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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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 배뱅이 굿

배뱅이 굿
1979.11.18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전통음악-배뱅이굿)

배뱅이굿, 그리고 이은관. 이것은 분명히 따로따로인 이름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또 분명히 하나의 이름이다.

분명히 따로따로이되 이제 하나로서 알려진 이은관의 배뱅이굿. 이은관이 없었더라면 배뱅이굿이 이토록

유명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또 배뱅이굿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이은관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해방 후 이토록 폭발적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나 소리꾼이 몇이나 될 것인가.

배뱅이굿의 가락 속에는 비단 배뱅이의 사연뿐 아니라 명창 이은관의 인생이 함께 스며 있다.

이 시간에는 배뱅이굿의 주인공, 민요 명창 이은관의 전부를 소개합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얘깁니다.

『에, 우리나라 굿에는 귀신을 오히려 무섭게 다루는, 귀신을 내쫓는 그러한 굿이 있고 한편은 귀신을

즐겁게 해서 술을 대접을 한다든가 떡을 대접한다든가 또는 돈을 많이 쌓아 놓음으로서

귀신이 제풀에 좋아서 가게 하는 그런 굿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 있는 배뱅이굿은 이 두 가지 굿이

다입니다. 이름은 굿입니다마는 굿이라는 이름에, 자칫 굿에 빠져버린 민중들의 자기각성을

얘기하는 대목이 바로 배뱅이굿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부터 전해지는 의식적인 굿을 스스로

비판하는 대목에 새로운 굿이라 하겠습니다.』

(전통음악-배뱅이굿)

배뱅이굿은 결코 이은관 한 사람만이 부른 것은 아니다. 전통적 연극양식인 배뱅이굿은 이은관 이전에

명창 최순경, 김종조 등이 이미 불러 널리 전파시킨 바도 있다. 그러나 배뱅이굿은 어째서 오늘날 대중들에게

이은관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것일까.

(전통음악-배뱅이굿)

(문 여닫는 소리)

- 소포요.

- 소포라니? 누구한테예요?!

- 이은관 씨한테 서울서 보냈는데요. 헤헤헤헤. 안녕히 계세요.

(문 여닫는 소리)

- 아니, 거 뭐가 왔다구?

- 뭔지 모르겠어요. 뜯어봅시다.

- 음.

- 아니, 이거 유성기판 아니야?! 유성기판! 거 이 녀석 봐라! 거 농사를 지어서 읍내까지 핵교를 보내 놓으니까

그 중퇴나 해서 내려온 주제에 원.

- 아이, 공부에 뜻이 없어서 농사나 짓겠다는 건 나쁜 게 아니잖아요.

- 당신이 아들을 버리잖아. 나 몰래 유성기나 사주니. 또 이런 유성기판이나 사들여 노래가 듣고!

그 또 뭐야?! 농사를 짓겠다는 녀석이 밤낮 산에 올라가서 악이 꽥꽥 지르고 있잖아! 아, 이 녀석 어디 갔어?!

- 어휴, 산에 갔나 봐요. 아휴, 관둬요. 소리꾼이 돼든 뭘 하든 저 좋아하는 거 하도록 관둡시다.

(전통음악-배뱅이굿)

이은관처럼 무대 위에서 표정이 다채로운 소리꾼도 드물다. 그 다채로운 표정은 주로 익살스러운 것이다.

아무리 우울하고 슬픈 곡도 그 얼굴을 보는 사람은 절로 미소가 넘치게 만든다. 그것이 대중의 인기를

모으게 된 원인일 런지 모른다. 무대와 관객을 압도하는 소리꾼, 이은관. 그러나 그 희극적 표정을 한 꺼풀

벗기면 우리는 인생의 깊은 애수를 거기서 느끼게 된다.

(전통음악-배뱅이굿)

한 사람의 명창이 길러지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일이 걸리는 것일까. 고향은 강원도 이천군 고동골이라는

산골짜기. 중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17세 때 신문사 주최 가요콩쿨에서 1등을 차지한다.

그 후 비로소 소리의 세계에 입문. 황해도 황주의 이인수 씨, 서울의 지경숙 씨, 이명규 씨에게 사사를 받으니

한 사람의 뛰어난 소리꾼으로서 그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음성 녹음)

해방이 된다. 일제하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우리 가락들이 삽시간에 봇물 터지듯 넘쳐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것에 목마른 민중들에게 이때 배뱅이굿은 깊은 인상을 심었다.

(음성 녹음)

영화로, 레코드로, 전국순회공연으로 배뱅이굿은 이은관과 함께 널리 알려진다.

육십여 번을 레코드판으로 취입했다고 하니 우리 국악으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인기와 영광을 함께 한 셈이다.

(전통음악-배뱅이굿)

배뱅이굿을 들으면서 울고 웃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가식에 불과하지만 삶과 죽음과 사랑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이 이은관의 구성진 소리는 우리민족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소리 속에 민중을 끌어들였고

또 스스로 민중 속으로 들어갔던 소리꾼 이은관. 이제 어느 누가 이토록 깊이 친근하게 대중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인가.

특히 민요는 우리 고유의 서민음악이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기는 쉽지는 않은데. 심우성 씨의 설명입니다.

『에, 우리가 무대에 서 있는 가수라든가 또는 배우를 화려하게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의 뒤안길은

설움과 슬픔도 함께 합니다. 개인적인 영예와 고생을 아랑곳없이 노래로서 일생을 보내고 있는 이은관,

이분은 하나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서도 그분은 민요명창으로서 조명된 무대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오늘의 민중의 가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은관 씨의 민요는 고리타분하다거나 또는 너무 난해하지도 않습니다.

오늘의 민중이 무엇을 희구하는가. 오늘의 민중의 희로애락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이은관 씨의 장기라 하겠습니다.

(전통음악-배뱅이굿)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것을 곧 옳지 못한 일로 단정했던 우리 봉건사회의 낡은 관습 때문이었을까. 민중의 소리꾼으로까지

불리어지고 있는 이은관. 그는 아직도 정작 그에게 알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큰 상 한 번 받아보지 못했다.

올해 나이 예순셋. 그래도 그는 겸허하게 웃고만 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배뱅이굿)

우리 국악에 대해 별다른 관심조차 없는 사람도 대부분 이은관의 배뱅이굿은 기억한다.

이것은 그대로 흘려버려도 좋을 작은 공로로 불과한 것일까. 단순한 인기 그 하나 때문이었을까.

이제 이은관은 배뱅이굿보다 또 다른 서도소리를 부르고 강원도민요를 더 많이 부른다.

그러나 그가 어디로 가든, 어떤 노래를 부르든 우리의 가슴속에 그는 배뱅이굿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전통음악-배뱅이굿)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배뱅이굿)

(입력일 : 20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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