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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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이은관 - 제3회 15세 결혼식 이야기
이은관
제3회 15세 결혼식 이야기
1973.03.01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서도명창 이은관씨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 사람에게 듣는다.

대담에는 이규영 아나운서 입니다.



15살때 결혼 하셨었으니까 그 당시가 1932년이 되겠습니다.

그렇죠.

15살 이라면 지금 좀 이른것 같지만 그 당시엔 또 대부분 그 때 결혼을 했죠?

네. 그 시절엔 뭐 15살이면 대게 많이 했고요.

네.

스무 살만 넘으면 과년하다고 불렀습니다.

헤헤. 그리고 또 신랑신부 하면은 신부 쪽이 나이 많은 경우가 많죠?

네. 그때 그렇게 그때만 해도 그렇게 많진 않았어도 말이죠. 아마 한 3할 가량 됐을 거에요. 아마.

네. 대체로..나이 많은 분들이.

네네.

나이 많은 분들이요. 시골에 한해서 더 했죠.

네. 그 당시에 처가가 멀지 않았다고요?

네. 처가가 그러니까 한 20리 됐군요.

네. 그러니까 그 날갔다 그 날 돌아오는..

그 날 왔죠.

성례하러 가실때는 말을 타고 가셨고.

그렇죠.

네.

그리고 이제 그 때도 아마 도회지에서는 뭐 물론 시골하고는 달랐겠습니다만서도.

네.

그 때 시골에선 예식장이라는게 그 때 없었고요.

네.

그저 넓은 마당. 그렇지 않으면 마루도 큰 마루가 있으면 큰마루에서 대게 예식을 했으면서도

대략 이제 제가 그때 예식을 올린 것은 마당에서 했습니다.

네.

마당에서 이제 멍석을 피고, 돗자릴 피고, 요즘으로 말할거 같으면 요즘이나 그 때나 비슷하지만

서도 상, 제삿상 비슷한 거죠.

네. 가운데다 상 놓고..

가운데다 상을 놓고..

사모관대 쓰고..

사모관대 쓰고, 이제 신부는 여러가지 얼굴에 연지찍고 곤지찍고, 족두리 쓰고 해가지고 저는 뭐

했느냐 하면 이름은 잊어버렸어요. 뭐 이상한거 쓰고 하하하. 그리고 했죠.

네. 그러니까 맞선도 못 보시고, 중신 받아서..

그러믄요. 네. 중신이죠. 그 때야 그저.

네. 그리고 혼례마치고는 바로 댁으로 돌아오시고요?

그렇죠.

그 다음에 신행 간다고 그러던가요? 뭐..

네. 그 다음엔 3일 있다가 그 땐 신행이라고도 그러고, 재행한다는 말이 기억이 납니다.

네.

3일만에 처가집에 가죠.

네.

가면은 이제 저녁이 되면 동네 청년 분들이 많이 모여와가지고 한 밤 대략이제 한 11시쯤 되면은

신랑을 달아 몽는다. 그 때 말로. 달아 몽는다 그래가지고 노끈 아니면 무슨 바 같은거요.

네.

이런걸 가지고 와서는 발목을 매가지고 한 청년이 어깨에 들러 매고서..

네.

시골가면 방축돌이라는게 있습니다. 방축.. 다듬이 돌이라고도 부르고 방축돌이라는게 있는데요.

네.

다듬질 하는 뚝딱뚝딱 하는 그런 것..다듬이 방망이를 가지고 다듬이 질을 쳐요.

네.

거 많이 치면 장모님께서 자기 사위가 매 맞는 것이 애석해서 그 때에 음식을 내놓게 되어 있어요.

예가, 성례가.

네.

하하. 그런데 조금 내 놓으면 더 많이 내놓으라고 더 치죠. 하하.

헤헤.

그러면은 그 땐 정말 아주 조금 심하게 칠때는 사실 아플 정도로 칩니다.

네.

그러면 엄살도 좀 하고 아프다고 하면은 장모가 음식을 더 내 놓고, 이런 예가 있었습죠.

그 20리 밖의 청년들 안면이 없습니까? 모두들.

그렇죠. 그때 안면이 없었죠.

네.

어릴때니까 뭐 거기 가 볼일도 없고..

네. 15살에 신랑 키가 어땠습니까?

네. 지금보단 조금 작았습니다만서도 본체 좀 컸어요. 제가 키가.

네네.

신부키가 이제 나보단 조금 작은데, 그런데 여자로서는 좀 큰 편이었습니다.

네.

하하하하.

그 때 벌써 모두 성숙들 하셨군요.

뭐. 아무것도 몰랐어요.

헤헤헤.

하하하하. 어린 마음에도 사실 말타고 갈 적에 상당히 무섭고 떨리고..

네. 하하.

이걸 왜 지금 내가 이걸 말타고 신부집을 왜 가는가. 뭣 때문에 가는가 이런 생각을 해본 일이 있었

습니다. 하하하하.

네. 그리고 그 당시에 지방에 따라서 말이죠. 심한덴 굉장했던거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네. 아주 서로 신경을 올리고 얼굴을 붉히고 신랑이 달아난다. 뭐..

네.

도망가고요. 이런일이 허다했습니다.

네. 그다시 심하게 안당하셨습니까?

네. 저는 뭐 괜찮았었어요. 그 때.

하하하하하.

그러면 재향가가지고 하룻밤 자던가요?

하룻밤이죠. 하룻밤 자고 돌아왔습니다.

네.

대략 2~3일 묵는 수도 있어요.

네.

경우에 따라서.. 그런데 제 경우에는 하룻밤 자고 온 기억이 뚜렷합니다.

네.

하하하.

15살에 결혼하시고 첫 아이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참. 하하하 요즘 분들이 들으시면 참 우스울 노릇이죠.

네.

하하하하. 그 이듬해요.

네.

16살에..

애기 아버지가..

얘기 아버지가 됐죠.

그 때는 철원 고등 보통학교에 다니실때죠?

그렇죠.

네. 재학중이죠.

네. 하숙을 하고 계시고요?

네. 하숙을 하고서 공휴일날이면 집에 왔다가 가고 그랬죠.

네. 그러니까 애기 아버지면서 학교에 다니시고..

그렇죠. 그 때는 저뿐이 아니라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네. 그 때 결혼한 분이 많으셨군요.

시골에선 특히 더 했습니다. 그리고 좀 농가에서도 조금 곧잘 산다는 집에선 더 자식들에 대해서

조혼문제를 내세웠고요.

네.

조금 어렵게 살림살이를 하시는 분들이 조금 형편에 따라서 늦고, 벌써 늦어야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고 볼 수 있죠.

네. 그 당시에는 교복같은 것이 없었죠?

그러니까 그 때 교복이 없고요.

네.

그 때 까만 두루마기 입은 기억이 납니다.

두루마기에다가...

모잔 둥그런 모자에다가 하얀 테를 두루고..

네. 모자만..

네. 모자만 학생 모였죠.

네. 이제 보통.. 고등보통학교를 3학년 까지 다니시고요.

네. 그것도 다 못다녔습니다. 중퇴했죠. 3년 수료..

애기 아버지가 되서 그랬습니까?

그런게 아니라 사실 시골서 그 시절엔 사실 농가의 아들로서는 높은 학교 다니기가 어려웠어요.

네. 학비라던지 여러가지로..

그러믄요. 네.

그러면 이제 농사를 지셨겠군요?

네. 집에서 가사에 협조했죠. 일도 별로 잘 못하고, 역시 그 때부터 이런 창을 그때 부터도 좋아했기

때문에..

네.

소리나 하고, 돌아다니고, 일 할 때에도 소리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일에 그렇게 썩 잘 못했습니다.

네.

협조 정도로 했죠. 가사 정도로..

황해도 노래 배우러 가실 때 얘기를 해주시죠.

네. 요전에도 말씀 드렸으면서도 제 생각에 좀 목소리가 남보단 좀 뛰어난거 같고, 이 목소리를

가지면 소리를 배워가지고서 한번 널리 보급시키지 않으면 뭐 않되겠다고 하면 좀 지나친 예 고,

소리를 배워야 되겠다는 의식이 들었어요. 그러다 그 시절엔 축음기. 그땐 유성기 판이라고 그랬

죠. 유성기.

네.

네. 유성기라는 걸 하나 구입해가지고서 그 유성기 판에서 노래를 많이 배웠습니다. 그 시절에 서

울 긴잡가, 황해도의 잡가, 그 여러가지를 대략 유성기 판에서 듣고서 대게 머릿속에 많이 집어 넣

고서 혼자 독습으로 노래를 많이 했는데요.

네.

마침 황해도에서 어떤 소리 잘하는 목소리 좋은 사람이 하나 우리 동네로 오게 됐어요.

네.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나가지고 그 친구의 구원으로서 황해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황주요.

네.

황주를 떡 나가서, 어딜 갔는고 하니, 소리를 한다는 곳을 찾아간 곳이 어딘가 하니, 그 때는

권본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권본.

네. 지금 쉽게 얘기 하면 기생 종합학교 같은것..

그렇죠. 기생 종합이죠.

네.

기생 종합이라고 그랬어요.

네.

거기를 찾아 갔습죠.

근데, 집에서 부인이라던지 부모님들이 말리지 않습니까?

말렸죠.

헤헤헤.

아주 절대 반대했습니다. 하하하하.

뭐라고 얘기하고 떠나셨습니까?

갈 적에 슬며시 갔습죠.

네. 하하하.

하하하하. 아버님한테 돈 달라는 말도 못하고요.

네.

어떻게 어떻게 좀 마련해 가지고서 조그마한 노자를 가지고서 나갔습죠.

부인하곤 의논을 하시고?

아이고. 뭐..알리지 않았죠.

부인한테도 비밀로하시고..

나가선 처음엔 소식을 안 전했어요. 편지도 안하고.

네.

여러가지 부끄러운 생각도 있고 그래서 찾아갔더니, 그 선생님이라는 분이 그 때 나이 한 40이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네.

근데 좀 얽었어요.

아.

그런데 소리를 가르치고 있더군요. 그래서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이제 친구의 소개를 받아

인사를 드리고 여차여차해서 내가 소릴 좀 배우겠습니다 했더니, 한번 해보라고 하더군요?

네.

그래가지고 그 때 내가 기억이 나는 것이 창부타령을 했습니다.

네.

하하하하. 그랬더니, 아~ 참, 소리를 배우면 되겠다고, 그래서 거기서 부터 배우기 시작했습죠.

네.

그래서 그냥 배울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선 처음에는 얼마 소정의 액수를 드렸어요.

네.

드리고선 이제 얼마간 배우다가 보니깐 어디 또 돈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때는 선생님이 저를

귀엽게 보고서 그러면 여기서 좀 배우고 집의 일이나 좀 돌봐라. 그래서 같이 심부름도 하고,

이러면서 소리를 배웠습니다.

네. 황주에도 권본 같은 것이 있었나요?

그 때는 있었습니다.

네.

제정시대에는 요. 대략 황주만 정도면 다 있었어요.

네. 황주가 사과 밭이죠?

네. 사과 아주 퍽 많습니다.

네. 그 당시에 황주가 컸습니까?

황주가 그러니까 지금으로 칠거 같으면 어디만 할까요. 수원정도 되겠습니다.

네. 거기 이인수씨 댁에서 묶으면서 일도 도와주면서 소리도 배우고..

그렇죠.

이제 이런 나날이 계속 되겠군요.

네네.

네. 하하하. 이제 시골에서 결혼을 마치시고 황해도 황주에 소리 배우러, 소리 공부하러 가신

얘기를 오늘 해주셨습니다.

(음악)

서도명창 이은관씨의 얘기를 들어본 이 사람에게 듣는다.

대담에는 이규영 아나운서 였습니다.

내일 이시간에도 계속 되겠습니다.

(입력일 : 200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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