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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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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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방문 - 서예가 김기승
일요방문
서예가 김기승
1972.01.09 방송
(음악)

일요방문.

(음악)

-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즐거운 가정과 화제의 모임을 찾아서 얘기의 샘틀을 마련하는 일요방문 시간입니다.

오늘은 대성연수원 원장이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숙명여대 미대 전임강사이신 서예가 원곡 김기승 씨 가정을 찾아봅니다.

(음악)

- 새해 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 아, 네.

- 올해 들어서 뭐 좋은 꿈 꾸시고 좋은 계획 가지셨는지 모르겠어요.

- 예, 나로서는 해마다 갖는 계획인데요.

- 네.

- 4월 달에 이제 서숙전을 갖게 돼요.

- 네.

- 금년 서숙전은 특별히 15회입니다. 1회라든지, 10회, 15회 이렇게 따지잖아요? 그래서 15회인만큼 아주 좋은 서숙전을 가질 라고 선전도 많이 하고.

- 네.

- 또 제자의 질도 많이 올라갔으니까 좋은 작품을 제자들로 하여금 소개시킬려고 지금 노심하고 있습니다.

- 적선동에... 여기가 적선동이죠?

- 네, 여기가 적선동이죠.

- 네, 3층집으로 들어오면서 역시 그, 서예 하시는 김기승 선생님 댁이구나 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이 방송하기 전에 3층에 그, 선생님, 거기 서예실이라고 그러나요? 어떻게 되나요?

- 네. 서예실이죠.

- 네, 아주 그, 웅장한 작품들이-. 아하하, 제가 감탄사를 바라면서 쳐다봤는데요.

- 예.

- 선생님 작품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아요. 그 안에, 거의.

- 에... 내가 사실인 즉은, 저, 8.15해방 후에-.

- 네.

- 상해에서 나왔어요. 나 왔을 때는 좁은 가방 하나 가지고 와서 아, 인제 집을 장만하고 또 우리 마누라는 애들 데리고 다 이북에 있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이북에서, 우리 마누라 의산데 개업하겠다 여기 와서 개업하게 되고 작품전을 그러니께, 에, 개인전을

열두 번을 하고 또 서숙전을 열네 번 하지 않았어요? 또 국전 1회에서부터 20회까지 쭉 심사위원 내고 특선도 한 일도 있지 않았어요?

작품이 산같이 모였어요. 근데 내가 소망했던 게 뭔고 하니 개인전 할 때 가령 작품을 준비해놓고 저이 때 올 때는 작품들이

왜 당신 혼자 갑니까? 하는 뒤에서 말소리 같은, 글씨가 나를 부르는 그런 느낌들이 있었어요.

- 네.

- 내가, 죽기 전엔 내가 내 서실을 만들어놓고 보고 싶어 할 때 그 작품을 보자, 이게 숙원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한 7,8년 동안 근검절약해서

돈을 모아가지고. 내 작품은 아까 보셨다시피 큽니다. 그래서 6미터 높이의 집을 짓지 않으면 도저히 걸 수가 없어요.

- 네.

그래서 작년 5월 달부터 시작해서 한 5~6개월 걸려서 저런 집을 만들어놓고 내 마음대로 내 글씨를 보고 싶어 할 때는

올라가서 한 바퀴 빙 둘러보면 옳지, 나도 이렇게 근 10여 년 동안, 근 20년 동안 모았던 작품들이 옳지, 니가 나를 지금에서야

봐주느냐. 다시 말하면 가령 내가 꽃도 많이 기릅니다만 꽃 기르는 데 가면 아침에 가서 꽃이다, 잎이다. 물을 품어 줄 때 꽃하고

입 맞출 때 꽃이, 아, 왜 오늘 늦게 왔소? 일찍 왔소? 하는 꽃하고의 대화를 나누거든요. 마찬가로 내 글씨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참, 퍽 기쁘게 생각해요.

- 그래서 흐뭇하시겠어요.

- 네, 그 방을 제가 둘러보니깐요. 어느 자그마한 박물관...

- 갤러리, 네 그렇죠.

- 아주 좋던데요.

- 네.

- 지금 저기, 언니는 나갔죠?

- 네.

- 언니하고 지금 미순 씨하고 어머님, 아버님. 네 식구가 이 3층 큰 집에-.

- 아하하하하.

- 집을 지키고 계신 모양인데. 미순 씨는 지금 학교 나가시죠?

- 네. 이화대학 기독교학과 1학년입니다.

- 아하하하, 지금 한창 좋으실 땐데 방학 중이라서 뭐, 쭉 쉬고 있죠? 집에만 계실 텐데.

- 네.

- 그 집은 방학 중에 신통한 것은, 아버지도 글씨 써야 되는데 자기도 글씨 써야 된다고 내가 쓰라고 말도 안 했는데.

- 네.

-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내가 글씨 쓰고 있으면 옆에서 시중 들어주고 글씨를 배워요.

- 그래요?

- 예.

- 글씨 실력이 어느 정도예요?

(사람들의 웃음소리)

- 아, 뭐, 아, 뭐, 한 달도 못 되니까 이 방학 동안에 배운다고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 뭐, 그거는 좀.

(사람들의 웃음소리)

- 아, 근데 제가 서예를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요. 원래는 아버지한테 굉장히 불만이 많았었거든요.

- 어떤 불만이 많았어요?

- 이렇게 집을 짓더래도 보통 친구들 보면요. 아버지가 굉장히 가정적이고.

- 네.

- 아이들을 위해서 굉장히 그런 게 많았었는데. 아버지는 아버지 뜻을 위해서 이렇게 큰 집도 짓는데

다 이렇게 보면은 다 하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불만이 많았었는데 그런데 인제 새해도 되었고

인제 대학교, 대학생 2학년이 될 그런 때가 왔는데, 그래서 아버지를 좀 더 이해해볼까 하는 그런

입장에서-.

- 그런 마음에서.

- 아하하하.

- 훌륭한 제자 한 명 생기셨는데요. 제일 측근자 가운데서.

- 아, 그런데 나는 이렇게 돼요. 저, 그, 어머님들이 와서, 어린애들을 데리고 와서 자꾸 가르쳐 달라고 그러거든요.

- 네.

- 국민학교 애들 안 받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받는데 그 아주 극성스럽게 어머니가 그, 애들을 자꾸 싫어하는 걸

가리킬려고 그렇잖아요?

- 네.

- 그래서 나는 내 딸이나 내 아들이나, 뭐 글씨를 배우라 배우라는 소리를 안 해요. 근데 이 애들이 이번에 집을 짓게 되는데

아버지 중심으로 집을 짓는다-.

- 네.

- 왜 가정적으로 않느냐, 그럼 너는 시집가면 가령 네 가정 가서 하지 나는 내 가정을 이루는데 내 취미대로 한다,

이래서 아마 불평을 털어놓는 것 같은데 그 불평이 나는, 나는 바르게 봤습니다. 왜 바르게 봤느냐. 물리잖아요.

그런 불평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얘가 글씨를 쓰게 된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 나로서는 서실을 만들어놓은 것이 얘를 위해서 잘됐다.

- 사모님은 글씨 잘 쓰지 않습니까?

- 아, 전 글씨 못 써요. 저는 재간이 없어요.

- 그래요? 아니-.

- 뭔가 집사람은 동경여자의과대학을 나왔어요. 그리고 일제시대에 거기 나오지 않았어요?

- 네.

- 그런게 참 의사로서는 뭔가, 산부인과를 한 20년 개업하고 있었고, 근데 그 학교 다닐 때 글씨를

굉장히 잘 쓰고, 그런데 인제 여기 와서 개업하고 나서 순전히 나를 내 글씨 조수로 들잖아요?

- 네.

- 아나운서가 보시다시피 그 긴, 6미터 갖춘 저, 긴 종이에다 글씨 쓸 때는 우리 마누라와의 호흡이 없는

안 됩니다.

- 그래요?!

- 앞에서 마누라가 끌고 잡고 다시 말해서 우리 다 기독교신자예요. 장로교. 새문안교회 나가는데

글씨 쓸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역시 우리 마누라도 인제 내가 하늘 천 자,

따 지 자를 쓸 때에는 자기도 하늘 천 자, 따 지 자를 기본으로 자기 조수를 들이지 않는 이상 글씨가 되지 않습니다.

- 아, 네. 그러니까 두 분의 작품이-.

- 그렇죠. 두 분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죠.

(사람들의 웃음소리)

- 그래서 우리집에 오는 가정부인들 말씀이 다 뭔고 하니 원곡 선생은 내조의 힘이 없으면 어떻게

됐겄느냐, 사실도 그래요. 그러니 뭐, 바람이 가는 데 실 따라간다고. 남편 가는 데 우리 마누라가 따라가야죠.

자기의 좋은 의술을 집안에 뿌리고 남편의 예술인 서예를 따른다는 거. 그래서 자기 나름은 퍽 아마 좋을 겁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원인이 내가 조금 자기 전체의, 그 시간을 뺏는다-.

- 네.

- 그러나 이 내 글씨가 후대에 남았을 때는 거기에 마누라의 힘이 거기 들었다, 혼이 들어가 있다는 걸 생각할 땐

자기 스스로도 기쁠 겝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 그때 옆에 쓰시는 거 가만히 보시면 어때요.? 같이 마음이 그렇죠?

- 그렇죠. 조금이라도 제가 딴 데 정신을 쓴다고 그럴까요. 그럴 땐 벌써 알아요.

그땐 소리를 막... 아하하하. 어디다 정신을 파느냐 그러거든요.

- 네.

- 그러니까 아무래도 글 쓸 때는 같이 그냥...

- 힘들인다는 게 이렇게 돼요. 저런 큰 작품이 얼만고 하니 1300자 가량 됩니다.

- 네.

- 한문글자로. 1300자를, 그러니께 6미터 길이로 봐서 1300자를 다 써야 되잖아요? 그럼 1300자 쓰는 데 구도가 필요해요.

하늘 천 자는 어떻게 쓴다, 꽃 화 자는 어떻게 된다, 열 개는 어떻게 쓴다를 전부 하고, 그리고 1300자를 글을 다 외야 돼요. 머리로.

다 외워야 되고, 무슨 글자는 어떻게 쓴다, 무슨 글자는 크게 쓴다, 적게 쓴다는 것을 구상을 다 하고 그리고 먹을 갈아놓고

종이를 준비하고 그땐 목욕재개하고 아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렇게 글씨 쓰지 않으면 안 돼요.

그리니께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붓 한 번 탁 찍어가지고 끝까지 쭉 나갔다가 하는 그런 기분, 흐름이 있어야 되거든.

- 네.

- 리듬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고 또 글자가 컸다, 적었다 컸다, 적었다 하는 것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높은 고저를 이뤘다가 저음이었다, 저음이었다 중간 음. 이거와 마찬가지로 그런 리듬을 줄려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아내, 우리 아내가 좀 번다든지 이것이 아주 합심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되지 않아요.

- 호흡이 맞아야 돼요.

- 호흡이. 근데 우리집사람은 특별히 작년에 또 뭔가 교회에 아주 중요한 직분-.

(사람들의 웃음소리)

- 권사직을 맡았어요.

- 네.

- 그러니까 더 굳건한 믿음으로 나를 도와줄 테니까. 도와줄 테니까 내 작품이, 금년이 나가는 작품이야말로, 참말로

우리 마누라의 신앙심, 믿음까지 해서 되리라, 그래서 내가 시방 내 자신이 서예가로서의 자처한다기

보담도 한 요전에는 의사의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이제 교회 권사의 남편이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 글씨는 인격 중심 아닙니까? 글씨는 인격 중심입니다. 글씨 쓰는 사람이 가령, 가령 사람을 죽였다든지

전장에 나가서 뭐 했다든지 이런 사람이면 글씨가 나빠지거든요.

- 네.

- 그러니께 글씨는 인격 중심인 데다 특별히 우리 마누라가 권사가 됐으니, 나는 장로가 안 됐는데 권사가 됐으니

권사의 남편으로서의 인성이 완성돼야 되겄다, 요기서 내 몸가짐이라든지, 여러 가지가 아주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 사모님, 웃고 계신데요. 원곡 선생님이 그동안 쭉 글씨 쓰시는 걸 옆에서 내조하시고 보시면서

그러니까 글씨 쓰는 마음이라고 그럴까요? 그 자세 같은 거 뭔가 느끼신 점이 많으실 텐데.

- 아하하하, 옆에서 조수만 하고 있어도요. 다 쓰신, 쓴 후에는 뭐 굉장히 저도 피로를 느껴요.

- 네.

- 근데 가만히 보면요. 그저, 그냥 계속해서 쓰시는 거 보면 용타고 생각해요. 어허허허.

- 쓰시는 순간만은 뭐랄까, 다 잊고-.

- 무아지경, 무아지경이죠.

- 네, 자세히 좀 알고 싶어요.

- 그리고, 그, 개인 전람회 같은 거 하기 위해서 인제 준비한다든지 작품 만들 때 보면요.

정말, 뭐라고 그럴까요. 신이 들렸다고 그럴까요.

- 네, 신들린-.

- 네, 그런 정도로 그냥 하여튼 뭐, 옆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요. 그런 정도로 하신 같아요.

- 네.

- 선생님이 서예를 하시게 된, 서예가 직업이 되게 된-. 어...

- 동기. 이건 어떻게 된고 하니 내가 다섯, 여섯 살부터 할아버지 앞에서 글씨를 배웠어요.

- 네.

- 그러고 인저 고등학교, 고등학교 들어가서 제가 공주고등학교 4회입니다. 공주고교를 갔을 때도

선생님들이 글씨 잘 쓴다고 그랬고-.

- 네.

- 그러고 중국 고등학교를 봉천서 나왔고, 대학은 상해에서 나왔거든요. 중국 통이죠. 그러니까.

그러고서 대학 나오고 집에 와보니까 우리 형님이 글씨를 써요.

- 네.

- 거기서 또 충격을 받아가지고 글씨 공부를 하지 않았어요? 이러고 나서 일제시대에 전국서예전람회,

지가 입선을 했어요.

- 네.

- 그게 동기가 되고. 그 다음에 다시 상해 가가지고 인저 장사를 하고 나와서 국전에, 제1회 국전에

특선, 문교부장관상 타지 않았어요? 제2회 국전하고.

- 네.

- 또 문교부장관상을 타고 4회까지 특선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국전에 추천작가가 되고

초대작가가 됐단 말이에요. 그리고 국전 심사위원이 되고. 그러니까 나는 사실은 경제과를 나와서

경제방면으로 나가야 되는데 나한테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으니까 마지못해서 글씨 한다는 것이-.

-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 자연스럽게 서예가로 행세를 하리라고 할런지, 뭐 이렇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 아들딸들이

제일 행복스런 사람이 우리 아버지다, 왜 그러냐.

- 자기가 제일 하고자 하는 걸로 밥을 먹고, 제일 하고자 하는 것을 매일 실행하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다, 그래가지고 얘들이 아주 좋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저 하고자 하는 일, 제 맘대로 하는

아버지가 누구냐? 우리 아버지다. 얘들이 이렇잖아요.

(사람들의 웃음소리)

- 그러니 스스로를 퍽 믿게 돼요. 슬플 땐 슬퍼서 글씨 쓰고, 기쁠 땐 기뻐서 글씨 쓰고, 우울할 땐 우울해 있어서

글씨 쓰고, 글씨를 쓰면서 기르고 있는 꽃을 보고 내 글씨를 봐가면서 모든 게 늘 우울할 때가 없죠.

- 저기 미순 씨는 자랑이 많을 것 같아요. 그동안 해주신 말씀 같은 거. 좋으신 말씀-.

- 자랑보다 불평이 더 많죠.

(사람들의 웃음소리)

- 불평 말해봐.

- 말해보시라는데요.

- 불만이 참 많았었는데요. 요새 올바르게 마음 갖기로 하구요. 음, 저희 언니, 시집간 언니랑도 저번에 엄마아버지에

대해서 얘길 많이 했었거든요.

- 그런 얘길 했었어요?

- 저희 엄마 아버지는 굉장히 무관심에 관심이랄까? 하여튼 방관도 아니고, 좀 그런 상태이시거든요.

- 네.

- 음, 그래서 뭐, 예를 들자면 소풍 같은 데 가도 안 따라가고 국민학교 같은 때 하여튼 그런 얘기도 많고 그랬는데

저희 언니가 하는 말이 그래도 시집가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까 굉장히 엄마 아버지의 교육이 독립된-.

- 네. 약간 마음을 키워주고.

- 그런 마음을 키워준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구요. 저도 좀 그런 것 같아요. 제 친구들이랑 비교해볼 때는요.

그렇게, 그렇게 뚜렷하게 엄마 아버지한테 의뢰하는 애가 있는데 저는, 저, 나 혼자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 식으로-.

- 좀 자신이 있군요.

- 자신보다도 인제 두려움 같은 게 있죠. 내가 내 생활을 개척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요새는 좀 생각이 많아졌어요.

- 아하하, 그렇군요.

- 아하하하하.

- 얘들이요. 아... 아버지가 이제 새벽에 쓰기 시작하고선 얘들 학교 가는 그 시간 여덟 시, 아홉 시까지 쭉 계속할 때가 있거든요?

- 네.

- 그럼 얘들은 나한테, 엄마에게 그날 무슨 돈을 탄다든지, 뭐 무슨 용건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되었다 보니까 아버지가 글씨

쓸 때는 그 근처에도 못 오구요. 문만 조금 어떻게 열렸냐에 따라 벼락같은 소리가 나거든요. 그러니까 글씨에 대해서도 반감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사람들의 웃음소리)

- 이제 대학을 나오고 아이들이 크니까 좀 이해를 하는 거죠.

- 네.

- 그래서 더 반감이 아니었나, 그리고 지금 아까 뭐, 소풍 갈 때 따라가지 않았다, 이것도 제가 직업이 있으니 만큼

그럴 수도 없는 거고. 또 그,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건 자기들이 시켜야 될 텐데

따라다니면서 일일이 요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필요가 없거든요. 얘들은 그런 취미가 아니니까 얘들은 아마 무관심했다.

불평이 있었겠죠. 그런데 저이들이 커보고 큰 애는 시집가서 저 아이를 키워보니까 이해하는 모양이죠.

- 네. 아빠가 그 글을 쓸 때 옆에서 지켜보신 적, 엄마처럼 있겠죠?

- 네.

- 어때요?

- 아하하하, 아이, 그거야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구요. 제가 요새 조금 짧은 시간이 남아서 써봤지마는

딴 생각을 하면은 글씨가 훨씬 좀 삐뚤어지는 거 같구요. 완전히 글씨를 쓰게 되면 무아상태라고나 할까요.

아까 말씀하셨지만 완전 그 상태가 되기 때문에 서예를 쓰고 나면 머릿속이 정화가 된다고 그럴까. 그런 기분이 들어요.

- 그래요.

- 글씨를 쓰는 데 인제 내가 제일 시방 인상에 남는 건요. 남대문이 국보 제1호 아닙니까?

- 네.

- 남대문 그 삼량 문을 내가 썼어요. 삼량이, 그게 뭔고 하니 길이가 한 10미터 이상 됩니다.

- 네...

- 그 길이가, 삼량이. 근데 거기다는 가운데 먹줄 하나면 튕겨 놓고 그 꼭대기서부터 쭉 얼마를 쓴고 하니,

한 8,90자를 썼어요. 그런데 이제 그, 삼량 글은 운반할 수가 없으니깐 남대문에 올라가지고 다리를

놓고 우리 아들을 데리고 가선 쭉 내려쓰는 게요.

- 네.

- 가령 종이에다 쓸려면 그건, 쓰면 다시 쓰지만 고 삼량에다 쓰는 건 다시 쓸 수가 없잖아요?

또 국보 제1호고 근데 동서남북에서, 아래에서 바람이 오는 그 크리스마스, 지금으로부터 한 7,8년 전에

크리스마스 전후 해가지고 굉장히 추울 때요. 그 붓 꼭대기를 잡고선 붓이 싹싹 나갈 때마다 그 얼어 나가요.

얼어 나가면서 글자는 되어지죠.

- 네.

- 그럼 인저, 그건 똑 나하고 아들애, 둘이 그 글씨를 써내려나가는데요. 한 점은 틀리더래도 다시 대패로 깎지 못하질 않습니까?

- 네.

- 그러니 정신이라는 거, 지금까지 제가 제일 정신 들여서 써봤던 것은 그거예요. 삼량 문 쓴 거, 근데 지금 다시

올라가보진 않았지만 말이지 위에서부터 쭉 내려 썼거든요. 한 획, 한 자 안 틀리게 썼어요.

- 만족스러우셨어요?

- 만족스러웠어요. 나중에 삼량 할 때 나를 초청해서 가보니까 위에다 붙인 걸 보면서 생각할 때

그때 그 생각, 큰 작품이라고 할런지, 쓴 걸 생각할 때는 그야말로 거기서 무슨 잡념이 있어 가지고 될까요.

그리고 그 긴 거, 10미터까지 되는 글씨를 쓰면서 글자 잘못 썼으니까 대패로 밀어달라고 못할 거 아니에요?

그런 것이 아마 글씨 쓰는 사람의 정신이 아마 거기 있을 거예요.

- 네, 뭐, 재밌는 얘기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 아, 정말.

- 시간 제약도 있고 해서 여기서 줄일까 하는데. 오늘 일요일이지 않습니까?

- 네네.

- 선생님, 오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 오늘은 가족을 다 데리고 새문안교회를 가는 거죠.

- 아, 이제 교회 가시는군요.

- 교회 가는 거죠. 11시 반부터니까 꼭 맞습니다.

- 아, 저희 방송 끝나는 대로

- 끝나는 대로 가서 고저 네 식구가 다 예배 보고.

- 그리고선?

- 그리고선 집에 와서 자꾸 얘들이 귀찮스럽게 굴면 뭐 극장에 가는 게고. 그렇지 않으면 바깥에서 점심 먹고

집에 오는 겝니다.

- 아, 그렇습니까. 오늘 즐거운 휴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아유, 감사합니다.

- 그리고 저 미순 씨가 기타 솜씨가 좋다는 얘길 들었는데-.

- 아니에요.

- 음악 하나 청해도 될까요? 아하하하. 하나 들려주시죠.

(노랫소리 및 기타연주소리)

지금까지 서예가 원곡 김기승 씨의 댁을 방문해서 듣고 싶은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방문에 프로듀서 이명승, 아나운서 이선미였습니다.

(노랫소리 및 기타연주소리)

얘기의 샘터를 방문해보는 일요방문, 그 스무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노랫소리 및 기타연주소리)

(박수소리)

(입력일 : 201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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