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에게 듣는다 오늘도 판소리 춘향가로 인간 문화제 지정을 받은 김소희 씨의 얘기 들어봅니다. 대담엔 이규형 아나운서 입니다.
-김소희 씨 고향이 전라북도 고창이라고 말씀 하셨죠?
-네
-요즘에 고향에 가보셨습니까?
-최근에 지난 주인가 9월 19일날...
-네
-이 우리 고향에서 국악원이 처음 창설 됐어요.
-네
-소위 그 판소리 발상지라고 할만한 그런데서 너무나 늦은감이 있지만 고향에서 그런걸 또 ..하고 그랬다 그래서 제가 갔었습니다.
-네
-갔더니 고향어른들이 굉장히 반가워하고 참 제 자신이 생각할적에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 이렇게 느낍니다만 고향 사람들은 한 자랑거리로 생각을 하시는가 보죠?
-고향만이 아니죠.
-네 하하
-제 고장에서 난 국보가 왔다고 그래서
-그렇죠.
-굉장히 반가워 하시고 군수가 감사장까지 주시고 제가 그 극장 날짜를 잡아 놨어요.
-네
-그 개원식으로 해서...제가 그러니깐 3회를 했는데 한번에 한 시간 반씩 시간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네 그 어떻게 국가..는 만들으셨나요?
-이...
-지방 유지들이...
-네 그 지방에 문화원이 있어요.
-네
-문화원에 그 원장 되시는 이가 아주 젊습니다.
-네
-이기화 씨라고. 그분이 이 문화사업에 굉장히 발을 벗고 나섰고 또 이 상록수 상을 받으신 분이거든요?
-네
-그래서 우리 고창지방에 그 유지들과 또 여러분이 그 국악애호가들
-네
-마음을 합심해서 이런게 하나 꼭 있어야 겠다 해가지고 처음에는 한 십여명 되던게 지금은 사, 오십명으로 늘어났데요.
-네
-북도 배우고 시조도 하고 그래서 저희 동생을 처음 이 강습선생으로 천거를 해서 갔다가 왔어요.
-아주 흐뭇한 얘깁니다.
-네
-고향에 나신 집이 지금도 있습니까?
-있어요.
-가보셨어요?
-가보진 않았지만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거기 통 못가셨군요?
-네
-네 그러니까 여덟살 까진 뭐 거기 계셨다고 그러셨는데요?
-네
-고향 얘길 좀 해보시죠.
-저의 고향은 제가 낳길 흥덕서 났는데
-네
-그 조그마난 초원이나마 아주 ..도 많고요.
-네
-부호촌이죠.
-네
-부자들이 많이 살고 이제 예전때 얘긴데...이제 지주들이 참 큰 황소들도 많고 또 전부 참 어려서 본 기억입니다만 그 타작가락을 굉장히 ..놓고 평화스러운 한 마을이었어요.
-고창읍에서 멀리 들어가나요?
-한 20리.
-네
-고창 정읍에서 내리면은 정읍서는 40린가 그렇게 돼고 흥덕서 고창까지가 20리 좀 넘던가 그래서 한 60리. 정읍에서 60 여리 됩니다.
-네 아버지는 농사 지으시던...
-네 농사를 짓다가 또 율을 좋아해서
-네
-또 율도 했어요.
-네
-전압기를 좋아했는데
-네
- 에..제 그 율을 좋아한 나머지 또 중간에 말하자면 우리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 벤지 일곱달인가 만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네
-그래서 유복자나 다름없이 이 과부살림으로 한 ..기나 가졌었는데...
-네
-아버지가 들어서 다 없앴어요.
-네
-없애서 제가 난 저를 난 집이 지금도 이 꿈속 끝이 상상이 됩니다만 굉장히 대지가 넓고 이 집이 컸어요.
-네
-그래서 퍽 그 행복감을 느끼고 자랐는데 그만 그 무슨 행렬사라는거 있잖아요?
-네
-그걸 꾸며가지고 돌아도 댕기고 말하자면 남봉꾼 비슷하니 그렇게 세상을 보냈죠.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음....도 하고
-음률 하시고 또 뭐 술 같은것도 좋아하시고 ...
-술 보다도 저런 여러 여러 쫒아댕기고 사냥하러 댕기고
-네
-그런걸 좋아해서
-네
-이 행렬사라는게 그저 포장들고 방방곡곡에 돌아댕기면서 연극비슷하니
-네
-이제 그런걸 하는데 뒷돈 대고 그러다가
-하하
-망해서 사람 수십명 데리고 집에서 밥 먹이고 뭐 그런짓 하다가
-그 흥행이 잘 안됐다는 얘기군요.
-예 그렇죠. 망해가지구서는 결국 그냥 몸 버리고
-네
-예팽댕이가 돼버렸어요.
-저런...
-하하
-그러니까 뭐 그 후에 고생스러운 얘기는 아마 이루 말 할수가 없겠습니다.
-그 뭐 집안은 탕진 되버리고 불행이 그때부터 왔죠.
-네 그럼 형제는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5남매 입니다.
-네 김소희 씨께서 몇 째...
-맏딸이에요.
-네
-제 위에 오빠가 있었는데
-네
-6.25때 납치 당해서 생사를 모릅니다.
-네 그 밑으론 어떻게 되나요?
-그 밑에는 바로 경희라고
-네
-김경희 라고 역시 무대 생활 하던 동생이 있구요.
-네 네 그 밑에 또 동생은 출가했고
-네
-또 그 밑에 남동..아 여동생이 역시 무대생활 하다가 또 출가해서 살고 막내동생이 사내인데 지금 대학 나와서 모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네
-이를테면 그 연예가족이시겠습니다?
-그렇죠.
-형제들이. 하하 그러니까 여덟살 되면서 이제 고향을 떠나오셨군요?
-네
-네
-그 고향을 떠나서 이제 어떻게 됐습니까?
-광주로 갔어요.
-광주요?
-네
-광주로 가가지고 저 형이 하나 있었습니다.
-네
-어릴때부터 길러낸 형이 있었는데
-네
-그 형이 출가를 해서 광주에 가 살고 있어서 그 형을 찾아갔죠.
-네
-그 형 집에 가서 있는 동안에 이화중선 씨가 그 포장 ...치고 한군데 들어오면은 한 일주일 열흘 이렇게 공연하는데
-아니, 그럼 가족이 전부 이사한게 아니구요?
-네 저만
-아 혼자 가셨다는 얘기군요?
-네 언니댁에
-네 그 집에 가서 이제 학교 다니던 것도 이제 중단하게 되니까
-네
-광주에 가서 학교나 좀 다니고 그럴까 하고...이제 그 언니는 잘 살았어요.
-네
-이제 보내라고 해서 제가 어릴때에 그 조금 이 영리하다고 할까
-네
-기억력도 좋고 집안에서 뭘 잃어버리면 애기때부터 저를 불러댔어요.
-네
-너 그거 못봤느냐면 반드시 그걸 건성으로 보지 않고 찾아내주고 하니까
-네
-이게 참 그냥 내버려두기 아깝다 그래서 그럼 너는 언니집에 가서 공부를 해라. 그래서 언니가 책임을 맡아서 가르키기로 하고 광주를 내려갔던 거에요.
-네
-근데 화중선 씨 그 노래를 듣고는 금방 그냥 흉내를 냈죠.
-네
-그래서 이제 여러날 하니깐 그 포장 뒤에서 노상 그 소리를 듣고 콧노래처럼 흥얼거려보고 그러니까 그 하루 이틀 아니고 날마다 보니까 그 포장직이라는거 바깥에서 빙빙 도는 남자들 있잖아요?
-네
-그걸 들켰어요.
-네 하하
-그래서 이 얘가 참 이상한 그 콧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화중선씨한테 직접가서 문초 받듯이 니가 뭐 뭔일로 날마다 이렇게 와서 이러느냐 . 그래서 말 대답도 잘 못하고 이러니까 니가 내 노래 숭을 냈다니 한번 해봐라.
-네
그래서 그 그 양반 노래가 이 리코트도 있습니다만은 저 심청전에서 이 추월은 만정하고 산호줄에 ..혀 있고 그런 노래가 있어요.
-네
-그게 이제 아버지 한테 심청이가 황후가 된 다음에 기러기를 보고 편지를 써서
-네
-아버지 한테 전해달라는 장면이에요. 그 노래가 그렇게 잘도 하셨지만 좋았어요.
-네
-그래서 숭내를 내니깐 놀래잖아요?
-네
-그래서 너는 소질이 있으니 좋은 선생님을 내가 정해주마.
-네
-그때 마침 또 송완갑 선생님이 마침 광주에 와서 계셨거든요?
-네
-그래서 거기 가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러면 그 그 당시에는 극장이 없었나요? 포장을 쳐놓고. 이 포장을 쳐놓고 한다는 것이 어떤 겁니까? 그때...
-포장을 치고 한다는게요, 이 요새 같으면 연극을 제대로 일막에서 부터 쭉 하지만은
-네
-그때는 통합으로 이 뭐라 그럴까 쇼 비슷합니다.
-네
-처음에 민요.
-네
-또 무용도 있고
-네
-그런 작가들을 한 다음에 이제 춘향전에서 한 토막을 해요.
-네
-가서 사랑가를 한토막 한다던가 이몽룡이와 또 춘향모가 만난다는 어사 되어가지고 와서
-네
-그런 대목을 한다던가 그런 토막극을 조금 씩 조금 씩 흥부전에서도 뛰우고 심청전에서도 뛰우고 그렇게 해서 순회를 많이 했죠.
-그때 구경꾼들이 꽤 있습니까?
-꽤가 아니죠. 이 화중선 일행 하면 뭐 통행금지 시간도 없겄다. 밤 한시 두시도 좋고
-자꾸 앙콜을 하는군요?
-한 없이. 네 한 없이 미치죠. 뭐 그냥 열광적이죠.
-네 그 당싱 입장료가 생각이 나십니까?
-입장료가 뭐 10전 20전.
-10전 네...
-그 화중선씨는 좀 비싸서...
-네
-가...을 지어도 좀 특이하게 지었어요.
-네
-그 후 제가 생각이고 들은 얘긴데요, 좀 사람이 마음대로 드나들수 없는 곳과
-네
-또 사람들이 밖에서 지키는 거
-네
-그 다 인건비 있으니까 한 앞에 30전.
-네
-50전 그렇게 받았다나봐요.
-그 화중선생이라 그러면 그 어떤 특기입니까?
-그 양반이 그 창이
-네
-유창합니다.
-네
-성대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레코드를 지금 가지고 계세요?
-네 있어요.
-언제 좀 가져오셔서 청취자들 한테 좀...
-옛날 판이 됐어요.
-뭐 그런데로 조금만 들어보면 아마 청취자들한테 도움이 될거 같군요.
-네
-그러면 그 화중선생 한테 노래를 불러본적이 그때가 몇살 때 십니까?
-한 그러니깐 아홉살이나 됐나요?
-아홉살 이요?
-네
-네 그 이제 그 선생이 들어보시고 에 앞으로 좀 재능이 있으니까 송완갑 선생을 추천해 주셨군요?
-네 그러면서 그때 그랬어요. 이 애는 선생님 한테 맡겨도
-네
-나중에 제가 데려갈테니깐 그걸 아주 절충을 예상을 하고 가르키라 그랬어요.
-네
-그래서 찾아가셨나요?
-그럼은요.
-송완갑 선생을
-찾아갔죠.
-네
-찾아가서 그 송완갑 선생님한테 처음 스타트를 했는데 에...
-그 양반이 몇 살 쯤 돼셨습니까? 그 당시.
-송 선생님이요?
-네
-한 사십...한 사십 오십?
-네 한참 그 지금도 송완갑 선생의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그분은 그 특기가 어떤것입니까? 송 선생님...
-송 선생 특기는 물론 창을 잘하시니까 이제 국창으로 나라에서 벼슬까지 내려서 감찰이라 그럽니다. 송감찰
-네
-네 그런데 그 분 창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이한 것은 고음이면서 아주 그냥 그 허스키 목이 나오면서도 고음이고
-네
-단단하죠.
-네
-송선생 그 레코드는 안가지고 계시요?
-있어요.
-그것도 언제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소개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송선생을 찾아가 뵌것으로 오늘 얘긴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네
-오늘도 판소리 춘향가로 인간 문화제 지정을 받은 김소희 씨 얘기를 이규형 아나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입력일 : 20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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