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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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이은관 - 제2회 가족이야기
이은관
제2회 가족이야기
1973.02.28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서도명창 이은관씨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 사람에게 듣는다.

대담에는 이규영 아나운서 입니다.



배뱅이 굿 하면은 이은관씨가 연상이 됩니다만 어떻습니까. 가지고 계신 창의 곡목이라든지

내용으로 봐서 몇 시간까지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길게.

네. 저는 대략 토막토막 노래를 하는데, 배뱅이 굿을 다 하는데 대략 1시간 가량 하니까

배뱅이 굿하고 서도 창하고 합쳐가지고 한 서너 시간 가량 해본 적이 있어요.

네. 그 때가면 힘이 좀 드시죠?

네. 세 시간 가량 하려면 좀 힘듭니다.

네. 그러니까 이 배뱅이 굿 하면은 창극 쪽 아니겠어요?

네. 그렇죠. 창극조라고 이름을 불러도 큰 무리가 아니겠죠.

네. 그렇죠. 평안도 지방에 민속 창극조.

그렇죠.

그런거죠?

네네. 황해도, 평안도.

그럼 창극조니까 연극을 혼자 여러사람의 역할을 혼자 한다니까 쉬운게 아니란 말이죠.

하하하. 지금 자녀는 어떻게 되십니까?

6남매 입니다.

6남매요.

네.

아들이 많습니까? 딸이 많습니까?

하하하. 딸이 많아요.

네.

아들이 하나 뿐입니다.

네. 딸을 많이... 지금은 모두 성장했죠?

그러믄요. 출가했습니다.

네.

위로 세사람 출가 했어요.

따님들이나 아드님 들이 아버지의 지금 창하시는 활동에 대해서 어떤 얘기들을 하십니까?

대략.. 그런 것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하하..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네. 근데 자랑스럽게 생각을 해야 될텐데..

네. 그런데 대략 저의 장모는 제가 이걸 하는 것을 상당히 부끄럽게 생각하는거 같아요.

네.

그리고 둘째딸은 제가 이거 하는데에 있어서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거 같고요.

네.

또 셋째딸은 뭐 아무생각도 안하는 거 같고요.

네. 하하하.

그렇습니다. 하하하.

모두 서울에서..?

네. 모두 서울에 다 있습니다.

네. 결혼을 일찍 하셨다고요?

네. 일찍 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 입니다만서도 열 다섯살에 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두 그랬잖아요.

그랬죠. 그 당시엔 열 다섯살, 열 여섯살.. 이십 살이 지나가면은 늦다고 그랬죠.

그랬죠. 그럼 다시 고향 얘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네네.

강원도 이천에서 나셨다고 그랬는데요.?

네.

그 당시 가족이 어떻게 되셨습니까?

네. 농사졌습니다.

네. 가정 형편은 괜찮으셨고요?

네. 농사졌는데, 그 마을에서 중류는 됐습니다.

네. 형제분은 많으셨나요?

네. 3형제 입니다. 저희가.

네.

우리 할아버지가 7형제고, 우리 아버님이 3형제고, 하하. 그리고 상당히 우리 아버님이

상당히 건장하셨어요.

네.

그 시절에는 제가 생각해 보건데, 두메 산골이라 참 인삼물을 잡숫고 나셔서 그런지 우리

아버지 대까진 상당히 건장했는데요. 저는 거기서 출생을 했습니다만서도 조금 도외지로

나와서 그런지 우리 아버님처럼 건장하지 못하고 좀 약해요.

그 대신 키는 크시죠?

네. 키는 꽤 크죠.

1m 70..이 넘으시죠?

70 조금 넘습니다.

네. 거기서 학교를 다니셨겠군요.

네. 거기서 탄생한 곳에서 조금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가지고서 학교 다니던 데가 한

6km 가량 됐습니다.

네. 거기서 그 당시에 보통 학교죠?

그렇죠.

그냥 보통.. 공립 보통학교라고 그랬습니다.

네. 이천이 지금은 3.8 이북이 되서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만 고향에 자랑스러운게 뭐 있

습니까?

네. 그러니까 제가 늘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고 또 향수에 젖는 것은 요. 특히 제가 탄생한

그 곳은 참 경치가 첫째 좋습니다.

네.

산이 높고, 졸졸 흐르는 맑은 물. 돌 사이에서 정말 스며 나오는 그 물. 바다의 파도 같은

그런 물, 산골서 흘러 나오는 것이 참 출렁출렁 하는 것이 정말 은빛 같고, 노래 가사와 한

가지로 이런 것이 자랑스럽다고 볼 수 있고, 향수에 젖는 그런 생각이 납니다.

네.

하하하.

가본 지가 언제쯤 되셨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해방 전에 가보고 못 가봤죠.

네.

네.

고향에 누가 계십니까?

거기에 이제 지금 많죠. 우리 가족이.

친척들이..?

네. 직계는 다 이리로 넘어 왔습니다만서도..

네.

거기에 이제 5촌 서부턴 거기 많습니다.

할아버지가 여러 형제시니까 친척들이 많겠으시겠고요.

그럼은 요. 많지요.

그리고 이천 보통 학교를 마치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리고 철원 가서 그땐 고등 보통 학교라고 했었지요.

네.

3년 수료 했어요. 중퇴했습니다. 하하하.

네. 이천에서 철원이 얼마나..? 몇리나 됐나요?

150리 가량 됩니다.

네. 철원엔 기차도 지나가죠?

그렇죠. 그게 경원선이라고 그랬죠. 경원선 역전입니다. 옆이죠.

네. 철원에 가서 고등 보통학교를 다니시다가 다시 고향으로 와 계셨나요?

네. 고향으로 갔지요.

네. 그리곤 이제 농사에..

네. 아버님이 농사지시는데 협조 좀 했지요. 하하하.

네. 근데 그 학교 다닐 적에 노래 공부는 아마 언제나 잘 했던거 같고..

네. 어제도 말씀드린 바와 한가지로 그 때부터 소질이 있어서 그런지 여느 공부는

잘 못해도 소리, 노래. 그때는 소리가 아니라 학교서 하는 거니까.

창가..

창가를 좀 잘했죠. 하하하.

당시 창가 생각 나시는게 있습니까?

글쎄요.

그 때는 무슨 창가를 했을까요?

생각이 얼른 안 나는데요?

하도 오래되서..

네. 하도 오래되서..

그 당시에 일본말..

아! 그 시절에 맞아! 학교서 못하는 창가죠.

네.

선생님 한테 들으면 꾸지람을 듣는 창가로서 `대동강변 부평리 산보에~` 이런 노래를

많이 했군요.

네.

지금 생각해 보니까.

민가에서 거의 하던..

네네.

당시에 일본말도 배우고 그랬죠?

그렇죠. 그 때는 일본말 주로 할 때죠.

네.

일본 사람 시절 제정 때니까요.

일본 노래도..

일본 노래도..

근데 어릴 때의 성대는 어땠습니까?

그 때부터 좋았죠.

어릴 때도 여자 목소리 같다던지..

그렇죠. 네네. 외람스러운 얘기 같습니다만서도 그 때부터 좋았던거 같아요.

네.

그리고 특히 이제 제가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보통 학교시절에 한 6,7호 되는 거리를

걸어다닐 적에 대량 학교 갈 적에 소리를 쭈욱 지르면서 나왔어요.

네.

`으어~~~~` 학교가자~. 이러면은 동네 얘들이 또 막 나오고 이런 기억이 나요.

그것도 음악적으로 하셨군요.

그런데 그 때부터 상당히 목소리가 좋으니까 자꾸만 좋다고 해서 좀 안됐습니다만서도

그 때 좀 많이 자연히 발성이 된거 같아요.

네.

그 목소리에 선천적인 면에서도 조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됩니다.

네. 어릴 적엔 대개 여성적인 성대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지금도 조금 여성 소리를 제가 나오는데요.

거의 남성적인 굵은 목소린 아니시죠.

네. 거의 더 여성적이 였었죠.

네. 변성기 되면서도 거의 여성에 가까운.. 목소리.

그렇죠. 네네.

그러면 고등 보통 학교 다니시다가 결혼을 하셨나요?

그러니까 고등 보통학교 입학시절이죠.

네.

그 해 될거에요.

어떻게.. 중신 결혼이죠?

그럼요. 그 때엔 중신 이죠.

하하하.

미리 선을 보십니까?

선도 그 땐 못봤죠.

네.

그냥 부모님들이 그저 하라는데로 할 때니까요.

네. 이웃마을..

아뇨. 한 8km 되는 데로, 장가 갔습죠.

한 20리 되는..떨어진..

하하.

네. 그 당시 생각이 나십니까? 결혼 하실 때.

생각납니다. 그 때도요. 상급학교로 기억이 나고요.

네.

이걸 내가 왜 장가를.. 그 땐 장가로 그러죠. 장가를 왜 가는가. 그 때는 말을 타고 갈 시절

이죠. 말.

아.. 말타고..

말타고 20리를 가서, 처가집 동네에 가서 대례 라고 그랬죠. 큰 예절이라고 해서..

대례.

대례를 지내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또 이제 신랑 집으로 오고, 그런 시절이거든요?

네.

그리고 마루에 신랑. 제가 말을 타고 처가집에 갈 거 같으면, 결혼식날 말씀이죠.

네.

얘들이 잿봉지라고 있어요. 잿봉지. 재를 종이다 싸가지고 신랑 얼굴에다 뿌립니다.

아. 신랑 다루는.. 한 종류군요..

네. 그런 예가 있어가지고 옛날부터 예가 있어가지고, 그렇게 해야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산다. 이런 뭐라 그럴까요. 미신이겠지만, 옛날에 예가 많았거든요.

네.

그래서 그 때 잿봉지 맞던 그 생각이 상당히 지금 까지도 남아 있어요.

네. 장남이라 아마 결혼을 일찍 시켰던거 같네요.

네.

네. 신부는 그럼 언제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까?

신부는 이제 대례 지낼 적에요.

네.

결혼식 할 적이죠. 식 올릴 적에.

힐끔 쳐다보고..

그 땐 부끄러워서 쳐다볼 수도 없지만서도 하여튼 제가 용기가 있어서 얼른 봤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네. 근데 연지곤지 찍어서 원 얼굴 모습은 볼 수가 없죠.

네. 근데 그 때는 특히 지금 시절보다 더 얼굴에다가 분. 그 때는 덩어리 분을 손에 다

대가지고 물로 다 타가지고 개가지고 얼굴에다 허옇게 바르고서 빨간 연지인가 찍어서

그 본얼굴을 보기가 어려웠죠.

하하하하.

하하하.

거기서 신랑 다룬 다던지 그런 거는 안당하시고..?

네. 그것은 요. 결혼식 후에 3일 후에. 이제 한번 또 방문합니다. 사위가 처가집에.

사흘 후에 가면은 신랑을 받는다고 그래가지고 동네 청년들이 와가지고 발을 잡아서

매가지고서 발에 다.

네.

노끈이죠. 매가지고서 방망이로 치고, 이런 예가 있었죠.

그럼 신랑 나이와 신부나이는 그때 어떻게 됩니까?

네. 저보단 조금 위 입니다.

네.

2년이 위에요.

대체로 그 당시엔 그랬던거 같아요.

네. 그런 예가 많았었죠.

네. 그러니까 결혼 당시에 얘기를 들었습니다만은 당시 색시 집으로 가가지고, 달리는 얘

기 부터 낼 하기로 하죠.

네.

네. 감사합니다.

(음악)

서도명창 이은관씨의 얘기를 들어본 이 사람에게 듣는다. 대담에는 이규영 아나운서 였습

니다. 낼 이시간에도 계속 되겠습니다.

(입력일 : 200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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