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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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고영호 - 제1회 북송선 타게 된 사연
고영호
제1회 북송선 타게 된 사연
1971.04.24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일본에거 간첩활동을 하다가 자유대한으로 넘어온 고영호 씨가 오늘 나오셨습니다만 고영호 씨 그러면 몇 년 만에 조국에 돌아오신 셈인가요?

-꼭 18년 되는구만요.

-18년. 많이 달라졌죠?

-뭐 달라진 점...너무나 이 변해가지고 과거라는 모습을 모르겠습니다.

-...실것 같습니다.

-예

-그러니까 저 우리나라를 떠나신지가 언제죠?

-54년 9월이에요.

-네

-그러니깐 꼭 18년 되는구만요.

-그 6.25 사변이 나가지고 몇 년 후죠?

-예 이 정선..체결되고 고 이듬 해 입니다.

-네

-어떻게 해서 이제 일본으로 가시게 됐습니까?

-그 당시에 제가 육사단 비행대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

-그때에 제 부하였던 이동식 소위가 월북하는데 여기에 관련 되가지고서

-네

-저기 뭐야 이 지위적 책임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또 이 형사적 책임..뭐 결국 방조한다는 이런 점에 있어서 도저히 뭐 그 당시에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네

-그래 할 수 없이 일본으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네 비행기를 이용했다구요?

-예 대구비행장에서 .....가지구서 일본으로 갔습니다.

-네

-참 그때에 생각하면 뭐 뭐랄까 너무나 죄송스럽고 뭐 말씀 참 드리기도 미안하다는 이런 감 뿐입니다.

-네 ..나인틴으로 ..몇 시간이면 비행이 되나요?

-에 그 당시에 제가 꼭 간것이 한시간 조금 걸렸구만요.

-네

-직선으로 가질 않구서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그리고 또 이 일본에서 레이다 망이 상당히 발전 돼있었어요.

-네

-그래 될수있는데로 거기에 걸리지 않게 가기위해서 이 좀 해상 고도 한 2, 3 미터 되지 않을까 싶어요.

-네

-물이 닿을 ..그 정도 떠가지고

-아주 저공 비행으로 가셨군요.

-예

-네

-가서 실상 예정이나.. 좀더 일본 동경 쯤 가서 내릴라고 했는데 거기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서 내리고 말았습니다.

-어디에 내리셨습니까?

-일본 저 히로시마 현 식방산이라고 하는 산 속에 내렸어요.

-네

-에 해안선에서 고도를 잡아가지구서 한 3천..떠올라가니깐 엔진 상태가 좋질 못해서 그래 할 수 없이 그냥 제일 사람 눈에 뛰지 않는것이 마 수림속이라 해가지고 거기다 갖다 붙쳤습니다.

-다치진 않으셨구요?

-예 다치질 않았어요.

-네

-근데 어찌 그 이 수림이 우거졌는지 그..에 그 위에 수림위에 그냥 뭐 비행기가 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네

-그래 내릴땐 한 2미터나 높이 되더만요.

-네

-그래 거기서 뛰어 내렸죠.

-일본 가실땐 뭘 가져가셨습니까? 소지품 같은 것은...

-저 아무것도 안가지고 그냥 입은채 갔어요.

-네

-거기 처음에 도착해 가지고서 이 시내까지 내려와야 하는데 내려오는데 꼭 사흘걸렸습니다.

-네

-먹을것도 없고 또 시내에 내려온들 무슨 뭐 돈이 있어야 어더러케 구입할건데...뭣도 없고 그래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이 시계하고 반지하고 그걸 귀금속 판매하는 조그만 점방이 있두만요.

-네

-거기서 팔아가지고...근데 지금은 액수는 얼만가 자세히... 잊어버렸습니다만은 기억이 안납니다만...그래가지구서 히로시마 역에서 동경열차를 탔습니다.

-네

-일본말은 잘 하시겠군요?

-예 일본말은 그 당시에 있어서 더 좀 하고 지금은 곧 잘 합니다.

-일본도 그 동안에 오래 계셨고

-예

-그래가지고 동경으로 가신 셈이군요?

-예 동경으로 막바로 갔습니다.

-네

-거기가면 뭐 과거의 학교의 동창생들도 있고 선후배도 많고

-네

-그래 거기가면 그 도움을 받지 않을까 해가지고 갔습니다만은 뭐 실상 가보니 거 만날 기회도 없었고 처음엔 많이 무척 고생했어요.

-네 그러셨겠죠.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가가지구서 처음엔 노동도 했어요.

-네

-이 고조 그 당시에 일본사회는 한참 이 경기가 좋고 허다해서 이 뭐 모든 분야의 건설..건설로서 이 건물만 하더래도 여기저기..있던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일자리는 참 구하기 좋았습니다.

-네 어떤 일 주로 하셨습니까?

-거기서 이 건물짓는 이 목수에서부터 시작하고

-네

-그걸 한 열흘 하고 나니깐 어찌 힘이 드는지 견딜수가 없어요.

-네

-그래가지고 이번엔 철공장으로 갔습니다.

-네

-철공장에 가서 사무 좀 보라고 해서 사무를 보고 있다가 그 아무래도 앞날이 막연해요. 이러다가 안되겠다 해서 그래 곧 이...동기생 동창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네

-해서 우연히 한..한달 조금 못미쳐서 찾았어요.

-네

-선배를 찾아가지구서 그 제 경과를 전부다 얘기했죠.

-네

-이렇게 해서 왔는데 무슨 방도가 없겠냐 하니깐 경시청에 가서 자수를 하라고

-네

-그래 자수를 했죠.

-네 그때부터 이제 신분같은게 어떻게 확실해 지고 그렇게 됐겠군요?

-예 그래 이 법 절차는 수속 밟아야 된다 해가지고서 이 재판 결과가 8개월의 징역.

-네

-그리고 2년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죠.

-네

-그래가지구서 마 완전히 마 신분은 보장됐습니다.

-네 그러니까 일본 갈적 부터 이제 공산당에 대한 동경같은것도 이제 가지고 계셨었나요?

-그때는 뭐 이 철저히 공산주의자들을 이 적대관계에 있었죠.

-네

-그리고 제 자신이 마 6.25 사변 해방 직후서 부터 뭐 이 공산주의자들과는 실상 많이 싸웠죠.

-네

-그리고 이번에 가서도 뭐 ..총련이란 존재 자체를 뭐 실상 제 자체가 부인하고 그런것은 없었죠.

-네

-그 사회 일본사회가 공산당을 활동을 이 허용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네

-뚜렷이 무슨 공산주의가 어더렇다니..저렇다니 그렇게 ..하고 거의 대중이 그 이 공산주의의 허무한 또 그 아주 악랄한 그리고 잔인한 이런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죠. 네

-또 오래 거기에 살고 있으면 만성화 됩니다.

-네 그러니까 이제 일본에 계시면서 어려움 속에 이제 동포라는 일명하에 자꾸 접촉이 심해졌겠군요?

-그렇습니다. 저..뭐 외국에 가 있으니깐 자기 고향이 그리워지고 또 자기 그 이 친척형재들 이 동포가 그리워지고 이렇게 되는 그 틈을 타가지고서 이 총련 또는 북괴는 아주 악랄합니다.

-네

-이 결국 통일 되지 못한 원인이 한국측에 있으며 또 미국에 있으며 이 국련 자체는 아주 그 우리 민족의 불행과 고통만을 갖다 주었다.

-네

-이런 선전을 해가며 또 그자들이 일본에 학교를 많이 세웠습니다. 실상.

-네네

-그리고 이 자녀교욱관계. 이걸 통해가지고 많은 선전을 하고 있죠.

-그럼 고영호 씨도 경제적인 면에서 도움을 좀 받으셨습니까?

-총련에서 받은것은 조금도 없죠. 오히려 그 총련이 그 아주 나쁜다는게 그거에요. 돈 없는 사람에겐 절대로 접촉하지 않습니다.

-네

-가까이 오지도 않고 저도 그러구선 처음에 가가지고야 뭐 고통스러운 생활하니깐 전혀 총련과 또 총련 생각할 여유도 없었죠.

-네

-자기 생활이 뭐 좀 가까스로 그 유지해야 할 정도고 또 그러구서 어느정도 한 일년 지나니깐 일본생활이 안정되며 그래가지고 실상 결혼도 했습니다.

-네

-근데 결혼은 뭐 총련과 직접 관련 되가지고 결혼한건 아니고

-네

-그당시에 제가 하숙하고 있던 집 딸과 결혼했어요.

-네

-일본 여자...

-네 그렇습니다.

-네 그 당시 그 몇 살때 결혼하신 셈입니까?

-제가 31살 때 입니다.

-네 그래가지고 이제 북송선 어떻게 타시게 됐나요?

-북송선 타게 된건 이건 그 조총련에 중앙회 조직부장으로 있는 이동순 이가 아주 사람이 똑똑합니다.

-네

-그리고 절대로 표면상 무슨 자기가 공산주의자니 또는 총련의 무슨 간부니 이런 티를 조금도 내지 않습니다.

-네

-또 처음이야..이건 나중에 알은 얘깁니다만 그 공작방법이라 그럴까요?

-네

-이 포섭 방법이 이 인간단계서 부터 또 이 청취단계로

-예

-이렇게 이행 되갑니다. 에 아주 인간적으로 친밀하고 정말 가려운데 긁어 줄 정도로써 아주 세밀한데 까지 이 마음을 돌려주고

-네

-아 이런데 아주 넘어가기 쉽죠.

-네

-그래서 역시 그 당시에 있어가지고 무슨 맨 일본사람 간섭하고 우리동포 간섭하는 이런 기회라는건 제가 거기서 사업이라고 하는것이 이 ...이 석유

-네

-이런 도매상을 하고 있었어요.

-네

-그리고 또 이 항공기 수리 관계를 하고 있고 자동차 수리 관계 공장을 하고 있고 그러니깐 자연히 뭐 일본 사람 간섭하게 되고 우리동포 간섭하게 되는 이런 기회라는게 없고

-네

-요게 결국 또 제 그 당시에 결혼했던 이 처가 그 오빠가 열렬한 공산주의자 입니다.

-네

-전에 결혼할 때에는 그걸 몰르고 있었는데 한 반년 후에 모든걸 알았죠.

-네

-그리고 그 형제간이 다 그렇습니다.

-네

-일본 공산당 당원이에요.

-네

-뭐 그런 관계로써 제 자신이 이 한국에서 그 일본으로 도망갔다.

-네

-또 그 제 처관계 친척관계가 공산당 당원이다.

-네

-이런 전문으로써 이동준이가 연초...포섭 대상이다. 이렇게 인정했던 모양입디다.

-네 그러니까 부인도 별로 반대를 안하셨겠습니다? 북송선 타는데 있어서

-오히려 적극...저를 마 강제로 끌어다시피...

-오히려 설득을 하는 그런경향이 있었군요?

-네

-그러면 북송선은 언제 타셨나요?

-1967년 10월 입니다.

-네 그때 벌서 여러차례 북송선이 됐죠. 몇 차 였습니까?

-그것이 154차 입니다.

-154.

-예

-몇 사람이나 그때...

-그때에 한 백 이십여 명 입니다.

-네

-그래 그 당시에 탄 분들 이 뭐 일본에서 온 모여온 사람인데 처음엔 탈때에 한 300명 탄다는 이런말을 들었는데

-네

-실제 탄거 보니깐 백 한 이십여명밖에 타지 않았어요.

-네 그 고영호 씨는 가족 그러니까 자녀분들이 몇 이라고...

-어린애가 다섯이고 제 처하고 저하고

-일곱식구가...

-일곱식구가 탔죠.

-네 돈을 좀 가지고 가셨나요? 그 북송선 탈적에

-예 뭐 저는 가지고 간 일이 없습니다만은 그 당시에 제 처가 이 가제도구 전부 다 싣고 벌써 저 모르는 사이에 제가 항상 집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네

-에 근데 집에 와보니까네 벌써 다 부쳤두만요, 짐을.

-네

-다 부치구서 그날 벌써 총련 사람들이 와가지구서는 가자구...

-네

-어딜가냐고 그러니깐 벌써 다 수속 밟아놨고 뭐 내일이면 배를 타게 되는데 북서...뭐 그 녀석들은 공화국 공화국 합니다.

-네

-공화국에 가지 어딜 가겠냐고

-네

-아니, 내가 뭐 언제 가겠다고 말이나 했냐...이건 뭐 너무나 강제적이 아니냐 하면 강제야 뭐 영광스러운 공화국에 가는데 무슨 강제냐고 그런 말하면 안된다고...

-네 오히려 그 부인이 수속을 전부 마처 논 셈이군요?

-에 그렇죠.

-하하 네 그럼 북송선이 저 청진으로 들어가나요? 어디로 들어가나요?

-청진항으로 들어갑니다.

-네 그러니까 이제 북한에 가가지고 이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예 제일 처음에 청진에서 하룻밤 자고 평양으로 거창갔습니다.

-네

-가가지구선 그날로 국제 호텔에 아마 그 북괴로썬 가장 제일 좋은 한 호텔입니다.

-네

-그래가지고 거기서 대접한다 하면서 거기다 데려다 놓고 거기에서 한 반년간 가까이 있었습니다.

-네

-그리고 그 후에 에 평양시엡니다. 광동이라고 하는데 그 비밀로 이 교육을 간첩교육 하는 팔오처대사라고 있어요.

-네 6개월 있다가 바로 이제 교육으로 들어가셨나요?

-아니죠. 그러니깐 그 청진에 거기서 배 탄 고 시작서부턴 뭐 목적이 뚜렷하고

-네

-또 그 행동 자체가 거기에 의해서 어더러게 해야된다는거

-네

-그걸 알려..서 실어왔습니다.

-네

-배에 타구서. 그래가지고 국제호텔 가가지고 밀..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안된다.

-가족하곤 어떻게...

-그러니까 배에서 헤어졌지요.

-아 베에서 헤어지구요...네

-그리고 국제 호텔에서 한 반년간 생활하면서 그 교육을 받았죠.

-네

-받으며 저는 그것이 한 심사과정 이였던 모양입디다.

-네

-과연 이게 이것이 한국내에 가서 간첩으로써 자격이 있나 없나

-네

-또 교육을 해가지고 될 수 있을까 없을까 마 여러명이 있어가지고
심사를 거처가지고

-네

-그리구서 하루 선별을 해서 초대해서..이건 뭐 전문이라고 할까 간첩교육은 그런 한 그러기 위해서 ...입니다.

-네 그런데 가셔서 이제 밀봉교육을 받으신 셈이군요?

-네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한 2년 6개월 받았습니다.

-아우 오랫동안 받으셨군요?

-예

-뭐 받는동안에 여러가지로 이제 교육받으셨겠고 어떻습니까? 고영호 씨 체격은 굉장히 좋으신데

-예 좋죠. 글쎄..아무튼

-체중이 얼마나 되십니까?

-지금 한 70키로 됩니다.

-70키로.

-예

-아주 몸이 건강하셔서 말이죠.

-건강..그래도 마 비행기 탄다고 하면 비행기...좋아요.

-네 그럼 2년 반 쯤 이제 밀봉교육을 받으시고

-네

-다시 일본으로 이제 나오셨나요?

-그렇죠.

-네

-거기서 임무를 받고 그리구서 그 어선으로 가장한 무장선입니다.

-네

-결국 ..으로 운반하는

-네

-요걸로써 일본으로 한 40시간...30시간 아마 걸려서 도착했어요.

-혼자 오셨나요?

-혼자 왔습니다.

-네 그러니까 일본으로 이제 임무를 받고 떠나시기전에 뭐 김일성도 만나보셨단 얘기 들었습니다.

-예 격려를 해준다는 뜻으로써 마 한 두마디 말을 했습니다만은

-네

-말 자체는 뭐 항상 말하듯이 그 지도원들이 말하는거나 뭐 똑같은 말들이죠.

-네

-뭐 반드시 통일 되야한다. 이것이 민족의 살 길이다.

-네

-뭐 이것만은 좋죠. 이것만은..그건 반드시 무력으로써 통일 해야한다. 그 전부 다 이 뭐 지주자본가 뭐 다 때려부셔야 된다. 지금 정부의 요인은 다 때려부셔야 한다. 뭐 이런말 하고 있구요.

-네 그러면은 3년 동안 북한에 계시면서 가족들하고는 못 만나보셨나요?

-전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소식도 못듣게...

-네 소식은 가끔 음..수 떠는 이 이발사 이런 사람으로 부터 마 잘있다.

-네

-이런 소식은 듣죠.

-부인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계셨구요?

-네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네 그럼 이제 다시 일본으로 이제 간첩선으로 나오셔가지고 동경인가요, 역시?

-네 저는 대판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요. 저쪽에서

-네

-근데 준비한데가 동경이두만요?

-네

-동경에서 그 뭐 일본 이동준 이가 일본 지하조직의 책임자 입니다.

-네

-이자가 안여자를 ...까지 보내줬더만요.

-네

-그래가지고 안여자의 안내를 받아가지고서 동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뭘 가지고 이제 일본으로 가시게 됐습니까? 뭐 공작금이라던지 가져가는게 있었겠죠?

-예 공작금이라고 하는것은 이 일본조직이 크고 총련 자체가 크고 하니깐

-네

-거기서 공작금 타서 받아서 쓰라고 그런 지시를 받고 저쪽에서 올때에는 한 백오십 만원 정도의 이건 가가지고 여비든가.

-네

-급할때 쓸 그런.. 마 그것도 공작금이죠.

-네

-뭐 사도 쓰...쓰는것은 그걸 용돈으로 써라. 그래가지고 가지고 왔죠. 그런데 올때에 뭐 권총 같은거 무전기 같은거도 가지고 가면 어떡하냐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만 또 거기 이 책임자가 일본은 뭐 그런것이 필요없지 않냐.

-네

-거기가서 뭐 임무자체가 그런걸 필요치 않는 임무기 때문에 이번은 그대로 맨손으로 가는게 좋지 않느냐

-네

-하는 말들이 있어가지고 그렇게 결정이 됐습니다.

-네 그 고영호 씨가 이제 우리나라 어떤 사단의 항공대장으로 있다가 이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고 평양에 갔다가 다시 일본에 온 얘기까지 오늘 했습니다.

-예

-내일 계속해서 말씀 듣기로 하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입력일 : 20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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