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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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 얼을 잇는 재일동포

얼을 잇는 재일동포
1979.08.12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태평양화학 제공

(광고)

(전통음악)

반만년을 변함없이 이어온 우리 민족의 얼까지도 씻어내려고 몸부림치던 일제가 이 땅에서 쫓겨 가고

다시 내 나라를 찾은 지도 언 34년. 허나 아직껏 심한 민족차별과 멸시 속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어 있는 수십만의 우리 재일동포들.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에서 살게 됐으며

일본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낯설고 외로운 이국땅에 어설픈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결코 민족혼을 저버리지 않은 채 그들의 후손에게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노래, 그리고 우리 풍물을 전해주려 애쓰는

민족정신이 중요하고 값진 것이리라.

(전통음악)

이 시간에는 광복절특집으로 때로는 우리 가락의 향수에 젖고 때로는 우리 장단에 정겨운 고국을 그리며

온갖 괴로움을 달래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우리 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더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일본에서 현지취재를 마치고 돌아오신 민속학자 심우성 씨로부터 재일동포들의 국악계 소식을 들어봅니다.

- 『에, 일본 하면은 거리로서는 가장 가까운 나라입니다마는 어쩌면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본 속에

우리 동포들은 아주 고국을 가까이 두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그 의식은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동포들의 위치라 하는 것은 바로 국력의 척도와 같은 것이 돼서 요즘은 우리 국력이 조금씩 신장됨에 따라서

대우도 좀 낫게 받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동포들은 우리말과 또 우리 노래에 익숙지를 못합니다.

2세와 3세 때에 가면은 거의 말까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이러한 재일동포들 사회에서

우리 국악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싹트고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의 자장가와 같은 친밀감이라고나 할까.

말로서 가사는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면서도 아리랑을 부르며 도라지를 부르며 또 방아타령을 부릅니다.

아마도 그러한 우리의 풍물 가운데에서 민족혼에 어떤 애착을 느끼며 바로 고국에 대한 애정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통음악)

지금은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시나위의 인간문화재 지영희 씨의 딸로 동경에서 가야금 연구소를 차리고 있는 지성자 여사.

(음성 녹음)

(전통음악)

- 아니, 왜 그치지? 아주 좋은데.

- 선생님, 저기 문간에 서계신 할아버지 때문에-.

- 할아버지 때문에?

- 네. 가야금 연습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 어디... 어머... 정말?

- 참 이상한 할아버지예요.

- 글쎄 말이야. 매일같이 슬그머니 들어와서 문가에 서 있다가 나가고.

- 벌써 열흘도 넘었어요.

- 하루도 빠짐없이?

- 네. 뭐 하는 할아버질까요?

- 글쎄...?

- 어? 그만 나가실 모양이에요.

- 어, 저, 할아버지!

- 아... 예?! 에, 절 부르셨습니까?

- 아니?!

- 어머? 한국사람 아니에요?

- 정말, 아.

- 이거. 죄송합니다. 매일같이 들어와서 폐를 끼쳐서요.

- 할아버지 한국분이시네요.

- 예, 그렇습니다. 매일 여기 들어와서 가야금 소리도 듣고 우리 가락도 들으면서 고국 생각,

고향 생각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입니다.

- 아유, 그럼 진작 말씀하시지 않구요.

- 폐가 되고 방해가 될 것 같아서요. 이, 오늘은 공연이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자, 가야금 계속해주실 수 없으신지요?

못 듣던 곡인데.

- 손금련 선생님이 작곡한 향수라는 곡입니다만.

- 오... 어쩐지.

- 아, 연주를 계속해요. 할아버지, 여기 편히 앉으세요.

(전통음악)

이처럼 때로는 동포들이 들려서 향수를 달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한마디 모국어도 모르는

재일동포 2세들에게 노래를 통해서 민족혼을 깨우치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전통음악)

지성자 여사는 지난해 9월, 이 가야금 연구소의 후진들과 함께 개인리사이틀을 열어 많은

교포들을 즐겁게 해주었었다.

(전통음악)

우리말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가락은 무엇이며, 장단은 또 무엇인지. 아니, 그보다도 노래에

담겨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도 무작정 우리 가락이 좋고, 아무튼 우리 노래가 좋아

우리 것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는 그들이고 보면 이 또한 같은 핏줄이기 때문일까.

(음성 녹음 및 전통음악)

비록 지성자 여사의 제자인 이양지 양이 부른 방아타령이 서투르긴 해도 도저히 다른 나라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멋과 맛이 그대로 스며 있는 소리와 감정. 말하자면 우리의 얼이 살아 있는 것이다.

역시 지성자 여사의 제자인 이은자 양의 풍년가도 마찬가지다.

(음성 녹음 및 전통음악)

또한 일본에서 평생 살아오며 국악으로 우리 동포들을 위문해온 재일예능협회장 박진웅 씨의 날라리 소리에서도

우리는 진한 우리 민족의 냄새와 그리고 고국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전통음악)

짐승도 제 집 밖에서 죽을 때는 집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눕는다는데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나 낯선 이국땅에서

고국을 그리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그 누가 제대로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음성 녹음 및 전통음악)

일본에서 취재를 하면서 우리의 얼을 잇기 위해 애쓰고 있는 교포들을 직접 만나본 심우성 씨는 그들의 애로사항을 이렇게 지적한다.

- 『에, 비단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 안에서도 모든 그 생활 풍습이 서구화돼가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민속을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죠. 더구나 모든 생활 여건이 다른 이국인 다른 나라인 일본 속에서

우리의 민속예술을 지키는 이 몇 분들의 생활은 아주 고달픈 것입니다. 에, 특히 말을 모르고 또한 장단을 모르는 분들이

우리 노래를 배우고 춤을 배우기란 참 어려운 일이죠. 한마디로 얘기해서 우리 정부라든가 또는 모든 국민이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 국악뿐만 아니라 언어, 그, 모든 배울 수 있는 그러한 시설을 갖추어줘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동경 안에는 지성자 씨가 경영하고 있는 조그만한 사설 국악연구소가 하나 있을 뿐입니다. 하루 속히 동경뿐만이 아니라

대판이라든가, 일본의 큰 도시, 그리고 하와이와 또 미국의 여러 도시에 우리 국악 연수소가, 연구소가 꼭 마련돼야겠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전통음악)

밀려드는 서양문물들로 해서 이 땅에서 참다운 민속과 풍물들이 차차 사라져 가고 있는 요즘, 외로운 이국땅에서 우리의

얼을 잇고 민족혼을 살리려는 재일동포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 우리말도 못하는 그들 2세에게

우리의 얼을 심어준다는 것은 곧 우리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일진대 우린 그들에게 온갖 지원과

협조를 아까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것은 비단 재일동포들한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닐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많은 해외동포들한테 이러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마치 세계 곳곳에 우리의 태권도장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얼을 심어주는 민속학원이 세워질 수 있는 날은 언젤까.

(전통음악)

다음 주 이 시간에는 농악12차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광고)

(전통음악)

풍물삼천리. 태평양화학 제공이었습니다.

(전통음악)

(입력일 : 201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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