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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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이사람에게 듣는다
외항선원 이성근 - 제3회 탈북 위해서 외향선에 오른 사람들
외항선원 이성근
제3회 탈북 위해서 외향선에 오른 사람들
1971.06.09 방송
‘이 사람에게 듣는다’는 화제의 인물을 초대해 살아온 이야기를 대담으로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어제는 그 이성근씨가 사시던 남포시 얘기를 좀 하다 말았습니다만 그러니까 이성근씨도 아파트에 살고 계셨다구요?
-네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부엌하나 방 하나 정도의 아파트 그러면 식구가 이제 5명이라고 그랬죠?
-5명 이랬습니다.
-네 그 벌이는 어떻게 부부가 다 벌이했습니까?
-예 저도 직장 생활하고 처도 직장생활하고 북한에서는 대부분이 다 부부간에 직장생활합니다.
-네
-뭐 거의 다 직장에 다 나가야 또 살게끔 되있으니까 그렇게 안하면 또 곤란합니다.
-이성근씨는 외양선도 타고 수입이 좋았겠습니다.
-예 외양선 타는 기간에는 수입이 괜찮았습니다.
-네 얼마나...
-한달에 그저 북한에서 내 한달 월급으로써 나오는게 그러니깐 그건 북한이 주는게 아니죠. 지금 북한이 주는게 아니고 폴란드가 우리를 채용한 형식으로 주는거기때문에 폴란드에서 주는 형식으로 우리가 받았기때문에 월급을 좀 더 받죠.
-네
-원래 북괴가 노동자들의 노임을 그렇게 많이 주지 않습니다.
-네
-한달에 그저 270원 내지 300원 받았습니다.
-아 300원이나...부인의 수입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 처는 24원 받았습니다.
-어떤일을 했는데요?
-상점 판매원 했는데
-네
-상점 판매원 할때 24원인가 받는거 지가 알고 있었는데 그 다음에 다른 직종으로 간다면 지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그 보통 2,30원 받는건가요? 월급이
-여자들 그저 보통 그저 상점 계통은 더구나 어려움이 잦거든요?
-네
-왜 그런가하면 그 뭐좀 이래저래 집어 먹는게 있다고 해서 그런지 아무튼 노임이 참 적고 그 다음에 조금 많다는것이 3,40원씩 됩니다.
-아
-30원 내지 40원
-그 이성근씨는 외국에도 자주 다녀서 그러는데 집에 가재도구는 어떤것이 있습니까? 큼직한걸로는요.
-외양선 타면서 돈 좀 많이 받았기때문에 그저 집에
-테레비도 좀 있구요?
-테레비가 뭡니까? 테레비 같은건 생각도 못하구요.
-네
-그 재봉하나 겨우 사왔습니다.
-네 그 다음에 장농같은것은 어떻습니까?
-장농같은것은 북한에 만드는데도 없습니다. 만드는데도 없고 그 나무 판때기 ..같은거 가지고서 그 옷장이라고 해가지고 만들어 파는거 있죠? 그런거 그것도 사진 못합니다. 그건 어떻게 해서 하나 배정받아야지. 뭐 상점에 여기 우리 대한민국처럼 아무데나 가서도 그저 돈만 내면 살수있는 그런 그렇게는 안돼있습니다.
-네 그러니까 부인도 이제 점원 노릇을 하고 하면은 식사는 어떻게 만드나요? 저녁식사같은거
-그게 문제죠. 우리 아이들이 다 그래서 모두 병걸렸는데 아이 서인데 둘은 병걸렸는데 전부 상점계통에서는 아침8시에 나가면 밤 11시에 들어옵니다.
-네
-11시 내지 12시
-네 그러니까는 저녁식사는 아이들끼리 있고 그러니까 다 굶어 자지요.
-아
-나는 외양선 승선 하기 전에도 배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배에서 일찍 식사를 하니깐 난 일없었는데
-네
-그 처가 늦게 들어오다 보니까네 아이들은 저거끼리 놀다가 저녁때만 되면 하루종일 고단하게 놀았는데 쓰러지니까 잠들면 저녁 못먹고 잠들면 말죠.
-네
-그러니까 그저 아이들도 다같이 핏기없이 자라고 모두 그저 배탈아니면 그저 소화기능은 다 버려 생활합니다.
-네 그러니까 남포시에서 이제 살고 계시면서 뭐 일어났던 알려지지않은 사고 같은것이 있었으면 좀 얘기해주시죠.
-네 그런게 좀 많이 있습니다. ...하게 되면 아 50, 67년도.67년경에 이제 어떤 그 남포시에서 그 삐라 사건이죠.
-네
-삐라 사건들이 아마 수차 일어났습니다. 그런게
-네
-아마 한 2, 3차 일어난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그때 남포 한 당의원에 의원님이 당세포 비서 사업을 하면서 있었기 때문에 안전부에서 그런걸 가지고 이제 이걸 잡아야될때 대한 그런걸 토론하기때문에 거기 참가를 더러 해버리는데
-네
-어떤 내용으로 하는거인가 하면 그 북한에서 이 결혼이라는게 그 남녀간 결혼이 지금 마음데로 할수 없거든요.
-네
-아무리 자기가 마음에 든다 해도 당의 승인받지 않고는 못하게 되있습니다.
-네 네
-그러니까는 그로부터 일어난 어떤 젊은층들이 아마 그런걸 쓴거 같습니다.
-아
-무슨 결혼의 자유가 없느데에 대한 그런 불만에 관한걸 적은 그런 삐라가 한번 나돈 일이 있었고 그 다음엔 이제 가장 중요한게 식생활이거든요.
-네
-어디가서 정말 먹질 못하고 병걸리고 그런 형편이니까 이 식생활. 너희들이 혁명을 혁명혁명하는데 혁명을 할래도 사람이 먹어야 할게 아닌가 하는식으로 이제 그 배고파 못견디겠다는 그런 삐라가 한번 나붙어있는일이 있었고
-네
-그 외에 청진에서도 무슨 그런 삐라들이 들어난 일이 있는데 그 내용자체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삐라들이 각지에서 일어난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네
-그런일들이 있었고 그 다음에 남포항에서 어 68년 여름이죠.
-네
-68년 여름에 남포항 부두노동자들 중에서 6명이 ..에서 구성된 멸공단. 그러니까네 공산당을 멸공 멸망시키겠다는 그런 뜻에서 이건 멸공단이라는게 한번 조직된 일이 있었습니다. 조직된 일이 있었는데 그게 결국은 근대화 하기위해서 한 사람이 그 변질자로 인해서 결국은 붙들렸죠.
-오
-그사람들의 그 그것도 비밀적인 그걸로써 제가 이제 당의원회에서 들었는데
-네
-내용은 뭐가 하게 되면 그사람들의 목적은 남포시에 있는 그 중요한 소위 간부들 모조리 없애 치우고
-네
-그 다음엔 남포에 그 와우도수산회라는게 있습니다. 고기잡는 그 협동조합인데
-네
-거기 배를 이제 무장있는배 하나 탈취해가지고 대한민국으로 월남하기 위한 그런 계획이 다 짜여져 있었거든요.
-네
-그런데 결국은 붙들려가지고 모두다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근데 대체로 몇살...
-대체로 그저 30...33세로부터 그 이하죠. 33세...이십한 오륙세부터 33세 정도까지 그 층들이 지금 그런 사람들이 그런 조직들을...
-그중에 이제 배신자가 있어서 적발이 됐군요.
-그렇습니다. 그런일이 한번 있었고
-근데 삐라 이 살포같은 것은 범인이
-잡지 못했죠. 못잡았습니다.
-그러니까 삐라라는것은 큰 종이에다가 포스타같이 써서...
-포스타같이 써서 크게 해서...
-어디 벽에 붙히는...
-밤중에 갖다가 붙혀놓고 도망가곤 하죠.
-네 그러니까 잡기가 참 어렵겠죠.
-어렵죠.
-...무슨 교포들 생활은 어떨까요?
-그거 좀 말씀 드릴거 있는데
-네
-교포들의 생활이 지금 말이 아닙니다.
-지금 교포들이 내 기자회견때도 말씀 드렸지만
-네
-교포 생활이 지금 보게되면 자기네 올때야 짐은 많이 가져왔지요.
-네
-근데 지금 그거 다 팔아먹고 알거지 됐습니다. 지금 생활이라는게...정말 뭐 알거지됐다시피해서..에 그 사람들이 다 잘먹고 펴안하게 살던 사람들이 북한 땅에 와서 저런 그 쩌들은 생활을 하자니까
병이 안걸릴수 없죠.
-그렇죠. 네
-그래서 우리 보게되면...우리 내가 승선하던 그 탈보드 그 ..내에선 갑판장의 아버지는 지금 그 올때는 아주 건강한 사람이였는데 북한에 와가지고 술잘먹던 사람들이 술 못먹지, ..에 먹던 사람이 지금 강냉이 밥만 먹고 살자니까네 지금병이나서 무슨 병인지 반신불수됐습니다. 마지막에
-네
-일도 못하고 있는데 그런형태죠. 사람들이 다
-네 그러니까 외국선박들이 들어오면은 좀 도망을 갈까 하는생각들도 가끔 하겠습니다.
-네 그렇죠.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도저히 무슨 다른방도가 없지요. 반항을 해야 뭐 죽기 마련이고...그러니까네 죽으면 죽고 마지막으로 그 젊은 사람들이 더러 모험하는 그런게 있습니다. 그 어떤것들이 있는가 하면 어 60...68년 11월달에 노르웨이 선박이 하나 남포항에 있다가 나간게 있었는데
-네
-그 배가 이제 일본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을 가게 됬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이제 유리공장에 있는 여자 한사람하고 교포입니다. 교포한명 남자교포한명 그 다음에 또 본래 북한에 있던 사람 한명 이렇게 세명이 짜구서 일본으로 이제 도망가기 위해서 남포항에 있는 항 노동자중에서 한사람을 택해가지고 그 선박내용이란걸 알아서 가지고 밤에 그 쪽배를 타고 이제 외향선에 올라갔거든요?
-네
-올라가 탔는데 그 이튿날 안내원들이 배 들어올때 나갈때 전부 검사합니다.
-네
-그 검사에 걸렸단 말입니다.
-아 네
-그래가지고 결국엔 붙들렸는데 그 이 교포남자는 자기가 그 단도가지고 있던걸로 자기 배를 갈랐죠.
-어...
-그래 죽진 않았죠. 그때는
-네
-그렇게 해서 다 붙들려가서 다 처형되고 만 일이 있었고
-네
-작년에 아주 또 참혹한 일이 하번 또 있었습니다.
-작년 8월 20일날 내가 남포에 갔는데
-네
-8월 19일날 도착했는데 내일 무슨 공개제판한다 하는 말이 있더만요. 지나가니까
-네
-그래서 그 다음날 보니까네 공개재판 한다그래서 어디서 하는가 하니까네 오일경기장에서 한다그래요.
-네
-그 남포 오일경기장이라 하는거 하나 저쪽에 상비석정거장있는데...거길 갔죠. 가니까 남포시민이 한 삼, 사만명모였드만요.
-네
-각 공장기업소에서는 작업을 그때는 딱 중지시킵니다.
-네
-중지시키곤 그 직장별로 전부 때를 지어서 전부 참가시키거든요.
-네
-동에선 통장이 인제 그 주민들 싹 다 모아가지고 오고
-네
-그래가지고선 이제 하는데 그 교포...그것도 유리공장에 교포 한사람인데 교포하고 또 본래있던 그 북한 남자청년하고 둘이서 남포고등수산학교 부업선을 이제 탈출해가지고...
-네
-가기위해서 이제 그 부업선 탈출 하면서 그사람들이 부업선 탈출하자니까네 부업선에 있는 사람들 3명을 죽였단 말이에요.
-네
-죽이고 그 다음에 항해도 배하나 탈취해가지고 그래 승선하고서 한 두 어시간동안 항해하다가 그 붙들렸죠.
-아...
-그렇게 해서
-공개재판을 받게 됐군요.
-공개재판에서 총살식이 일어나요.
-네
-공개재판은 어떤 형식으로 합니까?
-공개재판이라는게 그저 다 모아놓고 사람들은 다 보는데서 하기때문에 명칭이 공개재판이죠.
-네
-그니까네 벌써 사형시킬거면 개안에 개안에 무슨 법이 있어도 법이 필요없죠.
-네
-북한에는 그 법인게 아니고 교시가 들어가니까 김일성이 교시
-근데 재판장은 누가 되구요?
-재판장은 그 명칭상 재판소 재판장이 다 나오죠.
-네
-검찰서 검찰 다 나오고
-나오고..근데 이제 김일성 교시 가지고 죄목을 따지나요?
-그, 그런 아니 원칙은 교시가지고 집행하지만 그런데서 그 재판같은거 할때는 형식상 이제 그 뭐인가...법, 법이라는걸 내놓고 하죠.
-네
-그래가지고서 그날 시민앞에서 총살시키더만요.
-근데 검사의 구형이라던지 뭐 이런것이 있습니까? 구형이 있고 뭐 원고가 있고
-다 있죠. 형식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네
-그러나 그 내막 뒷면에는 김일성이 교시라는게 딱 붙어가지고
-정해논거가 있고...
-그럼요. 거의 정해져있는 그런거 가지고 법이란건 그저 연극 각본식으로 밖에다 그저 내놓는 식으로밖에 안돼죠.
-네 이제 그렇게 판결을 내리고 하면은 그 관중들이 뭐 찬동하고 그렇게 되나요?
-그런거 없습니다.
-네 공개재판이라면...네
-옛날에 무슨 군중심판이라 그래가지고 그런것도 있었죠.
-네
-근데 그런거는 그런식으로 안합니다.
-네 공개재판이 끝난다음에 그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했어요?
-그렇게 하죠.
-네
-목적이 저 아들이 이제 그런 그 군중들에게 공포심을 느낌으로써 자기네들의 독재 이런걸 더 강화하자는 그런 목적이니까
-네
-목적이 그거니까 그래 사람들 많은데서 이렇게 쏴 죽여내깔려야 앞으로 이런 행동하면 너희들도 죽는다는 그런걸 보여주자는 목적이니까
-네
-그래서 그런 짓들을 하죠.
-네 그러니까 최근에 그 남포시에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돌이켜서 이제 6.25 전쟁당시에 이성근씨는 아마 참전했던거 같습니다만 군에는 언제 들어가셨습니까?
-에 1950년 9월달에 이제 정직 내가 이제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상면 그 천막광산이라는게 있습니다.
-네
-그 광산에서 근무하다가 9월달에 정식 거기서 ...을 받고 떠났죠.
-네 그러니까 전쟁이 50년 6월 25일이니까 9월달 하면 한 서너달 뒤에
-서너달 뒵니다.
-네 훈련을 받게 되나요?
-그때 떠나서 제가 초기에는 에 안주입대해가지고 처음에는 어디 입대 했는가 하면 박대포부대인가 거기 입대했습니다.
-네
-거기 입대해가지고 이제 평안까지 이제 나간다는 목적을 가지고 나가다가
-네
-에 숙청까지와서 그때 한번 도주했습니다. 제가
-네
-그 뛰어서 다시 후광으로 갔죠. 다시 후광으로 갔다가 집에가기 한 삼십리밖에서 체포됐습니다.
-네
-체포되서 그때 19살이니까 내만..얻어맞고 용서 받았습니다.
-네
-용서받아가지고 다시 입대했죠.
-다시 입대한다는게 어디 입대했는가 하면 구일산군부대라고 자동차운전수 양성하는 부대 거길 입대했습니다. 입대해서 자동차 기술을 그때 배웠죠.
-네 얼마나 훈련 받았습니까?
-거기서 10월 6일부터 받는거 12월 28일날 이제 중국에 후퇴들어갔다가 거기서 이제 28일날 완전히 졸업하고 나왔죠.
-네
-나와서 평안근방에 있는 자동차 운수연대 54육군부대라고 자동차 운수연대에 이제 거기에서 자동차 운전수로써 그때부터 근무하기 시작 하다가 한다는게 이제 51년도에 51년 내 그때 하여튼 요 서울에 한번 왔댔습니다.
-네
-서울에 한번 오니까네 그때 인천에서 전투가 났더만요.
-네
-인천에서 전투가 난걸 보고서 와서 하루...아침에 도착했다가 저녁에 낮잠 낮에 잠자고 저녁에 또 차 몰고 들어갔죠.
-네
-그렇게 한번 왔다갔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이제 북진 됏다가 1.4후퇴때 아마 서울에 오신 모양이네요.
-그럼요. 네 그때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운전교육 받을적에는 이쪽 국군이 북진하기때문에 만주까지 들어갔어요?
-네 중공 그 압록강 싹 건너는데 그 안동이죠.
-네
-안동에서 한 30리 떨어지는데 구령이라는데 거기가있습니다. ..이 아닌
-거기서 훈련 받으신거예요?
-네 거기서 받았습니다.
-네 그 만주구경도 하신 셈이네요?
-네 만주구경도 했죠.
-네
-그러면서 이제 다시 국군이 후퇴할 당시에 주로 운전하구선 서울에 왔습니까?
-네 주로 운전해가지고 폭탄 싣고서 그때 서울까지 왔다갔다 했습니다.
-네 그때 운전하던 트럭은 어떤겁니까? 소련제인가요?
-소련제이죠. 전부
-네
-가스50이래는 차. 그건 그렇고...
-네 서울에 오니까 그때 어땠습니까? 지금하고 많이 달라졌을텐데요?
-아 그때야 뭐 모두 파괴되고 서울에 사람이라는거 한명 없드만요.
-네
-사람하나 없이 그저 그안에 그 해군들만 있는거 그저 그속에 같이 있다가 왔죠.
-네
-사람이라는건 전혀 없드만요.
-그러니까 거리엔 사람들도 없고 폭격때문에 많이 집이 상했죠.
-뭐 집이라는거 거의 다 파괴되고 없고 중앙청이 있잖습니까? 중앙청.
-네
-중앙청에 내가 들어가봤습니다. 그때
-네
-그 다 비어있는 집인데
-네
-한번 구경가자그래서 거기..에..하고있는 그 군관이 구경가자고 그러더만요.
-네
-그사람따라서 가니까네 이제 중앙청이라고 그러는데 지금 가서 보니까네 그 위에 둥그런거 있잖습니까?
-네
-그 모습을 알아보겠더만요.
-그렇죠. 그때 그 중앙청이 중간에 폭격당했었는데요.
-예 하여튼 그 50%압니다. 51년도의 일이기 때문에
-지금 그 당시 서울 뭐 상상이 가십니까?
-그 당시 서울...지금이야 뭐 서울은 서울하면 난 지금 그 맛이 나도 초기왔을땐 내가 이거 한국이 아닌거 같다는거 같다는감이 강합니다. 너무나도 그 상상 이외의 것들이 많기때문에
-네
-그 뭐 고가도로를 비롯해서 그 크고 작은 빌딩들이라든가 그 다음에 주민들이 그 옷차림이라든가 이런거 이 모든걸 볼때 마치 나도 무슨 외국에 오지..발전 된 무슨 외국에 오지않았는가
-네
-그런 감을 전 느껴지곤 합니다.
-네 그 서울에서 하루 묵고 올라갔어요?
-그때 왔을때는 그저 아침새벽이면 도착하거든요. 밤에만 운전하니까
-네
-밤새 와가지곤 이제 새벽에 도착합니다.
-네
-새벽에 도착하면 낮엔 또 잠자야죠. 낮엔 잠자고 저녁 싹 해만 지면 그때 또 떠나죠.
-낮엔 폭격때문에 밤에만 움직이는군요.
-네 밤에만 움직였습니다.
-네 6.25 당시 참전해가지고 트럭운전병으로써 서울에 왔던 얘기로써 오늘 끝맺겠습니다.

(입력일 : 200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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