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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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김운호 - 제1회 어린시절 이야기
김운호
제1회 어린시절 이야기
1971.08.30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오늘부터는 왕조 최후의 어진화가로 유일한 생존자인 이당 김운호 화백의 지난날의 얘기를

이규영 아나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 우리나라의 동양화 60년사의 아마 동양사의 아마 죽도라고도 할 산 역사라고도 할 수 있

겠습니다만은, 이당 김운호 선생을 이 시간에 모시면서 앞으로 그동안의 활약하시던 얘기를

여러분과 함께 듣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천만이 옳시다.

- 올해 연세가?

- 여든입니다.

- 여든이시구나, 그러니까 어릴 적에 처음에 상감에 어진부터 시작을 해가지고요, 우리들이

지금 아는 것만 하더라도 그 역사적인 인물들의 그림을 참 많이 그리셨습니다. 낳으신 곳은

인천에서 낳으셨더라고요?

- 네, 인천 주입이라고 하는데서 낳았습니다. 저 인천 주입이라는 곳이 인천 항구에서 동쪽

으로 한 십리나가면은 주안역이라고 하는 곳 정거장이 있지요?

- 네.

- 그 주안역에서 원당쪽으로 가는 데인데, 거기서 내가 산 것입니다.

- 네

- 80년전에 1892년에 낳으셨군요?

- 그렇습니다.

- 인천에서 그 당산 김씨 2대 독자로 태어나셔가지고 처음에 이제 부유한가정에 태어나셔서

서당에 아마 다니셨겠네요?

- 네, 한문을 그저 읽고 있었는데요.

- 네.

- 내가 15세 적에 인천항구에 있는 일어학교라고 하는 데에 박해가지고 다녔는데 거기서 인

천 상업학교가 되었습니다.

- 네.

- 상업학교에 전신이 일어학교이지요.

- 네.

- 거의 한일 합방전에 전에 있던 학교 입니다.

- 그, 일어학교라고 그래서 일본말?

- 네, 일본말도 다 가르치고 그랬지요. 다른거 학과 다 마찬가지로 했는데, 학교 이름을 일

어학교라고 지은 것 같았어요.

- 네.

- 가정에서의 갑작스런 일이 나서.

- 네, 가정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은 그래서 이제 일한 합방을 하려고, 한일 합방을 하려고

일본놈들이 한국에 대해서 그 때 갖고 있는 군인을 다 해산시켰습니다.

- 네.

- 강화, 군인도 많이 있었죠? 강화도에.

- 네.

- 그 군인을 해산을 시켰는데, 강화도에 권양의라는분이 있었는데, 우리하고 아마 척분 간

이 되는 모양이에요. 그랬는데, 내 형님한테 와서 군인으로 있다가 해산통이 나오니까 먹고

살 수도 없고 그러니까 돈 얼마면 좀 빌려줄거 같으면은 가서 항구에서 장사라도 하겠다고.

- 그래서 청하니까, 그 때 집안이 그저 넉넉하니까 그 때 돈 700원이면 아마 많은 돈이라

하겠습니다.

- 네.

- 꽤 많은 돈. 700원을 줬어요. 그 700원을 가져가서 뭐 하는지 알 수 없었지요? 우리집에

선.

- 네.

- 한 두어달 되었거나 말았거나 됐는데, 저녁 어스레 어스레 하는데, 순사가 일곱이 인천

항구에서 오더니, 우리 촌집을 모여 싸고, 들어와서 내 조부가 여든 넷이세요. 연세가.

- 네.

- 그렇게 결박해 놓고,

- 네.

- 그리고 내 형은 물론 그렇게, 나는 그 때 십 육세 니까, 그렇게 나는 그냥 두고.

- 네.

- 그래가지고 집안을 뒤져가지고 전체 물건을 다 적어요.

- 네.

- 그저 그 돼지를 기르거나 이런 육축까지도 다 적어요.

- 네.

- 그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별안간에 변을 당하니까, 우리 집안에서는 어쩔 줄을 모르

고 있는데, 그렇게 있는 우리 조부는 그 운신을 나를 풀어놓고, 내 형과 같이 항구를 같이

나가니까, 즉 잡혀 가는거죠.

- 네.

- 그렇게 나가신 뒤에는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다가 어린 사람 몸으로 뭐 어딜 그런데,

다니면서 운동할 수도 없고,

그러나 내가 직접 그 이튿날 항구에 나가서 내가 알아본 일은 군인 퇴임하고서 나온 사람들

이.

- 네.

- 여럿이 합해서 돈을 모두 수합해서 합자로 인천항구 팔미도에다가 민선을 띄우고 민선에

가서 태통변 부두높은자리가 있었습니다.

- 네.

- 사기전을 했어요.

- 네.

- 다 뒤집힌 것처럼.

- 위조지폐처럼.

- 그 때 사기전 죄는 사형이에요.

- 그렇겠죠.

- 네. 그걸 했다가 붙잡히니까 너는 어디서 돈을 갔다가 했느냐니까, 나는 김 아무개한테서

돈을 빌려왔는데, 그 사람이 이거 하라고 빌려간게 아니고, 장사해 먹겠다고 해서 그 사람

이 준거니까 그 사람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해도, 그 때 세월에 지금은 정치를 잘하느니,

못하느니 말이 많지만요.

- 네.

- 이조 말엽같이 나쁠 때가 어딨겠습니까?

- 그렇죠.

- 그 때, 그 김윤복이라고 하는 인천, 총수라고 하는 사람인데.

- 네.

- 그 사람이 해방하는 해 까지 영등포 서장으로 와 있었습니다.

- 네.

- 그 사람이 우리 돈을 다 먹은 사람입니다.

- 아, 네.

- 그 사람은 우리가 형세가 없었으면 오히려 가만히 있었겠지만, 형세가 있고, 괜찮으니까

와서 그 물건을 그 날와서 다 실어 갔습니다. 적어간 것은.

- 네.

- 그게 정무라고 하는데, 지금은 역산이라고 하는 것이죠?

- 네.

- 그걸 다 적어가지고 가서 그만 집안 식구 입은 옷, 또 먹는 그릇 수요대로, 숟가락 수요

대로 그것만 빼고는 전부 가져갔으니까, 졸지에 그렇게 집안이 패가 할 수가 없죠.

- 그렇죠.

-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해보고, 우리들은 사숙이 있어서 같이 자랐고, 그러니까, 집안이 말

이 아니죠. 별안간에 일을 당해가지고 그러니까, 부자, 부노 빈자 지본이라고 옛날 부터 한

말과 같이, 부자가 어려워 지는것은 돈 구경 하는 사람보다 그것은 오히려 괜히 창피한 일

로 생각하는 일이 많이 있었죠.

- 네.

- 세월이 다 그래요. 그래서.

- 친척을 도와줬다가 화를 당하셨군요.

- 네. 그래서 그 이후부턴 집안이 이렇게 되니까 학교 다니던 것은 중도이태하고 다시 사숙

에 와서 글을 읽고 그런 중에 이 측량이라는 것을 왜 배웠는가 하니.

- 네. 그 인천 어디인지.

- 네. 인천 측량학교라고 있는데,

- 네.

- 내 집 토지를 내가 측량해주는게 좋다고 그래서 나하고 사숙에서 한학 공부하던 사람들이

제 학급은 다 배웠어요.

- 네.

- 그래서 그걸 배우게 된 거죠. 그래서 그.. 그랬으나, 집안이 그렇게 되니, 내가 나무를

할 수도 없고,

- 네.

- 논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뭐 도저히 할 일이 있습니까. 그럭저럭 지내는 중에 우리 형님

께서 졸지에 우리 집이 패가 하고 나서 본 즉은 어찌 화가 없겠어요? 마음속에?

- 네.

- 화병으로 약도 몹시 먹었어요.

- 네.

- 자꾸 그러더니 나중에, 그 사혈을 자꾸 하시고, 그러시더군요.

- 네.

- 그러더니, 3년. 여섯살, 일곱살, 여덟살. 먹던 해 3월에. 그만 하세 하셨어요.

- 그러면 가산을 탕진하고 이렇게 점점 어려워 지시고 그러니까, 그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하

시게 되는거 같습니다. 이제 가산을 처분해가지고 서울로 옮기셨습니까?

- 그래가지고는 시골서 그런 생활은 도저히 살 수도 없고, 공부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서

울이나 올라가서 어떻게 무슨 도리가 있을까 하고, 나 혼자 걸어올라 왔습니다.

- 네.

- 열 다섯살 먹던 해. 8월에.

- 네.

- 서울로 걸어 올라왔어요. 올라와서 친구 이상현이라는 사람이 한학반에서 글 읽던 사람인

데, 그 사람이 천도교 학교 다녀요. 손병희씨가 하는.

- 네.

- 그런 학교가 뭐 있었어요.

- 네.

- 근데, 거길 다니는데, 서울에 와보니,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그 사람 밖에 아는 사람

이 없어요.

- 네.

- 그래서 그 사람 찾아가서 제가 가회동 천학운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는

데, 거기 가서 있었어요.

- 네.

- 거기 있는데, 그 끼니 때에 들어가면은 뭐 좀 얻어 먹고.

- 네.

- 끼니 때가 지나가서 들어가면은 굶어 자고.

- 네.

- 나중엔 으레 굶음 하고, 또 어떤 때는 일정할 때가 많이 있었어요.

- 네.

- 순전히. 그렇게 한 달을 서울에서 지내보니까, 아주 피골이 상접하고, 말이 아니에요. 몸

이.

- 네.

- 그래서, 이거 안되겠다 하고 저, 시골 내려가서 그 가옥이라도 팔고.

- 네.

- 돼지 같은 것 암돼지 하고, 등 부스러기를 팔고 이래가지고, 서울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

각은 있었으나, 그거 역시 얼마 안되거든요.

- 네.

- 근데, 그러는 도중에 나 가서 신세를 지고 있던 친구가 임상훈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발

소를 하는데.

- 네.

- 손병희씨 머리깎으러 다니고, 신청일씨, 김영국씨 머리 깎으러 다니던 사람이에요.

- 네.

- 천도교인으로서.

- 네.

- 근데, 그 사람네 집 아래채에 방이 둘이 있어요.

- 네.

- 학생이 한 방에 둘 씩, 치거든요. 근데 그리 그 사람이 옮긴다 말이에요. 같은 교인의 집

이고 하니, 거기가 좋다고.

- 네.

- 그래서 저는 거기에 따라 갈 수 밖에 없죠. 그 사람 쫒아.

- 네.

- 갔는데, 그 주인되는 사람은 자기 밥을 얻어 먹는게 아니고, 나는 이상현의 밥을 얻어 먹

지만, 나를 업신여겨본단 말이에요.

- 네.

- 나와서 심부름도 하라고 그러고, 이발소 소지도 보라고 그러고. 이런 짓을 자꾸 하거든

요?

- 네.

- 그러니까 그렇게 거기 있기가 한 달 이상을 있었을 거에요.

- 네.

- 도저히 거기있서는 안되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 때, 그런 결심이 없었으면은 아마 이발쟁

이로 그냥 되었을 겁니다.

- 하하.

- 그래도 제가 손재주가 있어서요.

- 네.

- 뭐 그렇게 하려면 다른 사람 10년 씩 하던 것을 난 능력에 한 달이라도 다 해요. 한 몇

일이라도.

- 네.

- 근데, 절대 내가 그런 것을 안하고 있으나, 자연히 거기서 그 짓을 하고 먹고 살 수는 없

고 하니까 뭐 다른걸 할 게 없으니 그걸 될 수 밖에 없죠.

- 네.

- 그래서 거기서 뛰어 나왔어요.

- 네.

- 나와서는 어디 뭐 갈 데가 있어요? 저기 지금 화신상회 밑에 내려가면 무슨 빌딩인가 있

죠. 그 전에 경찰서가 거기 있었습니다.

- 네.

- 청년회관 위에.

- 네.

- 경찰서 자리 그 옆인데, 윤임당이라고 하는 가게가 있었어요. 그 도장포.

- 네.

- 그 도장포에 가서 내 도장을 새길 줄 아니, 도장을 좀 새기겠다고.

- 해보셨나요? 전에?

- 못해봤죠. 언제 해봐요.

- 하하하.

- 그래서 할 수 없이 거짓말 하게 되는 거죠.

- 네.

- 거 좀 하겠다 하니까, 그 날 좀 해보라는데, 그 날 못하겠어요. 그래서 와서 주머니칼 가

지고, 목도장 같은걸 새겨보니까, 새기겠어요.

- 네.

- 그래서 그 이튿날 부터 가서 새기겠다고 하니까, 목도장을 내 놓고, 너가 하던 것을 새기

라고 그래요. 그래서 새겼죠. 그러니까 곧잘 새긴다고 그래요.

- 네.

- 괜찮다고. 그래서 여기서 새기고 있으라고, 그래서 있어 보니까 원재료가 마진이 있으니

까 한 달이 시간있냐 그래요. 시간이 살아야 사람을 살아가죠.

- 네.

- 여드레를 꼭 새겼어요. 가만히 새기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시골에서 서울와서 이걸 하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이거 안하겠다. 그래서 또 뛰어나왔죠.

- 하하.

- 나와서 그만 뒀는데, 보증제가 지금까지 있습니다.

- 네.

- 보증제. 인쇄소가. 김석환씨 이라고 하는 이가 군수 지내고 온 분인데, 10년하고 아주 막

역친구에요.

- 네.

- 김석환의 아우 되는게, 지금 보증제 하는 사람의 아버지 될 겁니다.

- 네.

- 거기가서 인쇄소를 하려면 제판을 하려면 이걸 좀 하라고 그래요. 가서 그걸 해보려는데,

몸에 기름 투성이고 이거 도저히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또 거기서 그만 두고 나왔죠.

- 인당포에서 도장을 새기다가 인쇄소에 이제.

- 네.

- 하하.

- 그렇게 돼요. 그래가지고 할 수 없죠. 36무식도 본지가 없으면 도리가 없는데, 측량을 전

에 공부한 게 사실이거든.

- 네.

- 그래서 가목고, 이휘재, 이봉집이 측량을 하는데, 김상돈이라고 하는 이가 거기가서 그럼

측량을 해보자.

- 네.

- 그 토지조사하고 기사하던 사람이에요.

- 네.

- 그래서 내가 측량을 좀 배운게 있으니, 날 좀 같이 가서 하게 해달라고.

- 네.

- 그래서 같이 갔어요. 억지로. 근데 가서 측량을 하는데, 내가 제도를 잘하니까.

- 네.

- 나가서 칠판 들고, 보호대 들고 측량하는 걸 안시키고, 집에서 앉아서 날 더라 제도만 하

라고 그래요.

- 네.

- 그 때에도 사람이 이렇게 보니까, 백작도라고 매화를 그리고, 까치를 백발로 그렸는지 백

작도를 그렸는데, 그림이 좋아진 말이에요.

- 네.

- 저녁에는 진종일 그걸 그려보죠.

- 네.

- 아, 대단히 잘 그린다고 주인이 이휘재인데, 그 일본집 주인이. 그 이휘재 아버지가 나보

다 일곱살이 더 위인데, 아, 이걸 잘 그린다고, 언제 그림을 배웠느냐고 아주 잘 그린다고

그래요. 그 이상스런 풍화도 같은 것도 그려달라고 그러고, 그려주면 좋다고 나 그 때 아주

좋았어요.

- 네.

- 그 때는 반찬도 다른 사람보다 낫게 해주고, 그래서 그 집에서 한 겨울은 지냈죠.

- 네.

- 지낸 뒤에 나중에 그 사람들이 거의 사람이 강원도로 내려가요.

- 네.

- 측량을 하러.

- 네.

- 강원도로 쫒아 내려간 일이 있어요.

- 네.

- 철원으로. 근데, 그 철원 가 있는 동안에 정미소를 하는 한영관이라는 사람과 여러사람과

교우를 하는데, 색주가를 가게 됐는데, 내가 소리를 잘 합니다.

- 네.

- 네.

- 소리를 잘하세요?

- 네. 이적소리 같은거 이런 소리, 제가 목소리가 좋아서

- 네.

- 그걸 잘한다고 그래요.

- 네.

- 잘해요. 그래서 색주가 집에가서 노는데, 뭔 아이가 뭐 열 아홉살 아닙니까.

- 그렇죠.

- 거 어리고 하니까. 소리 잘하니까, 여자들이 좋아한단 말이에요.

- 네.

- 거기서는 깜박 잘 못하다가는 헌병 보조원 계집인데, 잘 못하다가는 거기서 큰일 날거 같

지요.

- 네.

- 그래서 거기서는 이상스런 일을 계속 당하게 되겠고, 그래서 도망해서 왔어요. 서울로.

- 네.

- 도망해 올라와 가지고는 그 때, 비로소 시골을 내려가서 뭐든지 팔고, 집을 팔고 그러니,

그 때 70원이죠?

- 네.

- 70원을 만들어 가지고 올라왔는데, 조부모 모시고.

- 네.

- 내가 내 내자 되는 사람은 친정에 가서 있고.

- 네. 이미 결혼을 하셨군요.

- 열 다섯살에.

- 아, 열 다섯살에. 그 어릴적에 겪었던 일을 오늘 해주셨습니다만 지금 여든이시면서 요즘

에도 작품 활동을 많이 하시죠?

- 네. 요즘 합니다. 매일.

- 네. 최근에 일반 독자들이 안 것은 동아일보, 그 신동아에 표지.

- 네.

- 미인도를 해주셔서 아마 그 그림을 여럿이 보셨기 때문에, 이당 선생에 대해서 앞으로 여

러가지 얘기 관심을 많이 가지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어린시절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 네.

- 내일 부터 그 다음 얘기를 쭈욱 계속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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