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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이영술 - 제2회 “초립을 쓰고 학교를 갔어요”
이영술
제2회 “초립을 쓰고 학교를 갔어요”
1973.03.16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우리나라 양의학 반세기를 몸담아 온 이영술 박사의 회고담을 들어보는 이 사람에게 듣는다.

대담에는 이규영 아나운서 입니다.

을미년에 태어나셔서 소지주의 외아들로 태어나셔서 의사가 되기 까지 여러가지 과정을 공부하셨겠지만

을미년 1895년 하면 그 당시만 해도 한문이 주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차츰 신문학이 도입되고 그럴 때인데.

서양 신문화라는게 겨우 들어오기 시작하는 때지요.

네.

그러니까 일반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고, 그때 애들이 공부한다는게 즉 한문이죠.

네.

그러기 때문에 나도 어려서 한 열한 살까지인가 한문 서당에 다녔어요. 그러니까 신문화에 접촉하게 된 것은

그때 평양 숭실 중학교지요. 중학교 상급학생, 4학년입니다.

네.

상급학생들이 방학때 여름방학과 겨울 방학에는 그 때는 시골 교회가 있는 예수교가 있는 시골에 가서

그 마을에 있는 청년들을 모아 놓고서는 신문화를 보여주는 그런 기회가 있었어요.

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려서 살던 시골에도 그런 분이 나와서 가르쳐 주는 그런 기회가 있었습니다.

농촌계몽 비슷하게.. 지금도 뭐

그렇죠. 마찬가지죠.

네.

요새는 주장이 생활에 관한 것을 가르치고 그러지만은 그때는 주장됨이 신문화에 관해서 예를 들거 같으면,

수학이라던지, 지리라던지, 역사라던지, 또 노래. 그 때 시골에서 노래라면은 처음 이지요. 하하하.

네.

그런걸 그 학생이 나와서 가르치는건 두 번, 말하자면 겨울방학하고 여름방학. 두 번 접촉을 했어요.

그러니까 서당에 다니다가 그러다가 신기하죠?

신기하고 말고요. 그러니까 한문이라는 건 말하자면 늘 같은걸 가지고 외워야 하고, 선생한테 갖다 바쳐야 하고,

못 바치면 초단을 맞아야 되고, 그러는데, 그러니까 자연히 선생이 방학때 와서 가르치는건 무섭지 않단 말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부모에게 승낙을 얻어 가지고, 학교에 가서 정식으로 공부해볼 욕심이 생겼죠.

네.

그러기 때문에 아마 열두살 때인 줄로 기억이 됩니다.

그 때 평양에 내 외조모가 계셨는데, 그 분한테 가서 기숙을 하면서 정식 학교 가서 입학을 했어요.

당시들만 해도 이해들을 안해주시죠?

네. 원만한 가정에서 그 자식을 그렇게 더구나 어른 열두살이라면 아직 요새보다 더 그 땐, 대도시에 어린

자제들을 보낸다는게 대단히 염려없는 부모들이라면 못할 일입니다.

네.

더구나 나는 외아들인데 말이지요.

네.

외아들을 보낸다는게 요즘으로 말할 거 같으면 큰 용기를 가지고 내놓은 거지요.

네.

그러나 우리 부모가 승낙을 해줘서 학교가서 정식으로 그 때 평양에 숭덕학교라는게 있었어요.

네.

그것도 역시 교회학교인데, 이건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가 아니고, 우리나라 교회에서 세운 학교입니다.

평양에. 거기가서 입학을 해가지고, 공부하게 되었어요.

네. 당시만 해도 머릴 땋고 그러셨죠?

그러니까 내가 학교 갈적에 내가 일찍 혼인을 했어요.

네.

하하. 외아들이기 때문에 부모가 사람이 귀하단 말이에요. 사람이 그립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뭐. 혼인할

시기가 아니죠. 열두살에 혼인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아내되는 사람을 열두살에 들어왔어요.

이게 나보다 4년 맏이 되는 16살 된 처녀를 며느리로 맞았죠.

그게 며느리 꽃이 되었지요. 여자 16이면 그 때 시절에 성숙하고 집안 일 도울 수 있으니까. 말하자면

부모들의 지나친 욕망이죠. 내 자식 어린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든지, 하도 사람이 그리우니까 그래서

말하자면 열두살에 혼인은 해 놓고도 아내 되는 사람은 부모와 같이 시골에 같이 있게 하고 나는 평양으로

와서 학교 가서 이제 공부를 정식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네. 그럼 결혼을 해 놓으시고 공부를 하셨군요.

그러니까 내가 학교 갈적에 초립, 옛날 옛적에 갓 말고, 갓과 같은게 있는데 갓은 까만것으로 만들잖아요.

네.

이건 초립이라고 , 지금 있는 이들은 잘 모를겁니다. 노란 것으로 만든것.

네.

초립을 쓰고 학교를 처음으로 갔어요.

머리를 올리셨고,

올렸지요.

네.

그리고 학교가서 머리를 깎았어요.

네. 물론 바지 저고리 일 테고요.

물론이죠.

그 당시엔 고무신 같은게 있었습니까?

고무신도 없었어요.

그럼 짚신..

예, 가죽신이 있었어요.

네.

가죽으로 만든 신발인데, 가죽 밑에 다가 징을 박고, 그래서 그건 상당히 질겼어요. 오래가요.

네.

그런 것을 신고 내가 다녔죠.

당시 결혼할 땐, 선을 본다던지 그런 것은 못하셨죠?

부모들이 선을 보지, 원 당사자가 선을 못 보죠.

네.

그러니까 당사자들은 그저 부모가 해주는 대로 시행할 따름이죠.

당시에 시속에 부끄러운 것도 뭐 별로 없으셨겠습니다.

부끄러운 것도 모르죠. 뭐 그러나 우리 혼인이 아주... 하하. 요새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모들이 이제 혼인을 시행해가지고 그 때 어떻게 하는가 하니, 색시방에 색시 있는 곳에 가서 색시를 데리고

오는게 이제 그 때 관례거든요.

네.

그럼 색시방에 갈때에는 이제 말을 타고 갑니다.

네.

말을 타고 가고, 또 갈때에는 새 서방만 보내는게 아니라, 이제 후견인이 같이 따라가요.

네.

집안에 누구 어른 한분이 데리고 가서 색시 있는데 가서 서로 다 인사를 하고, 그리고 색시를 가마에 다가 실어

가지고 집으로 오는 거거든요.

내 아내 되는 사람이, 지어낸 얘기 에요. 내 후견인으로 갔던 분이 얼굴이 얽었어요.

네.

이전에 천연두라고 해서 그래서 16살난 신부가 이게 신랑이 되게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할거 아닙니까?

네. 하하

가마속에서 좀 내다 봤단 말이에요. 어떻게 생겼나.

근데 말을 타고 가는데 둘이 타고 가는데, 나도 타고, 제 후견인이 되는 이도 탔는데, 그런데 이가 후견인

인 그이를 본 모양이에요.

하하.

얼굴이 얽었답니다. 그래서 아주 마음이 퍽 낙심을 했던 그런 웃지 못할 얘기가 다 있습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러니까 그 결혼식을 올리는 거죠? 그것도?

그렇죠, 예.

그 당시에.?

그래가지고 색시를 데리고 와서 우리집에 와서 이쪽집안 안 사람들과 친척들 다 전부 모인 가운데서 비로소

서로 막 보기도 하고, 이젠 우리나라에의 제례는 처음 만나선 절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네.

그렇게 하므로 이제 성혼이 되는 거죠. 혼례가 아주 이루어 지는 겁니다.

네. 그 당시엔 키가 어떠셨는지요?

어려서도 그렇게 키가 적지 않았어요.

네.

그러기 때문에 뭐 열두살 난 소년치고는 그렇게 키가 적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네. 신랑답게 보였겠군요. 하하. 그러면 숭덕학교를 다니시는 군요.

네. 숭덕학교를 미리 한문을 공부를 한. 대게 여섯살, 일곱살 되면 이제 서당에 보내잖아요.

그래가지고 열살, 열한살 되도록 한 4~5년 한문을 공부했단 말이에요.

네.

어려서 공부했지만, 4~5년 공부를 해서 한문 실력이 그 때로 말한다고 해도 논어, 맹자 이런걸 공부했어요.

네.

그러고 이제 숭실학교 나온 선생한테 한, 다 합해서 아마 5~6개월 동안 신학문을 공부를 하고 그랬으니까,

실력이 아마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네.

그래서 학교에서 소학년 6학년이 졸업인데, 5학년으로 편입을 시켜줘요. 다 와서 시험을 해보고서는, 그래서

이 해동안 소학교를 다녔죠.

하하. 그러고는 중학으로 오시게 되겠고요.

그래가지고서 이제 숭실 중학교. 거기야 말로 선교사 들이 하는 중학교 인데, 4년제 중학이에요.

네.

그런데, 소학교를 좋은 교적으로 마치고 들어온 사람은 1학년은 면제를 해주고, 2학년부터 편입을 시켜줍니다.

네.

그러니까 3년 공부하면 중학을 졸업하도록. 그때 그렇게 됐어요.

그 당시에는 양복도 입고 그렇게 됩니까?

그 때, 중학교 다닐 적엔 양복 없었습니다.

네.

다 한복입고 다녔죠.

검은 색깔로. 검은 두루마기.

네.

네. 지금 이렇게 생각하시면 서당다니던 한문이 기억에 나십니까? 배우신 것을..

네. 배운 것이 말하면 다니던 것은 물론 기억 되요. 선생의 그 어떤 분이든 기억이 됩니다. 그러나 그 분

들에게 어떤 그 인간적으로 저랑 감화를 받았느냐 그러면 뭐 그런건 없다고 하는게 솔직한 고백일 겁니다.

하하. 서당 공부에는 열심히 외는 것만..

그것 뿐이지요.

네네.

그래서 그저 잘 고해 바치면 별안 책망이 없고, 말을 잘 고해 바치지 못하면 잘 못하면 초단을 맞아야 하니까.

네. 하하하. 이 숭실중학교 다니시면서 집에서 다니시게 됩니까?

예. 그러니까 소학교 다닐때에는 외조모댁에서 이햇동안 다녔고, 그런니까 부모가 혼인 시켜 놓고, 그냥 외조모댁

에서 계속해서 다니라고 그럴수가 없으니까 아마 중학교 한 3학년 때부터 시골서 평양으로 이사를 왔어요.

부모님들이 공부 시키기 위해서. 특별히 그래서 중학교 다닐 때에는 부모와 같이 한 3년 같이 있을 그런 기회가

있었지요.

네. 그 당시에 교회는 열심 다니시고..

네. 그렇죠. 그 때 교회는 평양에 유명한 장백차 교회라는게 있어요. 장배연 교회라고, 우리나라 유명한

교회입니다.

네.

이성주 목사가 있고, 이제 그 교회에 다녔지요.

교회가 앞으로 출신하는데 인연을 아마 많이 할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그렇게 됩니다.

그런 얘기도 병행해서 듣기로 하겠습니다.

네.


(음악)

우리나라의 의학계의 원로 이영술 박사의 회고담을 들어보는 이 사람에게 듣는다.

대담에 이규영 아나운서 였습니다.

내일 이시간에 계속 되겠습니다.

(입력일 : 200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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