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에게 듣는다. 금년도 서울시 문화상 수상자이신 조선일보사 사회부장 이규태씨를 모시고 ..백경을 비롯한 국학부문의 대표적인 저서와 히말라야산 등반에 관한 얘기를 듣기로 하겠습니다. 대담에 이규형 아나운서입니다.
-서울시 문화상 올해 받으시게 됐는데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지금 소개해 드린대로 여러가지 그 취재활동 세계 각국에도 다니셨고 또 그 등반대회도 직접 따라 나가서 취재를 하셨구요, 특히 그 국학부문에 뜻을 두시고 여러가지 연재물 뭐 자료조사라던지 뭐 어려운 점이 많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그러니까 연세대학을 이공대 나오시고 전공이 뭐였습니까?
-화학전공이였습니다.
-네 근데 화학 공부하다가 어떻게 기자가 하하하...들어오셨습니까?
-글쎄요, 그것은 그때의 그 사정이요?
-네
-제 사정 때문에 그랬는데요. 그 무렵에 공학을 했댔자 취직이 안됐습니다.
-네
-왜냐면 그 수복 직후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기자생활 하신지 한 15년 쯤 돼신 거군요?
-네. 14년.. 만 14년 됩니다.
-네 그동안에 외국에도 여러번 다녀오신거 같애요?
-네 외국에 한 기억 안날 정도로 나갔습니다만
-네
-참 이상합니다. 제 외국 나가는것이 미국을 못가봤고요?
-네
-아직 구라파를 못가봤습니다. 가장 처음에 가야할데를 못가고 이제 뭐...에서 그런지 세계를...게 돌아다니게 됐습니다.
-네 그 요즘에 무슨 히말라야 등반 얘기도 나옵니다만은 거기도 한번 갔다 오신적 있죠?
-네 이..저 우리나라 그 본격적으로 첫번째 간 그 히말라야 등반
-네
-거기에 따라갔었죠.
-그건 언제쯤인가요?
-제작년이죠. 70년도
-네
-그 저도 쭉 12년 동안 등산을 해 왔어요.
-네
-....하고 그래서 그걸 이제 가게 하는데 저도 힘을썼고
-네
-또 가기위해서 저도 훈련도 받다가 ..에 설악산 사고 나지 않았습니까?
-네
-..그 눈사태로 죽은?
-네
-그때도 그 같이 거기서 훈련 받고 있었습니다.
-네 직접 그 히말라야도 갔다 오시고 이번 사실 그 조난 사고가 유례없는 사고였습니다만은 그 얘기도 앞으로 좀 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구요? 그리고 이제 국학부문에 뜻을 두신건 어떤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요, 제가 근데 외국에 나갈때마다 말이에요?
-네
-그 좀 항상 외국사람들 만나면은 한국젊은이들...내보냈으면 좋겠다.
-네
-이런 한국사람의 폐쇄된...젊은이들이 폐쇄된 사회에서 살면 자꾸 자기나라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습니다.
-네
-그 뭐 저도 외국나가기 전엔 그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러다가 이제 외국에 나다닌..나다니면서부터 이상한 반작용이 생겨요.
-네
-다른 외국갔다온 사람은 그러니까 단순히 이게 애국가야 애국심..그런 얘길 하지만은 그게 아주 실감있게 무엇인가 그 조금 우리나라에 대해서 그렇게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네
-우리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 그 우리나라걸 찾아서 우리나라 것이 참 옛날것이 다 이렇게 저주할만한 것 뿐만이 아니고 그러면서 ..하나 느꼈어요.
-네
-그 외국사람들 만나고 학자들 만나고 그러면은 퍽 우리나라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네
-답변해줄 자료가 없고 그래서 그게 가속돼서 또 우리나라 또 ..에 가보면 모두 ..적이고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이고 사고 가정 그 돌아가는 ...그런것이 굉장히 급속도로..되고 있잖아요?
-네
-이게 뭐 우리나라에서 ..아무것도 없고 말이에요?
-네
-자꾸 소멸되고 무슨 그렇게 무슨 제가 역사적인 큰 사회의식을 느낀게 아니라
-네
-이거 어떻게든지 그래도 우리가 우리걸 캐놓고 우리걸 알리지 못하는 이상은 이건 우리나라는 뭐 정말로 정신적인 식민지 된 것밖에 안되는 거...
-네
-그런데서 조금 좀 대인적인 행동도 하고 그리고 또 이 제가 소위전공은 개인적으로 따지면 전공을 상실한 세대입니다.
-하하 네
-잘 됐어요. 뭐 제가 상실한 것도 아니고
-네
-우리나라의 역사의 여건이 전공을 상실시켜 준 그 불우한 세대란 말이에요?
-네
-그래서 그 잃어버린 전공 ...수는 없는거고 입장에...
-네
-그래서 새로운 것을 개척을 해야겠다. 그런데다가 이제 그런 외국에서 느낀것을 보고 매체에서 그래서 무엇인가 해보자고 이제 캐기 시작한거였죠.
-네 그러면은 그동안에 지금 체계화해서 자료로 내놓신게 뭐뭐가 될까요?
-지금 그래요, 이제 그 국학이란 말하고 사학이란 말하고 어떻게 국사란 말하고 그거가 어떻게 다르냐 이제 그런 아주 난처한 문제들도 있는데요?
-네
-국학하면은 조금 그 국사의 범위에서 보담은 어느정도 좀 기능적이여야 하고
-네
-조금 광범위하고 정신이 깃들어야하고
-네
-에 일종의 그 한국의 그 르네상스 복고적인 르네상스
-네
-에 일제시대때 부터 일제시대때의 한국의 역사 한국을 그 나쁘게 하기 위해서요, 한국 그 모든것을 아주 나쁘게 여겨왔습니다.
-네
-그 사색 당...이다 무슨 분..이다 무슨 양반이다. 실은 그 외국에도 그런 약점은 많습니다. 외국역사에도
-네
-그 지금 어떤데서는 그 매스컴 통해서 좀 젊은이나 늙은이나 학자가 그 우리선조 보는게 아주 그 자기들 그 부정하는 벙법으로 알고 있는거 같어요.
-네
-나.... 안봐서 잘 모르겠는데. 우리 사상 같으면 제가 보기에는 말이죠. ...이나 일본 무사도나 그 좋은게 많습니다. 왜 그 좋은것을 그 저주하고
-네
-나쁜것만 가려서 자꾸 우리선조 욕을 하는지 말이에요.
-네
-그 제가 여기서 국학 국학 그러는것은 그 조금 정신면이라던지 ..구성이라던지
-네
-그런것들이 우리것입니다. 결국.
-네
-국사가 아니라 우리것을 광범하게 리바이벌 시키는 이렇게 좀 그런뜻에서 국학이라고 그런 말이 가장 적합하지 않냐
-네
-에 그렇게 생각이 돼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그 발달과정을 살펴보신 샘이죠?
-그리고 이제 분야가 있겠죠.
-네
-너무 광범하니까
-네
-광범하니까. 그래서 그 과거의 그 정사위주. 그 정사라는 것은 그궁중에서 그 정식으로 기록한 문학
-네
-사실 나중에 그 사람이 사는 것에서 가장 초피적인 부분입니다.
-네
-그래서 이 국학이라면은 그 정사를 포함해서 그 시대의 어느사람이 쓴 기록
-네
-..그리고 그 야사도 되고 온 그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민속도 있고 뭐 설화도 되고 어느시대에 있어서 모든것을 대집성해서 가급적 그때의 그 인간 살아있는
-네
-모든것을 재현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한사람을 훌륭한 사람을 부각시킬때 그 사람의 그 훌륭한 점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 그러니까 이렇게 그 자료를 채집해서 무엇을 이렇게 뒤지다 보면은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 ..있는 경우도 있고
-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전에는 이게 평가..로 평가 했기때문에
-네
-아주 사람이 달라지는 평가가 있어요. 어떤 이게 훌륭한 사람이 참 요즘 평가로 가서 좀 못한 점도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네 그러니까 제일 처음에 연재했던게 개화백경인데요.
-네
-몇 회 정도나...
-그것이 만 한 일년 삼사개월 연재 했던거 같애요.
-네 개화백경이라는 그 타이틀 그대로 우리가 개화된 과정을 아마 그린걸로 생각이 되죠?
-네
-배경, 개화백경안의 범위는 어떻게 잡으셨던겁니까?
-개화..모든 문물
-네
-로 했습니다. 가령 교통..라던지 재판이라던지 무슨 뭐 모자라던지 옷이란다든지
-네
-모든 문물에 대해서 그 우리나라의 개화과정
-네
-그 시기는 에...그러니까 이제 고종...고종..서부터 일제 초기에 걸친
-네
-그동안에 있어서 모든 문물이 개화가 됨을 이제 그 각 문헌에서 혹은 인터뷰에서 외국 그 무렵사람 살아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네
-그렇게 이제 채집을 해서 이제 가려서 분류해서 냈죠.
-개화백경단 회가 기성인가요?
-아 인맥이였죠.
-아, 인맥.
-인맥은 조금 그 다른 오해를 하고 있는것 같애요.
-네
-근데 이건 타이틀이 갖는 책이나 연극테마의 타이틀이 갖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얘기를 실감한 건데요.
-네
-인맥하면은 뭐 다들 보학이나 족보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런 뭐 필요성에 의해서 보학이 거기 인용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네
-이를테면은 한국인의 그 사고방식 또는 가족, 가족적으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고방식이 가령 충무공인 경우는 ..이다.
-네
-덕수시 중에 충무공 계통 가문에서는 무..무언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
-네
-그리고 계속해서 무..계통을 잇는다. 이런것은 하나의 한국가족을 가족을 선명하고 한국인 사고 방식을 선명하는 하나의 예로써
-네
-족보가 들어갑니다.
-그 족보가 필요치 않겠어요? ..일 할라면은?
-네
-충무공의 조카가 누구고 몇대손이 뭐 훈련대장이고 운영대장이고 뭐 하고 이렇게 쭉 그래서 ...에서 족보를 쓰니까
-네
-독자들은 인상을 아 이게 족보물 연재물이다. 저는 족보를 이용했을 따름입니다. 한 예를 위해서
-네
-..를 설명하는데 그런 필요가 있을 때가 많지 않겠어요?
-네
-그래서 이게 제목도 운명이고 그렇게 해서 저는 거기에서 한국인의 사고방식 아까 말씀드린 이 한국인의 그 우리 역사가 예전의 생각은 그런 인물이라던지 상황이 그렇게 반드시 그렇게 매마르고 그런 것 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면 또 딴 면으로 파내고
-네
-전혀 ..없던 사람들이 ..에는 매일 한 50퍼센트 이상이 전혀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였습니다.
-네
-그 왜그러냐면 계급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네
-그 인간적으로 옛날 그 모락은 주자가 아니였어요? 근데 인제 현대는 인간이란 말이에요.
-네
-그런데서 이제 재평가 한겁니다. 그런데서 이제 그러니까..사람도 많이 되고 많이 그 주급이 되고 이런거 쓰면서 참 우리나라의 그 그 밑바닥에 있는 그 뭡니까 그 사조 같은것이 지금 어떻게 살아있는가를 많이 느꼈어요. 이를테면 이건 개화백경 쓸때 얘깁니다만은
-네
-그 이환용이 있지 않습니까?
-네
-이환용이가 그 궁중 그때 그...뭡니까 그 재상들이죠 일종에 지금 대신들 점심먹는 과정이 참 외국사람 기록에 아주 또 상세히 나와있어요.
-네
-그러니까 밥을 그 대신이 먹고 메이크..의 그 좀 주사급들이 먹을때까지 4시간이 걸린데요.
-네
-밥상 뭐 밥먹으로 ..에 나오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그럴정도로 외국 그 선교사가 써논게 있는데
-네
-그것에서 가장 그 점심의 ..
-네
-을 최초로 타파한 사람이 그때 총리 대신 이환용이였습니다. 그런 기록이 있어서 그 ...했어요. 그래서 그게 뭐 편지가 날라오고 이환용이를 좋게 썼다 그 얘깁니다.
-네
-뭐 제가 이씨 아닙니까? 같은 이씨가 아니냐는둥
-네
-그리고 이제 저 집에 들어갈적에 또 으슥해요. ....
-네
-그러고 이제 가면 투서도 해놓고 말이에요. 이환용이 두둔했다 그말이죠.
-그런데서 그 어려운점이 많이 있겠죠? 네. 오늘부터 이규태씨와 함께 그 동안에 취재 여하라던지 또 이 국학을 파헤치는 동안에 있었던 이모저모 얘기가 계속되겠습니다.
-금년도 서울시 문화상 수상자이신 조선일보사 사회부장 이규태씨를 모시고 이규형 아나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어보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내일 이 시간에 계속 되겠습니다.
(입력일 : 200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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