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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 병신굿놀이

병신굿놀이
1980.05.18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너풀거린다. 너풀거린다. 신관을 앞세우고 오방신장기가 너풀거린다.

동방의 청제장군, 서방의 백제장군, 남방의 적제장군, 북방의 흑제장군.

그리고 중앙에는 황제장군이 버티어 온 들을 너풀거린다. 세벌논매기 끝낸 들에 온 동네 머슴들

논머리에 둘러 모여 올해 곡식도 풍년이게 하옵시며 올해 농사도 풍성지게 하옵소서. 큰 비는 웬 말이며

가뭄 끝에 총각 울겠네. 농신님이오, 농신님이오, 부디 올해 농사 순조롭게 하옵시어 올 가을 곡식 거둘 때

참에는 이내 노총각 장가나 들게 해주소. 머슴살이, 지천꾸러기 신세 면하기야 바라겠소만

올해도 장가 보내주지 않을라 치면 아예 농사고 뭣이고 난 모르겠소. 다 집어치우고 말라요.

(전통음악)

낙동강 칠백 리 한 맺힌 강줄기가 마지막으로 숨에 차 휘몰이를 치는 어귀에 자리 잡은

경상남도 밀양. 이 천혜의 젖줄로 해서 일찍부터 이곳 밀양은 김해평야를 끼고 있어

곡창으로 이름이 드높았고 그 널편한 들에서 나는 곡식 또한 풍성해서 인심조차 느긋하기만 하다.

먹고 살기 불편함이 없으니 예로부터 이 고장 특유의 각가지 들놀이가 풍성하게 이루어져 달집놀이,

강강술래가 특이하고, 그리고 밀양아리랑이 우리와 가깝다. 그 중에서도 매년 7월 백중 때가 되면은 동네 머슴들이 중심이 되어

농신제를 지낸 다음 꼼배기참놀이를 하면서 양반들에 대한 자신들의 처지를 풍자와 해학으로 펼쳐 보인 밀양 병신굿놀이가

두드러진다. 오늘 이 시간에는 양반과 지주에 억눌린 머슴의 애환을 담은, 그래서 매년 개최되는 밀양 아랑제의

절정이 되고 있는 밀양 병신굿놀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가 밀양 아랑제를 설명합니다.

『아랑은 이 고장이 낳은 역사적 정절의 여인입니다. 그의 절개를 기르는 추모제전이 올해로써 스물세 번째 맞습니다.

아름다운 고을, 밀양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남천강변에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각가지 민속놀이가 놀아져 왔습니다.

근년에 와서 이 고장에 자랑스러운 인물인 사명대사, 또는 아랑의 추모제까지 겸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씨름판이 열리고, 농악을 겨루고, 또 병신굿놀이를 합니다. 그야말로 규모가 큰 한 고을의 대동굿놀이라 하겠습니다.』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올해도 장가 안 보내주면 농사고 뭣이고 없소.

농사야 되거나 말거나 나는 떡이나 먹고 말라요.

누구에게 장가를 보내달란 말인가.

장가를 보내주지 않으면 농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는데.

그러면 남의 집 더부살이가 뭘 먹고 살겠단 말인가.

이 얼마나 자신들의 설움을 빗대어 풍자한 해학인가.

밀양 병신굿놀이의 체력과 정리. 그리고 오늘에 재현에 한 세월 다 보냈다는 김동선 씨는

이 놀이의 유래와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 아, 빨리 잔 안 건네고 어디다 정신 팔아 먹노?!

- 하모, 가만 좀 있거라. 니는 저것도 안 보이나?

- 뭐, 뭐라꼬? 뭔 말이고?

- 아유, 저 가시나 엉덩짝 말이다. 아유, 아유 죽겠다.

- 아이고, 이놈의 자슥. 남의 집에 붙어서 사는 상놈 주제에 제삿밥만 챙기고 있네.

- 아이구 와? 상놈은 장가도 못 가나? 잉? 머슴아 신세는 기지배 엉덩짝도 못 보나 말이다.

- 어허, 이놈의 자슥, 뭐 니 신세 네 신세 할 게 어딨노?! 이, 누구는 장가가기 싫어서 이라고 있나?

- 글쎄, 마. 이번 가을쯤이면, 이번 여름 농사만 잘 넘기기만 하면 내도 그냥 확!

- 하모하모, 우리 신세 가지고 우리끼리 이럴 거 없다. 그저 농신님요, 농신님요 하몬서

하늘밖에 쳐다볼 수 없는 기라. 하늘밖에.

- 아유... 아유, 내 술이나 한 잔 더 줘라. 아유!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한판 놀음이 벌어진다. 올해 농사 가장 잘 지은 머슴 뽑아 좌상으로 앉히고 그 다음에 잘 지은 머슴 뽑아

우상으로 앉히어 우측에 거꾸로 세운 작두마를 태우고 한판 놀음이 벌어진다.

중풍쟁이, 떨떨이, 안팎곱사, 휘줄내기, 절름발이, 배불뚝이, 난쟁이, 꼬부랑 할머니.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요기 살짝 저리 털썩 온갖 병신 다 나온다.

어기여차 덩더쿵 지화자 좋구나 풍년일세.

어허야 저기는 배냇병신도 다 나오네.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에헤이! 한 번만 더 나! 응? 에헤이, 한 번만. 한 번만 더 나! 딱 한 번만 넣으면은 돈 될 텐데.

- 아이고! 병신! 저 병신 육갑하다가 나자빠지겄네!

- 에헤헤헤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돌아! 딱 한 번만!! 한 번만!! 두 번 없다!! 이번에 딱 한 번이다!

- 저리 가거라! 이 병신아!

- 어허! 병신이 병신보고 병신이라카네!

(웃음소리)

- 저리 가거라!! 이 병신아!! 이리 주고, 저리 주고 인제 와서 니 줄 게 어디 있노?!

- 에헤, 그러지 말거래이! 양반 따로 없고 상놈 따로 없다! 양반 줄 거 따로 있고 상놈 줄 거 따로 없다!

에헤헤헤헤! 양반 줄 거 따로 있고 상놈 줄 거 따로 없단다!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 나는 중풍쟁이 양반인데 니는 무슨 양반이가?!

- 중풍쟁이도 양반 있나?! 양반 될라 카면 적어도 내레지로 배불뚝이 양반이 제격이지!

- 에헤, 양반이면 배 나와 되나?! 고러믄 우리 마누라도 양반이네! 에헤라! 무슨 양반이

물배나 처먹었으면 그렇게 배불뚝이 양반이야?! 아!

- 에헤이~~ 이놈의 상것이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본시 양반이란 가리는 게 없는 법이라.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이놈도 먹고, 저놈도 먹고! 먹고 먹고 먹다가 꼬부랑 할머니 집에 가서 또 먹재!

(웃음소리)

남의 집 사는 머슴이라고 생각조차 머슴일까. 밀양 병신굿놀이는 이렇듯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양반에 대한 불만을 각가지 유형의 병신 흉내를 내면서 발산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억눌려 지내면서 일 년 사철, 논일, 밭일, 잡일에 부대끼면서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만족할 리 없었던 이들의 애환은 그래서 매년 한 번씩 찾아드는 백중날의

병신굿놀이에서 이렇게 풀어지는 것일까. 모든 것이 운명이거니. 내 신세 어차피 이런 것을.

그러나 이런 불만과 억눌림에 대한 노출이라는 것이 고작 이런 듯 순박함에 있어서라

어찌 우리 또한 소박한 웃음을 보내지 않을 쏜가. 심우성 씨는 이러한 당시 서민들의

풍자와 해학에 대한 특징들을 이렇게 얘기한다.

『밀양 병신굿에서의 많은 병신의 등장은 한마디로 육체적인 병신의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마음이 병신이면 육신도 성할 것이 없다는, 그야말로 짙은 풍자와 해학이 이 병신춤의

골격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동아방송이 전국을 누비며 엮어가는 이 풍물삼천리는 이러한 풍물의 심층, 저변

인성의 바탕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밀양 병신굿은 바로 서민이 그들의 고달픔을 풍자와 끈기로 극복한

산 보기라 하겠습니다.』

(전통음악- 밀양 병신굿놀이)

머슴들을 작두마를 태워 한바탕 노는 작두말놀이. 다음으로 신풀이마당으로 넘어오면서 양반춤과 병신춤을 곁들여

흥이 절정에 오르면서 이 판에서는 양반행세를 하기 어렵다고 물러났던 진짜 양반이 다시 범부가 돼 평복으로

갈아입고 등장해 춤을 추는 범부춤이 뒤따르고.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이 범부춤이 끝날 무렵이면 북쟁이들이 큰 북을 매고 나타나서 한판 북춤과 곁들여 북놀이가 어우러지고

서산이 지는 해가 그 낙조를 낙동강 강물에 붉게 띠울 때 참이면 이 흥겹던 놀이판도 판굿으로 이어지면서

어느덧 파장에 이른다. 어렵사리 살아온 인생. 이런다고 더 나아질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술 한 잔 걸지게 들이키고

양반 한번 호되게 놀려줘 봤으니 반분이나 풀린 걸까. 올해 65세로 병신춤놀이 중에서 중풍쟁이 역을 해내는 김상용 할아버지.

(음성 녹음)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평생을 남의 집 머슴으로 살다가 그 어느 해 백중날 농신제에서 치성을 잘 드렸던 까닭일까. 이제는 자신의

땅과 그리고 바라던 아내와 자녀까지 둔 이 촌로의 말에서 우리는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을 본다.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1년 쌓인 불만이 오늘 하루에 다 풀렸을까마는, 10년 묵은 서러움이 이 한 장단 속에 다 날아가 버렸을까마는

오늘 이 하루의 흥겨움이 내일은 더한 서글픔으로 가슴에 남기야 하겠지만은 그런 것은 내 알 바 아니고,

내 모르는 일이고. 부디 내 손으로 거두는 곡식 알알이 정성으로 영글어서 농신님요, 농신님요.

부디 이번 가을 참에는 장가가 들게 해주소. 어차피 육신의 고통쯤이야 부질없는 인간사인 것을.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오늘은 밀양 병신굿놀이 편을 보내드렸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부처님 오신 날 특집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밀양 병신굿놀이)

(입력일 : 201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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