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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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8대 국회의원 최병길 - 제2회 “첫 세비를 타면 청주시민앞에다 …”
8대 국회의원 최병길
제2회 “첫 세비를 타면 청주시민앞에다 …”
1971.06.29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내일이 이제 7월 1일이 또 됐습니다.
-네
-내일부터 임기가 되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내일부터 이제...
-국회의원이...
-네네
-대통령 취임식이 내일 있는것 같습니다만 아마 개별적으로 참석하시도록 되있는가요?
-그렇습니다. 당이 아직들 개원을 안해서 개별적으로 참석을 하라는 말씀이 당에서도 있었어요.
-네 내일은 참석하실...
-네 참석 하겠습니다.
-네 이번에 이제 8대 국회에 당선되시면서 앞으로 나오겠습니다만은 최병길의원께서 잘한얘기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제가 주문이 많은것 같습니다. 그 나신곳이 청주가 되시나요?
-네 청주 그당시에는 이제 본정 삼정 뭐 현재 청주시 북문로 1가 163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예
-거기 그러면 거기서 주욱 국민...그 당시에는 소학교라고 그랬겠죠?
-에 보통학교.
-네 보통학교인가
-보통학교죠? 여기서 태어나서 8살때 청주 공립보통학교예요?
-네
-현재 청주 영정국민학교...영동국민학교? 거기를 이제 들어갔어요. 그래서 인저 거기를 6년 동안 다녔죠.
-네
-그 그런데 이제 자기 자신에 관한 얘기를 하기에는 퍽 그 여러가지 어려워요? 예
-그러시죠.
-그게 지금 주성국민학교인가? 그렇죠?
-네
-자꾸 이름이 여러가지로 바꼈는데, 그런데 들어가 보니께 뭐 그당시에는 나이 많이먹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거든요?
-네
-8살로 들어가는건 요새 같았으면 늦은 편이였지만 그 당시에 8살때 국민학교 들어가면 빨리 들어가는 편입니다.
-여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까?
-그때 이제 청주는 남자부 여자부가 둘로 나뉘어 져서
-네
-저희 댕긴데는 남자부만 모였고 여자부는 지금 청주경찰서 있는 자리죠?
-네
-거기 인저 청주공립보통학교 여자부라는게 있어서
-네
-에 여자는 그쪽에서 딴공부 했어요.
-네
-남녀공학이 아니죠.
-네
-몇 남매가 되시나요?
-어 저희가 동복 10남매예요.
-네
-동복 10남매인데 제 위로 누님이 4분 계시고 인저 지가 아들로 맏이고 제 밑으로 남동생 4 여동생 하나. 그러니께 남자 다섯 여자 다섯 남매예요. 허허허
-그 당시에는 그 다복했다고들 얘기하겠죠?
-네 뭐 10남매를 둔 집은 그 그 당시에도 드문 편입니다. 그래서 참 그 자손이 번창해서 좋다고들 이웃 어른들이 말씀한 기억이 나는데 에 역시 이제 그 10남매중에서 중간에 끼고 위로 누님이 네 분계시고 아래로 동생이 넷 있고 이러니까 어려서부턴 퍽 그 내가 이집의 호주다. 장차 호주가 될 사람이다. 그렇게 되니까 어려서부텀두 어린마음에도 퍽 그 보통 그런 형제가 많이 있지않는 집에 태어난 사람보다는 아마 유달른 생각이 있었든 모양이예요?
-책임감 같은거...
-네 책임감. 예
-아버지께서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계셨어요?
-예 저 이제 선친께서는 원래 그 아주 완고한 그 유학.
-네
-거기에 젖으신 분인데 독학을 하셔가지구서 청주 그때 세무서가 아니라 재무서라그럽니다.
-네
-재무서에 취직을 하셨다가 나중에 지금 청원군 부용면이죠?
-네
-부용면 면장을 하시구서 내놓셨어요.
-네
-그러니께 이제 면장을 하시면서도 그 청주 사직동 그쪽으로 땅을 자수성가를 하셨습니다.
-네
-그래서 정신모를 안잡수신것이 보통이라 그러세요. 그래가지고 그 월급타는데서 확고..해가지고 사실 아무것도 없는데서 10남매를 키우고 가르키고 성취시킬라그러면은 보통일이겠어요?
-그렇죠.
-그래서 농사를 한편 지시고 직접 갑농도 하시고 면장 내놓고 나신 후에는 뭐 몸소 인저 노구를 끌고 이...직접 논에 나가셔서 이제 갑농을 하시고 그래 저도 철 들을때부턴 소를 몰구서
-네
-청주군 무심천 풀로 가 소를 뜯기고
-네
-또 모심을 줄 못줄 잡아주구요?
-네
-이제 그런걸 어려서부턴 뭔가 하여간 도와야되겄다.
-네
-이제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그 옛날 어른들은 참 무서워요. 또 그 돌아가시고 난 후에 보니까 10남매 이름으로 전부 예금 통장이 하나씩 있습니다.
-네
-그게 이제 출가 하신 누님들서부터 모조리 예금통장이 10개가 있어요.
-네
-10개가 있어가지구서 거기 꼬박꼬박 농사 추수한..그 팔은 논중에서 얼마...그 10등분을 하셔서 그걸 꼬박꼬박 저금해놓으신 저금 통장을 돌아가신 후에 그걸 찾아내구서 참 지들 형제끼리 그때 너무나 고맙고
-네
-또 너무나 이렇게 규모가 놀라우신데 저희들 자손 된 도리로써 생전에 참 효성을 다 못했다.
-네
-하는 그 뉘우침을 또 한번 한 일이 있었습니다.
-네
-예
-그 청주에 이제 사신것은 선조들께선 오래되셨습니까?
-네 이제 저까지 3대째라 그럽니다.
-네
-이제 원...이제 제 증조부모님...그 위로는 충청남도 고령군 죽홍면 보령리라그래서요?
-네
-그때 대천해수욕장에서 한정거장 못미친데
-네
-거기가 원 지들 기반이 많이 살고 계시는데 제 인저 조부님때 청주로 오신거죠.
-네
-그런데 그 고향에서 도저히 살 형편이 못되서
-네
-그래서 인제 그 그렇지 안습니까? 집안이 여럿이 사는데 참 어디가서 구걸을 하더래도 다른지방에 가서 구걸을 하고 객지서 해야지
-네
-자기 그 일가친척 있는데서는 챙피해서 못사는 그런 정도의 아주 어려운 살림이였던 모양입니다.
-네
-그래서 인제 근본만 하더래도 저희 조부님께서 그 풍진이 계신데 저희 이제 선친께서 직접 이 양반을 업으셔서
-네
-이제 청주까지 오신것은 인제 처가가...저희들은 외가죠?
-네
-저희 외가가 청주예요.
-네
-그러니께 이제 고향땅을 등지면서 어디 뭐 가실때가 없으니께
-네
-이제 뭐 처가 사는 청주로 참 유랑을 해오신거죠.
-네
-그래서 선친께서 이제 하도 규모있게 또 인저 일본말도 썩 잘하신걸로 제가 기억을 해요.
-네
-그 일본 말도 순전히 독학이죠.
-네
-그래서 일전 시대에 막 그런 면장을 하시다가 내놓으실때도 일본 그때 어느 군수인가, 그때는 거의군수도 일본 사람이예요.
-네
-그 군수하고 무슨 에...싸움이 벌어져가지구서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만 역시 그 민족적인 문제겠죠?
-네
-그래서 군수 그 뺨을 치고선 사표를 내고 그만 두셨는데
-네
-그런 피를 받아서 그런지 앞으로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만은 제가 인저 학교를 졸업 맞고 그 함흥에 식산은행에 취직을 했어요.
-네
-네 그런데 그때 저도 식산은행을 그만 둔것이 일본놈 머리를 수판으로 영업시간에 한번 들이치구서
-네
-그때도 역시 민족적인 문제였습니다만은
-네
-피는 역시 그 바꿀 수 없는게 아닌가.
-네
-그런 감회가 지금도 새롭습니다. 네
-그다음에 이제 중학교를 그 당시에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중학교는 이제 공립고등보통학교죠.
-네
-그래가지고 인저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에 14살때 들어간거죠?
-네
-14살때 들어갔죠.
-그래서 인제 흔히 청주 고고라고...
-그렇죠. 청주 고고
-네
-현재 청주고등학교...
-네
-가 제 모교가 되는 셈입니다.
-그 당시 고등보통학교라면 청주에 몇개나 있었나요?
-하나죠.
-네
-그게 청주에 중학교육이란건 청주고고와 청주 농업학교.
-네
-에 현재 청주 농업학교. 요거 둘이예요.
-네
-둘인데 인저 저는 청주고고로 들어갔는데 어 이게 제 자랑같아서 그런 말씀을 드리는게 아니라 사람이 학교 다닐적에 첫째는 한번 해봐야한다 그겁니다.
-네
-어 지금도 제 자식들이나 제 그 뭐 조카자식들한테도 입버릇처럼 얘길합니다만은 자신을 사람이 가져야 되는데
-네
-학교 댕길적에도 자기가 공부를 하는 노력을 하면 첫째도 할수있다. 했다.
-네
-그러니께 뭐든지 하면 된다. 이런 인제 의지와 자신을 키워주기 위해서라도 학교에 다닐적에 그 한번쯤은 첫째를 해봐야됩니다.
-네
-근데 이제 저는 그 선생님들이 귀여워해주셨든지간에 보통학교를 졸업맞을적에 이제 그때 학급이 세 학급이였어요.
-네
-한 학년에 세 학급인데 그때 인저 그중에서 제일 공부잘한 애를 뽑아서 그때 도지사 상을 줍니다.
-네
-요샌 그 교육감 상인 모양인데
-네
-도지사 상을 주고 그 졸업식때에 그 송사 답사를 하지 않습니까?
-네
-그런데 지가 지금도 키가 조그만합니다만은 그때는 아주 더 조그매서 앞에서 두째번줄 설 정도로 조그맸어요.
-네
-그랬는데 어떻게 이제 그 도지사 상에 뽑히고 인저 졸업생 대표 송사에 뽑히고
-네
-그래서 인제 그걸 했는데 에 그때 사진이 지금 있었으면 퍽 그리울텐데 그때는 지들 양복 못입습니다.
-네
-어 양복 입은 애가 한반에 둘 내지 셋. 그런애들은 참 요새 말로 갑부집 자제죠.
-네
-그래서 그 명두루마기?
-네
-인제 그걸 흰걸 이제가서 까만 물을 들여서 명두루마기를 입고 그 고무신도 하도 저희 선친께서 규모가 놀라우시니께 단돈 1전 그때는 이제 한돈이죠?
-네
-1전을 얻을래면은 뭐 매달 하이튼 몇 대 맞고 나야 간신히 돈 한돈을 얻을 정도예요.
-네
-그러니께 고무신이 떨어져가지구선 이제 뒤에다 짓습니다.
-네
-가죽으로 짓고 또 어디 구멍을 한번 잡아요. 그 저 요새 조그만 고무공 그걸 절단나면 구멍을 뚫어서 솜을 헌 솜을 집어너가지고 그걸로 이제 축구를 한다고 그러는데 그 운동화를 안신고 고무신을 신으니까 공을 찰라면 고무신이 인저 벗겨집니다. 그러면 그 새끼로 새끼로 고무신을 쫌매가면서 인제 이렇게 지냈는데 인제 고등보통학교 들어갈적에 보통학교에서 첫째를 했다 해서 뭐 들어갈땐 참 무난히 들어갔어요.
-네
-이제 들어가서 보니까 그때에도 웬만한 애들은 다 양복을 입고 왔는데
-네
-저는 그 입학식때도 역시 두루마기를 입고 갔어요.
-네
-에 그러니께 청주시에서 크고 청주시에서 국민학교를 보통학교를 나온애가 되려 촌티가 나고 다른데서 온 애들은 양복..를 입고 그랬는데 이제 그런것도 조금도 구애 안했죠.
-네
-왜 안하는가 하는것이 제 밑으로 동생들이 여동생까지 합쳐서 다섯있는거 아닙니까?
-네
-그러면 내가 고생을 하더라도 동생들은 양복을 입혀야할게 아닌가
어린마음에도 그런생각이 들어서
-네
-어 전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가지구서 꼭 일등을 계속 해야된다.
-네
-이제 이런 생각으로 계속 나갔는데 뭐 고등부터 일학년때 들어가서 일등을 못하겠어요.
-네
-네 그래서 그때 열한째인가 했습니다. 처음에는?
-네
-인저 그러다가 이거 열심히 공부를 해야되겄다 하고 참 3학년때부턴 제가 밤을 세웠습니다.
-네
-시험때. 그때 밤을 같이 세운 친구가 지금 저 대한교육보험회사 사장을 하고 지금 거기 산하단체인 대교산업 회장하는 조준호군이
-네
-에 중학교 3학년때 우리집에서 같이 밤을 세웠어요.
-네
-밤을 세웠는데 인저 어린애들 밤을 세우는걸 보니까 저의 선친께서 하도 딱하니까 그 케케묵은 구여짝에서 대추. 대추가 그게 몇 년 묵은건질 몰라요.
-네
-그 대추를 한앞에 두개씩 주십니다.
-네
-요걸 밤새도록 입안에 물구서 그 대추씨를 오물오물하면 잠이 깬다구
-네
-그래서 그 조준호군하고 그 대추씨 두개를 가지구서 밤을 세웠어요. 그 이튿날 시험을 치는데 기억도 생생합니다만 첫째 시간이 한문입니다.
-네
-에 두째시간이 영어고 그러넫 인저 둘다 다 100점이예요.
-네
-저도 한문 100점. 조준호군 100점. 영어도 지가 100점. 조준호군도 100점. 이래서 지가 조준호군하고 첫째로써 다투기까지 했는데
-네
-이제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
-네
-공부를 해왔죠.
-그러면 고등보통학교가 학제는 어떻게 됩니까?
-5년제입니다.
-5년제요.
-네 근데 인제 5년제인데. 제가 3학년때에 2학기서부터는 가정교사를 했습니다.
-네
-인제 집이 청주에 있는데도 그때 저 우리 그땐 조선인 선생이죠?
-네
-우리나라사람. 선생님이 성기호선생님 계셨는데 이미 작고하셨습니다만은 그 양반이 너 가정교사를 해봐라 그래서 3학년 여름방학때에 청주고고 1학년인 여기서 이름 밝혀두면 안되겠습니다만은 송모군이에요?
-네
-아주 보원갑부로 있는집 자제인데 청주에와서 청주고고를 들었는데 성적이 좋지않다고
-네
-그래서 그 마땅한 가정교사가 있걸랑 골라달라그러니 니가 한번 가보라고
-네
-그래서 3학년때니까 지가 16살때죠?
-16살때에 남에집 참 눈칫밥을 먹기 시작한겁니다. 이제 집에서 자고 다니지만은 거기서 이제 밥을 먹는데 눈칫밥 먹는 일이 시작된거예요.
-네 그 당시에 뭐 가정교사 같은것이 많이 있었습니까?
-아주 드물죠.
-네
-웬만한 사람은 가정교사 안하구요.
-네
-또 웬만해선 가정교사를 불르지를 않았는데 인저 그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하고나니까 여름방학 한달 하고 나니까 그때 돈으로 5원을 주세요.
-네
-근데 그때 돈 5원이면 참 큰돈입니다. 에 그래서 그것을 갖다가 고스란히 봉투째로 이제 선친께 갖다드렸죠.
-네
-이 버릇이 생겨서 제가 그 후에 이제 사회에 나와서 봉급을 탈 경우에도 제 손으로 뜯어본 일이 없습니다.
-네
-꼬박꼬박 이제 그대로 갖다드려서 그래서 그 버릇이 생겼는지 요새 제가 이런얘기를 했어요. 내가 첫번 세비. 국회의원으로 첫번세비를 타면은
-네
-이건 청주시민이 낳아준 갓난애기같은 최병길이니까
-네
-그 세비를 청주시민앞에다 갖다 바치구서
-네
-지가 이제 국회의원 처음으로 세비를 탔습니다. 어 여기 갖다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좀 해고싶다 하는 생각을 가진건 아마 어려서부터 커온 그런 그 버릇이 오늘날 그런생각을 자아내주는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되네요.
-네
-그러니까 청주보고 당시에는 또 군사교육같은건 어떻게...
-아 교련이라구요, 그 굉장했습니다. 에 일주일에 아마 제 기억으로는 너덧시간 하지 않았나
-네
-그래서 요전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형군 군이 교련은 아주 일등 젤 잘했거든요?
-네
-그래서 저 친구 아마 크면 군인 될거다 하더니 나중에 아닌게 아니라 육군사관학교를 들어가데요.
-네
-근데 이제 교련을 하는데 저는 이 열심히 해야될건 열심히 해야되는데 이 교련때는 아주 그 뭐라그러나요 그 게으름을 피우고
-네
-그 우스게짓을 많이 했습니다. 근데 이제 주욱 운동장에 서있으면은 여름철에 그 개구리
-네
-그걸 몇 마리 잡아가지고 이 저 주머니에다 넣어요.
-네 하하
-넣어가지고 하하 앞줄에 앉은 사람한테 개구리 슬그머니 등밑에다 늡니다.
-하하하
-그러면 이제 놀래뛰고 야단이 나고 그래가지고 교련시간은 그런 진범인을 잡는바람에 시간이 다가고 그바람에 교련은 하나도 못해요. 허허허허
-오늘은 그 청주보고 다니시던 얘기를 들었습니다.

(입력일 : 200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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