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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황수영 - 제1회 국립박물관 이야기
황수영
제1회 국립박물관 이야기
1972.04.17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요즘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고분발굴과 문화재에 관해서 오늘부터

국립박물관장 황수영씨를 모시고 얘기를 들으시겠습니다. 대담에 이규영 아나운서입니다.



지금 소개 말씀 드린데로 가까운 일본에서도 우리의 귀중한 유산이 발굴되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동안에 우리나라에 묻혀 있던 우리 선조들의 유산을 하나하나

발견하시면서 계속 직접 현장에도 가시었고, 지금도 그런 걸 아마 관리하시는 위치에 있으신걸로 알

고 있습니다만 좋은 말씀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선 박물관이 어디로 옮긴다는 얘

기를 들었습니다.

네. 금년 8월을 계기로 해서 중앙청 뒤, 경복궁.. 그 경복궁이 옛날 전체가 국립박물관. 6.25전까지요.

네.

그리고 부산갔다가 서울 돌아오면서 현 위치에 있습니다.

네.

그래서 큰 건물이 금년에 완성해서 이사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네. 건물 다 마치고 진열품 같은 것은 언제 옮기게 됩니까.?

진열품은.. 건물은 6월까지 완성이 됩니다. 그러면 그 직후에 가서 준비가 진행이 될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지금 우리 문화재라고 하면은 연대로 봐서 언제적부터 언제까지를 지금 얘기 할 수 있

겠습니까?

글쎄요. 상한선을 언제로 잡느냐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만 국내에서 다행히 구석기 시대의 유

적이 현재 공주근처의 금강유적에서 수년전 부터 조사가 진중하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네.

그에 따라서 국내에 있어서 인간이 살았던 물질적인 자료에 확실한 근거가 되는 날이라고

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되면 이제 만년 대 이상으로 상한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 때의 구석이 유적이 밝

혀진다고 하더라도 그 때의 살던 사람하고 오늘 우리가 사는 지금거 하고 직접 관련이 되는

냐하는 또 다른 문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립박물관이 이제 서울에 있습니다만 지방에도 박물관이 있지 않습니까?

네. 저희 분관으로 경주, 신라, 백제 고도에도 있습니다. 경주, 부여, 공주 분관이 셋이 있습니다.

네. 이 박물관이 이제 6.25 차마를 받았을 때에 위에 옮겼을 적에 비화라던지 여러가지가 참

많겠습니다만은 황수영 관장께서는 원래 미술실사 였다고요?

네. 공부는 현재 하고 있는 것은 미술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네.

우리나라 역사 이후에 특히 불교가 들어온 뒤에요. 탑을 세웠다던지, 불상을 조성했다던지,

그것이 지금 저희 나라에 국보나 보물의 수요가 매년 늘어가고 있습니다만 그걸 여러가지로 분류

해 보면요. 그 전체 수량에 반을 넘는 수요가 꼭 두가집니다.

네.

그 둘은 뭐냐하면 하나가 젤 많은게 탑입니다. 또 우리나라는 목탑은 많이 없어지고, 지금

속리산 법주사에 팔상전이라고 불려지는 5층탑이 하나 남아 있을 뿐인데요.

네.

그 외에는 전부 화강석으로 쌓아 올린 우리가 흔히 지방에서 또는 박물관에서 보는 그런 탑이죠.

네.

그리고 그 다음이 불상입니다. 우리나라 고대에 있어서 미술품에 중점이 어디에 있다는 것은

그와 같은 우리 과거에 그런 조형작품을 만들었던 배경이 됐던 불교에 천년이 넘는 역사를 통

해서 이루어진 작품. 이 것이 고대 미술에 쌍벽이 되고 있습니다.

네.

말년에 공부에 중점을 놓고 있습니다.

네. 물론 미술사를 하시다 보니까 물론 이제 고전.. 여러 작품을 다루게됐습니다만 박물관하고 인

연 맺으신지는 꽤 오래되시죠?

제가 박물관에 들어간 것은 해방된지 2년 뒤, 47년이군요.

네.

그러니까 지금부터 보면은 벌써 오래됐습니다만 그 때는 해방후에 박물관에 들어간 뒤에 다시

한번 6.25가 지나서요. 부산에 있다가 환복한 뒤에는 학교로 자리를 옮겼었습니다.

네.

학교에서 같은 부분의 공부를 하는 동시에 요새는 저희나라 대학에는 전부 부속된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립박물관 자체는 아까 말씀 드린데로 본관

이 서울에 있고, 지방에 분관이 셋이 있어서 그 이상의 새로운 박물관을 만들진 못했었습니다.

네.

그 것을 보충해서 현재 대학박물관으로서 한 20여개 대학에 박물관이 있어서 그런 나름대로의

특색있는 박물관을 그런대로 규모는 작습니다만 그런 것을 착수를 하고 있다는 거, 매우 좋

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외국에 비해서도 그건 또 하나의 특색이 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

니다.

네. 요즘엔 문화재 보호기관도 있지 않습니까? 서울에..

그런데 서울에서 문화재 보호 캠페인을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네. 어쩐지, 동아일보, 동아방송도 작년 한해를 줄곧 이제 문화재 보호 캠페인으로 잡고

있습니다만 이 문화재 보호라는게 사실 어떻게 보면 쉬운 것도 같지만요. 참 굉장히 어려운 문제로 생

각이 되더군요. 다른면에서.

문화재 그 자체를 만드는 것은 전문적인 기술이라고 할까요.

네.

판단이 필요합니다만은. 전반적으로 문화재 그러면 저희나라 역사하고요. 저희나라 문화하고 직

결되기 때문에 더욱이 최근에 있어서는 책을 통해서 그러한 민족의 역사, 또는 문화에 대한

감각보다도 시청각을 통해서 더욱이 눈을 통해서 물건을 보면서 각자가 느껴가지고 그 것이

바탕이 되서 오늘날에 우리의 역사에 대한 과제에 대한 참여 의식. 또 그에 대한 긍지, 자신,

용기 이런것을 문화재를 통해서 직접 각자가 느끼는 하나의 매체가 되는 그런 중요한 가치가 새로이

부여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최근에 일본에서도 우리 문화를 볼 수 있게 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만은 대체로 최근

에 와서 아주 크나큰 문화재 유산을 발굴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옛날보다는요.

아주 확실히, 최근 수삼년 동안에요. 저희들이 지금 느끼는 겁니다. 최근에 와서 더욱이 기사면도

눈에 많이 띄입니다. 문화재라는 말도 많이 나오고, 이것은 하나의 어떠한 저희가 현재요. 좋

은, 좋은 징조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네.

차차 자기나라의 고대의 그러한 문화, 역사에 물질적인 증거에 대해서 우리의 눈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무심히 지냈던 겁니다. 그런 것을 그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발견. 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그걸 보호해야 되겠다는 것이 정부 자체에서도 깊이 인식이 되고, 또 국민이 그것을 희망

하고, 뒷받침을 한 그러한 새로운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네.

그 것도 해방되고 나서 벌써 25년 아닙니까. 그럼 벌써 4분의 세기가 지나는 동안에 지금은 본격

적으로 자기가 서있는 바탕 우리의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움직이는 그런 힘. 그런 것과 과거

역사와의 연결의 하나의 매체로서, 문화재를 새롭게 보고, 새롭게 보호해야 겠다는 것을 해야겠다는 거.

네.

그렇게는 거 보고 있습니다.

요즘에 고분발굴 기사들이 나오고 또 새로운 유물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전문가들이 지금 고분

을 찾고 있는거라고 얘기 할수 있겠습니까? 어떤 계기가 되서 발견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고분을 꼭 거기서 고분을 찾겠다고 오랫동안 노력해서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네.

또 어떠한 계기가 있어가지고 작년에 무령왕릉은, 거기 무령왕릉이 있겠다고 판정을 해서 그

러한 백제 왕릉을 거기서 찾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네.

다만, 그 옆에 인접해서 과거에 조사되고 또 내부가 공개되고 있는 백제시대 고분이 있었습니다.

네.

그걸 보수하다가 마침 감독관이 있고, 그 감독관으로서 저희 아까 말씀드린대로 공주박물관에

책임자가 있습니다.

네.

이영배씨가. 이영배씨가 거기 수십년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본인이 공사하던 기간중

에 현장에 마침 갔더니, 그러한 벽돌 한장이 노출이 됐습니다. 그 사람의 전문적인 안목에 의

해서 이 것이 그 옆에 인접해서 새로운 고분이 있다는 대한 판정을 했습니다.

네.

그래서 즉각 공사를 중지하고, 서울에다 연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얘기를 하는 건요. 만일

그 때, 그 시간에, 그 순간에 그걸 알수 있는 사람이 만일 현장에 임하지 않았더라면 그건 그

기회는 다시 또 그대로 지나가서 앞으로 또 백년이 될지요. 다음에 기회를 기다릴수 밖에 없는거죠.

네.

그러한 것이 찬스인데, 결과적으로 보면은 국가에서 공주같은데에 다가 박물관을 둬두고, 그

나름대로 공주를 지키고 있다. 하는 사람을 두어둔 그러한 혜택을 몇 십년 동안에 결국은 빛

을 보게 된게 아닌가. 그런 얘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네. 그리고 또 흔히 도굴, 도굴범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은 그 도굴범을 통해서 얼

마나 우리 귀한 문화재산이 손실됐을까 생각하면 또 안타까워 집니다.

네. 그건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고대 문화재는 지하에 매장되서요. 물건 그 자체를 그것

이 도굴에 의해서 수습이 됐다. 그것이 나중에 발각이 되서 경찰에 압수가 되서 국고에 귀속이

되서 비록 박물관에 옮겨 졌다 하더라도 그 것에 따르는 학술적인 지식이 따라오지 않으면요.

네.

물건은 이른바 소위 골동품이 되죠.

네.

학술적인 자료가 물건에 반드시 따라야 됩니다. 어떠한 물건인지 이것이 어디서, 무엇하고 같이,

나왔다는 것이 다 관계지식 다 있는게 아니겠어요?

네.

그걸, 그게 있어야지만 물건은 비로소 살 수가 있는데, 그걸 도굴 하는 사람들은 그 어두운 밤에

몰래 숨어서 짧은 시간에 해내니깐, 번쩍거리는 물건이면 전부 그냥 끄집어 내지, 그 것이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던지, 뭐 하고 같이 있었다던지,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을 전혀 두지 않기 때

문에요. 물건의 본래 지니고 있던 그 자체의 가치가 손상되는 일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네. 그런 점도 있겠고요. 또 해외로 유출된다 던지, 뭐 이런 경우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이 시간을 통해서 황수영 관장님을 모시고, 우리나라의 고적이라던지 묘지, 고분같은

얘기를 계속 하기로 하겠습니다.


(음악)

국립박물관장 황수영씨의 얘기를 이규영 아나운서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내일 이 시간에 계속 되겠습니다.

(입력일 : 200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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