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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오창영 - 제3회 “인계받은 것이 가위 하나 핀셋트 하나”
오창영
제3회 “인계받은 것이 가위 하나 핀셋트 하나”
1971.11.03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람에게 듣는다. 야생동물보호 캠페인의 일환으로 보내드리고 있는 이 사람에게 듣는다. 오늘도 창경원 수의관 오창영 씨 얘기를 이규형 아니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오창영씨가 이제 군의관으로 계시면서 그 헌병대 파견 나가 계실때 이제 얘기가 있었습니다만 그러니까 그 주력대에 타고있다가 이제 갑자기 떨어져서도 죽는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음...운전사는 그걸 몰랐겠죠.

-네

-그때만 하더라도 참 그 차량이 부족하고 하니까 귀대 일정은 바쁘고

-네

-하니까 그저 달리는 차 뛰어가서 잡고 슥 매달려서 올라가서 타고 댕기는 이런 멋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마침 김장철이었어요.

-네

-주위에 산더미 같이 아마 ..같은거 보니까 그 차 꼭대기에서 떨어진거 같습니다.

-근데 그런건 어떻게 처리가 돼겠습니까?

-위에선 원인이 확실하니까 그것은 해서 참 역시 그 가족들한테 인자를 해준다던가 하는 멋이야있겠죠. 그 이외 무슨 여러가지 일로해서 자살을 음독 자살을 했다던가 원인불명하다던가 할것같으면은 꼭 그 해부를 해서 마 과학적으로 분석을 해서 뭘 규명을 해낸다던가 하는 이런 일들을 갖다가 하지요.

-변사체들을 그 해부한다는 것이 글쎄요 일반하고는 좀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동물이래도 좀 다뤘습니다만 동물과 사람은 좀 다를 테니깐요.

-역시 처음에는 좀 솔직한 얘기로 못하겠습디다. 기분나빠서. 허허허 .... 마찬가지로

-그런데 해부를 해보면은 그 극약을 음독이라던지 이런 경우는 좀 달라지죠?

-네 그렇죠. 독의 성질에 따라가지고서 여러가지 증상이 나오게되죠. 그래서 이제 그런 해부할때에 유관적 소견 마 여러가지 변견이라던가 뭐 이런것을 짐작을 해서 다량 축소해서 어떠한....방향 요런것들을 분석을 해봐야겠다 에 이렇게해서 차츰차츰 범위가 좁혀져가지고서 나눠가지고 들어가겠끔 저는. 때론 ....해서 그것이 잘 되지 않을때도 있어요. 그럴땐 아주 단단히 애를 먹죠.

-고민하시겠군요. 근데 이제 군대생활을 한 3년하시다가 제대하셔서 창경원에 들어가신 얘기. 그당시 이제 동물원에 가시니까 여러분이계십니까?

-네 그때 제가 가니까 동물원에 기뷰 한분이 저예산들여서 계십디다. 이 양반이 일본.. 학교에서 공부를하고 나오신 분인데 그분이 사정상 제가 들어가자 한달이내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그분한테 제가 동물원 전반을 갖다 인계를 맡았는데 인계서래야 민홍괴지 한 석장으로서 족했을뿐이니깐요. 동물이래야 새, 파충류 합해서 아니 포유류 합해가지고서 불과 삼, 사십점 마리수로 해서 백여마리. 이러고 제가 인계받은 재산이라는것이 가위 하나 핀셋트 하나 하하 약이 몇점 마 이런정도. 집은 몇채 안되었지만 직원들하고..받았죠. 그게 이제 잘잘 짤아가지고서는 ....그냥 있을겝니다. .. 기념으로다가 가지고 있는데. 에 그때 당시 ...까 서울특별시에 에 동식물원 재건 무료회라는 것이 생겨 발족을 하고 있었어요. 그땝니다. 에 서울시장 그때 김태성씨 이 양반이 거기 위원장이 되시고 동물 ...로 동물 분과 위원장으로해서 지금 천부상에 전택호씨 그 양반이 동물 분과 위원장이 되고 이래서 제계 기타 각계에서 성금을 모아가지고 이것을 가지고서 이제 외국에서 청사가 대행을해서 동물들을 사들여가지고 창경원에 속속 들어오고 있던 마침 그때입니다.
에 그러니까 6.25를 지내고 14후퇴 후에 ...원에서 보니까 창경원이 아주 황폐가 되고 뭐 맹수는 고사하고간에 새 한마리도 남지 않았던 완전 ..으로 다 됬었습니다. 에 거기에 동물을 하나하나 집어 넣으면서 동물원이 다시 재출발을 하는 이런 마당이었죠. 에 그래서 코끼리라던가 사자, 낙타, 하마, 공작 등등 해서 적어도 한 42000 불어치 이런것이 그때 복지가 여러분의 성금으로 해가지고서는 외국에서 들어왔었어요. 에 그러고 더욱이 일선장병들이 또 사내에서 우연히 생포되는 산양이라던가 곰이라던가 기타 부엉이라던가 여러가지 동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것이 밑바탕이 되어서 차츰차츰 여기에 부을것도 사서 보태고 또 그렇게하다보니까 번식도 되고 해서 차츰차츰 오늘날까지 이리됐는데. 실상 그때 보니까 그래요 창경원이 한때 칠면조등 .....병원까지 있었습니다. 동물 우리는 비고 금방 갖다 넣을 것은 없고 우리는 있는데 그냥 공허하게 놔둔다는것이 못해가지고서는 에 우선 시험해요. 칠면조 알을 내가지고서는 그걸 부화해서 이칸에가봐도 칠면조 저기가도 칠면조. 그것이 이제는 득실득실 해요. 이젠 칠면조 없애기 작전을 벌이는 샘이죠. 칠면조의 수를 줄여가면서 그대신 다른 야생동물을 갖다 넣나 하는 것이 늘 염원있었고 그렇게 됬었죠.

-오창영씨가 동물원에 가신것은 6.25의 큰 이제 참화비 재건 당시 들어가신 것이 되겠습니다. 어쨌든 그 우리 60여년 그 동물원사를 생각하면은 6.25사변이 가장 그 수난이라고 보겠죠?

-네. 저희들이 하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6.25사변 때를 갖다 그 수난기를 제2차 수난기라고합니다. 그보다 더 앞서 1945년 초반 해방되는 그해 봄에 에 마 그때 태평양전쟁 전국이 이제 차츰차츰 일본의 폐색이 짙어지고하니까 아 일본 전국에 동물원 관계자들이 이제 나고야에 모여가지고 그 회담을한 내용이 어디 기록이 있는것을 갖다 제가 봤습니다. 그 폭격이 심해지고 하니까 맹수들이 자연 튀어나올것 같으면 시민들의 크나큰 위해를 끼칠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그런 유해로운 동물들은 미리 이걸 복사를 하거나 독살을 해서 그런 유해들을 덜어야 되것다. 뭐 이렇게해서 동물들을 갖다 죽이는 의뢰를 했더라그래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 있어... 그런면도 없지않아 있기야 있지만은 에 사람이 먹을 식량도 없는데 동물이 먹을것이 어디있냐.

-전시 총 동원 체제 하하

-그러니까 동물의 숫자를 줄여야겠다. 식량 보급이 안되니까. 둘째는 그 참 그 우리 한국 가정에 숟갈 젓갈까지 전부 공수를 시켜서 무기 만드는데 급급했던 그때니까 동물원을 갔더니 뭐 쇠가 가장 많은데죠. 그러니까 쇠창살 이런거를 뜯어 가야 되겠으니까 동물을 없애자 해서 그 좋은 시설 마 이런것들을 갖다 없애고 또 자연 그 진영이다 징병이다 해서 거기에 종사원들이 전부 가게되니까 사람 모자라 시설은 없어져 먹을 것도 없어 전쟁 폭격의 위협 이런것들이 있으니까 어차피 이럭저럭해서 맹수를 갖다 없애지 않으면 안될 이런 단계에 놓여있었어요. 일본에서도 나고야 동물원 같은데만 하더라도 참 거 고집을 세워서 아주 버텨가지고서는 최후까지 코끼리라던가 이런것을 갖다 죽이지 않고 전후에 유지했던 이런 것도있는데, 우리 창경원은 어떻게 됐는지 사실상 폭격의 위협이라는 것은 일본 ..보다 없었는데도 불과하고 미리 여기서 참 충성을 다하느라 그랬는지 모르지만은 맹수 코끼리 동물을 갖다 전부 독살 내지는 총살을 했던 이런것이 었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를 갖다 제1차 수난기라고 그럽니다.

-네. 그러니까 일제말기의 동물원은 지금 정도는 갖추고 있었던..

-네 그렇죠. 그때까지는 그렇게 유지를 하고 있었죠. ....45년 초기에 그런 그 수난이 다가왔죠.

-그 당시 맹수라면은 어떤것이 있었을까요?

-네 지금 우리 세계적으로다 자랑거리인 우리 한국의 호랑이 그때는 물론 있었을테고, 표범 내지는 외국산 사자라던가 어떤 그 대동물로서는 코끼리라던가 하마라던가 마 이런것들이 있었죠. 그러고 이제 새들도 맹금류 커다란 콘돌같은 독수리 이런것은 역시 그네들하고 운명을 같이했다는 이런 얘깁니다.

-그러면은 그당시에 어떻게 처리했을것 같습니까?

-우선 독살의 방법을 갖다 취했다 그럽니다. 역시 무슨 독을 갖다 썼는지 모르지만은 ...독을 갖다 섞어서 네개를 섞어서 좋겠죠. 어 이래서 모두 죽였는데 가장 그 오래 버티는 것이 역시 흑표 표범족속이더라그래요.

-네

-그런데 생김새도 참 표독하게 생겼지만 성깔도 역시 참 굉장히 앙칼지고 모질죠.

-네

-그래서 약을 먹고서도 상당히 오랜동안말이죠 견디더라 그래요.

-그 당시에 그 호범일까요? 호랑이 가죽같은 것은 왜 일본으로 들여갔다는?

-네 그렇죠. 한국의 호랑이라 할것같으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이렇게 말씀을 들였지만은 지금 동양의 맹수로서는 그래도 호랑이가 가장 으뜸가는것인데 에 만주라던가 또는 저쪽 시베리아 몽고라던가 북지아 이런데 사는 북방 호랑이가 있었지만은 그중에도 우리 한국의 금수강산 여기에 사는 호랑이가 가장 으뜸이었다. 말하자면 그 생김도 그렇거니와 털도 길고 체구도 크고 여러가지 면에서 참 으뜸이었다고 말들을 하고있어요. 그러니까 자연적으로다 참 일본사람들이 그것을 갖다 그냥 뒀을리가 없죠. 많은 호랑이가 그때 피살이되고 지금은 거의 지금 우리 산 내에서 호랑이는 거의 찾아 볼수 없을것 아닌가. 북한의 장맥 산줄기로 들어갈것 같으면 좀 있는것이 아니냐 짐작은 됩니다만 적어도 남한에 있어서는 호랑이는 이제 우리가 보지 못할것이 아니냐. 아닌게 아니라 현재 창경원에서도 한국산 호랑이란 것은 없습니다.

-없죠. 아주 안타까운일입니다.

-안타까운일이죠.

-그러니까 뭐 맹수도 모두 독살한 다음에 철재까지도 모두 떼버렸습니까 그럼?

-그러니까 이제 철재의 일부를 떼고 그 앞에 인재 철이라고 있어요. 사람이 더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그 청동, 구리 이런것으로 다 되어 있었다 그래요. 좋은 디자인을 해서 만들어 놓은건데 지금 그걸 뗀 자국이 있습니다만 그런것은 전부 남지 않게 떼어가고 그런 상태가 됬었죠.

-아주 전쟁터 같이 됬었군요.

-하하 아주 폐허죠.

-그렇죠. 그 당시에 각 가정에 그 유기라던지 전부 공출할 판이니까 그 모두 떼가고 그렇게 된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제말기 그 해방직전에 가장 아마 수난기였다고 생각이되었죠 동물원에요. 내일 그후를 계속하기로 하겠습니다.

-야생동물 보호 캠페인의 일환으로 보내드리고 있는 창경원 수의원 오창영씨의 얘기 이규형 아나운서와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이사람에게 듣는다 내일 이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입력일 : 200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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