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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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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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 정인섭 박사
제31회
정인섭 박사
1965.09.12 방송
- 안녕하셨습니까? 선생님.

- 예.

- 정 박사님 댁 찾아뵙게 된다 하니까 조금 긴장도 했었는데요. 이렇게 온 가족이 단란하게 모인 걸 보니까

저도 좀 가족적인 분위기에 젖어서요. 마음이 참 흐뭇한데요. 사모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자제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 전부 여섯입니다.

- 예.

- 여자가 넷이고 남자가 둘이고. 그렇습니다.

- 네, 지금 이 자리는 다 함께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 우리 아이가 셋이고 조카가 하나 있고. 같이-.

- 네. 나머지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 어, 큰딸하고 둘째딸은 미국에서 살림을 하고 있구요. 거기서 유학하다가 결혼했어요.

- 네.

- 그리고 아들은 인제 영국서 조우선 공과대학을 나와 가지고 어, 덴마크에서 한 3년 근무하고 있다가

10년 만에 한국 나온 지가 아마 한 지금 한 5,6년 됩니다. 지금 부산의 그, 대한조선공사요. 거기 선박부 차장을 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 저 따님들은 셋째따님, 넷째따님, 그러시겠네요.

- 네네.

- 막내아드님하고.

- 예.

- 저 조카분이라고 들었는데요.

- 예예.

- 네. 저, 따님 중에 누가 미술을 전공하는 분이 계신지... 접시에 페인트가 묻어 있는데요.

- 예예, 제 딸 중에 막내딸이죠. 넷짼데요. 이화대학 생활미술과 지금 1학년입니다.

- 네, 셋째따님은 무슨 전공을?

- 저...

- 수학을 전공하고...

- 네, 아주 머리가 좋으신 분인 것 같구요.

- 거, 아버지 닮아서 머리가-.

- 아, 네에에.

- 좋습니다.

- 박사님, 미국에 가셨다가 오신 지는 얼마나 되십니까?

- 그러니까 작년 8월에 갔다가 금년 8월에 왔으니까.

- 네.

- 꼭 1년이 됩니다.

- 네, 그럼 막내아드님이 가장 식구들의 귀여움을 받을 텐데요. 아버님 안 계실 동안에 어땠어요?

- 글쎄요. 아버님이 안 계시니까 조금 집안이 빈 것 같고요. 좀 그렇죠, 아무래도.

- 아하하하, 좀 쓸쓸했던 모양이에요.

- 내가 없으니 잘 있죠?

- 아하하하.

- 가끔 내가 야단도 치니깐요. 없으니까 좋아했을 런지 몰라요.

- 그러니까 아버님이 안 계실 때 가장 뼈저리게 아버님의 사랑을 느꼈던 모양이에요. 아주 쓸쓸했다고 얘길 하시는데요.

그러면 미국에서는 1년 동안 계신 것 같은데요.

- 예.

- 미국엔 어떻게 가시게 됐습니까?

- 글쎄, 나도 별 기대 안 한 건데 이, 국무성에서 미국 학생, 대학생에게 동양, 특히 한국. 동서문학 비교, 이런 방면을 많이

가르켜줘야 하겠다고 사람을 인선하는 데 내가 뽑혔던 모양이라요.

- 네.

- 그게 갑자기 작년 6월에 그런 말이 있어 가지고 그럼 내가 1년 유하겠다고들 그랬더니 아주 수속은 쉽게 되구요. 뭐,

국무성에서 정식으로 초청을 한 거니까 그래서 네 대학에 두 달씩.

- 네, 무슨 강의를 하셨어요?

- 에, 어떤 학교에서는 이스트 앤드 웨스트, 동양과 서양이라-.

- 네.

- -하는 그런 제목이니까 마, 동양일체의 문화와 서양문화의 비교-.

- 네.

- 내가 아마 원래는 전공이 영문학, 영어영문학인데 그 뒤에 한글학회에 내가 옛날에 사건에도 관계된 사람입니다마는

우리 국어국문학을 또 해왔죠. 그러니까 자연히 에, 비교문학, 원래 한국서 내가 해외문학파랑 그걸 시작한 사람입니다.

- 네.

- 자연히 그 방면이 됐고 또 어떤 대학에 가니까 그냥, 에이전스 더 데이, 아세아 연구라는, 그런 강의제목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대학원하고 학부하고 대개 두 방면에, 그러니까 뭐, 힘껏 그 중에 한국자랑 제일 많이 했죠.

- 많이 하셨어요.

- 네.

- 근데 미국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요? 반응, 첫째, 이 한국에 대해서는 원래 이해가 대단이 적어요.

- 부족하겠죠.

- 네, 부족하고 그냥 중국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 이렇게 으레 거리에 다니면 묻고요.

- 네.

- 그러나 한국이란 게 에, 있다는 것을 참, 그 중에는 뭐 어디에 있느냐 해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아요.

대학, 소위 대학생인데 그렇게 그 무관심하고 다시 말하면 그 나라가 크고 뭐, 과업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가 벌어서 공부할 수 있고 취직은 으레 문제없이 되는 거고. 아니, 뭐, 그렇게 고민이라든지, 인생문제라든지

뭐, 사회에 나가서 어떻다. 특별히 무슨 정치외교과나 이런 전공이 아닌 학생은 일체 뭐-.

- 외국에 대한 무관심-.

- 네, 외국에 대한 무관심이고 하니까 거기에 내가 채찍질을 했습니다.

- 네네.

- 한국을 모르면 세계를 모른다. 그런 논법으로-.

- 예, 아주 좋은 강연을 하시고 오셨는데 미국 학생들하고 접촉하시는 동안에 태도를 보셔서 아시겠지만요.

거 미국 학생들의 강의 듣는 태도, 그러니까 미국 학생들의 학구열과요. 우리 한국 학생들과 비교하실 때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 그 사람들 내 보기엔 학생생활에 관심이 반은 뭐, 공부를 하는데 게, 게.. 공부 안 하는 학생도 많이 있죠. 허나 하는 놈은

상당히 합니다. 근데 그 제도가 달라서 선생님이 강의한다, 단순한 이게 아니고요. 미리 책을 읽어 와서 디스커션 하는

거라요. 준비할 게 많아요. 그러고 뭐, 써오라는 리포트.

- 네, 리포트.

- 그러니까 사실 공부는 더 많이 하는 거라요. 네, 그 점은 뭐, 설비가 좋고.

- 네.

- 도서관이라든지 뭐, 실험 시설이 좋다든지 또 기숙사 설비가 좋고 또 겨울이라도 추운 줄 모르게 방이 따시고

이, 여름이 되면 아주 냉방장치가 돼서 언제 봄이 가고 여름이 간 줄 몰라요. 그렇게 되니 마음이 편하잖아요.

- 네.

- 그러고 취직 걱정 없고.

- 네.

- 그러니까 강의하는 것이 아주 참 천진했죠. 여기 학생같이 우울하게 그런 표정 절대 없습니다.

- 네.

- 그리고 도중에라도 손 들고 뭐든지 모르면 그냥 이렇게 손 들고-.

- 질문하구요.

- 예, 그렇게 하는 그런 점이 퍽 좋구요. 천진해요.

- 네.

- 그리고 한 주에 시험을 한두 번씩 뭐든 치는데 거기에 조금도 뭐 이이가 있을 수 없죠.

그, 그것이 공부라요. 그 사람들은.

-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는군요.

- 절대 시험이라, 다시 말하면 여기에 말한 시험 같은 것도 있고 또 책 읽어서 적어오라는 거.

- 네.

- 시간의 강의라는 게 반은 그냥, 책 읽어오는 데 대한 서로 문답이라요. 선생님하고.

- 책을 읽어오지 않으면 잘 모르겠네요.

- 안 읽으면 잘 모르죠.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니까요.

- 네.

- 그러니깐 그거야 뭐, 그렇게 읽고-.

- 그러니까 도서관에서도 읽을 수 있는 책이 충분히 많죠.

- 충분히 있죠. 뭐, 얼마든지.

-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다 완전히 돼있는 거네요.

- 참고서라고 해서 선생이 아무아무 책이 필요하다 하면 강의하다, 열 권이나 스무 권이나 여러 고삐를 말이죠.

그 도서관의 수속 없이 마음대로 뺄 수 있게-.

- 네.

- 고 자리가 잡혀 있어요. 언제든지 가서 그냥 그것을 읽을 수 있다구요.

-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학생들이 다른 사회에 대한 관심도 적구요.

- 음.

- 또 모든 조건이 완전히 갖춰져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갖고-.

- 정치에 대해서는 문제가 역시 일반 대중 학생들은 관심이 적고-.

- 네.

- 특별히 그 방면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있어요. 더러. 흑백, 흑인문제.

- 인종차별 문제요.

- 예,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내가 있는 내 대학에는 차별문제는 없어요. 없지만 실제 생활에 들어가면

역시, 조금, 이렇게 분위기로는 차별이 있는 것 같애요. 다시 말하면 남자, 여자 연애하는 거 보면요.

흑인 학생은 역시 흑인 여자들하고 역시 데이트하러 다니고 이러지. 흰 사람, 검은 사람이 아마 연애한다든지

그런 건 한 번도 본 일이 없어요.

- 네.

- 역시 그게 자유, 뭔지 간에 뭐 있는 것 같애요. 워낙 형식적으로선 절대로 그런 차별이 없죠.

꼭 같이 않지마는 그 점에 관해서는 역시 좀 있는 것 같애요.

- 네.

- 그리고 저 남쪽에 가면 그게 심하죠.

- 심하다고요.

- 네, 심하죠. 다음에 인자 학생 공부는 정도고요. 그 다음에 학생 관심이란 건 뭐냐면 그 남녀관곕니다.

- 네.

- 특히 남자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동기가 뭐냐면은 십중팔구는 그냥 배우자 고르는 거라요.

- 아.

-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서 대학에 고르기 위해서 대학에 온다는 것이 목적의 태반이라요.

- 네.

- 그러니까 아주 필사적입니다. 여자들이. 자기 다니는 동안에 잠깐 골라잡아야 하거든.

- 네.

- 그러니까 아주 여러 보이프렌드가 많이 있구요.

- 네.

- 또 남자도 걸프렌드가 많아요. 그런데 그 중에서 잘 접촉이 되는가 봐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선 참으로 프리죠. 예.

- 그럼 졸업증과 함께-.

- 예, 대략 하나씩 잡아서-.

- 대략 하나씩 데리고.

- 네, 배우자 하나씩 데려와 붙이는 모양 같아요.

- 네, 아주 재밌는 얘기였습니다.

- 예.

- 근데 미국에서는요. 뭐, 학원의 자유 보장 문제니, 학원의 자유화나 자율성 때문에 뭐, 문제가 되거나 논의되는 일은-.

- 일체 있을 수가 없죠.

- 네.

- 그야말로 고거 뭐, 언제든지 자기들이 뭐 토의할라면 하는 기고 일체 거기에 대해서 내가 갔을 때, 작년에 대통령 선거 때-.

- 네.

- 학생 역시 민주당 있고, 공화당 있어요. 인제 그 패가 이래 갈려가지고 또 토론을 합니다. 선생도 그렇고요. 패가 갈립니다.

그래도 여기같이 무슨 특히 그렇게, 무슨 그렇게, 싸움하듯이 하는 토론이 없어요. 그냥 술술 자기 의견만 말하고. 그저 양쪽에 토론을 하고.

또 이쪽 편은 거기서 무슨 연설하러 온다 이러면 학생들끼리 선전을 해가지고 들으러 가죠.

- 네.

- 또 후원도 하구요. 양쪽에서 그렇게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뭐 학교 안에까지 들어와서 연설도 해요.

- 네.

- 후보자들이요. 내가 갔을 때는 그, 저, 골드부타가 그 근처에 왔더군요-.

- 네.

- 그러고 그때 지사가, 요 다음에 후보자 말 잇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학교 캠퍼스까지 왔더라구요.

그래서 연설하고 학생들은 막 손뼉치고 듣고, 야단들이에요. 반대하는 놈도, 반대하는 놈도 딴 사람 안 하구요.

그냥 이래 간판같이 막대기 해가지고 꼭 그 사람이 왔는데 반대하는 그저 그렇게 반대하는 글자만 써서.

- 플랜카드로 들고-.

- 또 이렇게 드는 것뿐이라요. 들고 빙글빙글 웃지, 뭐.

- 적의가 풍기는 것도 아니죠.

- 싸우는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 네. 미국대학 교수들의 생활수준은-.

- 생활수준은 내 보기에는 지금 교수 격이 되면요. 일 년에 연봉이 만 불에서 일 만 오 천불이니까

내가 만 불만 잡아서, 만 이 천불쯤 잡으면 한 달에 천 불이거든요.

- 네.

- 천 불이면 삼 십 만원입니다. 여기.

- 한 달에 삼 십 만원-.

- 네네. 한 달에 삼 십 만 원이요.

- 아주 수준이 높겠습니다.

- 상당히 높죠. 그러니까 생활 걱정 없어요.

- 걱정이 하나도 없구요.

- 네네.

- 연구비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 연구비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요.

- 생활비 걱정 안 하고 학문적인 연구에만 몰두 할 수 있는-.

- 네, 그렇습니다.

- 조건이 갖춰져 있는 거군요.

- 네네.

- 참 부러운 얘깁니다. 오늘 이렇게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모이신 자리에서요. 앞으로의 가정의 희망이랄까요.

어떤 걸 갖고 계신지요?

- 내가요?

- 네.

- 그 우리 마누라하고 내하고 이래 고생을 했는데 인제 나이가 드니까.

- 네.

- 그저 여생을 어떻게 하면 그저 건강히-.

- 네.

- 잘 지낼 수 있을까. 요새는 어떤 때, 젊은 시대에 둘이 기쁘던 시절로 신혼여행 비슷한 기분을 말이야, 가져 볼라고

그러는데요.

- 네.

- 바빠서 도무지 뭐 떠날 생각을 안 합니다.

- 네.

- 그게 걱정이구요. 그 다음에 나머지 꼬마 셋 있구요. 조카 하나 저래 집에 와서 있는데 저 애 넷을 다

좋은 사람을 골라서 말이에요.

- 네.

-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데 제 아내는 그거 당신 마음대로 안 됩니다. 저 멋대로 하면 다 된다 이러기에

한국 사람은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좋은 집안이 있으면 우리가 사교를 해서 내 생일이라든지 이럴 때에 그쪽 아이들도

불러가지고 말이죠. 집에서 불러 갖고 사교를 하면 어떠냐, 난 이렇게 자꾸 주장하는데요. 아직도 마누라는 조금

봉건적 사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네네.

- 그래서 큰 걱정입니다.

- 사모님은 어떠십니까?

- 아, 저, 아이들 이 다음에 혼담 그런 거 말이에요. 근데 큰 아이들 경험으로 봐서요. 부모가 암만 좋은 자리

말해줘도 자기네 마음이 맞질 않으면 할 수 없구요. 결국은 자기네들이 골라서 자기네 마음이 맞는 사람하고 됩디다.

그래서 이 아이들도 말이지. 결국 우리 마음대로 안 될 것이다, 난 그렇게 얘기했어요. 뭐 과거의 경험상 도저히

안 될 것 같애요. 그래서 지 팔자지 할 수 있나 그랬습니다. 아하하하.

- 어머님, 아주 자유방임주의신 것 같은데 저 따님은 어떻습니까?

- 아유, 아하하하.

- 무척 수줍어하시는 것 같은데 이 기회에 아버님 어머님 계신데 의견 좀 얘기해보십쇼.

- 뭐, 두 분 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신데요. 아하하하, 글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 네, 여러 가지로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 예, 감사합니다.

(입력일 : 201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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