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 사람에게 듣는다. 국립박물관장 황수영씨의 얘기를 듣겠습니다.
대담에 이규영 아나운서 입니다.
- 국립박물관 외에 지방에 부여나 경주에 분관이 있고요. 각 대학에도 박물관이 있다고 어제 말씀
하셨습니다만 주로 우리나라 박물관이 주로 서울로만 생각하더라도 소장품이 얼마나 될까요?
- 서울 박물관에 현재 있는 것이 소장된 것이 7만점이 넘고 있습니다.
- 네.
- 아마 8만점에서 몇 백점 모자르고 있습니다.
- 네.
- 한두달 이내에 8만점을 넘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네. 박물관에 가면 공개 되는 것도 있습니다만은 그러면 공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겠습니다.
- 공개 되지 않는 물건이 물론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서울에 국립박물관에 동관 서관에 나와 있는
물건이 전부 다 해서 1500점 밖에 안되고 있습니다.
- 네.
- 물론 그 중에선 진열할 만한 우수한 물건들을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보통 봄, 가을에 진열품을
바꾸기도 하고..
- 네.
- 또 특별 전람회가 있어가지고 어떠한 테마를 잡아지고 전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네. 그 보존 관계도 중요하겠습니다.
- 뭐 금년에 이르러서 구미 각국을 비롯해서 보존 과학 문제요.
- 네.
- 물건을 창고에 넣어 두었다고 해서 상자에 넣어다고 해서 변화가 없는게 아니니까. 그런 것들에는
유의가 많습니다. 더욱이 진열실의 설비, 또 사시사철의 기후의 변화. 습기문제, 관람객이 들어
오면 먼지가 나고.
- 네.
- 여러가지 관계에 대한 세밀한 조사들을 하고 있어서 나라에 따라서는 국립기관으로 문화재 보존
연구소를 만든다는지, 부속시키고 있습니다만 저희 한테서도 그에 대한 전문가가 국내에 몇 분 계
십니다만 아직 독립된 기구로서 국립박물관에 부속되어 있다던지 그런 거 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 네. 지금 국립박물관엔 어떻습니까? 전문분야를 나눠서 어떤 분들이 일을 하고 계시나요?
- 국립박물관은 기구상으로는 매우 간단합니다.
- 네.
- 운영하고 있는 서무과가 있고, 그리고 학예부분이요.
- 네.
- 그 과가 두개 있어서 고고과가 있고, 미술과가 있습니다. 대강 시대별로 따라서 고고학은 선사시대
유사이전, 주로 문자시절 이전의 시대를 취급하고 있고, 미술과는 삼국시대부터 역사시대에 들어
와서요. 삼국의 고분 출토품이라던지 또 고려시대 도자기라던지요.
- 네.
- 또는 근세 조선시대의 회화라던지 이것이 큰 대상이 되겠는데, 삼국시대에 올라가면은 자연히 고
고과의 소관품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 네. 그렇다면 일하는 분들은..
- 거기에 종사하는 직종은 학예, 학예 연구사.. 학예사. 종별이 있습니다만 주로 연구하는 분야에 있
기 때문에요.
- 네.
- 고고과와 미술과에 속해 있는 분들은 대강 우리나라에 고고학 또는 우리나라의 미술사학. 두 부분
의 전공한 분들 또 그렇지 않으면 대학에서 사학과를 맡은 분. 또 금년에 와서 다행한 일은 서울
대학에 고고인류학과가 생겨서..
- 네.
- 그 방면에 전공한 분들이 차차 박물관에 자리를 잡는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 네. 8만여 작품.. 8만여 개의 문화재를 목록이라던지 이런 자료같은 것이 정리가 되어 있을까요?
-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 네.
- 기왕에 있어서 6.25의 격란을 겪었습니다만은 그 뒤에 정리가 되서 일단 목록이 나왔고.
- 네.
- 그 것을 다시 한장한장. 카드를 물품 하나에 대해서 지금 현재 여러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 네.
- 또 그 뒤에는 전부 사진을 붙이고 있습니다. 또 수년전에는 덕수궁 미술관이요.
- 네.
- 그 것이 저희 나라에서는 박물관으로서는 퍽 오래된 것이고, 또 옛날에 구 왕가, 이 왕가에서 관
리하던 박물관입니다.
- 네.
- 거기 물건을 전체 국립박물관에서 인수를 받았습니다.
- 네.
- 소장품도 질이나 양으로서 굉장히 늘고 충실해 졌습니다.
- 네.
- 이번에 국립박물관이 이번 여름에 새로운 진열관으로 옮기면은 그런데로 지금보다는 훨씬 스페이
스도 2배가 됩니다.
- 네.
- 진열도 새로운 정비를 할 그런 계획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 네. 과거에 무열왕릉이라던지 이제 발굴할 당시에는 대개 어떤 분들이 어떤 전문가들이 가게 됩
니까? 현지 발굴 현장에는 요.
- 작년의 예를.. 백제 무열왕릉기를 보면은 그 당시에 공사를.. 보존공사를 하던 곳이 문화재 관리
국입니다.
- 네.
- 문화재 관리국 자체에 연구실이 딸려 있습니다. 작년에는 그것을 지도하는 것이 국립박물관장.
그 당시에 김원중 박사가 지도를 했고, 주모자들은 문화재 관리국에 있는 학예사. 부분의 사람들
이 담당을 했습니다.
- 네. 그럼 그 때에 여러분이 가시겠습니다.
- 그렇죠. 그 때도 조금더 사람이 조금 더 동원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 네.
- 여러가지 그 때에 환경, 여러가지 제약, 그런 관계로 해서 많은 사람이 참여는 하지를 못했습니다.
- 네. 보도인이고 뭐 해서 어떻게.. 너무 많으면 혼잡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
- 저희들은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보도관계는 국민한테 알리는 거니까요.
- 네.
- 잘못하면은 과장되기 쉽고, 또 때에 따라서는 오버된 기사들을 저희들이 자주 보고요.
- 네.
- 그런 수가 있어서, 이 것은 앞으로 시정이 되어야 되겠다.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고분이 발견되서
내부에서 새로운 사실이 나올 때에는 그걸 조사하는 사람은 굉장히 신경을 써야 됩니다.
- 네.
- 또 그 순간이 지나가면은 다시 그 것을 변경되기 전으로 다시 놓고, 다시 보고, 다시 조사한다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깐 그 순간 순간을 잡아서 바른 판단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 것만은 작년에 무령왕릉
관계처럼 전국의 보도진에 혼돈속에서요.
- 네.
- 소요함 속에서 조사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조건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보도의 경쟁이 됩니다만은
조사는 조사대로 계획을 세워서 필요한 인원, 자제, 시간을 충분히 갖고 해야 되겠고, 또 그걸 보도한
당연한 입장에 있는 분들은 그만큼 인내를 해서 발표를 기다리고, 조사가 한 번 밖에 없는 그 순간
밖에 없는 조사기 때문에.
- 네.
- 그것이 성공 되기를 같이 협력을 해야 되라라고 생각합니다.
- 네. 이 고분 발굴 같은 것은 밀폐됐을 때하고 개방했을 때하고 다르지 않겠습니까?
- 다르죠.
- 그러니까 현장보존이라는 것이 발굴이라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 발굴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여러가지 준비, 또 필요한 기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동시에
제 생각으로서는 어떠한 방면에 발굴을 한다. 할 때에는 국내에 전문가가 누가누가 있느냐, 하는 것을
체크해 가지고 될 수 있는데로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한 해 밖에 없는 1회밖에 없는 기회입니다.
- 네.
- 그 걸 움직여 놓으면은 원상이 밝혀지니까요. 그것을 파악할 때에 충분한 많은 눈과 많은 지식으로서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이 고대 발굴에 대한 키포인트 입니다.
- 네.
- 가끔 가다가 보면은 그것이 이제 누가 하고 있다. 해서 그 에 대한 일종의 공명심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같은 부분에 있는 사람한테에도 마땅히 같이 보고 그런 귀중한 순간을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순간을 아무개도 봤으면 좋겠다. 하는 기회를 서로 나누지 못하는 그러한 폐단이 있지 않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좀 더 높은 입장에서 보면은 그 자체의 유물을 수습하는데 있어서도 손해고, 또 나중에
결국은 보고서를 만들어서 세계 각국에도 널리 퍼트려야 할 문제고, 후세 까지 알려야 할 문제인데,
암만해도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것 보다는 같은 부분의 사람이 같이 협력하는 데 있어서 보다 나은
성과를 얻는 것이 아닌가. 우리도 자체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네. 최근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으례, 우리나라 문화가 거쳐서 일본으로 간것으로 생각은 되면서
도 최근에 일본에서 무덤이 발굴되고, 거기서 귀중한 우리문화재가 나왔습니다만 최근에 나온것이
일본에서 발견된 것은 아마 처음이라고 보겠습니까?
- 그렇죠. 그것은 우리나라 삼한계통에..
- 네.
- 삼국시대 계통의 문화가 일본의 초기 문화개발, 초기 미술에 발달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그것은 벌써 아무도 의심이 없습니다.
- 네.
- 일본 측에서도 그러고, 일본의 저명한 학자들도 6세기, 7세기 약 200년에 걸쳐서는 압도적으로 우리
나라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향 밑에서 일본의 초기 미술이라던지 문화가 개발 되었다 대에서
는 의심이 없습니다.
- 네.
- 그런데 이번 보도를 보니까 고구려 계통의 그림이 나왔다고 해서 처음으로 고구려와의 관계가 알려
졌다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얘기고요.
- 네.
-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측의 기록도 그렇고 유물도 역시 백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만은 고구
려, 또 뒤에 와서는 신라와의 관계를 다들 인정하고 있습니다.
- 네.
- 이번에 일본에서도 여러가지 보도가 충분히 돼 있습니다만 거기 따라서 저희나라에서도 아마 일찍이
볼 수 없었을 만큼 보도가 여러날을 두고 충분하게 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 사진들.. 색깔 있는 사진도 나오고 그러더군요.
- 색깔있는 사진을 우리나라에서도 보도하는 것은 좋습니다만은 연일 보도 하고 그래서 조금 과잉
되고 있지 않나. 느낌을 했는데요.
- 네.
- 제가 느낀 것은 도대체 사람이면 사람의 사이즈가 얼마냐. 하는 것을 그 옆에다 써놓지 않았어요.
- 네.
- 그래서 나중에 알아보니까 저희가 무덤의 높이가 아주 작은 겁니다. 그래서 전체의 천장까지의 높
이가 사람이 구부리고 들어갈 정도의 1m 조금 넘는데, 거기에 사람 그려 놓은건 불과 40cm 미만이
라고 들었습니다.
- 네.
- 그러면 신문지상에 보도된 크기가 그 것에 실물보다도 그저 대책 없는 것인데, 그 사진의 일종의
요술이라고 그럴까요. 보통 사람 보는 사람은 사람을 실물대로 봐서 상당히 큰 그림이 그려있겠다.
무덤도 사진에 보면은 방이 굉장히 깊은 거 같다. 거 그렇지 않습니다.
- 네.
- 아주 작은 무덤이고요. 그것이 저희나라에 고구려시대든지 백제시대든지 고분에 비하면 그 규모가
비교가 안됩니다.
- 네.
- 또 그림 자체도 예를 들면 사신도를 비교해 보면은요. 이루 작기가 말할 수가 없습니다.
- 네.
- 그래서 일본 학자도 잘 표현했습니다만은 고구려 계통의 일본판이 하나 나왔다. 그런 정도의 얘기를
하는 얘기를 바른 얘기를 솔직하게 하고 있더군요.
- 네.
- 마침 저희 박물관에는 지금 큰 방 하나에 다가 벌써 봄 부터 고구려 벽화를 진열하고 있습니다.
- 네.
- 언제 거기 와서 보시면 도대체 이번 일본에서 나온 거 하고 저희가 가지고 있는 거 하고 저희것은
실물대의 모사인데, 이것이 다행히 소재지는 지금 이북에 있습니다만은 대부분 국립박물관이 모사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 네.
- 모사품은 둘도 없는 하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걸 방안에다 걸어 놨는데, 그 걸 와서 보
시면 비교가 될 겁니다.
- 네. 그러면 발굴 당시 얘기 부터 해서 내일 좀더 자세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음악)
국립박물관장 황수영씨의 얘기를 이규영 아나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내일 이시간에 계속 되겠습니다.
(입력일 : 2009.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