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에게 듣는다. 오늘도 국악고등학교 교장 성경린씨의 얘기를 이규형 아나운서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그 동안 이제 국악계 몸 바친 47년 동안에 기억에 남는 몇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다시 이제 거슬러 올라가서 어린 시절 얘기부터 좀 자세하게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네
-그.. 저 47년 전 그러니까 1926년 경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네.
-당시의 이제 시대배경이라든지 여러가지 지금 사람들이 ...할거 같애요.
-네. 그에 앞서서 조금 이제 저의 성장이랄까...
-네
-뭐 출생에 대해서 간단히 지금 말씀 드리고 넘어가야 할거 같습니다.
-네
-에..제가 태어나기는 1911년 이제 음력으로 9월 열 여들 해... 그 양력으로는 11월 9일이 되는 겁니다.
-네
-환산을 하니까 그래요.
-네
-그래 이제 예전에는 민족등본인지 그게 다 나이는 생년은 제대로 쓰지만은
-네
-그 생월 생일엔 그 음력으로 썼던거 같애요.
-하하
-그 이제 그래서 9월 18일이 음력으로 저의 생일인데 그러기때문에 월 저의 정년 이제 그 정한 날짜가 9월 18일. ..날 생일날에 이제 일반적 공무원들은 퇴직 정년 퇴직을 당하는겁니다.
-네
-제가 태어난 것이 이제 지금은 저쪽 그 마포 저쪽 제 2한강교 저쪽에 이제 그 밤섬이라고 있던 것을 기억 하시는가 모르겠어요.
-하하
-이제 그것이 뭐 이제 하수 홍수 관계로 뭐...침수도 되고 또 이렇게 그 윗물 아랫물의 그 소통에 이제 그 장애가 되고 지장이 된다고 이걸 폭파해서 없앴습니다.
-네
-제가 1911년 9월 음력으로 9월 18일 밤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포쪽..
-네 그래서 그 뭐 그러면 저희집 마포 였든가 ..밤섬이였던가 하면 그런건 아니고 저의 이제 그 아마 일가댁이 그쪽 어딘가 보는데 저 어머니께서 그쪽에 이제 나들이 던지 그렇게 갔다가 이제 저를 분만하신거 같애요.
-네
-이제 그 뒤 제가 자라면서부터는 쭉 어머님의 심칙이 무엇인고 하니 행여 너 밤섬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나를 누구한테 그..해선 안된다고
-하하 네
-그래 뭐가 어디서 태어났든 상관없을 듯 한데 그게 그런게 있는거 같애요. 나중에 제가 깨달으니까 세상에서 그 뱃사람 섬사람은 좀 천외하던 그런 풍조.
-네
-하는 그 관념이 없지 않았던거 같애요.
-네
-그러니깐 공연히 니가 자처해서 그 뭐 자처해서 뭐 밤섬 섬사람이요 그러면 너를 누가 뭘 어떻진 않지만 그 뭐 ..한다던지 할테니까 아예 그 그런거 내세우지 말아라. 이제 그런것을 제가 뭐 어디 그 이제 잡지 자서전적 수필에도 이제 처음 피로를 하고
-네
-제가 이제 이 방송을 통해서도 이제 말씀을 드리는데..어느 편으로 보면은 돌아가신 어머니께 대해 지극히 그 불효막심한 일이지만 그 있는 일을 또 감출것도 아니지 않는가.
-하하하
-그런 생각을 하는겁니다. 그래 이제 제가 태어났는데 아버님 어머님 사이에 이제 그 5남매중 제가 넷 째 그러니깐 위로 형님이 두 분 그러고 누님이 한 분.
-네
-그러고 제가 넷째 그러고 다음으로 이제 그 누이동생 매자 하나. 이제 이렇게 5남매인데 그 저희 아버님께서 집을 돌보지 않는 좀 방랑벽 있어서 요새말로 하면 이제 듣기가 좋고 뭐 이름이 좋지만 천하주윤데 이제 그 천하주유의 그 분에 처자의 고생이 어떻하다고 하는것은 우리가 또 상상하고도 남는단 말이죠?
-네
-그것도 항상이나 있어서 집에 걱정이 없으면 그..식의 걱정이 없으면 괜찮은데 그렇지도 못한 그런 집이 가장이 집을 돌아보지 않고 처자를 돌보지 않고 그런다고 할거 같으면 이제 그러니깐 제 아버님은 인천 전단...거기서 이제 객사를 하신겁니다.
-네
-네 제가 다섯 살 때.
-네
-이제 그렇게 되니까는 이제 제 어머님께서는 제 주위 그 어린 올망졸망한 어린 5남매를 이끌고 이 친정에 저의 외가에 이제 기탁하는 그런 신세가 된겁니다.
-네
-제가 이제 그 성장생성은 외가에서 잔뼈가 굵은거에요.
-네
-또 외가하면은 뭐 그럼 외가가 그런데로 부유했느냐. 또 그것도 아닌거고 또 외가도 넉넉치 못한데 참 그 외조부님. 또 그 외숙부 외숙모님이 참 그 극진하게 도무지 그 제가 어려서 자라면서도 조금도 남의 집에게 기색하는 무슨 그래서 눈칫밥 먹었다고 하는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는
-외가는 어디있습니까?
-외가가 이제 처음엔 안동에다가 계동 원서동 그러니까 뭐 이제 종로구 지금 비원 근처가 되는 겁니다.
-네
-제가 이제 외조부님의 그 감하를 어려서부터 죽 이제 그 밑에 그 슬하에서 이제 자라는데 그 외조부님이 아주 독실하신 기독교 신자야. 이분이
-네
-음 그래서 늘 성경 찬송을 그 입에서 내시고 그러면서도 예전 고전 소설을 이 양반이 때로 그 음독을 하시는데 그 지금도 기억하는것은 한..이상엽 선생의 이제 그 해왕성이라고 하는건데 이게 우리말로 해왕성이지만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번역입니다.
-네
-그것이 기막히게 되있거든. 상해를 이제 무대로 가져오고 이제 선문이랄까 이제 중국 그 무슨 시네 혁명인지 뭐 이런것을 이제 시대를 배경으로 해가지고 해서 저도 그 많이 읽었습니다만은 이제 이런것을 운으로 제가 그 문학의 그 무슨 ...눈 뜬것이 그런 그 할아버님의 그런 그 환경이던지 그분의 그러한 생활에서 뭐 싹트지 않았는가.
-네
-하는것을 이제 생각하는거죠.
-네
-그러면 그 밤섬은 지금은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제2 한강교 그 좌 안이 되는 거에요.
-네
-...왼쪽에
-네 그때도 민가가 많았습니까?
-민가가 그... 없지 않았죠.
-60년 전이죠?
-네 그러니깐 네 그땐 뭐 ....했겠지만 그 뒤로 그 뭐 공장도 서고 하는데 그것을 다 지금은...그래서 제가 그 폭파하기 전날 그 전날인지 전전 날 제가 한 번 나가서 그 대륙에서 그 내려가 ...봤습니다.
-네
-그 저기가 내가 난 그 고장이라 하고 이제 그렇게 보고 저것이 내일이면은 자취도 없이 이제 그 없어진다는데 하고 보니까 뭔지 또 좀 이상한 감회가 또 없지도 않은가 했어요.
-네 그 폭파 시켰던 밤섬 ..
-저의 그 고향
-네 그러면은 이제 그 외가댁에서 자라시면서 그것과는 무슨 연관이 있겠습니까? ....
-그렇죠, 그게 제가 그래서 이제 그 소학교를 이제 다니고 이제 뭐 한건데 어쨌든 그 한미....가정환경이 그저 어쩔수없이 그 골목으로 그 골목으로 그 이끌어 간게 아닌가.
-네
-그런것을 생각하는거죠.
-네 그러니까 보통학교는 어떻게...
-네 보통학교가 계동이라고 제가 계동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계동인거 같으면 가까운 제동 보통학교가 있을거고 ..학교. 또 좀 내려오면 그 중등보통학교 그 두군데가 제일 가깝단말이죠.
-네
-그럼 거기 어디든지 입학을 하고 거길 다녔어야 할텐데 저는 좀 떨어진데를 다녔습니다. 그게 어딘고 하니 인사동. 숭동 예배당이 지금도 있을거예요. 숭동교회.
-네
-그 ...지하에 그 창고로 썼던거 같은 이제 건물인데 그 건물에는 이제 그런 그 구석인데 그걸이제 칸을 들이고 교실이라고 해서 이르기를 이제 숭동기독학교. 뭐 이제 기독학교죠.
-네
-그 기독교 기독학교. 이제 거기..된 기독학교인데 지금은 그 없어져서 그 지금 뭐 그 학교는 없어진 학교고 이제 거기를 당겼던 거죠. 그게
-사립학교 인가요?
-사립학교죠.
-네
-그 뭐 숭동예배장이라 그럴텐데...그 왜 거기를 다니게 됐느냐. 국립학교는 국립보통학교는 무슨 호적초본이며 호적등본이 구비해야 되는거. .....말이죠.
-네
-근데 저는 아직 그 뭐 지금 말씀드린 이제 그런 그 형식으로 하기 때문에 아직 그 호적등본 호적초본이 구비하지가 못해서 그 아마 국립학교를 들어갈래도 그게 없으니깐 거기서 아마 구비서류의 결여로 해서 아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거 같애요.
-네
-그 들어갈 자격이 없던 모양이죠.
-네
-뭐 그런거 뭐 갖추지 않아도 될수 있는 학교가 어딘고 하니 인사동의 이제 숭동기독학교 비교적 ..에서 좀 내려오긴 하지만 이제 거길 당겼습니다.
-네
-근데 그 국립보통학교 보단 수업료도 좀 비싸고
-네
-또 학교도 그 이제 지금 생각하는게 그 사립학교라고 하는것은 그 사립국민학교라고 하는것은 아주 부유층에 그 특별한 학교로 치고 오히려 국립학교가 그 이제 낫게 이렇게 된 그런관계에 있지만은 그 당시는 사립학교는 어디나 좀 떨어지않을까 그렇게 제가 그 기억하는 거에요.
-네 형님들은 어떻게...
-형님들이 이제 형님들이 그 학교라고 ...서지 못하고 벌써 이제 제가 학교 당기고 할때는 그저 아주 가서 먹고 무슨 기술을 배우고 하는데 들어가니깐 자기 입구입이나 했지 집에 뭐를 경제를 도울 그런 형편이 못된 분이죠.
-네
-그래서 제가 이제 학교 다니면서도 이제 수업료가 이제 매달 ..하고 지금도 그 돈이 ....것은 언젠가 한번 그 형에게 큰 형에게 그 이제 뭐 수업료를 가져가야 된다고 수업료를 이제 학교에서 내라고 그러는데 그걸 얘기 하니깐 주지도 않으면서 그러니까 아마 그 제가 울고 뭘하고 심술을 부렸던거 같애요.
-네
-그러니깐 몹시 얻어맞던 없어서 못..는데 가진 ..인제 그런것을 생각하고 또 하나는 소학교 6년 동안 그 학교에서는 어쩐지 수학여행 뭘 그렇게 다녀요 소학교가.
-네
-뭐 원산도 가고 평양도 가고 뭘 하는데 수학여행은 말할것도 없고
-네
-뭐 소풍도 뭐 제대로 당긴것 같지가 않아요.
-네
-역시 그 학제는 그 6년이었던 모양이죠?
-6년이죠 6년.
-네
-국립보통학교 뭐 보통학교가 6년 이죠.
-네 그러니까 저 이 그 학교를 마치시면서 이왕...그
-이제 그렇게 돼는거죠.
-네
-소학교를 이제 그래도 참 그 대수롭지도 않은건데 신고해서 이제 소학교를 마치는 겁니다.
-네
-그럼 이제 소학교를 마쳤는데 그때 중학교가 상급학교가 고등보통학교인데 지금 대학들하고 그 보다도 중..이상의 그런그 형세....만
-네
-그 들어갈수 있기때문에 고등보통학교에 진학이라는 것은 저마다 못한겁니다.
-네 이 고생 고생 끝에 이제 보통학교를 마치시는 얘기로 오늘 끝맺겠습니다.
-오늘도 국악고등학교 교장 성경린 씨의 얘기를 이규형 아나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내일 이 시간 다시 뵙겠습니다.
(입력일 : 200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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