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풍물삼천리.
(음악)
태평양화학 제공.
(광고)
(전통음악-호미걸이소리)
팔자로다, 하늘이 내려주신 업이로다. 그렇지 않고서야 8대 300년 가문이
면면히 이 한 가지 기능을 이어올 수 있단 말인가. 망치로 장단을 맞춰가며
소리를 뽑고 있는 도편수 김현규 씨. 8대가 물려온 목수의 기능을 손과 머리와
소리로서 불사르고 있건만 어쩌면 그것은 그의 대에서 마지막이 될 런지도 모르니
그의 가락이 더욱 듣는 이의 가슴을 치는구나.
(전통음악-호미걸이소리)
이 시간에는 도편수 김현규 씨의 기예와 인생을 소개합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로부터 도편수에 대한 얘기를 듣습니다.
『에, 흔히 현대의 도시는 시멘트와 철근의 숲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이 자연 위에 인간이
아주 훌륭한 예술을 할 수 있는 기예 가운데 우리는 요즘 건축공학을 얘기합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도편수란 설계도 하고, 시공도 하고 모든 건축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목수 하면은 소목이 있고, 대목이 있습니다. 소목은 창호, 문도 짜고 작은 일을 합니다.
대목은 기둥도 세우고 석가래도 올립니다마는 이 도편수는 모든 일을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 도편수가 몇 분이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8대째 이어오는 김현규 씨의
경우, 조상 어느 대로부터 물려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으되 깎기라든가 대패, 톱, 모든 끌, 먹통에
이르기까지 아주 고색이 창연한 목수연장을 모두 지니고 계십니다. 현재 전통적인 우리의 건축공학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데도 김현규 씨의 존재는 아주 높다 하겠습니다. 대목과 소목, 모두가
오랜 시간을 걸려서 일을 완성했습니다. 나무가 울창한 산에서 어떤 것은 대들보로 쓰며, 어떤 것은
기둥으로 써야 할지 모두 이 도편수가 골라내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마무리까지 모두가
도편수의 책임입니다. 』
(전통음악-호미걸이소리)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 김해 김 씨의 마을. 이곳이 8대 도편수 김현규 씨의 고향이다.
그는 이곳에 낳고 자랐으며 그 재능을 배웠다.
(음성 녹음)
(나무 두드리는 소리)
- 얘야, 추운데 너 아까부터 뭘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니?
- 저 광에 석가래 하나가 썩어서요. 그걸 바꿔 끼우려구요.
- 아니, 얘야. 너 이제 열네 살인데 무슨 힘이 있다고 그 무거운 걸 바꿔 끼운단 말이냐.
- 집은 힘으로만 짓는 게 아니에요. 길이를 재고 넣을 곳을 맞춰주면
일꾼들이 들어 올려줄 거 아닙니까?
- 아니... 그런 걸 니가 언제...
- 에헤, 집 짓는 거 구경 몇 번 하니까 금방 알게 되던데요?
- 너는 그 일을 안 시키려고 했는데... 어느새... 아이구, 내림이로구나. 누가 그걸 막으랴.
(전통음악-호미걸이소리)
그게 어찌 시켜서 되는 일이랴. 열네 살 소년시절부터 등 너머로 기술을 익혀온 그는
열일곱이 되자 그 재주가 널리 알려져 직업목수가 되니 그 첫 번째 공사장이 지금은
불타 없어진 경기도 파주군 미타사라는 절이다.
(나무 두드리는 소리)
- 아, 아, 김 씨.
- 예.
- 소리나 한마디 하지.
- 좋지.
- 김 씨야 목수일도 좋지만 또 소리가 그만 아니여?
- 아유, 제가 뭘요. 전 못합니다.
- 아, 이 사람아. 소리 못하는 목수야 목수가 거 목수야?! 우리도 다 한가락씩은 있는 몸들이지만
아,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쓸 수 있나? 아, 자, 김 씨가 어서 한가락 뽑더라고.
- 아아이, 선생한테 배운 바도 없고 그냥 흥얼거리는 소린데. 나 이거 참.
- 아따! 겸손 그만 떨고. 아, 자 방아타령이 어땨? 아, 좋지?! 자자자자자, 하더라고.
(전통음악-방아타령)
그로부터 그는 소리꾼으로도 널리 이름을 날리면서 또 도편수로서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공사장을 찾아 11년의 세월을 보낸다. 경기도 고양군의 만경사, 양주의 봉천사를 신축했고
전라도의 위봉사, 또 낙산사의 홍연암, 경복궁의 선정전, 동관암 등 그는 안 가본 데 없을 만큼
팔도를 두루두루 노래하며 집 지으며 유랑한 셈이다. 그래서 한 겨울철을 빼놓곤 언제나
떠돌이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 목수의 세계에는 갖가지 애환이 많고 많다. 또 남자들만의
세계가 갖는 얘깃거리가 많다. 심우성 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옛날에 도편수가 목수연장 짐을 싸게 되면 그 부인은 생과부가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연장 짐을 챙겨가지고 집을 떠나게 되면 아주 오래 걸리는 공정의 큰 건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조그마한 움막처럼 임시가옥을 지어놓고 그곳에
도편수를 비롯한 모두 상하의 목수들이 모여서 남자들만의 집단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과는 먼 생활을 하게 되죠. 또 흔히 옛날 우리나라 풍속에 사농공상이라고 해서농,
이 장이를 천대한 옛 풍속으로 해서 도편수도 높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하는 일은 아주 큰일들이죠. 만약에 도편수의 눈에 어긋나게 되면 바로 세워야 할
기둥을 거꾸로 세운다는,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에, 그로 해서 생활이 자연히 방탕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도편수 하면은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사에 아주 중요한 몫을 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찌 그런 호탕한 일뿐이랴.
(대문 여닫는 소리)
- 여보, 나 돌아왔소.
- 아이고, 아이고 여보. 무사히 일 끝내고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오셨군요.
- 그동안 소식 자주 전하지 못해 미안하오. 아 참, 얘가 이번에 낳았다는 아들 녀석이오?
- 아, 네. 자, 좀 안아보세요.
(아이 울음소리)
- 당신을 꼭 닮았어요.
- 어디, 아하하하. 이놈, 똑똑히 보자.
(아이 울음소리)
- 어이구, 그놈 참 잘생겼다. 아하하하하, 아, 근데 여보. 큰 애는 어디 갔소?
- 큰 애요...? 큰 애는 갔어요...
- 응? 아니, 가다니? 어딜?
- 지난달에 갑자기 못된 병을 얻어서 별 약을 다 써봤으나... 어쩔 수 없었어요.
- 아, 왜 그럼 나한테 연락을 하지 않고...
- 큰일을 하는 분을 도중에 불러올 수가 없어서... 그냥 오실 때까지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 아, 그럴 수가! 그 애가 가다니, 그 애가... 가다니...
(전통음악-경기소리)
노래 부르며 일하고 일하며 노래 부르는 목수들에게는 일정한 소리가 없어서 흔히
잡가를 많이 섞어 불렀는데 도편수 소리에 대한 심우성 씨의 설명입니다.
『에, 도편수 김현규 씨의 소리를 들어보면 대개 경기지방의 토속민요가 거의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노래를 할 때 장단이 망치나 깎기, 또는 톱을 긁거나 또 먹통을 두드리는 등
그밖에 모든 연장을 타악기 삼아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바로 노동요라 하겠습니다.
또한 옛부터 도편수 하면 얼굴 잘생기고 여러 가지 재주 있으며 반드시 소리는 으뜸이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로 이 경기소리의 고형들이 도편수의 입으로 전승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음악-경기소리)
날아갈 듯한 추녀의 선하며 한번 지으면 300년은 족히 갔던 우리 고 건축물은 그 우아하고 장중한
모습으로 동양에서도 단연 뛰어난 평가를 받아왔거니와 그래서 해방 전까지만 해도 도편수는
사람들이 떠받드는 직종의 하나였다. 그러나 벽돌과 철근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 옛 건축물은
차츰 그 명맥을 잇기가 어려워졌다.
(전통음악-경기소리)
김현규 씨는 옛 목수일과 오늘의 건축을 이렇게 비교한다.
(음성 녹음)
그러나 오늘날의 건축물에서는 찾기 어려울 만큼 우리네 옛 건축물에는 얼과 혼이 들어 있다고 봐야겠다.
그래서 도편수라는 것도 기능의 뛰어남보다는 먼저 정신이 좋아야 한다고 김현규 씨는 말한다.
이제 도편수의 기억만 남았으나 그는 또한 당대의 소리꾼이다. 호미걸이소리의 당대 유일한
예능보유자로서 그는 지난 1977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개인최고상을 받은 바 있다.
(전통음악-호미걸이소리)
8대에 물려온 목수의 가업. 그 그늘에는 묵묵히 내조하고 인내하며 헌신해온 우리 여인네들이 있었으되
그들은 오늘까지 역시 침묵으로 변함없이 지아비를 섬기니 그 정성과 한으로 우리 옛 건축물은
저렇게 우아하게 전통을 살려왔던가 보다.
(전통음악-호미걸이소리)
다음 주 이 시간에는 농악12차를 소개합니다.
(광고)
(전통음악-호미걸이소리)
풍물삼천리, 태평양화학 제공이었습니다.
(전통음악-호미걸이소리)
(입력일 : 201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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