슨 의논이야 하니까?

- 이걸 이럴게 아니라 그걸 서로 봉사로 한거고 난 기술로서 이익을 주기로 한건데, 그 이익을

나 반 주기가 원통하다 그 말이에요.

- 처음은 동업으로 시작 했는데.

- 동업으로 했는데.

- 네.

- 그러지 말고. 월급으로 정하자.

- 네.

- 월급을 얼마 주겠느냐? 15환 준다 그래요. 그럼 굉장한 돈이에요. 15환이면. 그럼 잘 살아요.

그런데 내가 그 때 결심이 어지간히 안했으면 또 구두장사 되었습니다.

- 허허, 네 그러시겠습니다.

- 살기 넉넉하고, 그 걸 해가지고 먹고 사는데 다른거 할거 뭐 있어요.

- 네.

- 구두약 팔고, 살죠. 그런데 너하고 나하고 만날 적에 처음에 이렇게 얼굴 불러가지고는 뭐 15

환이면 좋겠다말야 그러나 벌써 약속을 어기고 서로 피차 의사가 달라진 이상에는.

- 네.

- 이거 역시 또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이야.

- 네.

- 그러니까 내가 자본들인거 없고 수고한거 뿐이니까 원통할 것도 없고 그러니 자네는 원망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들이 잘해먹고 살라고 난 나간다고 그러니깐 구두짓는 애들이 지금으

로 보면 시타랭이죠.

- 네.

- 저런 법이 어디있냐고 저 사람이 그렇게 애를 써서 만들어 놓으니까 저 사람을 내보내고 저렇

게 하는게 어디있냐고 우리 다 그만 둔다고 그래요. 너희들은 너는 이거 안하면 안돼 난 나가면

또 할게 있어 하니까 아예 그런소리 말고 이거 하고 있으라 그리고 나오니까 돈 100환을 줘요.

- 네.

- 섭섭하다고, 그래서 돈 100환을 또 잘해달라는 날로 부려먹는다는 것이 날로 날로 부린다고

했잖아. 안들어가는게 풍기박산해져가지고는 헤이해져버렸지요.

- 네.

- 그 사람 얼굴이 노래져가지고 내가 이걸 나와가지고 샀단 말입니다.

- 네.

- 그 사람 지금 우리집에 다닙니다. 영등포서 아들이 치과병원을 해요.

- 네.

- 그래서 나한테 가끔 오는데 난 가끔 은인으로 알지요.

- 네.

- 그 때 그사람이 그렇게 안하고 나한테 대우를 잘 했으면, 그림 안그렸을 겁니다. 그대로 나갔

어요.

- 지금도 아마 달라졌을까요?

- 네.

- 그 사람이 그 때 나한테 후회하게 한 것이 나한테는 복이 됐다 그겁니다.

- 네.

- 그 사람 오면 내가 퍽 반갑게 대접을 해요.

- 아마 그것도 일전에 이당선생 성격을 쉽게 얘기해주는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림은

어떡해? 어릴적부터?

- 그래서 이제 처음에요 어려서부터 그림을 많이 그리지 말라고 하고 못 그린걸로 인생이 배겼

어요 머리에.

- 네.

- 배길 때에는 서울에 와서 그림 그리는 길로 나갈려 했으면 용하게 되었을건데.

- 네.

- 그 길이 내가 천생 타고난 길을 내놓고 딴 길로 하면서 하게 되니까 고생밖에 더했겠어요.

- 어릴적에도 서당에 다니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신거죠?

- 그렇지요,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면은 뭐 날 업고 어려서 어디를 집안에서 가고 하면 말이에

요. 절에도 가고 이제 치성 드리는데 가고하면 말이에요. 그 절에 벽화라던지 이걸 보면 뭐 서

너살, 너더살 적어도 벽에와서 보면은 죄다 그렸답니다.

- 네.

- 부모말이 그래요.

- 네.

- 그저 그때엔 부모들이라 웃고 그림을 좀 그린다 하고 그랬는데, 내 젊잖은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면 미친 상놈 짓이다, 이놈아! 환쟁이가 되려냐고, 내 손주는 절대 아주 절대 못하게 해요.

- 아주 천시하는 거죠.

- 네.

- 그게 아주 머리에 배겼지요. 근데 우리 선생님은 한문 가르쳐준 선생님은 그 이해를 해요.

- 네.

- 일본 요새 미술을 치르고 간 미술인인데 그 때 당시에는 미술이라는 말이 없어요. 환쟁이, 그

림쟁이지.

- 허허, 네.

-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요.

- 네.

- 근데 아버지께서는 그건 모르시고 너무 많이 베서 그렇다니까 나 앞에 그려다 내 말려주마.

새도 그리고, 까치도 그리고 그림을 잘 그리고 그랬어요.

- 네.

- 그랬는데 이제 서울 올라와서 다음은 그림 그린 곳은 옛 기독교입니다.

- 네.

- 우리 어머니께서 아주 독신자에요.

- 네.

- 나를 너댓살부터는 교회당을 데리고 다니셨어요.

- 네.

- 서울로 올라와서도 안국동 예배당에서도 내가 거기 다녔는데. 윤보선씨의 집 앞.

- 네.

- 예배당.

- 네.

- 윤보선씨의 아버지 그 장로이고.

- 네.

- 그 집안이 전부 교인아닙니까?

- 네.

- 거기를 다니는데 거기는 분위기는 양반 교회당이라고 소문났었어요.

- 네.

- 부천에 판서, 참판, 승지, 대감 들이 전부 거기를 다니거든요 예배당에.

- 네.

- 박순복이다 무슨 한필성이다, 홍은표이다, 이주환이다 모두 그런분이 거기를 다녀요.

- 네.

- 교육자님들이. 거기를 다니는데에서 그림 그리는거를 터득을 하게 되었어요.

- 네.

- 그 양반들이 그림 그리는거를 좋아하더라고, 그림 그리는게 아주 훌륭한 작품이란 말이에요.

언제 전동에 윤풍서관이라고 하는게 있었는데 윤풍서관이 그 안동 예배당에 장로로 있는 이주환

씨라고 하는 이가 서포를 내고 초간첩이라고 하는 페인트를 이걸 써서 책을 만들어 팔고 그랬습

니다.

- 네.

- 그런데 그 책자에 문인들. 글씨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놀아요. 그러니까 심심하면 내가

거기로 올라가지요. 가면은 이 책도 하나 쓰라고, 자네 글씨로.

- 네.

- 글 쓰면, 아유 글씨를 잘쓴다고 그래요. 하여간 내가 가면은 반가워 하고, 그 책 나한테 쓸

게 있으면 내게 주고 그래요.

- 네.

- 그런데 이제 한 날은 김효성씨라고 하는 이가 거길 놀러왔는데, 중추원 창위으로 있는 분이

에요.

- 네.

- 김효성씨가.

- 그러니까 귀족이시죠?

- 귀족 아닌데, 그게 중추원에 창위로 다녔는데.

- 네.

- 저, 첩단같은 건 모르겠습니다. 창위 라는게.

- 네.

- 거길 다니는데, 거기 백당이라고 현책쓰라고 거기 명필들이 와서 놀고 있었어요.

- 네.

- 근데, 그 때가 여름인데, 부채를 부치는데, 그 부채에다가 심정이 그림을 그리고,

- 네.

- 뒤엔 심정이 글씨를 쓰셨단 말이야.

- 네.

- 그걸 가져와 부치는데, 어디 그 부채 좀 보자고 백당이라고 글씨 잘 쓰는 이가.

- 네.

- 보든이 글씨도 우리 선생님이라고, 백제의 심정이라는 재주가 아주 으뜸이라고.

- 네.

- 아, 그림만 명화가 아니라, 글씨도 아주 잘 쓴다고 그래. 그림이 저렇게 좋은가 그래서. 그림

이 좋은 겁니까? 그러니까 아, 여부가 있느냐고.

- 네.

- 아주 좋은거라고. 지금은 미술로 칭하고, 지금 이도형이가 심정의 수제자로 호의호식 하고 잘

지낸다고, 그래 자네 참. 거 글씨 쓰는 걸 보니까 말이야, 필재가 있는데 그림을 배웠으면 좋겠

어.

- 네.

- 그래서 그림 수련에 나가게 됐어요.

- 교회나가면서 책방 주인을 알게 되고.

- 네.

- 책방 주인에서 이제 그렇게 자꾸 발전을 하게 되겠습니다.

- 네.

- 내일 이시간에 다시 계속 하겠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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