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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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고영호 - 제2회 일본에서의 생활
고영호
제2회 일본에서의 생활
1971.04.25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고영호 씨 지난 토요일날 이제 일본 거쳐서 이제 북한 괴뢰..북송선을 타고 갔다가 밀봉 교육을 받은 다음에 다시 일본에 재입국 한 얘길 하다가 이제 말았습니다만

-예

-그러니까 일본으로 처음 들어가신게 54년도 입니까?

-54년도 9월달 입니다.

-네 그러니까 휴전 직 후...

-네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 일년 후 입니다.

-네 전에 이제 히로시마에 내리셨는데 히로시마에서 이제 가진 돈도 없고 그래서 소지품 팔았단 말씀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시계하고 이 반지를 팔아가지구서 동경에 갈 여비를 마련해가지구서

-네

-히로시마 역에서 열차로서 동경을 향했습니다.

-네 히로시마에 간것이 ...그 일본에서 소문 항공학교에 다니셨고 그러니까 몇 년 만에 들어가신 셈인가요? 일본에

-에 11년 만 이죠.

-11년 만에...

-예

-그 후 이제 전쟁도 겪었고 히로시마가 이제 원자폭탄 받은 다음에 이제 많이 재건이 된 뒤에겠죠?

-예 그 당시에 항상 건소 도상입디다.

-네

-그리고 이 건물도 현대식으로 여러...여기저기 짓고 있고

-네

-그리고 도로도 폭이 상당히 넓게 그 건설중에 있는 그런 시기였었습니다.

-네 히로시마에 일제시대 때도 가보셨나요?

-예 갔뎄죠.

-네

-뭐 자세한건 모릅니다만은..그래서 모습이야 알 정도였었죠.

-네

-이 히로시마에서 이제 기차를 타시고

-네 동경으로 가가지고서 처음에 뭐 저는 아는데도 동서남북도 모를 정도라고 할까요?

-네

-뭐 동경도 상당히 많이 변했드만요?

-네

-가니깐. 그래 동경서 우선 아는사람을 찾기위해서 여기저기 좀 알아봤습니다만

-네

-아는 ..이 없고 그래 곧 이 여기저기 구인모집광고가 많이 붙어있어요?

-네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습디다.

-네

-에 우선 거기서 제일 가까운데가 제 자신이... 마..도피라고나 할까 그런 상태고 해서 이 제일 무난한데가 이 노동하는데 같다 해가지고 노동하는걸 들어갔습니다.

-네 그 시계를 팔고 소지품 팔았는데 기차를 타시고 좀 용돈이 남았습니까?

-예 뭐 그 당시 가가지고 뭐 판것 가지구서 근 일 개월은 지낼수 있지 않았는가 싶었어요.

-네 돈 같은건 못가져 가신거죠?

-예 뭐 전혀 소지품이 없었습니다.

-네

-동경 처음엔 어디서 묵으시고 그랬나요?

-네 그러니까 그날로 이 노동하는걸 들어갔어요.

-네

-동경에 도착해가지구서 그날 저녁에 들어가서 그리고 거기서 한 일주일 지내다가 뭐 도저히 거기서 견뎌 낼 수가 없어요.

-네

-뭐 처음 그런 노동을 하고 하니깐 뭐 힘이 힘겨워 가지고 할수없어서 그날 거기에 같이 있는 사람들한테도 상의를 했죠. 먼저 상의하니깐 뭐 어디든가 지금 취직자리는 얼마든지 있는데 에 뭐 갈생각이 있으면은

-네

-소개도 해주겠다 이런 얘기가 있어가지고 더욱이 그 당시 천리..천리교요.

-네

-이 신흥 종교인데 이 이것이 상당히 그 유포되고 있어가지고 그거 소개로써..그 노동판에도 그 사람들 많이 있었어요. 그 종교단체에 들어가 있는

-천리교.

-네 네

-그 사람들 소개로써 이 동경 그 아즈마 ..라고 하는데 있습니다. 거기.

-네

-거기 철공장에 들어갔습니다.

-네

-거기서 약 1개월 정도 있었어요.

-네

-있다가 뭐 앞날을 생각하니까 거기서 항상 붙어 있을 수도 없고 그래 거기서 일하는 과정에서 뭐 여기저기 자꾸 알아봤죠.

-네

-그래가지고 이 일본 항공 자위대에 찾씨간 즉 거기 가니깐 뭐 동기생들도 있고

-네

-우리 후배 선배도 있두만요?

-네

-그래서 거기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근데 그 자위대 찾아가서 이제 친구들 만나시기 전에 그 해방전에 일본 보신거고 동경 그때 갔었어요, 인상은 어땠습니까? 생활 이라던지

-예 그 뭐 옛날 그 ..학교 다닐 그 당시에 있어서는 실상 뭐 학교생활이기 때문에 사회면은 뭐 전혀 모르고 지내다시피 지내죠.

-네

-뭐 처음 그 당시...이번에 동경에 가가지구서 그 뭐라고 할까...아무튼 상당히 그 이사람들이 친절해요.

-네

-일본사람들은. 그리고 더욱이 그 뭐라고 할까, 이 사람이 그 당시에 있어가지고 노동력이 부족되가지구서

-네

-그 뭐 상당히 그 애쓰고 있는 그런 상태기 때문에 그 일...일하는사람들이 애써..그 고용주도 상당히 그 친절히 해줍디다.

-네 근데 그 일본에서 이제 직장을 얻는다던지 신분관계에 상당히 어려웠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예 근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뭐라 그럴까요? 그렇게 이 저 외국인에 대한 이 단속이라고 할까요?

-네

-이것이 허술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습디다.

-네

-우리 교포들이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여기저기 정말 그 당시의 저의 입장같은 그 외국인이 등록을 하지 않구서 그저 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았어요.

-네 그 고영호 씨 께서 뭐 일본사람하고 외모로 봐가지고는 식별하기가 좀 어려우니까 말이에요? 일본말만 잘 구사하면은 뭐 의심받을 뭐 그런건 없을것 같아요?

-네 그런건 없었습니다. 의심같은거 뭐 없었는데...그러나 그 그런 상태로썬 뭐 앞날이 막연하고

-네

-그러니깐 확실한 이 법적 보장을 받기위해서 이 친구들한테 상의한 즉 자수하는 길 밖에 없다.

-네

-그리고 또 이 경찰에도 그 당시에 동기생들 좀 있두만요?

-네

-에 상의한 즉 자수의 수속을 다 밟아 줍디다.

-네

-그래서 자수했죠.

-그 오랜만에 그 일본에서 친구들 만나게 됐는데요, 친구들이 어떻게 어디서 직장에 있는지 수소문 하기가 좀 쉬웠습니까?

-아, 그...제가..그러니까 이 제가 항공계통이기 때문에

-네

-이 항공 자위대에 찾아갔죠.

-네

-이 거긴 아까도 말씀드린거와 같이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고 뭐 동기생들도 있도 퍽이나 있어요.

-네

-에 또 그사람들이 이 동창회를 가지고 있두만요?

-네

-그래 그 동창회 소개로써 그 자수하게 되고 또 그 후에도 거기서 뭐 도움이라고 할까...

-네

-헬프를 좀 받았습니다.

-네 그 친구도움으로 자수를 했는데 경시청에 찾아 가셨겠죠?

-예 그렇습니다.

-경시청에 가니까 어떻게 대해주시던가요?

-경시청에 가니깐 그 당시에 해가지고 이..비행기로써 일본에 들어오면 일본도 그만한 법치국가고

-네

-모든 이 설비도 결국 되있고 모를 리가 없는데

-네

-처음엔 그걸 곧이 들어주지 않아요.

-그랬겠습니다.

-그래 그 사실대로 얘길 해도 곧이 듣질 않고 그래 상당히 애가 탑디다. 처음에

-네

-그래 그 한 번 그 제 행로.

-네

-걸어온 길 이것을 상세히 얘기하면서 더듬어 달라고 조사해 달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제가 내린 비행기 우선 뭐 비행기가 선 건물이다 해가지고

-히로시마에 네

-히로시마에 내려가지고서 많이 조사해 봤습니다만은 그 그런 비행기의 잔재 이런것도 전혀 발견치 못하겠다. 이런 얘길 하던군요?

-네

-그래 그렇지 않다고 한 번 재차 다시 알아보라고 했더니 에..거기에 있는 이 소방대원 또는 이 산에서 일하는 이 나무꾼들

-네

-이런사람들까지 동원해가지고 아마 찾아 다닙디다.

-그 뒤에 그 히로시마에 안가보셨어요?

-예

-내렸던 자리에..

-안가봤죠.

-네

-그래 한 달 아마 걸렸어요. 그..비행기의 잔재를 찾기위해서 그 여러분들이 애를 써가지고 한 달 걸려 찾아서 마 확실하다. 뭐 틀림이 없다.

-깊은 산속이었던 모양이죠?

-예 이 천 백여 미터의 산인데 아주 그 그당시 우리가 안아도 안을수 없는 만큼 이 울창한 나무들이 있두만요.

-네

-그 그..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어두컴컴해요.

-그렇겠죠. 네

-그 산꼭대기에 내리고 또 그 시팡산이라고 하는 그 산은 ..보통 사냥하는 사람들도 올라가질 않는다두만요.

-네

-또 곰이 많아...

-아무 험한 산에 내리셔서. 근데 이제 소방대원들이 약 한달 걸려서 찾았군요?

-예 찾았습니다.

-뭐 부서진다던지 그렇진 않았구요?

-예 비행기가 부서진데가 없었다고 합디다.

-네

-근데 거기서 이 일본 정부에서 그 비행기를 이 산 밑으로 내리기 위해서

-네

-그걸 분해 해가지고 내렸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네 경시청에서 이제 증거가 들어난 셈이죠?

-예 그렇습니다.

-네

-그래서 재판에 회부 되가지구서 그 절차에 의해서 8개월의 징역에 그리고 2년 내 집행유예의 선거를 받았습니다.

-네 그때 그 법관들은 어땠습니까? 친절하게 대해 주나요?

-예 친절하게 대해 줍디다.

쓱?

-어..마 그 당시에 있어가지고 그 국교도 정상적인 면이 없었는데

-그렇죠. 정상화 되기 전이죠?

-예

-아주 친절히 대해줍디다.

-네

-그리고 그 뭐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끝까지 인도주의로써 대하고 그렇게 결말을 짓겠다.

-네

-이렇게 처음서부터 얘기를 해줍니다.

-역시 그 검사 구형하고 판사가 판결하고 그런가요?

-예

-재판제도가?

-예 그렇습니다.

-네

-여기랑 똑같은 거입니다.

-검사구형하고 판사하고 마찬가지로

-예 이 저..검사 구형은 일년의 징역. 3년의 집행유예가 아닌가 싶어요.

-네

-이 판사는 마.. 판결을 8개월과 2년으로 해서 석방해 줍디다.

-그 석방 된 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곧 서울로...아 서울이 아니라 동경으로 올라갔죠.

-네

-올라가서 그 전의 그 친구들이 여러가지 주선을 해주더만요?

-네

-앞으로 여기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될것인가? 거기에 대한 준비도 뭐 다 해주고

-네

-그래서 뭐 새출발이라고 할까, 뭐 좀.. 이 법적 보장을 받아가면서

-그러면 일단 그 집행유예로 판결을 받고 나오게 되면은 어떻게 됩니까? 그 정상적인 거주의 허가를 받는걸로 되나요?

-예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서 이 외국인 등록증을 발부 받아가지구서 이 주민등록도 하고

-네

-그래가지구서 뭐 ..이 법적 지위도 그리고 이 사회적 지위도 보장되죠.

-네 그러니까 그 54년도에 일본에 들어가셔가지고

-예

-얼마만에 그 재판을 받게 되신 셈인가요?

-에 재판 끝난것이 5월 중순됩니다.

-네

-그 다음해

-네 이제 일년 만에 그렇게 되셨...

-아니죠. 그러니깐 한 8개월 가까이 걸렸죠.

-네 나오셔서 이제 처음에 어떤일을 하시게 됐습니까?

-이 광유요? 석유 소매서부터 시작을 했어요.

-네

-뭐 가정엔 그 당시에 뭐 현재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만 가정에서 이 석유곤로...또 이 석유가 많이 난방으로 쓰고

-네

-또 이 ..에서도 많이쓰고

-네

-마 그런 관계로써 그 소비가 아주 대단하더만요?

-네

-그래 그거를 소매서부터 시작을 해가지고서 점차 이 조금 커지니까 도매상으로 넘어갔죠.

-그리고 이제 하숙을 하셨나요? 어떻게...

-네 하숙입니다.

-네

-이 이타바시라고 제 처의 집에 하숙을 했습니다.

-네 하숙을 구하는건 뭐 어떤걸 보고 골르셨나요?

-그곳이 조그만 요리집이었습니다.

-네

-그래가지고 제 생각으로썬 요리집에 하숙하면 제일 ...편리하지 않을까

-네

-이래 생각하면서도 거기에 부인이... 제 선배가 있어가지고

-네

-선배가 또 알선해줬어요. 그 집을

-네

-그래가지고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네 하숙하면 뭐 하숙비 같은것이 그 당시 비쌌습니까?

-네 그렇지도 않았어요. 그 당시에 아마 천원인가 싶었어요.

-네

-그래 이 월 수입은 그저 한 4,5만원 되고

-네

-그리고 뭐 생활비라고 수입에 비해서 대단히 그 ...이 뭐라 그럴까요..이

-여유가 좀 있다 그러는거죠?

-예 상당히 여유가 생기더만요.

-네

-한 1년 지나더니 말이에요.

-네 그러니까 석유기름의 그 소매업을 하시는데 무슨 가게를 얻는다던지 이런것도무슨 자원이 있어야 시작을 할텐데?

-예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죠.

-네

-그래서 점방 얻고 그리고 이 거래 관계도 결국 친구들의 소개로써

-네

-이 주문도 받고

-네

-또 이 모든것을 뭐라 그럴까 친구들의 협력 없었으면 그 당시에 아마 대단히 힘이 들었을 거에요.

-...형편이 어려울 정도로..이 하숙집 에선 어땠습니까? 이 하루에 밥 세 끼를 다 먹고 하숙을 하게 됐나요?

-예 뭐 다 먹...그 뭐 하숙집에서야 실상에 있어서 뭐 조반하고 저녁을 먹을때도 있고 안먹을때도 있고 대부분이 밖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뭐 한달치고..뭐 보름...먹으면 좋고 안먹으면 뭐 그런정도가 아닌가 싶어서요.

-독신이기 때문에 하숙... 흔히들 젊은 사람들은 그렇죠, 그 집에 무슨 따님이 있다던지 이런 내지 호기심 같은것도 생각할수가 있죠.

-근데 저는 그런 뭐 그런거 생각하고 들어간거 아니에요.

-네

-선배 소개로써 또 답답하고요 우선

-네

-그 언제..언제까지 선배집에서 그 배기칠 수도 없고

-네

-빨리 자립해야겠다 해가지고 그 선배한테 자꾸졸랐죠. 내 적당한데 좀 소개 해달라고

-네

-그래서 그 소개받아가지고 갔는데 그 집에 처음에야 뭐 그 집에 여자가 있다던가 그런건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네

-그 가보니깐 그 집에 딸도 뭐 서이가 있고

-네

-그래 거기서 생활 과정에서 좀 알게 되고 하니깐 자연히 뭐 젊은 사람들이겠다 뭐 여기저기 놀러도 댕기고 그러면서 친해졌죠.

-그 하숙집 가족들은 많았습니까?

-에 4형제 입니다.

-네

-그리고 그 제 처 오빠가 있었는데

-네

-에 그 당시만 해도 그 오빠는 항상 밖에서 생활하고 집에 들어온다는 것이 뭐 좀 극히 드물두만요?

-네

-그래서 그 장인 장모한테 상당히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네

-그래가지구서 장인 장모가 결혼하면 어떻겠냐.

-네

-해서 거기서 한 1년간 생활하다 결혼을 했습니다.

-착실한 사람으로 아마 신임을 받으신 모양이군요?

-예 근데 아주 제가 착실치는 못했는데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기름 장사는 잘 되시구요?

-잘 됐어요. 그건 북송선 탈때까지 계속 됐으니깐요.

-네

-그러니까 그 기름장사를 꽤 오래 하신 셈이 되겠군요.

-그렇죠. 한 15년 가까이 했으니깐요.

-네

-그러니까 처음에 일본에 밀입국해 들어가가지고 동경에서 그 동안에 이제 불법입국으로 해서 재판 받으신 얘기.

-예

-그리고 기름장사 시작하신 얘기.

-예

-또 하숙집 얘기. 오늘은 뭐 이런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예

(입력일 : 20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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