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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 불미노래

불미노래
1979.12.16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음악)

(전통음악-불미노래)

불길이 활활 치솟는다. 마당이 밝아진다. 밤바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해풍에 불꽃은 튀고

디딤틀을 밟는 장정들 이마엔 구슬땀이 맺힌다. 밤은 깊어 달빛이 우는데 지칠 줄 모르는 노랫가락

삼방산 기슭을 울리는구나. 불미야, 불미야, 다리가 빠지게 불어나보자. 이날 밤을 새어나 보자.

온 동네사람 모여들어 장정들은 불미 밟고 아낙들은 물 길어대니 용광로에 천년 묵은 무쇠덩어리

다 흩어지고 저기 저 예쁜 처자 마음도 녹아내리네.

(전통음악-불미노래)

이 시간에는 제2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한 제주도의

불미노래를 보내드립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설명입니다.

『에, 불미노래는 현지에서는 불무소리라고 흔히 압니다. 풀무질을 하면서 하는 노동요죠.

에, 제주도를 가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큰 섬, 그러나 면적으로 볼 때

대단히 넓은 섬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주도는 북제주와 남제주로 민속권이 다소 다릅니다.

지금 여러분이 듣고 계신 이 불미노래는 현재 북제주와 남제주의 어떤 차이 가운데 남제주의 것을

듣고 계신 것입니다. 그 구성을 보면은 처음에 농기구를 주물로 빼기 위해서는 진흙으로 주형을

만들죠. 그 주형을 만드는 진흙을 잘게 손질을 하는 그러한 과정에서 부르는 솔기소리가 있습니다.

그 다음은 풀무질을 할 때 불미소리, 일이 다 끝나고 축가에 해당하는 서우제소리,

이 서우제소리는 무속의식의 뜻도 지니고 있어서 아주 겸허한 가운데 또 한판 노는 양면의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솔기소리와 불미소리, 그리고 서우제소리를 합쳐서 이번 경연대회에 불무노래라는 명칭으로 출연을 했었습니다.

(전통음악-불미노래)

풀무 일을 하기 위해선 우선 솥과 농기구의 주형을 만들어야 한다. 마슴, 혹은 뎅이라 불려지는 이 주형은

진흙으로 만들어지는데 곰방매로서 이 진흙을 잘게 부수면서 부르는 노래가 솔기소리다.

한 사람의 선소리에 따라 일꾼들이 후렴을 받는 이 노래는 선후창 형식인데 그 가락이 썩 느린 편에 속한다.

(전통음악-불미노래)

(풀 위로 걷는 발자국 소리)

- 아니, 웬일들이야, 밭 일구러 간 사람들이 왜 그리 급히 돌아오는 게야?

- 아... 아... 아... 아...

(흐느껴 우는 소리)

- 음? 얜 또 왜 그러지?

- 흐흑...

- 얘, 아가!

- 아... 아...

- 당신 좀 비켜요!

- 아...

- 어떻게 하면 좋죠? 어머니. 뭘 발라줄까요?

- 아...

- 아니?! 새아기 손이 온통 피투성이 아니냐?! 응?! 어디서 다쳤니?! 누가 그랬어?!

- 얘, 우선 물을 부어 끼얹어라. 다친 데는 깨끗하게 해야 되니까.

- 네.

(물 붓는 소리)

- 아... 아... 아... 아...!

- 여보, 많이 아파?

- 아... 괜찮아요.

- 자, 어디 좀 보자. 어디 좀 봐.

- 아아... 괜찮아요, 아버님.

- 아하... 어쩐 일인가 말이여. 사연을 말해야 알 거 아닌가?!

- 사연이라니요?! 당신은 선비라고 방에서 글만 읽고 계시니 뭘 아시겠어요?!

-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버님. 밭을 일구다가 하도 돌멩이가 많아서 다쳤을 뿐이에요.

- 아니, 손으로 밭을 일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보습이나 호멩이는 어따 쓰려고 사왔게?!

- 말씀 말아요. 땅이 하도 투박해놓으니 그까짓 거 한 번 사왔자 두 달이면 꼭지가 안 남아요.

- 아니?! 벌써 또 닳았단 말인가?

- 에휴, 밭갈이 암만 해봤자 연장 값도 안 되니, 에휴!

- 원래 우리 마을 이름이 검은 밭이라고 못쓸 땅뿐이지만 해도 너무하는군.

- 어찌나 땅이 굵고 돌이 많은지. 아휴, 인젠 정말 못해먹겠어요. 연장공장이라도 차려놓기 전에는.

- 그래?! 음... 가만 있자. 아, 여보. 그럼 우리 이참에 아주 동네에서 연장을 만들어 쓰자고 해볼까?

- 아니, 정말이에요?!

- 아, 안 될 거 뭐 있냐? 진흙 천지에다가 삼방산이 있어서 나무 많겠다, 마을에 장정들 많겠다.

- 아이고!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어서어서 도리를 좀 생각해 보세요. 아이구, 이젠 밭 갈아먹겠네.

연장 걱정만 없으면 제주도 땅 다 갈아먹겠어요.

(전통음악- 불미노래)

불미마당에서 풀무작업과 함께 선후창으로 이어지는 불미노래입니다.

(전통음악-불미노래)

300년 전까지만 해도 못쓸 땅이라 이름도 검은 밭이라 불려왔던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덕수마을.

감자 하나에 돌 셋이라 일컬었으니 농기구, 생활도구가 어찌 배겨날 것인가. 이 마을에서 주물업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길 없으나 제주도의 주물업 본고장으로 이름을 굳힌 또 하나의 내력은

이 마을에서 나는 흙이 주형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했다는 데에도 있다.

(전통음악-불미노래)

주물을 만드는 풀무작업은 세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했다. 혼자서 작업하는 똑딱불미가 맨 처음 출현했고

다음엔 네 사람이 바람을 일으키는 청탁불미, 그리고 사십여 명이 함께 일해야 하는 디딤물미가 출현했으니

비로소 생활도구도 대량생산에 들어가게 된 셈이다. 이 디딤불미는 바람을 일으키는 목재의 청탁기와

용광로인 두부로 이루어졌고 이 풀무가 설치돼있는 대장간을 불미마당이라고 불렀다.

(전통음악-불미노래)

불미노래의 특성과 전승 현황에 대해서 심우성 씨의 설명입니다.

『에, 지금 여러분이 들으시는 바와 같이 이 불미노래는 노래를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바로 일 장단에 꼭꼭 맞아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일을 위한 노래죠. 노동요로서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토착적인 전통공예기술에 따른 노동요가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많이 전승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멀리 제주도에서 이처럼 완벽한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 한국의 전통적인 화학기술사를 서술하는 데도 이러한 불미소리와 같은 노동요가

소중한 자료로 인용이 돼야 하겠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러한 불미소리,

불미소리를 현장에서 듣기는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옛부터 하는 전통적인 주물의 방식은

이제 없어져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노동요로서 재창조되지 않고서는

이러한 노동요가 그대로 보존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제주도의 불미소리, 이것은 오늘에 살아갈 새로운 노동요로 재창출될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

(파도 소리 및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아이구, 이거. 수고들 했네. 며칠 풍랑이 심했는데 배도, 사람도 모두 무사하군 그래.

- 자, 짐을 내립시다!

- 어디어디, 어어어이구, 이번엔 전보다 훨씬 많은데?

- 팔도를 다 헤맸는걸요, 뭐.

- 아이고, 이거 고생했네. 고생했어. 안 그래도 마을의 쇠붙이가 딱 떨어져놓으니 작업을 할 수가 있어야지.

- 주문은 많던가요?

- 아이고, 거 많다마다. 제주도에서 우리 마을 빼놓으면 불미 붙이는 데가 어디 있나?!

- 일이 많은 건 좋은 일입니다만.

- 사람들이 어째 모두 시무룩해? 왜? 쇠붙이 구하기가 힘들던가?

- 힘들다 뿐입니까?

- 아, 그렇지만 자네들이 이렇게 뭍에 가서 고철들을 모아 와야 우리 마을에서도 이걸 녹여 물건을 만들 거 아닌가?

- 자, 어서 짐들 내리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자자자자, 힘들 내. 날짜가 바쁘니까 오늘밤 막 용광로에 불을 피워야 하겠는데?

자, 일하면서 한판 잘 벌려보자구.

- 오늘은 관둘랍니다.

- 나두유.

- 이 사람들 이거 뭔 일인지 모르겠네. 자자자자, 우선 짐이나 풀고. 아니, 그런데 가만 있자,

덕보는 안 왔나?

- 덕보요? 안 왔어요.

- 오호, 같이 한 배로 출발했으면 같이 돌아와야지. 아 좀 며칠 기다렸다가 오면 안 돼?!

- 같이 왔어요.

- 그럼 어디 있단 말인가?

- 갔어요.

- 뭐야? 가다니?

- 풍랑에 배가 기울자 그만 잘못해가지고...

- 뭐가 어째? 아니, 덕보가 헤엄을 얼마나 잘 치는데!

- 행여 자기가 모아온 고철 푸대가 물속으로 떨어질까봐 손목에 끝을 매잡아뒀는데 그만...

- 같이 떨어졌단 말인가?

- 예.

- 그러니 삽시간에 가라앉아버리고 건질 수가 있어야지유.

(파도 소리)

(전통음악- 서우제소리)

일을 끝내고 부르는 서우제소리가 이어집니다.

(전통음악- 서우제소리)

이 서우제소리는 그 곡조가 아름다워 흥겹게 춤추고 놀 때 부르는 경우가 많으나

원래 무속의례로서 특히 도깨비귀신과 관련 있는 굿을 치를 때 불리어졌다.

(전통음악- 서우제소리)

제주도 민속예술단 대표 박영조 씨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음성 녹음)

불미를 밟아 바람을 일으키며 40여 명의 주민들이 밤샘을 하며 부르던 불미노래.

이 노래 속에는 힘들고 고달픈 일을 협동정신으로서 이겨내는 강인한 의지가 곁들여 있으니

밤새껏 이루어지는 노동요로서는 사실 불미노래를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단합된 협동작업 때문에 일제치하에서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했건만

그런 강압 때문이 아니라 산업근대화에 밀려 불미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제조법도 잊혀지고 다만 몇 토막 노래만 남아 면면히 내려오니. 그 가락 속에 떠오르는

이글거리는 불빛이여, 치솟는 삼방산 기슭에 힘찬 함성이여.

(전통음악- 불미노래)

다음 주 이 시간에는 거문도 술비소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 불미노래)

(입력일 :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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