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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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이은관 - 제1회 20살부터 본격적으로 창을 배워…
이은관
제1회 20살부터 본격적으로 창을 배워…
1973.02.26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오늘부터 이 시간에는 서도 명창 이은관씨의 이야기를 이규영 아나운서와 대담으로 보내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선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서도 명창 이은관씨의 이야기를 앞으로

듣게 되겠습니다. 이은관씨가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지금 쉰 일곱살 입니다.

네..1900년..

1917년 생이죠.

1917년 생.

어떻습니까? 남이 보기엔 그렇게 안보이죠?

네. 조금 덜 늙어보인다고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네. 하하. 배뱅이 굿하면은 이은관씨 이름이 알려진지가 벌써 오래되니까요. 연세가 아마

많은 것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고, 고향은 어디십니까?

강원도 이천입니다.

이천이요. 네.

이천이면 지금 갈수 없는데죠?

네. 지금 삼팔 이북이죠.

네. 강원도 이천이면은 삼팔 이북쪽에서 황해도에서 가까운 쪽이죠?

그렇죠. 황해도 접경입니다. 바로.

네.

거기서 황해도 신계하고 곡산, 이천 그렇게 가깝죠.

네. 아무 두메산골에서 나셨군요.

아주 산골이죠.

하하하.

이 창은 언제부터 공부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원 본격적으로 제가 창을 배웠다 하는 것은 한 20살 부터 시작했습니다.

네. 좀 늦게 시작하셨네요?

네네.

근데 새삼스럽게 스무 살 쯤 돼서 그렇게 노래 공부를 하시게되었나요?

어렸을 적 부터 제가 그 때는 공립 보통학교라고 했는데요.

네.

보통학교 입학하기 전 부터 아마 소질이 있었던거 같아요.

네.

제 자신이 생각할 적에, 그래서 아침이면 늘 7살적 일거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산에 올라가서

이제 뭐. `어~`, `이~` 이런걸 제가 했습니다.

네.

그래서 소질이 좀 있는거 같아서 결국에 20살 시절에 그것을 공부를 하게 되었지요.

그러면 공부를 어디 가셔서 하셨습니까?

네. 황해도 가서 했습니다.

네. 그래서 강원도에서 황해도쪽으로 가시게 되는데.. 처음엔 어떻게 스승을 고르시게 되었는지..

네 그때는 강원도 이천 살적에 황해도에 어떤 친구가 전정하게 된 친구가 우리 강원도에 오게

되었어요. 근데 그 사람이 상당히 목소리가 좋고, 소리를, 황해도 소리를 잘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하고 연이 되서 만나서 친구가 됐거든요?

네.

그 친구가 날 보고 하는 얘기가 황해도를 나가서 소리를 배우면 소리를 잘 내기가 쉽다고..

네.

성공할 수 있다고, 그래서 같이 그 사람 소개로 황해도 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네. 그 이천에서 낳으셨을 때, 그 때 모두들 상투도 짜고 그렇게 됐었죠?

그 때 상투를 짜신 분이 혹간 있었고요. 역시 머리를 많이 삭발했었습니다.

옷은 한복들.. 바지 저고리..

그렇죠. 양복이 드물었죠. 그 때, 그 때도 특히 제가 탄생한 곳은 이천면 소재지 인데요.

네.

아주 두메산골 고동굴이라는 골짜기에서 탄생이 됐거든요?

네.

그래서 제가 탄생한 곳에 분들은 양복이란걸 모르고, 군 소재지 거기나 가야 양복입은

사람들이 많았었죠.

네. 스무 살에 덕거머리 총각이 황해도로 노래공부를 하시려고 떠나셨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하하하.

아니, 차차 이제 얘기가 나오겠습니다만서도 덕거머리 총각은 면했었습니다. 그 때,

그랬어요?

네네. 하하하. 시골 분들이 좀 봉건적이라 조혼했었죠.

결혼은 하셨고, 네 하하하. 황해도에서는 우선 서도창을 배우셨습니까?

그렇죠. 네.

당시 어떤 분에게..

황해도에 이인수 씨라고 있었습니다.

네.

그 분이 배뱅이 굿과 서도 창을 상당히 잘하는 명창이었습니다.

네. 거기서 서도 창, 배뱅이 굿.. 몇 년이나 거기서 배우셨나요?

그러니까 이제 배우는 것은 상당히 단시일 내에 배웠다고 제가 생각됩니다.

네.

배우는 것은 석 달에 다 수료가 됐는데요. 역시 배워가지고도 많이 숙련하고 자꾸 복습을

해야 되기 때문에 한 1년 까지 거기서 복습을 하고, 그 선생님 앞에서 한 1년 가량 조교를

했습니다.

네.

제가 그러다가 1년동안을 황해도 장연길이라는 곳에가서 또 역시 제가 소리를 가르쳤어요.

네. 배우시고 바로 가르칠 정도로 소질이 풍부 하셨던 거죠?

네. 제가 너무 외람스런 얘기 같습니다만서도 여느 면에서 상당히 참 소질이 없고, 모든게

제가 좋지 않은데요. 아마 소리를 배우는데는 소질이 좀 유능했던거 같아요. 하하하.

타고나신 거 같아요.이 배뱅이 굿이 시간이 좀 길죠?

그렇지만, 전수 첨부터 다 하자면 그저 한 시간 가량 걸려야 합니다.

네. 배우시는 것은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배울 때요?

배뱅이 굿.

배뱅이 굿이요? 그러니까 배뱅이 굿. 뭐 서도 창. 한꺼번에 배워 나가는데요. 배뱅이 굿

을 잘라서 말하자면 아마 한 달 가량 걸렸을 거에요.

네.

그 시절이니까 한달에 배웠죠. 만일 지금 배뱅이 굿을 배운다고 하면 일 년가도 좀 어려

울 거 같습니다.

기억력이..

네. 머릿속에 외우고 이제 아주 입에다 올려야 되거든요? 딴 생각을 하면서도 이 노래가

나게끔 입에다 올리기 전엔 상당히 하기 어려워요.

네. 지금 배뱅이 굿 하는 분들이 계시나요?

에. 지금 전문적으로 한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네.

지관팔이라고, 있어요.

어려운 모양이죠? 배뱅이 굿이..

어려운 것 보다도 잘 배우려고 안하죠.

왜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대략 서도 창, 경기 창, 이렇게 간단한 민요 보다도 이것은 대사도 해야 하고,

좀 웃음 거리, 그 시절에는 지적이라고 해요. 지적. 웃음거리를. 요즘 말로는 유머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 때는 지적이라고 했습니다.

네.

그런 걸 잘해야 하거든요? 이제 목소리가 좋아서 창도 유창하게 잘 해야 하고, 그런것을

잘해야 하고, 여러가지를 잘 해야 되기 때문에, 좀 어려운 편이고 또 배우기가 조금 아마

부끄러운 모양이에요. 하하.

이은관씨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뒷 사람들이 아마 나오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하하.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 후에 경기 창도 배우셨어요?

그렇죠. 경기 창은 서울 와서 배웠지요.

네. 그 당시에 어떤 분한테..

네. 왕십리 이명길씨라고 계셨습니다.

네.

그 분한테 사사했어요.

네. 서도 창, 배뱅이 굿, 경기 창도 배우시고.

네네.

그 밖에도 시조라던지 가사라던지..

네. 시조가사는 저 서울 마포에 계신..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조 가사를 잘 하신다는 학강

선생이라고 있었어요.

네.

호가 학강이고, 최경식 선생한테 제가 시조가사는 배웠습니다.

그럼 국악의 범주는 거의 다 배우신 셈이군요.

예. 경 서도 쪽에서는 배우기는 다 배웠죠.

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잊어버리고요.

네.

하하하.

그 후에 이제 가무단이라던지 이런 단체를 통해서 활약을 하셨겠죠?

그렇죠. 네. 그 후에 일본 사람 시절이죠. 제정 때죠.

네.

그 때는 조선 음악원이라는게 있습니다. 음악 협회. 거기서 단원으로서 활약을 한 일이

있습니다.

네. 전국 방방 곡곡 순회공연도 하시고..

그렇죠. 순회공연 많이 했습니다. 그 때.

안 가보신 데가 없겠습니다.

저 그 때 함경도, 평안도, 그 쪽으로는 한 번 밖에 못갔어요.

네.

하하.

그 당시에 만주라던지 일본까지 진출하셨나요?

네. 만주도 못 가보고요.

네.

일본도 못 가봤습니다. 그 당시엔.

네. 해방후에는 이제 또 역시 계속 활약 하셨겠지요?

네네. 해방후에 우리나라에 국악원이라는게 설립되지 않았어요?

네.

그 국악원에서 국민이 요구해서 활약했죠.

네. 그리고 학원 같은 것도 만드셨죠?

네. 학원은 이 근래에 만들었습니다.

네.

한 3~4년 밖에 안돼요. 학원 설립한 것이..

네. 이은관 민요학원이라고..

네. 이은관 민속 예술 학원이라고.

민속 예술 학원.. 지금 제자들이 많이 있습니까?

지금.. 뭐 얼마 없어요. 한 40명 가량 되는군요.

네. 남학생들이 많습니까? 여학생들이 많습니까?

네. 남학생이 적죠.

네.

남학생이 한 7~8명 되고요. 여학생이 한 30여 명..

네. 그리고 또 최근에 와서는 해외여행도 많이 하셨죠?

네. 해외라야 뭐 가까운 일본은 여러번 갔었습니다.

네. 교포 위문 공연..

그렇죠. 그리고 대게 연예인들은 누구나 다 많이 다녔지만서도 월남. 우리 장병위문도 몇 번

갔었고요.

네.

하하.

이 배뱅이 굿 하면 참 우리나라에선 독보적인 존재이십니다만 역시 그렇죠. 창과 연기력과

춤과 이런것이 혼합되어야 되기 때문에 아마 어려운거 같아요.

예. 하하 그래도 첫째는 그저 성대가 좋아야 될 거 같아요.

네. 어떻습니까? 계속 한 시간 이상 소리를 지른다던지 하면 목에 피로 같은게 올거 같은데...

네. 그러니까 실은 한 시간 가량 해야 그 때가 좋은 목소리가 나옵니다. 부드럽고, 제 체험

에 비춰봐서요.

네.

그래서 처음에는 노래부르기 시작해서 처음에 한 10분이나 15분 동안은 좀 거친 목소리가

나오고요.

네.

좋지 않은 목소리가 나와요. 그런데 30분 내지 40분 해야 그 때부터 부드러운 소리가 나오고

하기가 아주 좋지요.

네. 이은관씨는 독특하게 고성이죠? 높은 음성.

네. 대개 고성이라고 볼 수 있죠. 여자들 목소리하고 같은 목소리가 나옵니다.

헤헤. 네.

그리고 낮은 목소리도 많이 나온다고 제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악기는 어떤 것을 다루십니까?

악기도 썩 잘은 못해도요. 제가 악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몇 가지 불죠. 저 피리하고요.

가야금, 통소, 이렇게 세 가지 합니다.

네. 특히 장고는..

장고는 으레 소리하면 따르게 되는 것이고요.

굿이다. 배뱅이 굿이다 하니까 무당들 굿 하는게 아닌가. 이렇게 역시 생각하는 분들이

계셨는데요.

네.

지금은 많이 알고, 끝까지 듣고 보면은 무당을 말하자면 원 무당소리가 미신이다 이런것

을 타파한다는 그런 내용이 섞여 있는 노래죠.

네. 이은관씨 창 할때는 모두 도취한다는 그런 얘기를 제가 표현한 겁니다.

하하.

내일부터 이은관씨 어릴 때, 자랄 때 얘기 좀 듣기로 하죠.

네.

서도 명창 이은관씨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 사람에게 듣는다.

대담에는 이규영 아나운서 였습니다.

내일 이시간에도 계속 되겠습니다.

(입력일 : 200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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