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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 보부상 놀이

보부상 놀이
1979.12.09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전통음악-보부상놀이)

장터에서 장터로, 마을에서 마을로. 고개 넘고 강물따라 유랑하는 남정네들.

봇짐 들고, 혹은 등짐 메고 사흘장, 닷새장, 열흘장. 손꼽아가며 황혼녘 마다 않고

재촉하는 걸음새에 달빛이 벗하는구나. 노인네 앞을 서고 어린애 중간에 끼우고

젊은이 뒤따르니 떠나가는 그 무리 기세도 좋을시고. 내일은 서천 장날.

동틀 무렵 채비를 갖춰야 하니. 자, 힘을 내라. 걸음을 재촉하여라.

(전통음악-보부상놀이)

이 시간에는 제20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공부장관상을 받은 충청남도의

보부상놀이를 보내 드립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설명입니다.

『보부상놀이는 충청남도 부여와 서천 등지에서 옛부터 전하는, 그러니까 상여집단의 한 의식과 놀이를

제도화한 것입니다. 이 놀이는 금년 20회 경연대회 이전에도 몇 번 선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풍속을 조금씩 조금씩 발굴을 해서 그것을 정립을 하고 금년에 새로운 면모로 출품을 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보부상이란 한마디로 등짐이나 또는 봇짐을 지고 이리저리 떼 지어 상역을 하는 한 집단, 한 조직을 말합니다.

에, 이러한 조직은 고려말기로부터 시작이 돼서 조선조 초, 중기를 거쳐 대원군 시절에는 하나의 세력권으로까지 발돋움했던

그러한 면모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충청남도 부여, 서천 등지. 저산팔읍을 중심으로 한

상무사 단체에서만 음력 3월 11일, 백원달이라는 보부상의 시조 격이 되는 분이 이태조로부터 일곱 가지 상품의

전매권을 받은 날을 기념을 하는 제사로서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충청도에 전하는 뿌리 깊은 집단의

한 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통음악-보부상놀이)

장이 무르익으면서 호박엿장사 부르는 엿타령이 이어집니다.

(전통음악-보부상놀이 엿타령)

우리 옛 선조들은 며칠 만에 돌아오는 장날이 곧 나들이 날이었다. 굳이 물건을 사고팔지 않더라도

서로 모여 장꾼들끼리 세상 돌아가는 얘기. 친지들의 안부를 묻고 전했으니. 그 구심점인 보부상들이야말로

촌락공동체의 주역이었던 셈이다.

(전통음악-보부상놀이)

- 이헤헤헤헤!

- 헤헤헤헤헤!

- 자, 오늘 장에선 모두 재미들 좀 봤지?

- 아이, 그럼유. 내 봇짐은 오늘 아주 탁 털어 버렸시유. 에헤헤헤헤.

- 좋아좋아, 자. 한 잔씩 쭉 들고 말여. 일찍들 자고 일찍들 일어나.

- 아, 예.

- 내일 아침은 일찍 떠나야 하니께.

- 아, 예에.

- 캬, 에이. 그런데 덕팔이가 안 보이네.

- 덕팔인... 아까부터 어떤 애를 데리고 뒷켠에 있던디유?

- 글쎄, 한숨을 쉬면서 좀 이상하대유? 애는 찔찔 울고 있고.

- 아니, 애라니?! 무슨 애란 말여?

- 아까 장에서 만나갖고 쭉 데리고 있던디요? 열두어 살 먹었나?

- 아니, 거 뭔 일이여? 내가 좀 나가볼까?

- 그러세유. 내가 몇 번 들어오라고 했는디 내 말은 듣지도 않는구먼요.

- 잠깐 댕겨올게. 음. 아, 으음. 음. 익? 아, 저기 있구먼. 아, 여보게. 덕팔이.

- 예, 아이. 아.

- 아, 뭘 하고 혼자 나와 있는겨? 아, 모두 한 잔씩 하고 있는데.

- 저는 생각 없습니다.

- 아이이, 얜 누구여? 웬 앨 데리고 있어?

- 얘는... 아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얘, 너 아까부터 왜 기웃거려? 뭔 일이여?

- 아저씨. 무슨 물건을 하나 팔려구 그러는디유.

- 뭐여? 어디 보자.

- 여깄슈.

- 아니, 이거는 옥비녀하고 은반지 아니냐? 어디서 났어, 너?

- 사실은 우리 어머니 거예요. 집에 있어봐야 재미도 없고 해서유. 이걸 훔쳐가지고 집을 나왔슈.

그러니 아저씨 싸게 좀 사주세유.

- 아, 그런데 잠깐... 아니, 너?!

- 왜 그렇게 찬찬히 보세유?

- 아유...

- 아, 왜 그려? 아, 왜 한숨이여? 얘길 하다 말고.

(흐느껴 우는 소리)

- 이 비녀하고 반지는 내 마누라 것이다요.

- 아, 뭐여?!

- 집에서 억지로 결혼을 시키는 바람에 고향 떠난 지 10년이 됩니다만 그러곤 장돌뱅이로 떠도는 바람에

집엔 한 번도 못 갔어요.

- 아니, 그런데 이 반지가 자네 마누라 거라는 것은 어떻게 알아봤남?

- 우리 집안에 대대로 물려오는 반지 아닌가요? 여기 표시가 딱 있고.

- 허어참, 아유, 그럼 이걸 10년 만에 장터에서 아들을 만났군 그려!

- 아유...

- 아니, 그래. 어떡할 참이여?

- 내일 고향으로 돌아갈 랍니다. 얠 데리고 가서 당분간 농사나 지어야죠. 어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우리나라 장날의 풍경을 대변했을 만큼 가난과 그리고 익살과 슬픔을 함께 모았던 장타령이 이어집니다.

(전통음악-장타령)

제멋대로 떠돌아다니던 보부상들이 하나의 조직체로 태동을 시작한 건 이조 태조 때부터다. 보부상의 총본부격인

착임방이 개성에 설치되고 국내 물자 중 소금, 철기, 목기, 토기, 곡물, 백지, 건어물 등 일곱 종의 전매권을 획득하게

되니 보부상은 비로소 우리나라 상거래의 중추적 집단으로 인정을 받게 된 셈이다.

(전통음악)

보부상들의 안녕과 재수대통을 비는 문공제 노랩니다.

(전통음악-문공제 노래)

보부상들은 규율과 신의를 존중하는 조직으로 굳어지면서 국난이 있을 땐 즉각 상병단으로서의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니 순조11년 홍경래의 난 때 의주의 보부상 천여 명의 반란진압에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병인양요,

동학난 때에도 큰 역할을 수행했다. 심우성 씨의 얘깁니다.

『에, 우리 역사 가운데 정치적으로, 에, 또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혼란이 심할 때는 이 보부상들의 역할이

항상 컸습니다. 병자, 또는 임진, 홍경래의 난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에, 그런데 이처럼 처음에는

봇짐이라든가 등짐을 진 장사의 집단이었지만 이것이 어떤 한 사회조직으로 발전이 됐고 또한 이것은

한 가지 권력집단의 행세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보부상은 우리사회에 좋은 일만을 끼친 것은

아닙니다. 에, 여러 가지 잡음도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국난에 임하게 될 때는 언제나 상역단을 조직을 해서

스스로 괭이를 들고, 또 활을 들고, 칼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을 섰음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현재 서산 삼읍, 그러니까 부여와 서천과 한산, 임천, 홍산, 비임, 남포, 정산 등지에는 옛 보부상의 유물과

또한 그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계셔서 이러한 보부상놀이가 오늘날까지 전승이 되는 것입니다.』

(전통음악-보부상노래)

보부상노래가 이어집니다.

(전통음악-보부상노래)

별나게 인사성이 밝고 신의가 두터웠던 보부상의 세계. 길 가다 서로 만나면은 그들 특유의 인사를 나누는데

말 한 번 하고 절 한 번 하고 인사말을 하는데 그동안 절을 세른 세 번 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전통음악-보부상노래)

그뿐이랴. 이미 장터에서 같은 물건을 파는 먼저 온 사람이 있을 땐 형님으로 우대하고 절대 그 단골을

가로채지 않았다. 또 먼저 온 사람은 또 아우에게 봇짐 풀 장소를 골라주고 자기 물건까지도 서슴없이

나눠줬다고 하니 이러한 가족적 상도의가 어찌 하루 이틀에 이루어질 수 있으랴.

보부상 문공제를 거행하기 전에 낭독하는 칙령이 이어집니다.

(음성 녹음-칙령)

(전통음악-보부상놀이 문공제)

(바람 부는 소리)

- 아... 눈은 내리고 산길은 험하구나.

- 여보쇼. 여보쇼!

- 아니?

- 앞에 가는 양반!

- 누가 내 뒤를 따라왔네.

- 아니, 누구쇼?

- 거 보아하니 행색이 보부상 같은데...

- 아, 아니외다! 보부상이라니!

- 거짓말 마시오! 그 무슨 사정이 있어서 한데 안 어울리고 이렇게 혼자 가시는지 모르겄수만.

- 그럼 당신은 상무사 단원이 아니오?

- 마찬가지올시다.

- 왜 그럼 당신은 혼자 가고 있소? 등짐을 멘 채 말이요.

- 장엔 갈 수 없고 작은 마을이나 다니자는 것 아니오.

- 당신도 무슨 사연이 있구려.

- 우리 솔직하니 얘기합시다. 일본 놈들이 보부상을 상무사로 묶어놓더니만 아, 이젠 우리더러 돌아다니면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을 잡아오라고 하는디 아이구, 이게 나, 기가 막혀서.

- 알겠소이다. 같은 처지요.

- 내 그런 짓을 하느니 차라리 굶어죽는 게 낫지. 그래서 아예 상무사에서 빠져가지고 혼자 이렇게 다니는 중이외다.

- 알고 보니 우리는 동지요. 같이 저 고개를 넘읍시다.

(전통음악-여흥노래)

문공제가 끝난 다음에 여흥노랩니다.

(전통음악-여흥노래)

고종 3년, 보부청을 설치해 전국의 보부상을 통합했고 상무국 상무사로 바껴지는 동안

황국협회는 보부상의 강력한 조직을 이용,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세웠다. 다시

상무사는 진흥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보부상 활동을 확장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마니

전국을 누볐던 보부상 조직은 근대화의 서광 속에서 막을 내리기 시작한 셈이다.

이번 대회에 출연했던 현지 주민의 얘기를 잠시 들어본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보부상놀이)

오동나무로 만든 물무 작대기 위에 등짐 메고 신바람 나서 몰려들어오던 보부상. 이제 그 자취도 옛말이다.

산길 따라 강길 따라 걸음 재촉하던 남정네들의 왁자했던 소리도 들을 길 없다. 그러나 비록 그 시대는 갔으나

시골장터 정취 속에 불현듯 들려오는 가락이 있으니 저 사람이 바로 보부상의 후손이련가.

(전통음악-보부상놀이)

다음 주 이 시간에는 제주도 불미노래를 보내드립니다.

(전통음악-보부상놀이)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보부상놀이)

(입력일 : 201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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