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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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 산유화가

산유화가
1979.11.25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음악)

(전통음악-산유화가)

백제. 이미 1300년 전 멸망해버린 삼국시대의 왕국, 백제. 영화로 얻은 700년 사직을

동족도 아닌 당나라 연합군에게 빼앗긴 비운의 왕국이었기에 지금도 그 이름은

한 가닥 깊은 여운을 남기면서 불리어진다. 그러나 역사 속에 사라졌으되 역사 속에

살아 있는 백제는 깨진 기왓장 한 장, 허물어진 절터 하나에서도 그 꿈과 기상을 엿볼 수 있으니

태동하고 있는 백제문화권 복원사업과 함께 백제는 이제 다시 소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통음악-산유화가)

이 시간에는 충청남도 부여지방의 민요이며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의 유민들이 부르기

시작했다는 산유화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설명입니다.

『에, 우리나라 민요 중에서 산유화가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적지를 않습니다. 에, 흔히 메나리라고도

합니다. 충청도지방뿐만 아니라 경상도에서까지 산유화가는 그동안 많이 채록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서 채록되고 있는 노래인데도 그 가사를 보면 모두가 백제의 고도 부여의 지명과

또 백제의 고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충청남도 부여지방에 가면 언제부턴가 아주 옛적부터 불려오는

산유화가라는 메나리소리라고도 합니다마는 엮음민요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희미한 기억을 살려 간혹 촌로들의 입에서 토막토막 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가장 긴 것이 불과

이십여 행에 불과했습니다. 에, 그런데 2,3년부터 홍종관 옹이라는 분이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장산리에 살고 계시며 또한 산유화가를 부르고 계신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

들으시는 이 산유화가는 올해 여든한 살이신 장산리에 사시는 홍종관 옹과 그의 하나뿐인 수제자

박홍남 씨. 올해 예순입니다. 두 분의 산유화가를 듣고 계십니다. 에, 이러한 민요는 비단 부여에

전승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의 산유화가가 망향의, 망국의 슬픔을 달래는 백제 유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는데 특징이 있다 하겠습니다. 』

(전통음악-산유화가)

어쩌다가 백제는 700년 긴 사직을 다른 민족의 발톱 아래 끝내버렸단 말이냐.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법.

산유화야, 산유화야. 이런 일이 웬 말이냐.

슬프구나, 어화벗님. 고국충성 못 다한다네.

긴 산유화갑니다.

(전통음악-산유화가)

-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 저... 누구를 찾으십니까요?

- 음... 나는 도독부에서 나왔거니와. 이 댁 주인은 안 계시느냐? 왜 이리 집안이 조용하냐.

- 이 댁 주인마님을 만나시게요?

- 그렇다. 이 댁 주인이 의자왕 때 정오품을 지낸 분이 틀림없는고?

- 예, 그렇사옵니다.

- 그럼 빨리 누굴 좀 나오라고 불러봐라.

- 아니, 왜... 왜 그러는뎁쇼? 나으리.

- 백제는 망했으나 당시 관직에 있던 분에게 우리는 새로운 관직을 제수하겠단 말이다. 어서 대문을 열라 해라.

- 아이, 안 됩니다요.

- 뭐라고? 왜 안 된단 말이냐.

- 이 댁 대감님은요. 나라가 망한 뒤로 식구들을 모두 시골로 내쫓고 부리던 하인들도 모두 돌려 보내시구요.

안에서 대문의 못질을 해버리셨단 말입니다요.

- 아니, 그럼. 대문 밖엘 다시는 나오지 않겠단 말이냐.

- 그렇습니다요. 이젠 남의 나란데 어떻게 부끄럽게 바깥 땅을 밟겠느냐시면서. 에휴... 저도

이 댁 하인이었는데요. 이렇게 날마다 대문 밖을 지켜도 통 안 나오십니다요.

- 으음... 그럼 먹을 것은 어떻게 하고?

- 광에 곡식이 좀 있는데. 그걸 혼자 끓여 잡수시는지 끼니때마다 연기가 나긴 합죠.

- 아... 겨울이 돼야 송백이 푸른 것을 알 수 있거늘 나라가 망한 다음에야 과연 충신이 누군지도 알 수가 있구나.

하지만 나라가 바뀌었으니 그런 고집이 무슨 소용이냐. 자, 문을 부숴라.

- 아이, 예예. 그럽죠. 자. 읏차!

(문소리)

- 으잇차!!

(문 소리)

- 됐다. 들어가 보자.

- 예. 대감마님. 마님, 어디 계십니까요?! 대감마님.

(문 여닫는 소리)

- 오?! 아니, 저런!

- 마님.

- 관복을 입고 저렇게 꼼짝 않고 누워 있다니. 잠이 들었나? 아니?!

- 대감마님! 대감마님!!

- 돌아가셨어.

- 예?!

- 매 끼니 때마다 연기가 났다지만 밥을 먹은 흔적이 없구나. 빈 불만 지피고 조금씩 조금씩 죽어갔단 말이다.

굶어서 죽었어.

- 대감마님!!

(전통음악-산유화가)

계백장군과 오천 군사가 황산벌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져서 숨졌으며

일만 이천 명의 포로가 당나라로 끌려갔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로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3년간에 걸쳐 다시 백제를 찾기 위한 최후의 항전이 벌어졌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러한 역사의 기록 뒤에서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린 한 맺힌 사연은 또 얼마나 되는 것일까.

(전통음악-산유화가)

산유화가의 전체소리의 줄기는 나라를 잃은 백제유민의 의지와 애환이 깃든 것이다.

그러나 백제유민의 노래이면서 또한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농요이기도 하다.

심우성 씨의 얘깁니다.

『에, 우리나라의 민요들은 대개 농사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산유화가 역시 처음에 긴 산유화가로부터

시작이 돼서 잦은 산유화가. 다음에는 김매는 소리, 잦은 김매는소리, 벼바심소리, 나부질소리, 노적소리.

그리고 뒷전맺음소리로 끝을 맺습니다. 이처럼 긴 농요는 산유화가라는 이름으로 유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들자면, 만경창파 붉은 바다 둥실둥실 떴는 배는 친화하는 배들인가, 중국과

친하고자 하는 배들인가. 고기 잡는 어선인가. 고궁도를 바라보니 친화선이 분명쿠나. 아마도

그 사비강 근처에 쳐들어온 당나라 배를 보고 백제의 유민들이 애달파한 그러한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이 산유화가를 채록하게 된 경위는 부여지방의 산유화가 이미 1931년에 전 부여박물관장 홍사준 옹에 의해서

채록된 단편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아주 열심인 이 지방의 향토민속연구가 이양수 씨의 제보에 의해서

이 소중한 산유화가는 채록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전통음악-산유화가 벼바심소리)

벼바심소리가 이어집니다.

산유화. 백제의 노래 산유화. 700년 영화는 자취 없이 사라지고 바위틈의 이름 없는 들꽃처럼 외롭게 살아남은

백제의 노래, 산유화. 무심히 듣고 무심히 넘기는 이 소리의 가사 속에는 잃어버린 나라를 애통해하는

울음소리가 구구절절이 한처럼 맺혀 있다.

나부질소리가 이어집니다.

(전통음악-산유화가 나부질소리)

(바람 소리 및 노 젓는 소리)

- 여보, 날이 춥죠?

- 겨울이 왔구려. 강바람이 이렇게 얼음장 같으니. 으흠, 흠. 흠흠.

- 여보, 이제 당신 나이도 들었고 몸도 좋지 않은데 제발 노 젓는 거 그만두구려.

아유, 이게 뭐예요. 일년 사시사철 하루도 안 빼고 강 위에서 살아가다니.

(기침 소리 및 노 젓는 소리)

- 나더러 이 뱃사공을 그만두란 말이요?

(바람소리 및 노 젓는 소리)

- 당신 몸을 좀 생각해야 하잖아요. 이러다가 당신 이 나룻배 위에서 무슨 탈이 나겠어요!

- 괜찮아. 난 탈이 나지 않소. 난 아버님을 기다려야 해.

- 아유, 또 아버님 얘기. 여보, 아버님이 떠나신 지 벌써 30년이 다됐어요.

- 30년.

- 그래, 그래도 아버님은 돌아오실 거요. 난 이 나룻배 위에서 아버님을 기다려야 해. 그거이 약속이야.

- 얘야.

- 예, 아버님.

- 나는 집을 떠나거니와 다시 돌아올 기약도 없으니. 너한테 모든 것을 맡기고 가는 수밖에 없구나.

- 아버님, 어디로 가시는지 방향만이라도 가르쳐줄 수 없으신지요.

- 정처가 있겠느냐.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을 하러 가는 것인데 무슨 말을 더 남기고

가겠느냐.

- 아버님, 그럼 저도 같이 가게 해주십쇼.

- 안 된다! 나는 가더래도 너는 남아서 가업을 지켜야지. 나라를 잃고 집안마저 잃어버린다면

이제 어디에 발을 붙이겠느냐?!

- 아버님.

- 그러나 나는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백제를 다시 세우려는 충신들과 백성들이 한데 뭉쳐서

기필코 나라를 되찾고 말겠다. 그리고 돌아오리라!

- 아버님, 기다리겠습니다.

- 내가 젓던 나룻배를 가지고 언제나 저 사비강 위에 있어라. 사비성을 탈환할 때 기필코 이 사비강을 지날 것인즉.

그때 너는 백제 사람으로서 한몫을 해야 할 것이다.

- 예, 아버님.

- 잘 있거라. 나라를 찾은 후에 다시 보자.

- 아버님.

(바람 소리 및 노 젓는 소리)

- 하지만 30년이 넘었어요. 이제 아버님도 벌써 어느 곳에선가 돌아가셨을 거예요. 당신 나이가 몇인데

여태 아버님을...

- 아니야, 아버님은 돌아오실 거야. 이 강 위로 오셔서 날 찾으실 거야. 돌아가셨다면 넋이라도, 넋이라도 오셔서

날 찾으실 건데 내가 이 강 위에 없어봐. 안 돼, 난 이 강 위에 있어야 돼.

(바람소리)

(전통음악-산유화가)

노적소리가 이어집니다.

(전통음악-산유화가 노적소리)

백제불상의 신비한 표정을 가리켜 후세사람들은 백제의 미소라 부르고 있다.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슬픈 문화를 가졌던 백제. 그들의 미소는 과연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오늘도 낙화암은 바람 속에 우뚝 서있고 백마강은 무심히 흘러가건만 한 번 간 영화로운 시대는

자취가 없으니 그것이 바로 역사란 말인가. 기억과 망각 속에서 귀 기울이면 저 메마른 노랫가락 속에

옛 향취가 스미는구나. 백제. 백제의 노래, 산유화.

(전통음악-산유화가)

다음 주 이 시간에는 제20회 대한민국 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한 민속예술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산유화가 노적소리)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산유화가 노적소리)

(입력일 : 20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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