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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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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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방문 - 김연주(대한적십자사 보건부장)
일요방문
김연주(대한적십자사 보건부장)
1972.01.02 방송
(음악)

일요방문.

(음악)

- 새해, 안녕하십니까. 희망의 새해, 1972년. 그 첫번째 일요일을 맞이했는데요.

아, 즐거운 가정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일요방문. 임자년 벽두에는

대한적십자사 보건부장이며 남북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남북한 적십자 예비회담의 한국측 수석대표이신

김연주 박사 댁을 찾아왔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아... 오늘 아침 이 자리에 많은 식구들이 모이셨는데요. 제가 알기에는 오랜만에 여럿이 모인 거

같애요.

- 그렇습니다.

- 예.

- 내가 이, 저, 6남맨데 모두 출가들을 하고 또 우리 큰아이 식구가 모두 다섯인데

저, 원주에 가서 살죠.

- 네.

- 그리니 지금 지난 그뭄날 와서 오늘 2일이니까 내일 다시 제 식구들 데리고 내려 갈 겁니다.

- 아, 저, 세배들을 다 드리셨습니까? 아버님께.

- 물론 드렸죠.

(사람들의 웃음소리)

- 아, 이렇게 새해가 되면은 꼭 다들 모이십니까? 연휴에 몇 년쯤 모일 수가 있어요?

- 아, 저, 뭐, 주말 같은 때 원주가 인제 고속도로도 되고 해서-.

- 네.

- 자주 오지만 특히 이, 저, 연말 연초엔 대개 다 모입니다.

- 네.

- 이, 저, 둘째 아들놈, 어떻게 쟤 친구들하고 아침 먹고 나갔구만.

- 아하하하, 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이게 되면은 대략 몇 명 정도 됩니까? 한...

- 에, 6남매의 저, 집에 큰아이, 아이들 셋하고 또 외손 해서, 진손, 외손 모두 아홉 명입니다.

- 예.

- 내가 원래 독잔데, 에, 여섯 명 가족 계획, 내가 생각할 때는 내가 독자니까 아이들 좀 많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집 사람이 낳긴 하나 더 낳어요.

- 네.

- 지금 6남매가 남았는데 난 아이들더러 너희들 시집, 장가가서 최소한 넷 이상 낳아라.

- 아하하하.

- 아하하하.

- 가족이 많은 걸 좋아하시는군요.

- 네.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 네, 지금 김연주 박사님하고 또 장남이신 김진택 씨. 지금 육군 대위, 군의관으로 계시다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어, 전민경 씨, 둘째 따님 김진만 씨, 지금 피아니스트로 계시다구요.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 신광여고

2학년인 정순 양, 또 외손자 현숙이, 인봉 군, 뭐 이렇게 여러분들이 자리를 해줬습니다. 맏 아드님이신 김진택 씨께서

에, 이렇게 어른이 다돼서 아버님을 찾아뵙는다 하고 또, 어렸을 때 세배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주세요.

-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는 참, 인제 말썽을 많이 부렸어요. 학교 다닐 때요. 때에 따라서 거짓말도 하고

어디 인제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같은 때, 피서지라든가, 등산이라든가, 이런 너무 위험한 데 가지 말라고 할 때

인제, 그, 몰래 친구들하고 간 적도 있고 여러 가지로 인제 속을 많이 태워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인제

제가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인제 철이 들고, 나이가 먹고 보니까 인제 전에 아버님이 하시던 말씀.

- 네.

- 그런 것이 새삼 인제 정말이구나 하는 걸 느끼는 때가 있구만요.

- 설날이면 대개 어떤 얘기를 해주십니까?

- 올바른 생활을 해나가야 된다, 이런 데 역점을 두셨기 때문에 항상 인제, 그, 새해가 되시면은, 새해가 되면은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라, 이런 데 역점을 둡니다. 늘 두고 하십니다.

- 네. 어제 1월 1일날, 떡국 솜씨, 혹시 전민경 씨가 발휘하지 않았습니까? 아하하.

(사람들의 웃음소리)

- 에... 신여성으로 살아온 집사람을 보면 아주 음식솜씨가 좋아요.

- 아하하하, 예.

- 내가 식성을 별로 가리지 않지만 무슨 여러 가지, 인제 포도주 만드는 거라든가. 내 술을 좋아하니까.

- 네.

- 뭐 김치도 나름대로 너무 맵든가, 짜든가. 이런 걸 잘 못 먹는데 아주, 그, 인제 손자들하고 나하고

인제 제일 좋을 정도겠지. 얘들은 단 것도 좋아하는 모양인데. 음식을 아주 인저 김장 같은 것도

다채롭게 잘해서 아주 참 실력이 좋습니다.

- 우리나라가 대개 구정을 쇠지 않습니까? 김 박사님 댁, 혹시 신정보다는 구정을 쇠지 않나-.

- 아, 거기에 대해선 내가 말씀하죠.

- 네.

- 내가 인제 우리 부모님 다 세상을 떠나셨는데 부모님에 대한 제가 이런 것은, 그분들이 사실 때에

음력을 숭상하던 거니까 지금도 부모님은 제사나 이런 거는 음력으로 합니다.

- 네.

- 그럼 나부터, 나부터 이후로는 얘들 6남매, 외손, 진손 해서 아홉 명이지만 얘들한테는 생일 같은 건 음력으로

가르쳐 주질 않습니다.

- 네.

- 한 가지 첨가하면은 인저, 그러니까 어머니 제사가 되겠죠.

- 네.

- 어머니 차례는 우리는 꼭 양력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까. 어... 꼬마들, 세뱃돈 많이 받았어?

- 네.

(사람들의 웃음소리)

- 설날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어? 인봉이는 설날이 되면 좋은 게 많지? 뭐가 좋아?

- 윷놀이하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 새옷도 입지? 꼬까옷도 아주-. 그, 할아버지가 세뱃돈도 주고 엄마, 아빠도 주고. 그지?

- 네.

- 인봉이, 우리 손자, 쟤는 저... 할아버지를 닮아서-.

- 아하하하하.

- 운동을 좋아합니다.

- 네.

- 특히, 이, 저, 태권도. 태권도 2단이에요.

- 어우.

(사람들의 웃음소리)

- 무시 못하겠는데.

- 3단이겠죠. 또 현숙이 쟤는 저 애미 닮아 그런지 몰라도 지금 국민학교 2학년인데 피아노 아주 잘 칩니다.

- 네.

- 우리 집안은 친척 결혼식 같은 때 쟤가 웨딩마치를 치고 있으니까.

- 그래요? 실력이 아주 좋은가 본데.

- 아하하하하.

- 언젠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서울시 주최의 무슨...

- 콩쿨.

- 콩쿨

- 콩쿨의 첫째도 하고 그랬는데 저희 엄마를 닮아서 마, 장차 피아노를 전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네. 장차 뭐가 되고 싶어? 현숙이는? 피아니스트?

- 피아니스트.

- 아하하하, 인봉이는 태권도 2단이라고 그랬던가? 뭐가 되고 싶어?

- 저는 다 좋구요. 변호사요.

- 변호사, 아하하하하.

- 태권도를 배우게 된 게, 왜 배웠지? 인봉이는?

- 건강하려고.

- 몸이 건강하려고. 인봉이는 건강해? 굉장히? 감기 같은 거 겨울에 안 앓아? 안 앓아. 아하하하.

- 여, 막내 정순이. 야도 인제, 저 언니 닮아서 인제 그, 피아노에 취미가 있어서 내년 봄엔 인제 가능하면 음악대학에 보내려고 합니다.

- 네, 화제를 좀 바꿔서 말이죠. 저희 동아방송에서도 어린이들이 보는 10대 뉴스 가운데서 톱을 차지했구요.

또 여러 가지, 국내에서 본 10대 빅뉴스, 국내에서 있었던 10대 빅뉴스에서 톱을 차지했던 남북한 적십자 예비회담 소식이 아주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아버님께서 적십자운동을 하고 계시니까 물론 가족들도 다 적십자가족이시겠죠.

(사람들의 웃음소리)

- 어떻습니까? 이번 적십자회담이 전개되면서 가족들은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 제가, 아버님이 인제 가족 찾기 운동의 대표로 선발됐다 하는 거를 제가 저, 신문을 통하고 물론 아버님을 통해서도 인제 들었습니다.

이, 제가 평소에 인제 그, 아버님에 대해서 느꼈던 것은 아,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버님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마는 제가 쭉 느껴왔던 거지마는

매사에 침착한 거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뒤떨어지지 않는데 이렇게 자부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 운동이 보통 운동도 아니고

이것이 만일 실행이 될 것 같으면은 역사에 남을, 그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 있어서 좀더 침착하고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에 봐서는 가장 적임자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 아하하하, 김 박사님께서는 그 당시 소감이라고 그럴까요?

- 네, 아, 그, 9월 16일에 남북한적십자끼리 명단을 교환하게 됐고 그 전날 9월 15일 12시에 우리 최두선 총재께서 우리 측

다섯 명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만 그로부터 이틀 전 13일날 최두선 총재께서 인제 그, 어... 절 불러요.

현재 이러한 책임을 맡기셨는데 제 생각으론 인제 회담을 전해나갈 때에 좀 더 유능한 분이 이걸 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초에는 사양했던 것입니다.

- 네.

- 그러나 제가 일일이 보건부장에 국제부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에, 국제관계, 적십자 국제관계에

적십자 직원 중에 좀 더 안다고 해서 인제 그래서 생각을 하고 제가 인제 그, 전심전력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런 각오로 부족하나마 책임을 맡았습니다.

- 네.

- 그래, 인제, 그 후에 에, 우리 총재님 뜻을 받들고 또 국민각계각층의 지도편달을 받아가지고

지금 진행중에 13차까지 진행했습니다만 지금까지 그, 많은 선물과, 지도편달로 아직까지 대가

없이 지냈는데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 네, 같은 핏줄의 국민이면서도 서로 남북이라고 해서 마주 보고 앉아서 테이블에서 얘기했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 네, 제가 인제 그, 기본자세를 한 두어가지 말씀하면.

- 네.

- 이데올로기는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가 있겠지만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그 핏줄은 에, 변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는 기본신념에 또 하나는 오천만의 우리가 어, 가장 염원하는 이천 만 이산가족과

친척의 권한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서 우리 열명 대표를 여기에 내놨다. 이렇게 인제, 그러니까 이

문제는 에, 열 명이 같은 뜻에서 에, 우리 같은 핏줄의 동포, 에, 동포로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런 심정으로 너희가 대해줘야 하지 않느냐? 또 하나는 이것이 우리가 정치회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적십자 사업을 전개하는, 이것을 우리가 잊지를 말자.

- 네.

- 이런 대전제에서 앞으로 이 회담을 끌어갈 겁니다.

- 네, 아버님이 적십자회담에 참석하시고서 나오시면서 따님들, 아드님들한테 얘기 어떻게 전해주십니까.?

- 근데 그 회담 장소에 기자들도, 거기 다, 출입을 하고 말이죠.

- 네.

- 그래서... 물론 신문에도 자세히 나옵니다. 그 신문에 나오는 이외의 더 자세한 말씀은 별로 들은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 며느리신 전민경 씨께서는 뭐, 여쭤본다든가 말씀하신 일이 있었었습니까?

- 예, 저는 원주에서요.

- 네.

- 아빠의 그 많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거든요. 그걸 거기서 뉴스를 통해서 알았어요. 굉장히 기뻐하구요.

아하하, 그래서 다른 동료들하고도 얘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그 주에 주말에 서울에 올라왔어요.

- 네.

- 그래서 아버님께 여쭤봤더니.

- 어떤 점을 여쭤보셨어요?

- 이렇게 되게... 그러니까는-. 미국 사람들이요. 되게 거... 유두리 있게 대하는 게 어떠시냐고...

- 아, 그렇게 대하는 게 어떠냐고 그러십니까?

- 재미가 좀 딱딱한 면이-.

- 네.

- 왜, 신문지상에서도 밝혀졌었죠. 그게 좀 딱딱하다든가 그런 얘기는요.

- 선생님께서는 앞으로의 남북적십자회담, 이산가족 찾기 등에 대해서 정말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네, 이것이 성취가 돼가지고 늘 합니다마는 우리가 26년간 단절됐던 대화가 자꾸 폭이 넓어져가지고

에, 언젠가 있을 남북통일에의 디딤돌이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 피차가 다 인정하고 있고.

- 네.

- 아, 그러니까 다소 좀 지루한 면이 있다고 없지 않아 생각할 수 있지만, 제자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앞으로도 우리가 꾸준히 이 대화는 단절되지 말고 점점 남북한대화의 폭이 넓어져 가지고 적십자회담이

우리 남북통일에 틀림없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하는 것이 이 뜻에 있어서는 오천만 동포가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네, 김 박사님 고향은 혹시 이북 아니신지 모르겠어요.

- 함경남도 북청입니다.

- 아하하하, 혹시 북에 가족이 있다든가-.

- 내 직계 가족은 다 이, 저, 8.15해방 되는 그 해 9월에 다 넘어왔습니다.

- 다 넘어 오셨습니까. 아버님, 이렇게 오랜만에 다 모이면은 모여서 손주들, 외손자들 북적거릴 때 어떻습니까?

- 난 혼자 자라서 아이들 많은 게 아주 좋아요.

- 그, 큰아드님께서 어렸을 때 기억 좀 더듬어 봐주세요. 그, 아버님에 대한 생각이 어떠세요? 엄격하다든가.

- 제가 지금 서른넷인데요.

- 네.

- 34년 동안 아버님한테 제가 여태까지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습니다.

- 아하하하.

- 그것이 인저 잘못한 적이 있으면 심하게 꾸지람은 하셔도 절대로 인제 자식들한테 손대는 거는 제가 여태까지

보질 못했습니다. 물론 제 동생도 마찬가지 경우겠죠.

- 한 번도 그래서, 어지간히 조금만 더 꾸지람을 하시면요. 그리 서러워서 며칠 밤을 울고 그런 적도 많아요. 에헤헤.

- 아버님께서는 아이들 키우실 때, 자랄 때, 뭐랄까요, 주신 교훈이라고 그럴까요? 가훈은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 아까도 큰 아이가 말을 했지만 인제 사람은 되도록이면 자라는 어린 것들을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지도하는 게

좋습니다.

- 네.

- 그것이 정 안 되면은 인제 그, 좋은 말로 타일르는 것으로 끝내는 게 좋고 책망을 하는 것도 사실 좋은 방법이 아니죠.

더욱이 인제 애를 때린다는 그것은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이 되고 또 평소에 아까도 말했지만

건강이 있어야 모든 것이 되지 않습니까?

- 그렇죠.

- 난 원래 사람이 살려면 경제력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지만 조반석주 할 수 있으면 그 이상 남을 보내지 말라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 네. 그, 집안의 특징이라고 그럴까요.

- 아버님이 인제 원래 운동을 여러 가지, 인제, 하셨습니다.

- 네.

- 그래서 저도 인제 그, 고등학교 시절에 인제 그, 수구를 했습니다. 물론 인제 국민학교 때하고 중학교 때는 인제 그

마라톤을 좀 제가 인제 했는데요. 결국 중간에 하다가 고만뒀기 때문에 대표선수도 못하고 말았습니다마는 그게

제가 운동을 하다가 결국 중단을 하고 쭉 하질 못했습니다.

- 네.

- 그래서 에, 제 다음 대, 제 아들놈한테는 인제 어떻게든지 운동을 시켜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특히 인제 그, 가만히 성격을 보니까 굉장히 좀 내성적인 성격인 것 같애요.

- 네.

- 그래서 인제 그 여섯 살 때부터 인제 운동을 시켰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자라면서 아버님이 인제 그

극장구경을 시켜주신 건 딱 두 번밖에 없습니다.

- 아하하하.

- 그러나 중요한 거 있으면 손자들은 꼭 빠지지 않고 데려가시구요. 운동에 대해서는 상당히 저희 집안이 좀 조애가 깊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올해 소망이라고 할까요. 계획 같은 거.

- 에... 우선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제 머리가 남북회담으로 거기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고

가정적으로는 늘 아이들한테 말하는 건강제일주의, 그리고 원래 성격이 아주 검소한 것을 좋아합니다.

- 네.

- 아이들이 사치할 만한 그런 면이 보이질 않지만 되도록 생활을 검소히 하자, 건강과 검소한 생활을 늘 주장을 하죠.

-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질 않았습니까? 오늘 뭐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 뭐, 인제 예솔이 쟤도 1시까지 뭐, 텔레비도 보고 윷놀이도 하고 그러는가 보던데 나는 집에 있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서.

- 네.

- 좌우간 끼리끼리 뭐, 에, 재밌는 놀이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네. 온 가족이 모여서 떡국 나눠먹고, 노래 하고 오늘 즐겁게 보내는 날이 됐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김연주 박사님의 가정에 새해 축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아울러서 남북한적십자 회담이

우리 국민이 바라는 대로 김연주 박사님께서 이끌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적십자사 보건부장이시며 남북한 적십자 예비회담 수석대표이신 김연주 박사 댁을

방문해서 듣고 싶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오늘 방문에 프로듀서 이명순, 아나운서 이선미였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악)

흥미로운 화제와 즐거운 웃음의 샘터를 찾아가는 일요방문, 그 열아홉 번째 순서를 마치겠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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