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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성경린(전 국립 국악원장) - 제2회 전시하의 국립국악원 개원
성경린(전 국립 국악원장)
제2회 전시하의 국립국악원 개원
1972.09.07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오늘도 국악고등학교 교장 성경린 씨의 얘기를 이규형 아나운서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공립국악 원장으로 계시다가 이제 고등학교 교장 하시게...

-네

-직함이 바뀌어서 이제 생소 합니다만은 오늘부터 그렇게 소개를 드리고 있습니다.

-네

-이제 47년 전 국악에 몸바치시면서 기억에 남는 큰 일을 대충 들추고 있는데요.

-네

-그게 이제 어제도 말씀 드리다 말았는데 이제 광복 후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에 이제 그 아악고 간판을 전달하는 이제 이왕제 이왕가였던 것을 이제 구왕고...그렇게 고쳐 간판을 달았습니다.

-구원고...

-구왕고

-네

-이제 그 뒤에는 이제 또 구황식이라고도 그랬지만 그 황식이면 터놓고 구왕고 입문 뭐...낫고 그런 생각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또 구왕실도 부족해서 또 구황실이라.....그렇게도 됐어요.

-네

-저 그 왕과 황이 또 얼마나 그 지체가 높은지 잘 모르지만은 이 그랬는데 글쎄 그런대로 낸 아악고인데 근데 그 뒤가 조금 곤고한거 같애요.

-네

-뭐 우리기대 든지...뭐 희망에 뭐 들뜨고 그랬었는데 그 8.15광복 후가 조금은 그 뭐 아악고에서 그렇게 아주 그 긍적적으로 그 받아들이기만도 어렵게 그 뭐 돌아가는것이 형편이 무슨 모든 정.....가 그래도 뭐 참고 뭐 기다리는 수 밖에 없죠. 참 그렇군요 그 뒤 그 이듬해던가 그 기억 하시겠는지 모르지만 제가 이제 그 뭐 KBS 라디오 방송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이제 최초로 참 뭐 국악감상 인제...

-네

-국악회에서 듣는것이 그런대로 그 뭐 청취자의 그래도 그 뭐 그..뭐 인기가 있었다고

-네 그러니깐

-뭐 관심 뭐 해서 그러고 그 국악 보급이던지 그 이해의 그때 모든것이 그때 그 뭐 기억이 생생합니다.

-네

-아무래도 이제 그게 국악원 개원 개창에 이입이 아마 47년 또 그건 저의 생애뿐 아니라 뭐 전 국악사에 있어서 아주 그 높이 그 참 크게 기록될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네

-이제 아악고를 제가 그 제헌국회에다가 이제 그 청혼을 해서 제헌국회에서 그 구경하러

-네

-그 이제 경영할 것은 정부에다가 이제 건의를 하고 그래서 정부에서 이제 그것이 참 좋겠다 옳겠다 이롭다 해서 이제 국악원을 맨들어 주는 겁니다. 이제

-네

-그런데 그만 그 참 그 일...국악원을 이제 서둘러서 이제 이룩하려는 중도 미만에 그만 6.25사변이

-네

-터지는 겁니다.

-네 그러니깐 모든 일이 좌절이 되고

-네

-이제 그러고 이제 9.18이 돼서 다시 뭐 제 준비 뭐 서류 인사관계 구비서류 이러다가 모으다가 또 1.4후퇴의 비운을 당하게 됩니다.

-네

-이제 그래서 저는 이제 그 문교부에서 문교부 공무원들...또 그 가족들을 그 이제 남하에 부산으로 피난 시키는 배가 인천에서 출발해서 이제 12월 말 1956년 12월 하순 20일 경 그 이제 인천을 떠나서 서해 바다로 이렇게 내려갑니다. 저는 이제 그 어린애 큰 아이 하나만 손 붙잡고 이제 이제 남하 피난길에 이제 배 위에서 둥둥 떠내려 가는데 이제 그러는 그 해 12월 25일 자로
국립국악원인사..에 이제 제가 국악원 학사장이 됐다는데 이제 그것은 나중에 안 일이지 그때는 몰랐죠 뭐 배후에서 뭐 그..저..그때 신문이 뭐 그 나올리 없고 제대로 나올리 없고 이제 다시 그 부산에 1951년 그 이제 부산에 상륙해서 전해들으니까는 국립국악원 이제 간부직 인사 세 사람이 발령 됐는데 그 이제 악사장직에 손모가 이제 임명을 보았더라.

-네

-그러는 거에요. 그래 국악원은 이제 생기지도 않았지만은 인사는 발령이 난거에요.

-음...

-12월 25일 자로 제가...

-네

-제 외에 간부로써...그 다음 이제 그 이듬해 51년 4월 10일에 국립국악원이 이제 개창이 됩니다.

-네

-그래서 그래 이제 남둑선용두산 밑인데 거기 그 저 뭐 동광국민학교 분교장이라 그래요.

-네

-그 인제 뭐 나무로 지은 뭐 목조의 징검물 이제 거기에 이제 그 한층 한칸을 얻어서 이제 간판을 붙이고 남하한 이제 동료들 십여 명에게 이제 국악사라고 하는 그 발령을 하고 해서 이제 그 개원된 것이 개창된 것이 이제 국립국악원인데

-네

-제가 그 뭐 세세한 얘기는 앞으로 더 인제 그 상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지금 돌이키는 것은 그 황황한 전..하에서 국립국악원 인사발령 국립국악원의 개원이 어떻게 그게 그.. 가게 돼었는냐.

-네

-하는겁니다. 그게 네?

-네 네

-그 평화시에도 무슨 기구하나 새로운 기구 하나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것은 아마 그 청취자 여러분 모두들 아실거에요.

-네

-그런데 그 총칼 맞데우고 그 피 비린내 나는 그 전시하 그때에 국립국악원 개원 이라고 하는 것이 그게 감격스럽고 그게 참 그...으..황당하지 않고 이세상에 더 황당하고 감격스러운 일이 제가 거기에 몸담았고 이 길에 종사하는데서만이 아니라 그 보담 더 놀라운 일이 더 위대한 일이 어딨겠는가 그런거죠.

-네

-그 뒤에 뭐 이제 앞으로 더 잘만들어 주시고 뭘 할테지만 그 때에 그 일 어려운 때에 돌봐주는것 같은 일. 이제 그것이 더 기억에 남는 일 아닙니까?

-네

-네 이제 그 특히 참 국악원이 1951년 4월 남덕구산에서 그렇게 그 개창 돼었다는거.

-네

-근데 이것은 참 그 죽어도 잊지 못할것 같고 또 그 참 국악사에 기리 남을

-네

-뭐 그런 그 참 역사의 그 장이 아니겠느냐.

-네

-이제 이런것이 때문에...

-우리나라 악을 외국에도 소개를 여러차례 하셨죠?

-네 64년 이제 제 1차 도일....저희 ..국립국악원에서 제 2차로 66년에 제 2차 두어일.....공연 67년엔 자유중국 대만 공연 또 그 70년에는 월남 이제 주로 그때는 이제 그 국군장병을 위문하기 위한 공연이였지만은 이제 그쪽의 그 국민에게도 소개할 기회가 있었고 이제 그 내일 모레가 벌써 이제 ....다만은 이제 이달 하순 스무....날 저희가 이제 그 아악 연주단이라고 하는 이제 한국아악연주단이라고 하는 인제 그 명칭으로 약 2개월 예정으로

-네

-미국 그리고 캐나다 등지를 약 2개월 간 그 이제 연주횐가...그..오를겁니다.

-아 소개하기 위해서...

-네 소개하기 위해서

-곧 외국에 떠나시게 되겠습니다.

-네 제가 그렇게 됩니다.

-그동안 그러니까 국악원장은 얼마나 하신 샘인가요?

-네 이제 그 악사장으로 51년 12월에 이제 그 제가 임명돼서 약 10년 그리고 원장직에 승인된것은 61년 12월 날짜도 그 모두 국악원 인사가 모두 섣달이에요.

-네

-저편..그 처음 국악원 악사장직에는 12월 25일 자.

-네

-그리고 원장직에는 12월 26일 자 그게 12월 금..가 그 성탄절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무척 그 은퇴 ...는 그런 그 좋은 시절이다 그런 것을 제가 감명하고 있습니다.

-네 국악원장으로 계시면서 뭐 그 동안 여러가지 많이 개혁을 해놓으신 샘인데요, 국악악기도 좀 많이 변모를 가져오지 않습니까?

-네 제가 이제 64년에 그 우리나라 그 전례하는 악기를 개량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개량 국악기 연구회 연구회를 둬서

-네

-그 이바닥에 그 권위이신 소...학장 이박사라던지 ..교수 성균관대 학교의 그 이공대학 장....그 박흥수 박사 먼저 이런분들을 이제 그 제가 위원으로 받들고 악기개량 연구를 시도 했습니다.

-네

-그래서 그 좋은 성과를 거두었어요. 근데 중간 결과랄까 성과를 가지고 67년 그리고 69년 도에 그 개량국악기 전시회를 가져서

-네

-그 일반에게 저희가 이제 또 그 자랑도 하고 소개도 했습니다. 그 일반의 반응도 무척 좋았습니다.

-네 헤헤

-그 아직 이제 완성이다 이제 결정적으로 이제 이만하면 개량국악기가 완성됐습니다 하는 단계는 아직도 조금은 이르고 이제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그 많은 예산이랄까 제정을 가지고 아주 많이 시험제작을 해야 하는 거에요.

-네

-근데 그것을 못하니까는 안타깝단 말이죠, 이것이? 으... 이제 그런것이 과학화라든지 그 정밀한 그거는그 기계 주로 우리가 하는것은 거문고 가야금 따위에 이제 음량을 증대 하는 일인데 이제 그것이
생각처럼 음량이 그렇게 불지 않는단 말입니다.

-네

-네? 이제 그러면 납바로 양약기와 같이 그걸 취특하면 되는데 그럼 양악기지 한국 악기 국악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네

-한국악기의 본질이던지 특색이던지 음질 음색을 그대로 두면서 얼마의 음량를 증대하는 일이 참 이게 생각처럼...

-계속 연구를.....

-네네 계속 연구를 네 그런것이 있어요.

-그리고 이 양악보에다가 이제 옮기는 작업 같은것도

-네

-전통음악을 양악보 선보에 옮겨 놀거 같으면은 이것이 이제 참 언제까지든지 이 지금 같으면은 그저 우리 악보 ..악보에서 그저 우리 배운 사람들이나 보지만

-네

-이건 아주 세계 문자입니다. 그건 이제 그 양악 하는 이들 이제 그 누구든지 또 뭐 외국사람도 그렇기 위해서 저희가 전통음악 전부를 전곡을 양악 오선보에 옮기는 그래서 악보에 펴내는 일을 제가 그 시작해서 68년 부터 이제 저의 계획이 이제 스무책 스무권만 가지면

-네

-전통음악 한국전통음악 전부를 다 옮겨서 펴내게 됩니다.

-네

-근데 이제까지 한 그 진도랄까가 약 절반 지금까지 약 여덟책 여덟집이 나왔고 그러고 금년에 그 두 집 그 이제 제 8, 제 9집 10집입니다. 이제 두 책이 나오고 그러면 절반이 나오는데 앞으로 이제 그 열책 열권 만 더 나오면 우리나라에 전례하는 모든 음악이

-네

-뭐 정악이라고 하고 민속악이라고 하고 전부가 다 수록 되어서 참 뭐 그 우리나라 음악이 뭐가 우수하냐 뭐가 특색이냐 뭐가 그 뭐 독창성이라고 하느냐 으? 하는 그 특색이라는 것도 악보로 정리 돼야 합니다. 말로 암만 우리음악이 훌륭하다 뭐 반만년의 역사와 전통이다 우...하다 음악이 예술이다 해도 진정 그 가락은 선율은 그 박자는 그 또 리듬은

-네

-그밖의 여러가지를 악보로 해 그야말로 일목요연 또 이제 그것을 가지고 또 이제 학자든지 이제 그 교수들이 또 분석도 하고 검토도 하고

-네

-연구도 하고 이제 하는 걸로 아마 이것의 완간은 그 이제 참 또 이 또한 그 한국음악 발전이던지 이것에 큰 중요한 구실을 다하지 않나

-네

-근데 이것도 예산만 그 대줄거 같으면 아마 내년 일년에도 열책이 다 나올거에요.

-네 그 밖에 무슨 판소리를 완창을 시도 하셨다든지 여러가지 이제 이것저것 출판 관계도 있겠습니다만

-네네

-내일 얘기를 듣겠습니다.

-오늘도 국악고등학교 교장 성경린씨의 얘기를 이규형 안나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입력일 : 200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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